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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44)] 22. 세르비아(Serbia)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44)] 22. 세르비아(Serbia)

 

[시사타임즈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유라시아 횡단 대장정중 세르비아 TV 인터뷰하는 강명구 평화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 국기 > 범슬라브색인 빨강, 파랑, 하양의 가로 줄무늬 바탕에 왼쪽으로 소형 국장이 있음. < 국장 > 망토 위에 권위의 왕관이 있고, 은색 쌍두 독수리의 소형 국장이 중심에 있음 (c)시사타임즈

 

 

< 국가 개관 >

 

세르비아 공화국은 유럽 중앙의 발칸 반도 중앙 판노니아 평원에 자리 잡고 있는 내륙국이다. 수도인 베오그라드는 오랜 역사를 지녔으며, 남유럽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다. 다뉴브 강이 북쪽 지방을 흘러간다. 북쪽으로 헝가리, 동쪽으로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서쪽으로 크로아티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몬테네그로, 남쪽으로 마케도니아 공화국과 국경을 접하며, 남쪽의 코소보와 분쟁 중에 있다. 국민은 세르비아아인(66%), 알바니아인(17%), 헝가리인으로 구성되며, 종교는 주로 세르비아정교(85%), 로마가톨릭(6%), 이슬람교(3%)이다.

 

The Republic of Serbia is situated at the crossroads of Central and Southeast Europe in the southern Pannonian Plain and the central Balkans. It borders Hungary to the north; Romania and Bulgaria to the east; Macedonia to the south; Croatia, Bosnia and Herzegovina, and Montenegro to the west. The country claims a border with Albania through the disputed territory of Kosovo. Its capital, Belgrade, ranks among the oldest and largest cities in southeastern Europe.

 

1. 국명(Country) : 세르비아 (Serbia)

2. 수도(Capital) : 베오그라드 (Belgrade)

3. 면적(Territory) : 77,474㎢(코소보 제외)

4. 인구(Population) : 7백만 명(코소보제외)

5. 국민소득(GNI) : US$8,000불

6. 언어(Language) : 세르비아어 (Serbian)

7. 독립일(Independence) : June 5, 2006년

 

발칸의 심장, 세르비아여

 

발칸반도 중앙에

여덟 나라로 둘러싸여

바다가 없는 땅

 

그리고 20세기 최후까지

초연이 자욱했던 너

 

이제는 평화를 이야기한다

사랑을 노래한다

 

사바강과 도나우 강이 만나는 곳에

하얀 도시 지키려

우뚝 선 황혼녁의 칼레메그단이여

 

전쟁의 아픔은 다 잊어라

노을 속에 거니는 연인들아

내일을 꿈꾸자

 

스카다리야 거리인가 보헤미안 거리인가

작가 배우 가수 시인 그리고 청춘들

자유로운 영혼 다 모인다

 

테라스엔 와인 잔이 은은하고

록이 흐르고

애정이 넘친다

 

아름다운 꽃, 화려한 색, 고풍스런 건물은

나그네에 덤이다

 

공화국 광장엔

1867년 오스만은 물러가라

미하일로 오브레노브치 3세 말탄 기상은

길손을 맞고

 

화사한 쇼핑가 매력적인 여인들

활기 찬 분위기

마음도 너그러워지는데---

 

동방의 평화마라토너 달려오니 TV가 반긴다

세계평화 뿌리는 세계최장 마라토너여

 

정의로운 하나님이 지켜주신다

세르비아 민족을 세르비아 땅을

 

영원히 영원히 여어어~~~엉원히 !!!

 

 

Balkan’s Heart, Serbia

 

At the center of Balkan Peninsular

Surrouned by eight countries

The land which has no sea

 

Until the 20C’s end

you who suffered from the severe war

 

Now you talk ‘peace’

Now you sing ‘love’

 

At the place meeting Saba and Donaue

To protect White City, Beograde

Oh, you, Kalemegdan, who stands high at the sunset

Foget all, war’s pains

 

Lovers who stroll under the moonlight

Dream for tomorrow

 

Is this Skadariya or Bohemian Street?

Writers, actors, singers, poets and all youths

All with free spirit gather here

 

Two glasses of wine shine in the terrace

There flows a rock music

Love is overflowing

 

Look at pretty flowers, bright cololrs, antique buildings

They are bonus to a stranger

 

This is Republic Square in front of National Theatre

In 1867, Get away, Osmans, this is Serbia

Look at Mihailo Oblenobichi III on the horse

He welcomes all travellers here

 

Attractive ladies at fancy shopping malls

Active surrounding

Our hearts are becoming generous

 

Korean Peace Marathoer runs here, TV welcomes him

The longest marathoner for World Peace

 

The righteous God protects and will do so

Serbian people and Serbian land

Forever Forever For~~~eee~~~ver !!!

 

1. 세르비아 약사

 

세르비아인들은 발칸 반도에 정착한 후 세르비아 왕국을 건설했으며, 이 나라는 세르비아 제국으로 발전하여 14세기에 전성기를 이루었다. 16세기에 세르비아 땅은 오스만 제국에 정복당하였으며, 합스부르크의 침략을 받기도 했다. 19세기 초에 세르비아 혁명이 일어나면서 발칸 반도 최초로 입헌 군주 체제를 세웠으며, 뒤이어 영토를 늘리고 이 지역에서 신분제와 농노제 그리고 노예제를 폐지하는 데 앞장섰다.

 

1914년 6월 28일 세르비아 출신의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였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을 암살한 사라예보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 뒤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를 하면서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게 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집요한 침략에 세르비아는 잘 막아냈지만, 1916년 2월부터 한동안 점령당했다. 1918년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빼앗긴 땅을 수복하고 보이보디나 주를 편입하였으며, 1920년에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통합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1918년에 보이보디나 주가 세르비아에 귀속되었다.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제2차 세계 대전이 진행 중이던 1941년 3월 25일까지는 추축국 진영에 가담했지만 같은 해 3월 27일에 일어난 친(親) 영국파의 쿠데타로 인해 탈퇴하였다. 추축국 진영에 있던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은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하였다. 유고슬라비아는 소련의 지원과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의 활동을 통해 1943년부터 1945년 사이에 영토를 수복했다. 이를 계기로 요시프 브로즈 티토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을 수립하였다.

 

1980년 티토가 사망한 이후에 유고슬라비아에서는 민족주의 여론이 형성되었다. 동구권의 민주 혁명 및 민족주의가 대두함에 따라 1991년부터 1992년까지 사이에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공화국,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차례로 유고슬라비아에서 분리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연방의 중추적 국가였던 세르비아가 이에 반발하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에서 유고슬라비아 전쟁을 일으켰다. 세르비아 군인들은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보스니아 전쟁, 코소보 전쟁에서 민족 청소 등 반인륜적 전쟁 범죄를 자행했는데 이로 인해 북대서양 조약 기구와 미국이 군사 개입을 하게 되었다.

 

세르비아는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및 슬로베니아를 비롯해 여타 남 슬라브 민족들과 함께 유고슬라비아로 통합하여 존속하다가 1991년에 유고슬라비아 연방 해체된 이후 몬테네그로와 함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연방을 구성하였다. 2006년 6월 5일, 두 나라도 분리되었다.

 

2008년 2월에 알바니아인이 다수를 이루는 남부 지역의 코소보가 독립을 선언했다. 세르비아는 코소보를 유엔 코소보 임시행정부(UNMIK)사 통치하는 자치주로 보고 그 독립을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러시아, 스페인, 그리스 등을 제외한 많은 나라들이 코소보를 독립국으로 인정하고 있다.

 

세르비아는 유엔, 유럽평의회, 흑해경제협력기구, 중앙유럽 자유무역협정회원국이다. 국제통화기금에서는 세르비아를 신흥개발도상국으로 분류하며, 세계은행에서는 이 나라의 소득수준을 중상류로 본다. 세르비아는 인간개발지수가 높은 수준이며, 프리덤 하우스에서는 2008년에 세르비아를 발칸 국가 가운데 몇 안 되는 '자유 국가'로 등재했다. 이 나라는 유럽연합 가입을 신청한 상태이며, 국제적으로 중립국이다.

 

2. 세르비아에서

 

민족주의 열혈청년 프란치프

오스트리아 황태자 저격하여

세계 1차 대전이 촉발된 땅---

 

빨치산 티토가 앞장서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으로---

 

1992년 밀로세비치 앞장서

보스니아 꼼짝마라

30만명 학살하니

수백만의 난민이라

 

인종청소 웬 말인가

나토가 개입하니

민족마다 독립한다

 

전쟁의 포연은 잊어라

2007년 멜버른 대회

노박 조코비치가 포효했다

 

하얀 도시 베오그라드

전쟁의 상흔은

아직도

 

그러나 젊음의 꿇는 피

그 누가 억제하랴

청춘들은 사랑을 노래하고

내일을 꿈꾸는데

 

2017. 11월

동방에서

평화마라토너 달려오니

 

함께 외친다

전쟁은 이제 그만

평화가 밥이다

평화가 사랑이다

 

은색 쌍두 독수리여

높이 날라라

저 하늘 끝까지

세계평화 인류공영 깃발 물고서---

 

3. 세르비아를 달리며 – 강명구 평화마라토너

 

< ‘하얀 도시’는 어둠침침했다 >

 

‘하얀 도시’, 베오그라드의 의미이다. 하얀 도시의 첫인상은 검고, 어둡고, 칙칙했다. 식당에 가면 하얀 담배연기 속에 밥을 먹어야 하는 걸 각오해야 하는 것만이 ‘하얀 도시’의 이미지와 맞는다면 맞지만 말이다. 다뉴브강에서 올라온 우윳빛 안개에 휩싸인 베오그라드는 때마침 동터오는 태양빛에 반짝반짝 빛났다. 베일을 쓴 신부의 모습처럼 신비롭고 아름다워서 그리스와 불가리아를 넘어 노도와 같이 진격하던 오스만제국의 군대는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에 이르러 넋을 잃어버렸다. 새벽녘 기습공격을 감행할 무렵 마력의 아름다움에 군인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멈칫했다.

 

이 도시는 도시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악취 나고 구역질나는 그늘을 다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전쟁의 상흔도 그대로 남아 있다. 가게마다 손님은 없지만 친구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가게에 찾아와서 무료함에 빠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인간적인 관대함은 세르비아의 소중한 가치이다.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이지만 얼굴에 웃음은 가득하다. 이들이 전쟁을 상처를 말끔히 치유하고 다시금 일어나는 날 이곳은 유럽의 심장이 될 것이다.

 

지나가는 나라마다 도나우 강을 만나니 이젠 도나우강이 오래된 친구인 양 반갑기도 하고 정감이 간다. 내가 다시 도나우 강변을 달릴 때는 정오 무렵이었다. 강 물결이 가을 햇살을 받아 잠자리 날개처럼 은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시각, 가족과 연인끼리 한가로이 강 언덕을 걷고 있었다. 중부 유럽에서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었던 낭만의 아름다운 도나우강의 흐름은 여기서도 생기발랄하건만 이곳의 역사의 흐름은 어둠침침하니 안타깝기만 하다.

 

이곳에는 아직도 크고 작은 민족 간의 분쟁이 끊이지 않는데 배후에는 언제나 국가 이기주의의 늪에 빠진 강대국들이 있다. 나는 이곳까지 오면서 세르비아 사람들의 정감 넘치는 유혹에 넘어가 정분이 난 상태라 사랑에 빠진 청춘들이 늘 그렇듯 나쁜 것에 눈이 멀고 좋은 것만 보인다. 어쩔 수 없이 보이는 검고 칙칙한 가운데서도 그들의 희망을 보았다. 그들이 얼마나 평화를 흠모하는지 보았다. 이곳의 모든 소멸과 폐허는 융기하는 신생의 징후이기를 빌어본다.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면 나도 상대방이 좋아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상대방이 하나를 주면 열을 주고픈 건 내 마음이다.

 

오늘도 들판을 달리는데 이제 겨우 젖을 뗐을 정도의 강아지 두 마리가 포격으로 생긴 웅덩이에서 나오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뒤뚱 걸음으로 그리 깊지 않은 고랑을 건너와 나를 또 쫓아오고 있었다. 이번엔 정이 들기 전에 단번에 쫓아버렸는데 영 마음이 편치 않다. 들판의 개들은 유난히 크다. 거기에도 약육강식이 존재하여 강하고 큰 놈들만 살아남고 힘없는 놈들은 도태된다고 한다. 세르비아에 주재하는 어느 외교관 부인이 야생 개한테 물리는 사건이 일어나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돼 들개의 70% 정도를 없앴다고 한다. 그래도 이곳엔 야생 개들이 넘쳐난다.

 

식당을 물어물어 찾아갔는데 앉을 자리가 없다. 지금 너무 배가 고파서 길거리에 서서라도 먹겠다고 사정을 하였더니 옆집은 자기 친구가 운영하는 바인데 말을 해 줄 테니 거기에 앉아서 편하게 먹으라고 한다. 자기 집은 체바피가 유명하고 그것을 먹어보라고 하여 지금 같아서는 아무 거라도 먹을 자신이 있어서 그러라고 했다. 크고 동그란 빵 한 덩이를 접시에 들고와서 처음에는 실망했지만 한 입 베어 물자 주머니 같은 빵 속에 소시지 같기도 하고 떡갈비 같기도 한 고깃덩이가 빵 안에 수도 없이 들어있었다. 고기와 양파, 채소 등을 다져서 만든 짭짤한 것인데 맛과 영양이 충분하여 양도 많아서 금방 위장에 충만함을 느끼게 한다. 빵은 얇고 쫄깃하고 양파가 느끼함을 잡아주는 고기는 잡내가 없어 좋았다.

 

1리터짜리 큰 코카콜라와 함께 가격은 ‘on the house’라며 급한 점심시간이 끝났는지 자기 한국인 친구가 나처럼 세계를 여행하는 모험가인데 기타를 들고 다니며 여행을 한다며 페이스북에 친구를 맺으라며 자랑 겸 소개를 한다. 우리는 같이 사진을 찍으며 친구가 되었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친구라 하며 자랑할 것 같다. 그는 떠나는 내게 체바피 한 덩이와 콜라 한 병을 더 싸주며 안전한 여행을 하라며 손을 꽉 잡아준다. 이것이면 오늘 저녁까지 해결된 셈이다.

 

동서로 흐르는 도나우강 슬라브어로는 두나브, 영어로는 다뉴브는 유럽의 10개국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강이다. 베오그라드는 두나우강과 사바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이며 북쪽으로는 보이보디나 평원과 접하고 있고, 남쪽으로는 슈마디아 언덕과 접하고 있다. 도나우강이 보이자 나는 자동차가 다니는 길을 피해 주민들을 위해 잘 정돈된 강변길을 따라 뛰었다. 쌀쌀한 날씨에도 많은 사람이 한가하게 걷고 있다. 이곳에서 주인에게 목줄에 매달려 달리는 개들이 무척 다복해 보였다.

 

이 ‘하얀 도시’는 자존심이 강한 발칸의 고도이며 수륙교통의 요지일 뿐 아니라 전략적 요지로 옛 유고연방의 수도이기도 했었다. 이미 기원전 4세기부터 켈트족이 요새와 도시를 건설했고, 기원전 1세기에 이곳을 점령한 로마 제국은 수상 요새를 세웠다. 나토의 무차별 공습을 되새기겠다는 의미인지 복구할 경제력이 없었던 지 파괴된 관공서나 큰 빌딩은 내팽개쳐있다. 마치 머리끄덩이를 움켜쥐고 조금 전에 피터지는 싸움을 마친 여인의 모습이었다. 힘든 싸움을 마치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베오그라드는 지난 200년 동안 40번이나 파괴되고 다시 건설된 비운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아마 세계에서 이보다 더 고난을 당한 도시는 없을 것이다.

 

 

다리를 건너 언덕 위에서 찾은 호텔은 족히 200년은 됐을 석조건물이었다. 한 층만 호텔로 쓰는 주상복합의 건물이라 복잡하고 어수선했다. 안으로 들어서면서 육중함이 몸으로 느껴져온다. 잘 씻지 못하는 늙은이 몸에서 나는 냄새가 건물에서도 품어져 나온다. 커튼을 걷어내고 하늘을 보니 북쪽 하늘에 에메랄드빛으로 가을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난한 곳일수록 하늘의 별들은 더욱 반짝인다. 언덕의 건물들에서 나오는 네온사인 불빛도 이곳에서는 슬프게 번져온다.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담배 연기에 두나우강을 찾던 눈길을 거두고 창문을 닫아버렸다.

 

시내 곳곳에 아직도 파괴된 건물들이 참혹한 전쟁의 상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다음날 대사관 서기관들과 점심을 먹으러 가면서 본 폭격당한 옛 중국 대사관 자리가 웅변으로 증명하여주고 있다. 당시 뉴스에는 미군이 주축이 된 나토군의 오폭이라고 나오지만 당시 중국 대사관에는 코소보 전쟁 당시 참전한 미 공군 F 117A 스텔스 전폭기 잔해를 입수해 보관하고 있었고, 중국의 스텔스기인 젠 14는 그 잔해를 입수해 연구한 결과라는 홍콩 일간지의 보도도 나중에 있었다. 국제 뉴스는 언제나 기자들이 전해주는 것을 그대로 믿기에는 의심 가는 곳이 많다.

 

세르비아의 가장 큰 실수는 보스니아가 유고연방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기 위한 침공에서였다. 시민들은 78일 동안 나토군의 크루즈미사일 정밀폭격으로 그 악몽 같은 나날들을 방공호에서 지내야 했다. 대부분의 사회기반 시설은 파괴되었고 3천 명 이상이 사망했다. 나토의 지상군이 투입되자 세르비아는 항복하고 코소보까지 내주어야했다. 이제 베오그라드 시내는 한창 공사 중이라 길마다 차가 막히고 보행자들은 여러 가지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전쟁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그건 아무 것도 아니어서 아무도 불평을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불구라서 행복한 4세대 한 가족 (c)시사타임즈

 

나는 대사관에서 마련해준 점심 오찬에 참가하였다. 한국대사는 일정이 있어서 못 나오고 조상훈, 최종희 두 서기관과 평통위원 신인근씨와 한식당은 없어서 중식당에서 좋은 자리를 가졌다. 밥 한 끼 먹는 일 사소한 일 인 것 같지만 밥 한 끼 먹는 일 대단한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귀한 시간 내어야하고 그럴 마음을 가지려면 정성이 필요하다. 그것으로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하고 더더욱 내가 하는 일의 무게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오후에 남는 시간에 잠시 성 사바성당에 들렀다. 성 사바 성당은 세계 최대의 정교회이다. 세르비아 정교회의 창시자이자 초대 대주교인 성 사바를 모시기 위해 지어졌다. 세르비아 왕국의 스테판 네마냐 왕은 비잔틴 제국의 종교를 받아들였고, 그의 아들 사바 네마니치(성 사바)는 정교의 기틀을 마련하고 세르비아의 독립 정교회를 수립해 세르비아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안에 들어가 보니 내부는 수리 중이라 어수선했다.

 

로마제국은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열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마는 게르만족에게 멸망을 당했고, 동로마는 15세기에 오스만 제국에게 멸망을 당할 때까지 동유럽에서 번창하였다. 이때 기독교도 로마가톨릭과 동방정교로 나뉘었다. 동유럽 사람들은 동방정교를 중심으로 자신들만의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정교회는 로마교회와는 달리 교황의 신적 절대성과 무오류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로만 가톨릭은 모국어로 성서를 번역하고 예배를 보는 것을 금했지만 정교회는 그것을 허락해 다양한 문화 창조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다 오스만 제국이 코소보에서 완강하게 버티던 세르비아인과 보스니아인으로 구성된 연합군을 물리치고 발칸 반도는 오스만 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공관직원들과 (c)시사타임즈

사실 아름다운 자연의 경관이나 문화유산을 찾아다니는 관광객에게는 별로 매력적이지 못한 도시가 베오그라드이다. 베오그라드의 아침 안개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한들 그것을 보기 위해 먼 길을 여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평화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하고, 전쟁의 상흔이 얼마나 쓰라린가를 보고, 또 따뜻한 인정을 만나고 싶거든 베오그라드로 오라! 베오그라드가 당신을 반가이 맞을 것이다.

 

이런 곳에는 찾는 여행객이나 기분전환 거리가 많지 않아서 당신이 이곳에 오면 특별한 대접을 해 줄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은 한 열정적인 시인이 매혹적인 여인에게 입 맞추듯 당신도 베오그라드에 빠져들 것이다. 어떤 기이한 황홀감이 당신의 영혼을 점령해버릴 것이다. 담배 연기 가득한 베오그라드는 그곳에 정을 붙이고 익숙해질수록 우리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내가 지금 그러니까. 그래도 담배연기 자욱한 식당에는 아무리 오래 이곳에 머문다한들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았다.

 

여행이 끝나고 여행 가방을 정리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경관이 좋은 관광지나 문화유산이 아니라 사람들과 만나서 주고받는 눈 맞춤과 섬세한 감정의 교류이다. 흔히 아름다움은 피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름다움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감동이 얼마나 많은가. 세르비아에서는 일기예보에 없던 천둥번개가 몰아치듯이 느닷없이 만나는 기쁨이 있다. 아름다움은 늘 가슴 설레는 경이이다. 사람들과 눈 맞추고 마음 맞추었을 때 맺어지는 영롱한 진주알 같은 감정의 조각들이 그렇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상상력과 아름다움과 모험이다.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2017.10 (c)시사타임즈
▲세르비아 평원의 한혈마와 평화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23번 째 불가리아 이야기로 계속)

 

글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 8개국 소장 역임 (영원한 KOICAman)

한국교원대학교, 청주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강명구평화마라톤시민연대 공동대표

한국국제봉사기구 친선대사 겸 자문위원

다문화TV 자문위원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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