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칼럼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75)] 47. 아프가니스탄 (Afganistan)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75)] 47. 아프가니스탄 (Afganistan)

 

[시사타임즈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아프가니스탄 식수개발사업 체결, 2007. 5). ⒞시사타임즈
▲< 국기 > 아프가니스탄을 상징하는 흑색, 적색, 녹색으로 3등분하고, 중앙에는 국장 표시. < 국장 > 위에는 아랍어로 Shahadah라고 쓰여 있으며, 중앙에는 모스크가 그려져 있음. ⒞시사타임즈

 

< 국가 개관 >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은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 있는 내륙국이다. 북쪽은 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 중국, 동쪽과 남쪽은 파키스탄, 서쪽은 이란과 맞닿아 있다. 수도는 카불이다. 동아시아와 서아시아/중동을 연결하는 요충지로 실크로드의 주요 경로였다. 1979년 소련의 침공과 내전, 테러와의 전쟁 등으로 국민들은 고난을 겪고 있다. 1747년 두라니 제국의 건국이 근대 아프가니스탄의 시발점이다. 19세기 말 영국과 러시아가 거대한 경쟁(The Great Game)’을 벌였고 아프간은 두 제국의 완충국이 되었다. 3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1919.8.19일 독립을 쟁취하였다. 2001년 말, UN 안전보장이사회는 국제안보지원군(ISAF)을 승인하였다.

 

The Islamic Republic of Afghanistan is a landlocked country forming part of South Asia, Central Asia, and to some extent Western Asia. Sitting at an important geostategic location, it has witnessed many military campaigns, notably by Alexander the Great, Genghis Khan, and in modern era Western forces. In December 2001, the UN Security Council authorized the creation of the International Security Assistance Force (ISAF) to help maintain security in Afghanistan.

 

1. 국명(Country) : 아프가니스탄(Islamic Republic of Afghanistan)

2. 수도(Capital) : 카불 (Kabul)

3. 면적(Territory) : 652,230

4. 인구(Population) : 32,500,000

5. 국민소득(GNI) : US$720

6. 언어(Language) : 파쉬토(Pashto), 다리(Dari)

7. 독립일(Independence) : 1919.8.19

 

 

 

천개의 태양의 땅, 아프가니스탄

 

파미르 고원 남서쪽

힌두쿠시산맥 중앙 달려

국토를 양분하네

 

노샤크산 높이 솟아 7,485m

아무다리야강 길게 흘러

북쪽 국경 이루네

 

동과 서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라

알렉산더 칭키스칸 투르크가 다녀가고

영국, 소련이 대치하던 땅

 

보석 같은 천개의 태양 떠오른다, 카불에

평화롭다 칸다하르 평야

타르나크강 따라 해발고도 1000m 평원

 

금강석보다 맑구나 힌두쿠시 산정호수

전통 파슈툰 사람 마음일세

 

소련 침공 물리치고

정권 잡은 탈레반

교육 불허, 부르카 착용, 외출금지

여성 탄압 웬 말이냐

 

안타깝다 바미얀 불상

1500살 세계유산 사라졌네

 

오사마 빈 라덴 친구되어

미국침공 불러 왔네

 

포탄 속에 힘들구나 아프간 재건

땀 흘린다, 코이카

 

폭풍을 넘어 어두움을 뚫고 나와라

다시 떠올라라 천개의 태양아

아프가니스탄 저 산하에

 

Land of 1000 Suns, Afghanistan

 

From Pamir Plateau to the southwest

Mts Hindukuci runs in the center

Dividing the land into two halves

 

How high Mt Noshak, it's 7485m

River Amudariya flows long

Being the boundary at north

 

Being strategic area connecting east and west

Alexander the Great, Genghis and turks already came here

The land for which UK and Russia fought each other.

 

Where 1000 suns like jewel rise, Kabul

How peaceful, Plain Kandahar of 1000m altitude

Along River Tarnak

 

How clean, cleaner than diamond, Lake Hindu Kush at Band-e Amir

It's like the heart of original Pashutuns

 

Taleban who took power

Having defeated USSR

No education, must Burka, No outing

What for, oppression of woman

 

How pitiful, Bamiyan Budaha Statues

World heritage of 1500 years old disappeared

 

Accepting Osama Bin Laden as friend

Inviting US as enemy

 

How difficult to construct in the shell smoke

How hard KOICA men work in sweats

 

Come out thru darkness beyond storm

Rise again, 1000 suns

Over the mountains and rivers of Afghanistan!

 

 

1. 아프가니스탄 약사

 

아프가니스탄은 다양한 문화와 세력이 만나는 전략적인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이 지금의 명칭으로 처음 이슬람 자료에 나타난 것은 982년이었다. BC 6세기에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의 일부인 키루스 2세의 지배를 받았으며, BC 4세기에는 알렉산드로스 3세에게 정복되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죽은 후 셀레우코스 왕조의 박트리아(지금의 '발흐' 지방) 총독통치령에서 박트리아 왕국이 생겨나 그리스와 인도의 문화가 융합된 독특한 문화를 선보였다.

 

BC 2세기에는 쿠샨 왕조의 카니슈카 왕(78~144)에게 정복되었다. 에프탈 왕조와 사산 왕조를 거치면서 힌두교의 영향권에 들어섰으며, 870년경 사파르 왕조시대에는 이슬람교가 튼튼히 뿌리내렸다. 1219년에는 칭기즈 칸이 이끄는 몽골족의 침략을 받았으며, 몽골 제국이 무너짐에 따라 독립된 제후국들로 분리되어 18세기에 이르기까지 부분적으로 인도 무굴 제국과 페르시아 사파위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1700년대초 페르시아 군주 나디르 샤에 의해 무굴 제국으로부터 벗어났으며, 1772년 두라니가 죽은 후 부족 또는 종족 단위 사회로 회귀하려는 경향과 러시아·영국의 제국주의적 음모로 제국은 붕괴되었으나 여러 차례 전쟁(1839~42, 1878~80, 1919)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 점령을 시도한 영국에게 항복하지 않음으로써 기본적으로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군주제 아래 1930년대부터 계속 신중하고 온건한 정부가 들어섬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이룩했으나, 1970년대 정당정치가 안정을 잃게 되고 1973년 좌익 파르캄('깃발'이라는 뜻)당이 지원한 군사혁명이 성공하면서 군주제가 종식되고 공화국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정파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고 이들의 마르크주의적인 개혁정책으로 농촌에서 큰 반란이 여러 차례 일어나자 1979년 기존정권 수호라는 명분 아래 소련군이 침공했다.

 

뒤이어 벌어진 전쟁에서 친러파인 PDPA를 무너뜨리고 소련군을 몰아내려는 여러 반군 단체들이 게릴라전을 개시했으며, 수백만 명의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은 소련군의 반군 진압작전을 피해 파키스탄과 이란으로 달아났다. 여러 해에 걸친 내전 끝에 19885월부터 19892월 사이에 10만 명의 소련군이 철수했으나, PDPA가 반군을 궁지에 몰아넣고 주요 도시들을 계속 지배하려 하자 PDPA와 반군 사이의 무력투쟁이 끊이질 않았다.

 

19924월 마침내 반군 세력이 모하마드 나지불라 대통령의 공산주의 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14(1978~92)에 걸친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났다. 전쟁으로 인해 200만 명이 사망했고 5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으며 국토는 폐허가 되는 참화를 겪었지만 평화가 정착되지는 않았다. 민족이나 종교적 분파에 따라 나뉜 여러 게릴라 세력들 간의 크고 작은 분쟁이 계속되었기 때문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정국이 계속 혼미를 거듭하고 있던 중 아프가니스탄 북부와 파키스탄 서부에서 이슬람 율법을 공부하던 학생들이 1994년 탈레반을 결성, 라바니 대통령과 다른 반군들을 대상으로 무장투쟁을 개시했다. 이들은 이슬람 율법을 엄격히 시행할 것을 주장하는 원리주의를 표방했다. 탈레반의 무장투쟁은 정권과 군벌의 학정에 시달리던 많은 민중들의 환영을 받았다. 이에 따라 탈레반은 무장투쟁 2년 만인 1996년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라바니 대통령을 축출해 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탈레반 정권은 극단적인 원리주의를 표방하며 여성을 억압하고 이슬람 이외의 종교에 대해 가혹하게 탄압을 가했다. 특히 20013월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미안 석불을 파괴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2001911일 미국 뉴욕 시에 있는 세계무역센터 건물과 워싱턴에 있는 미국 국방부 건물이 비행기 테러를 당하자 미국은 오사마 이븐 라딘이라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를 테러의 배후 조종자로 지명, 그가 은신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그를 인도할 것을 요구했다. 이 요구를 집권 탈레반이 거부하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공습, 전쟁에 돌입했다. 미국 주도의 일부 서방국가와 아프가니스탄의 반군세력인 북부동맹이 이 전쟁에 합세한 끝에 탈레반은 붕괴되었고,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국제회의가 20011126일 독일에서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4개 정파(로마그룹, 페샤와르그룹, 북부동맹, 키프로스그룹)가 참여해 파슈툰족 출신인 하미드 카르자이를 수반으로 하는 과도내각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축출된 후에도 탈레반은 남부 아프가니스탄을 중심으로 세력을 유지하면서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의 지역에서 지속적인 테러 활동을 벌였다. 이에 따라 미군의 주도 아래 탈레반 세력과 무력 대립이 지속되었으나 2020.2.29일 미국은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맺고 전쟁의 종식을 선언하면서, 미군은 철수했다.

 

 

2, 나의 업무

 

▲( 카불식수개발에 대한 주민의견 수렴, 2007.5). ⒞시사타임즈

 

 

우리 정부는 아프가니스탄에 1978년부터 1998년까지 270만 달러의 무상 원조를 했으며, 2002년 재수교한 이후 KOICA는 한국의 유무상 원조 계획에 따라 직업훈련원, 공무원훈련원, 국립병원, IT센터, 소수력발전소 등 아프가니스탄 전후 복구사업에 주력했다. 또한 한국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다산 및 동의부대를 파병했으며,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아프가니스탄 경찰의 역량강화 및 경제사회분야에 총 5억 달러를 지원했다.

 

나는 카불 외곽지역에 식수를 개발하여 주민의 보건수준을 개선시키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김명진 과장과 함께 200712월 출장을 실시하였다. 당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는 테러가능성이 높고 생필품 구하기가 어려워서 외교부 직원들이 근무를 극도로 꺼려하는 국가였다. 외교부는 상위직 정체가 심하여 대사를 두 번 하면 자동 퇴직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으나,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대사는 예외로 하였다. 강성주 대사는 우리 출장팀과 김영렬 KOICA 소장을 관저만찬에 초대하여, 위험지역에 출장 온 우리를 격려하며, 식수개발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부디 아프가니스탄 당국과 긴밀히 협력하여, 동 사업을 성공리에 마무리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나는 김영렬 소장과 김명진 과장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개발부 직원의 안내를 받아, 사업지역을 이틀에 걸쳐 조사하고, 지역주민의 요구사항도 파악하였다.

그리고 개발부 차관과과 카불외곽 식수개발사업 협의록을 작성하였다.

 

▲(한국의 지원으로 설립된 안-아 직업훈련세타, 김열렬 소장, 김명진 대리, 2007.11). ⒞시사타임즈

 

그후 협력단의 대 아프가니스탄의 사업인 카불 외곽 식수 개발 사업에 ()동신이 시행업체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동신이 조사를 마치고 인력을 파견하여 사업을 막 시작하려고 하는 시점인 2018년에 분당 샘물교회 봉사팀 20여명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되고 두 명이 처형당하여 한국뿐 아니라 온 세계의 톱뉴스였다. 그 영향으로 ()동신의 인력파견이 기약 없이 연기되고 표류되다가 정부방침으로 결국 일 년 후에는 사업이 포기되었다. ()동신으로서는 큰 낭패였다. 그후 2009년도에 내가 에티오피아 사무소장으로 근무할 때 동신의 최병식 사장이 사업 발굴 차 에티오피아에 왔디에 나는 최병식 사장을 극진히 대접하고 수자원부 장관에게 소개도 시켰다. 그 후에도 최 사장은 기술이사와 함께 에티오피아를 방문하여 수주에 입찰하였으나, 수주에 실패하였다. 내가 수자원부의 Dingamo 장관에게 알아보니 동신이 기술 점수에서는 월등히 높아 1등하였으나 입찰가가 상당히 높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 아프가니스탄 도새개발부 국장과 김명진 과장, 카불). ⒞시사타임즈

 

 

3. 아프가니스탄 풍경

▲(평화로운 전원풍경). ⒞시사타임즈
▲(헬만드 주의 카자키 댐). ⒞시사타임즈

 

▲(아프가니스탄 초등학교 어린이들). ⒞시사타임즈
▲(perahan tunban을 두른 아프가니스탄 촌로들). ⒞시사타임즈
▲(아프가니스탄 국민 스포츠 Buzkashi). ⒞시사타임즈

 

(48번째 나라 인도 이야기로 계속)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 8개국 소장 역임 (영원한 KOICAman)

한국교원대학교, 청주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강명구평화마라톤시민연대 공동대표

한국국제봉사기구 친선대사 겸 자문위원

다문화TV 자문위원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 iysong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