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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85)] 57. 홍콩(Hongkong)

영원한 KOICA man 송인엽 교수 [나가자, 세계로! (85)] 57. 홍콩(Hongkong)

 

[시사타임즈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Bruce Lee 동상). ⒞시사타임즈
▲< 국기 > 중국의 상징 색인 적색 바탕에 5장의 꽃잎을 가진 백색 난초를 넣음. < 국장 > 내용은 깃발과 동일하며, 외곽에 중국어로 행정지역명과 영문명을 기재 . ⒞시사타임즈

 

 

< 국가 개관 >

 

홍콩(香港, Hong Kong)은 중국의 남동부에 있으며 199771일 영국으로부터 중국에 반환되어 현재의 정식 명칭은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이다. 204771일에 중국 선전시의 한구로 재편되게 되었다. 홍콩섬과 주룽(九龍)과 신제(新界) 및 그 밖의 230개의 부속 도서가 있다. 1842년 영국은 난징 조약에 의해 이 섬을 청나라로부터 할양받았으며, 홍콩섬과 홍콩섬 북쪽 주룽에 걸쳐 빅토리아 항을 건설하였다. 홍콩섬은 홍콩에서 란터우섬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섬이며, 홍콩 개항 이후 가장 먼저 발달하였으며 홍콩의 상업 및 정치적 중심지이다. 홍콩에서 가장 높은 산은 주룽에 있는 태모산이다.

 

Hong Kong is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of People's Republic of China. Situated on China's south coast, it is known for its expansive skyline. It has a land of 1,104 km2 and a population of seven million people. Hong Kong became a colony of UK after the Opium War (183942). It was occupied by Japan during the Pacific War, after which the British resumed control until 1997, when China resumed sovereignty. Under the principle of "one country, two systems", Hong Kong has a different political system from China.

 

 

1. 국명(Country) : 홍콩 (Hong Kong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of People's Republic of China)

2. 수도(Capital) : 홍콩 (Hong Kong) 3. 면적(Territory): 2,7554. 인구(Population): 750만명)

5. 국민소득(GNI) : US$45,5006. 언어(Language) : 중국어(Chinese), 영어(English)

7. 독립일(Independence) : 1997.7.1

 

 

세계의 무역항, 홍콩

 

진시황 처음 만나 이름을 얻고

당에서 무역항, 송에서 해군기지

향기어린 어항이여

 

더러운 아편전쟁, 영국으로 넘어가고

기혹한 일제 강점 3

160만 명 주민이여, 절반이 어디 갔나?

 

역사는 흘러 흘러

이름은 중국 홍콩특별행정구, 생일은 1997.7.1

2047.7.1일까지 시한부 인생

그 이후는 중화인민공화국 선전시 홍콩구라네

 

구룡 태모산에서 야호하면

홍콩섬 빅토리아봉에서 야야호

모두가 즐겁다 빅토리아 피크 하이킹

 

트램 타고 왁자지껄

길구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시원하다 란콰이퐁 맥주한잔

멋지구나 심차추이 홍콩의 야경

 

란터우섬이 LA인가 디즈니랜드 화려하다

옹핑 360 케이블카 홍콩 넘어 중국대륙 다 보인다

 

한적하다 라마섬 트레킹

이소룡은 어디 갔나, 주윤발만 저기 가네

 

빛의 광시곡, 심포니 오브 라이트

그대 홍콩이여

이름 그대로 영원히 향기로워라

세상 모든 연인을 위해!

 

Port of World Trade, HongKong

 

Meeting QinShiHuangDi who named HK

Trade port at Tang Dynasty, Naval base at Song Dynasty

How fragrant fishing port you are!

 

The dirty Opium Wars, HK to UK

How severe, the Japanese rule of 3 years

Hello, 1.6 Million persons, where half of you disappeared?

 

Times pass by and by, and by

Chinese HK SAR, its Date of Birth Jul 1, 1997

But time-limited life only till Jul 1, 2047

After it, a part of Sunchun City, P.R China

 

Yaho at Mt Taemo, Julong

Yayaho at Victoria Peak, HK Island

How pleasant, hiking at Victoria Peak

 

How clamourous in HK Tram

How long, the Midlebel Esculator

How fresh, a glass of beer at Lanquoipong

How pretty, night view of HK at Simchachui

 

Lantau Is LA? Disneyland so bright

Ride Nping 360 cablecar

See all Honf Kong and China, too

 

How free, Trekking at Lamma Island

Where is Bruce Lee, Only Donald Chow Yun-Fat is there.

 

Is it Rhapsody of Light, symphony of light at HK?

Dear you, Hong Kong,

Be fragrant like your name forever

 

 

1. 홍콩 약사

 

▲(세계의 무역항 홍콩의 컨테이너항). ⒞시사타임즈

 

홍콩은 약 6,000년 전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초기 홍콩 정착민들은 중국 내륙 지방에서 이주하여 쌀 재배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왔다. 기원전 214, 당시 진나라는 토착 위에족 세력을 정벌한 후 중국 역사상 최초로 홍콩 지역을 중국에 편입시켰다. 진나라의 멸망 이후 홍콩 지역은 남월 왕국에 편입되었으나, 한나라의 남월 정벌 이후 중국에 재탈환되었다. 원나라가 멸망할 무렵, 7개의 대가문이 홍콩 지역에 정착해 대부분의 땅을 소유했다. 명나라 시대에 걸쳐 중국 인근 지방의 주민들이 구룡으로 이주했다.

 

홍콩에 온 최초의 유럽인은 포르투갈의 탐험가 조르즈 알바르스로, 1513년에 방문하였다. 당시 포르투갈 상인들은 홍콩 해안에 "타마오"라는 무역항을 설립하고 중국 남부 지역에서 정기적인 교역을 진행했다. 포르투갈은 이후 1557년에 마카오에 대한 영구 임대권을 얻었다.

 

청나라 초기에는 해상 무역이 금지되었으나, 1684년 강희제는 외국인의 청나라 입항을 허용했다. 당시 차, 비단, 도자기와 같은 중국 상품에 대한 유럽의 수요는 높았지만, 유럽 제조품에 대한 중국의 관심은 미미했다. 이러한 무역 불균형에 대처하기 위해 영국은 다량의 인도산 아편을 중국에 팔았다. 당시 도광제는 아편을 합법화하고 과세하자는 영국의 제안을 거절했고, 아편과 관련된 모든 해외 무역을 중단시키자, 영국군은 이에 대응하여 1840년 제1차 아편 전쟁을 일으켰다. 청은 전쟁 초기에 패배하고 촨비 협정에서 홍콩 섬을 양도했다. 그러나, 협정을 맺은 양국은 내용에 만족하지 않았으며, 결과적으로 협정을 비준하지 않았다. 1년이 넘는 적대 분위기 이후, 홍콩 섬은 1842829일 난징 조약에 따라 당시 대영제국에 정식으로 영구 양도되었다.

 

1850년부터 14년 동안 계속된 태평천국의 난 이후, 많은 부유한 중국인들이 중국 대륙의 격동하는 환경에서 탈출해 홍콩에 정착하면서, 결과적으로 홍콩 섬의 환경을 개선시켰다. 아편 무역을 둘러싼 영국과 청 사이의 애로호의 충돌은 1856년 제2차 아편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전쟁에서 패배한 청은 베이징 조약에서 가우룽반도와 스톤커터스 섬을 추가로 대영제국에 양도하였다. 전쟁이 끝날 무렵, 홍콩은 일시적인 식민지 초소에서 중요한 화물 집산지로 변모했다.

 

홍콩은 1898년에 대영제국이 신계 지역에 대한 99년의 임대권을 얻으며 더 확장되었다. 홍콩 대학은 1911년에 홍콩 최초의 고등 교육 기관으로 설립되었다. 1937년 제2차 중일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노스코트 주지사는 홍콩이 자유 항구로서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홍콩을 중립 지대라고 선언했다. 홍콩 정부는 공격 가능성에 대비하여 1940년에 모든 영국 국적의 여성과 어린이들을 대피시켰다. 1941128일 진주만 공격과 같은 날 아침, 일본 제국군은 홍콩을 공격했다.

 

1941128일 일본 제국은 홍콩을 점령했다. 홍콩이 일본 제국에 지배당하는 동안 시민들은 강제 배급으로 인해 식량 부족에 시달렸고 전쟁 국채 발행을 위한 통화 환율 정책의 강제로 엄청난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전쟁 전 홍콩의 인구는 160만이었으나, 영국이 지배권을 회복한 19458월에는 거의 60만으로 줄었다. 홍콩은 1945830일 영국이 재점령하기 직전까지 거의 4년 동안 일본에 의해 통치되었다.

 

전쟁 이후, 국공 내전에서 피난해온 중국 대륙의 숙련공 이주자들이 홍콩에 유입되면서, 홍콩의 인구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중국 대륙를 완전히 장악한 이후 더 많은 난민들이 홍콩으로 유입되었다. 홍콩은 1950년대에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가장 먼저 산업화되었다.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서비스 산업 중심의 경제로 성공적으로 전환했다. 1990년대 초 홍콩은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이자 해상 운송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신계 지역의 임대권 기한이 가까워지면서, 홍콩은 불확실한 미래를 맞이했고, 당시 맥레오스 홍콩 총독은 1979년 당시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덩샤오핑과 함께 홍콩의 지위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이후 영국은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외교 협상에 돌입하였고, 마침내 1984년에 홍콩 반환 협정을 체결했다. 영국은 1997년에 홍콩의 전체를 중화인민공화국에 이양하기로 합의했고 중국 공산당은 홍콩의 경제적, 정치적 시스템을 반환 후 50년 동안 보장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홍콩 이양에 임박했던 당시 홍콩 국민들은 민권, 법치주의, 그리고 삶의 질 등이 침해될 것을 우려, 1987년부터 1996년까지 총 5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홍콩을 떠났다. 홍콩은 199771일 자정을 기점으로 중국에 이양되었고, 156년의 영국 통치가 종료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으로의 이양 직후, 홍콩은 몇 차례의 위기를 겪었다. 홍콩 이양 이후의 정치적 논쟁은 지역의 민주 발전과 "일국양제"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지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양 직후 홍콩의 영국시절 입법 위원회가 실행하였던 민주개혁이 번복된 이후, 홍콩 지방 정부는 홍콩 기본법 제23조에 따라 국가보안법 제정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중국 공산당이 홍콩 행정장관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 사전 심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한 직후, 2014년 홍콩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이는 우산 혁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홍콩은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행정, 입법, 사법 권한이 독립된 중화인민공화국의 특별행정구이다. 홍콩 특별행정구는 홍콩(영국)에서 계승된 행정회 위주의 집행 방식으로 운영된다. 홍콩 반환 협정에 따라, 홍콩은 자본주의 경제를 보장받고 홍콩 이양 이후 50년간의 지방 자치를 보장받으나, 이러한 조건들과 "일국양제"의 개념 아래에서, 홍콩 기본법은 지방 헌법이다.

 

 

1. 홍콩 풍경

▲(홍콩 전경). ⒞시사타임즈
▲(赤松黃 도교사원). ⒞시사타임즈
▲(Cross Harbor 터널 입구). ⒞시사타임즈
▲(2019년 6월 16일 반정부 시위). ⒞시사타임즈

 

(56번째 나라 브루나이 이야기로 계속)

 

: 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전 소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 8개국 소장 역임 (영원한 KOICAman)

한국교원대학교, 청주대학교 초빙교수 역임

강명구평화마라톤시민연대 공동대표

한국국제봉사기구 친선대사 겸 자문위원

다문화TV 자문위원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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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인엽 한국국제협력단(KOI iysong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