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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595)]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책을 읽읍시다 (595)]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카렐 차페크 저 | 정찬형 역 | 모비딕 |355쪽 | 11,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1928년, 체코의 민중신문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고 있던 카렐 차페크는 독특한 형식의 소설을 신문에 발표하기 시작했다. 온갖 종류의 희한한 미스터리를 담은 이 소설들을 접한 차페크의 친구들은 깜짝 놀랐다. 차페크가 미스터리 애독자인 줄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그가 진짜로 미스터리 작가가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이 미스터리 소설들은 그 이듬해 『한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와 『다른 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이른바 훗날 『주머니 이야기』(Pocket Tales)라고 불리는 두 권의 책으로 출간됐다.


차페크는 실험적인 소설을 쓰는 데 가장 완벽한 스타일이 단편소설이라고 깨달았다. 진실과 정의란 무엇인가? 일상에서 왜 미스터리가 벌어지는가? 그 사이에는 어떤 차이들이 있는가? 이 『오른쪽-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는 바로 차페크의 이런 질문에서 시작된 소설이다. 차페크는 특히 어쩔 수 없이 비정상적인 상황이나 환경에 처하게 된 보통 사람들을 우리가 왜 이상한 사람으로 인식하는가 하는 문제에 주목하면서, 독보적인 형식의 미스터리를 창조했다.


『오른쪽-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는 진실을 파악하는 데 여러 갈래 길이 있음을 곳곳에서 강조한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진실을 확신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부분적인 진실일 뿐이다. 우리는 결코 완전한 진실을 알 수 없다. 인간의 지식이나 인식이 너무나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하나의 범죄조차도 다른 관점에서 보면 범죄가 아닐 수도 있다. 또한 설사 범인이 잡혔다고 해도 반드시 완전한 진실이 알려지는 것도 아니다. 『오른쪽-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는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시인의 진실은 학자의 진실과 완전히 다르며, 마찬가지로 탐정의 진실은 의사, 법률가, 점쟁이의 진실과 구분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건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오로지 상대적 진리뿐이며, 우리는 그저 종종 이것과 저것을 혼돈할 뿐이다.


차페크는 “범죄 세계에 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나는 저절로 정의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사로잡혔다. 대체 실제를 어떻게 규명하고 묘사할 것인가? 과연 인간을 어떻게 단죄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정의란 무엇이고, 누가 우리를 심판할 것인가? 이 불완전한 세계에서 판결과 처벌은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진실의 상대성은 인간 정의의 상대성과 마주한다. 이야기들은 작가가 아닌 보통 사람들의 입을 통해 ‘상대적으로’ 전해진다. 법률가, 신부, 정원사, 의사, 오케스트라 지휘자, 감방쟁이 들이 모두 자기의, 그리고 타인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 속에서 각각의 이야기꾼들은 다른 사람들을 호출해내고, 같은 방에서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오른쪽-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가 진실로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범죄, 범인, 수사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 범죄 동기, 인간의 마음과 영혼에 관한 것이다. 확실한 수사 기법이 있다고 해도, 때로는 직관과 상식, 심지어는 우연한 행운이 전통적인 방법론보다 더 나을 때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이야기들은 이상하고, 불행하며, 희극적이고, 가슴 뭉클하며, 미스터리한 일에 사로잡힌 보통 인간들에 대한 날카로운 심리학적 탐사라고 할 수 있다. 진짜 미스터리하고 놀라운 것은 바로 평범한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작가 카렐 차페크 소개


프란츠 카프카, 밀란 쿤데라와 함께 체코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다. 오늘날 보통명사가 된 ‘로봇’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탄생시킨 희곡 『R.U.R. :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1920)으로 유명하다.


1890년 1월9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보헤미아 북동 지역인 말레 스보토뇨비체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두 살 위인 형 요제프 차페크(1887~1945, 이 책에 실린 삽화를 그린 화가이자 ‘로봇’이라는 말을 카렐에게 제안한 장본인)와 각별한 형제애를 나눴고, 평생 동안 여러 희곡과 단편들을 공동으로 창작하기도 했다. 프라하를 비롯해 베를린과 파리의 여러 대학에서 공부했고, 1915년에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카렐 차페크는 1917년부터 『민중신문』 등의 신문사에 다니면서 소설, 희곡, 신문기사, 수필, 동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작품을 썼다.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이어서 파시즘에 저항하고 민주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운동에 마사리크(체코슬로바키아 초대 대통령) 등과 함께 참여했다. 평생도록 전체주의에 반대했고 인간 개인의 존재 가치를 드러내는 데 주목했다. 차페크 문학의 중심 주제가 과학 문명의 발달로 인한 폐해와 파시즘에 대한 치열한 고발, 그리고 모순적이고 부조리한 존재인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1928년, 체코의 『민중신문』(Lidov? noviny)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고 있던 카렐 차페크는 독특한 형식의 소설을 신문에 발표하기 시작했는데, 온갖 종류의 희한한 미스터리를 담은 이 소설들이 바로 『오른쪽-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다. 이 미스터리 소설들은 그 이듬해 두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고, 차페크는 이 작품을 통해 미스터리를 철학의 지위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는 지금껏 어떤 미스터리 작가도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는 “범죄 세계에 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나는 저절로 정의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사로잡혔다. 대체 실제를 어떻게 규명하고 묘사할 것인가? 과연 인간을 어떻게 단죄할 것인가?”라고 하면서, 정의란 무엇이고, 누가 우리를 심판할 것인가, 이 불완전한 세계에서 판결과 처벌은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묻는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독특함은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대단히 무겁고 진지함에도 불구하고, 체코인 특유의 유머 감각과 경쾌하고 발랄한 스타일을 통해 일상의 미스터리를 풀어냈다는 데 있다. 죄와 벌, 정의와 인간성, 운명과 자유에 관한 이야기가 때로는 웃음과 눈물로, 때로는 통찰력과 유머를 통해 펼쳐지면서 차페크 특유의 독창성이 발휘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철학소설 3부작 『호르두발』, 『유성』, 『평범한 인생』과 『도룡뇽과의 전쟁』, 희곡 『R.U.R. :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모비딕 근간) 등이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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