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593)] 사기 선집
사마천 저 | 김원중 편역 | 민음사 | 520쪽 | 20,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인간과 권력에 대한 위대한 성찰 『사기』 130편 중 22편을 엄선해 엮은 『사기 선집』이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사마천의 『사기』는 인간 본질을 날카롭게 파헤쳐 토사구팽, 사면초가, 관포지교 등 수많은 고사성어의 기원이 된 인간학의 보고(寶庫)다. 예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필독서이자 애독서로서 세상살이의 지혜와 영감의 원천이 되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구에 회자되며 생명력을 발하고 있다.
『사기』는 사마천이 궁형을 당하는 치욕을 겪으면서도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발분(發憤)의 마음으로 쓴 역사서이다. 진시황이 중국 영토를 통일했다면 사마천은 관념적 ‘통일 중국’을 처음으로 만들어 냈다고 일컬어질 정도로 사마천의 『사기』가 가진 영향력은 오늘날까지도 지대하다. 『사기』는 「본기」 12편, 「표」 10편, 「서」 8편, 「세가」 30편, 「열전」 70편 등 총 130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간적으로는 상고(上古) 시대부터 한나라 무제 때까지 아우르며 공간적으로는 옛 중원을 중심으로 주변 이민족의 역사까지 다루었다. 사마천은 인간 중심적 역사관을 기저로 하여 탁월한 안목으로 인간과 세계를 탐구했고, 2000년이 넘도록 ‘인간학 교과서’라고 불리며 회자되는 『사기』 속에 생생한 인간상을 담아냈다.
『사기』의 쉼 없는 생명력의 원천은 바로 인간 개개인의 고뇌와 갈등을 통찰한 데 있다. 진시황을 살해하려다 실패한 형가, 장군이 되기 위해 아내마저 죽인 야심가 오기, 하찮은 식객의 도움으로 위험에서 벗어난 맹상군의 일화 등 『사기』는 천하를 호령한 제왕뿐 아니라 그 아래 소소한 개인들의 삶을 흥미롭게 담아내고 있다. 이를 통해 사마천은 영원한 성공도, 영원한 실패도 없다는 인간의 흥망성쇠를 밝히고, 역사는 잠재력을 지닌 개개인에 의해 변화한다는 뜻을 새긴다.
이에 따라 『사기 선집』에 실린 22편은 대부분 발분(發憤)과 절치부심(切齒腐心)으로 치욕을 딛고 일어선 자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한신은 저잣거리에서 남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 지나가는 모욕을 겪었으나 훗날 한나라의 손꼽히는 개국 공신이 되었고, 월왕 구천은 쓸개를 곁에 두고 패배를 곱씹으며 단련하여 복수에 성공한다.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다가 “왕후장상이 어찌 씨가 있겠느냐!”라며 들고 일어서 왕이 된 진섭, 군법을 수호하고 법치를 지키기 위해 측근까지 제거한 양저의 이야기도 있다.
이렇듯 시대에 발자취를 남긴 인물들은 자신의 단점을 이겨 내고 역경을 발판으로 삼아 때로는 시류에 편승하고 때로는 시대에 거스르면서 천변만화하는 역사의 대변주 아래 나름의 생존력을 확보해 나갔다. 영원한 승자와 패자도 없고 불후한 강자와 약자도 없는 『사기』 속 인물들을 통해 세상살이란 무엇인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다시금 되돌아본다.
작가 사마천 소개
한나라 전성기인 한 무제 때 활동한 역사학자이자 문학자로 기원전 145년경 오늘날의 중국 섬서성 한성시의 고문촌 용문채에서 태어났다. 황제 측근에서 각종 기록을 담당하던 아버지 사마담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학문에 정진했다.
20세를 전후해서는 당대 최고의 학자인 공안국과 동중서를 만났는데, 이는 그의 학문적 여정에서 큰 이정표가 되었다. 특히 동중서를 통해서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물음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되었다. 한편 이 시기에 역사 유적지를 찾아 자유롭게 천하를 방랑했는데, 이는 훗날 『사기』 저술의 자양분이 되었다.
그 후 그는 황제의 경호원 격인 낭중이라는 직책에 임명되었지만 그의 나이 36세 때 사마담이 낙양에서 화병으로 죽으면서 남긴 유언을 계기로 새로운 삶의 목표를 갖게 되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다하지 못한 대역사서를 완성하는 일이었다. 3년 후 사관직인 태사령에 오른 그는 B.C. 99년 이능의 투항 사건을 맞아 홀로 이능 장군을 변호하다가 사형을 선고 받았다. 이 때 그의 나이 47살이었다. 당시 사형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돈 오십만 냥으로 감형 받는 것과 궁형을 받아 환관이 되는 것이었다.
죽음과 삶의 기로에서 사마천은 부친의 유언을 따르고 다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궁형을 자청하여 환관이 되었다. 부형(腐刑)이라 불리는 궁형은 사람이 당하는 모욕 가운데 가장 심한 형벌이었다. 궁형의 치욕을 견디며 사기를 완성하여 후세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다면 그 치욕을 보상받을 수 있다는 일념으로 발분하여 사기를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사기』는 왕도정치의 이상을 담은 공자의 『춘추』를 계승한 책이다.
그러나 곧 참혹한 화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이릉의 화’가 그것이다. 이 사건은 사마천의 삶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출옥한 그는 더 이상 예전의 사마천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울분을 누르고 천지자연의 이치와 인간 운명의 비극을 통찰함으로써 ‘역사를 재창조한 역사가’가 되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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