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594)]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저 | 김선욱 감수 | 김명철 역 | 와이즈베리 | 444쪽 | 15,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한국에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킨 마이클 샌델은 구제 금융, 대리 출산, 동성 결혼, 과거사 공개 사과 등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흔히 부딪히는 문제를 통해 ‘무엇이 정의로운가’에 대한 해답을 탐구했다.
저자 마이클 샌델은 자본주의, 행복, 평등, 자유, 미덕과 같은 주제로 이 시대 도덕과 정의는 무엇인지 탐구했다. 정치 철학가인 마이클 샌델은 27세에 하버드 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를 발표하면서 세계적 학자로 인정받았다. 특히 1만5천 명이 운집한 연세대학교 공개 강연을 통해 대한민국의 지식인들에게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의 대표작 『정의란 무엇인가』는 불공정과 불평등이 만연해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는 시기에 옳은 행동과 바람직한 삶의 방식을 정립할 수 있는 철학적 기반을 탐구한다.
이 책은 정치 철학사 속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이 정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저자는 제러미 벤담과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는 다수에게 도움이 되는 결정을 지지하지만 고문이나 대리 출산과 같은 인간의 존엄성 문제에는 도덕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이마누엘 칸트가 말하는 자유와 도덕의 개념은 설득력이 강하지만, 친구를 위해 살인자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는 사례처럼 정언 명법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평가한다.
특정한 이해관계가 사라진 무지의 장막 뒤에서 정의의 원칙을 합의해야 한다는 존 롤스의 주장도 완벽해 보이지만 노예제를 인정한 과거 미국 헌법과 같이 아무리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사유하려해도 결국 공동체의 이익이나 관습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정의에 대한 생각을 수정하고 바로 잡는 정치 철학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를 새삼 확인하고, 모두에게 좋은 사회를 향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바람직한 철학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를 심어준다.
2005년 6월, 미 해군 특수 부대는 탈레반 지도자를 찾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은밀히 정찰 활동에 나섰다. 이들은 무장하지 않은 염소 목동 두 명과 열네 살가량의 남자아이와 조우했다. 염소 목동들은 민간인으로 보였기에 놓아주어야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특수 부대의 소재를 탈레반에 알려 줄 위험이 있었다.
한 부대원은 “우리는 임무를 수행 중이다. 저들을 놓아주는 것은 잘못이다”며 이들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대의 지휘관인 루트렐은 망설였다. 그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그들을 풀어 주자는 쪽의 손을 들어 줬다. 곧 후회할 결정이었다. 염소 목동들을 풀어 준 후 특수 부대는 탈레반 병사에게 포위되었다.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졌고, 부대원 세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을 구출하러 온 미군 헬기 한 대까지 격추당하는 바람에 군인 열여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루트렐은 중상을 입고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특수 부대원이 처한 딜레마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죄 없는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목동들을 놓아 주었다. 하지만 풀어준 목동들이 탈레반에 협조했고 결과적으로 부대원을 죽음으로 몰았기에 잘못된 결정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목동들이 탈레반의 강요에 못 이겨 미군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면? 다시 부대원의 희생을 막기 위해 죄 없는 사람들을 죽였어야 하는가의 도덕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또한 이러한 시각은 우리가 어떤 공동체에 살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저자는 딜레마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옳은 행동과 바람직한 삶을 위해 어떤 식으로 도덕적 주장을 전개해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민주 사회에서 살다 보면 정의와 부당함에 관한 이견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옳고 그름,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을 둘러싼 주장들이 경쟁하는 딜레마적 사례를 바탕으로 구성했다. 딜레마에 빠졌을 때 우리가 처한 상황을 깨닫고 우리가 의존할 도덕적 원리를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과 관점의 차이를 깨달을 필요가 있다.
저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정치 철학이란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투쟁이다. 정의를 둘러싼 논쟁은 수 없이 되풀이되며, 우리의 판단과 원칙 사이에서 접점을 찾고 편견의 타래에 머물지 않기 위해 여럿이 함께 대화에 참여하라고 촉구한다. 저자는 “행동의 세계에서 이성의 영역으로, 다시 이성의 영역에서 행동의 세계로 마음을 돌리는 것이 바로 도덕적 사고의 근간을 형성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정의란 일부 사상가들이나 정치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강의를 듣는 학생들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위대한 사상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자신의 논리를 펼쳐나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이클 샌델 역시 롤스의 정의 이론의 장단점을 지적하고 보완하며 새로운 대안을 탐구하는 철학자다. 자유적 공동체주의 입장에서 롤스의 장점을 수용하면서도, 롤스의 자유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입장을 체계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그는 다른 공동체가 가진 도덕성을 외면하는 공동체주의의 사고를 경계한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단순한 공동체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의 장점을 수용하고 종합한 공동체주의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저자가 이 책에 정의에 대한 확고한 정답을 담지 않은 이유다. 이 책은 정의에 대해 깊이 사색하는 시간을 만들어 미래의 철학자, 인문학자, 정치가가 되기 위해 자신의 사고를 다듬는 독자들에게 깨달음의 기회를 만나는 획기적인 프레임을 선사한다.
작가 마이클 샌델 소개
2010년 이후, 한국에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29세에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1982년)를 발표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1980년부터 30년간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그의 수업은 현재까지 20여 년 동안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명강의로 손꼽힌다. 존 롤스 이후 정의 분야의 세계적 학자로 인정받는 그는 명실공히 이 시대의 최고 석학이자 철학계의 록스타이다.
저서로는 『정의의 한계』 『민주주의의 불만』 『왜 도덕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등이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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