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평화이야기 (7)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평화이야기 (7)

로렐라이의 유혹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역사적 고도(古都) 라인베르그의 새벽을 알리는 녹슨 청동의 종소리가 은빛으로 은은하게 천상의 유혹처럼 울리며 나그네의 곤한 새벽잠을 깨운다. 금방이라도 하늘에서 은총이 떨어져 내릴 것 같아 늦장을 부리면 다 놓쳐버릴 것 같아 벌떡 일어났다. 나는 아직 여명이 밝아오지 않은 거리를 종소리처럼 고요하게 흘러나간다. 나는 적어도 한 번의 종소리는 되어서 세상 속으로 퍼져 나가고 싶었다. 사람들 가슴속에서 메아리치는 몸짓이고 싶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집 떠난 자 금방 집을 그리워하고 집에 있는 자 빈 들판의 낯선 바람을 그리워한다. 그리움은 어쩌면 인간에게 운명인지 모르겠다. 낯선 곳에 여행하면 언제나 눈은 처음 보는 것들로 분주하고 코는 익숙하지 않은 냄새에 벌름거려진다. 한국의 깊은 산사(山寺)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와 같은 듯 다른 이 소리도 평화롭게 가슴의 울림과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중국계 독일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에서 잠을 잤으므로 무료 아침 식사는 없었다. 방은 비교적 깨끗하고 조용했다. 나는 어제 이 민박집을 찾느라 이 오래된 도시의 골목골목을 찾아다니며 온 길을 되돌아가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구시가에서 주소만 가지고 집을 찾는 건 현지인들에게도 어려운 것 같았다.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마다 다르게 알려줬다. 덕분에 작은 강을 끼고 깔끔하게 늘어선 주택가를 지나갔다.

 

근처에 아침을 파는 가게가 안 보여 슈퍼마켓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나왔다. 소화도 시킬 겸 천천히 달리고 있으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가을비를 맞으며 몽환적인 안개가 피어오르는 라인 강변의 도로를 달리니 마성의 무엇엔가 홀려서 아득하게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무엇이 나를 어떤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이 유혹하여 이리로 끌고 왔을까? 모든 유혹하는 것에는 그것이 비록 환상일지라도 사람을 홀리는 매력이라는 것이 있다.

 

순례자는 새벽 어스름 속에 감당할 수 없는 피로감에 절은 두 다리를 대지에 디디며 숨 죽은 듯 조용한 낯선 도시를 달리기 시작한다. 순례자는 달리면서 고요한 명상 속에 잠기는 법과 침잠 속에 드는 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해간다.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생생한 가르침을 얻고자 길을 나섰다. 어느덧 모습은 단식을 한 수행자처럼 퀭해진 두 눈에서 희망의 빛이 가끔씩 번득일 뿐이었으며 내면은 조용히 미소를 머금은 모습이었다. 무겁던 발걸음은 한순간 건강한 어린아이의 발걸음처럼 가벼워져 춤추듯 달려가고 있다.

 

나는 어렸을 때 아우토반을 총알 같이 벤츠나 아우디, 폴크스바겐 등을 몰고 달리고픈 꿈을 꾸어보았다. 소시지 안주에 맥주를 마시며 분데스리가의 축구를 보며 크게 함성도 지르고 싶기도 했었다. 철학이나 문학은 어떤 걸출한 사람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그곳의 문화적인 공간에서 키워지는 것이어서 이곳의 무엇이 그 기라성 같은 철학자나 문호들을 키워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게르만 민족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민족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이곳이 바로 제 2차 산업혁명의 발원지(發源地)이며 두 번의 세계대전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그들은 전 세계를 맘껏 두드려 부쉈고 스스로도 처절하게 부서지고 망가졌고 다시 일어나 통일을 이루어냈으며 세계를 향해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국제사회는 그들을 용서하고 받아들였다.

 

오르소이로 가는 중간에는 비바람이 폭풍으로 변해서 얼굴을 때린다. 넓게 펼쳐진 밭 한가운데 무수히 많은 풍력발전기가 돌고 있다. 풍력발전기는 아무 데나 세우지 않는다. 바람이 많은 한가운데 세운다. 새들은 두 개의 날개로 평형을 이루며 날고, 풍력발전기는 세 개의 날개로 바람을 안고 돌며, 나는 하나의 또렷한 의식을 가지고 달린다. 달리기는 풍력발전기보다도 더 좋은 에너지를 사람에게 제공한다. 달리기는 내게 아무리 바람이 거칠게 불어도 세상은 충분히 치열하게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바람개비나 풍력발전기는 바람과 마주 보며 돌아간다. 풍력발전기는 바람을 마주 보며 돌아가면서 덧없이 지나가는 바람을 유용한 에너지로 바꾼다. 바람과 마주 서서 힘겹게 달리면서 나도 거친 바람과 고난을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꾸어 생산해서 많은 사람과 나누어 쓸 수 있다는 당찬 생각을 하면서 다시 어깨를 펴고 없는 힘을 쏟아본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고대 그리스에는 ‘사이렌’이라는 신화가 있다.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바다 저 멀리서 맑고 고혹적인 마성(魔性)의 노랫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그 노랫소리에 마음을 빼앗긴 외로운 뱃사람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노랫소리 들리는 방향으로 넋을 잃고 노를 저어간다. 어느덧 노래를 부르는 곳이 다가왔다고 느끼는 순간 배는 바위에 부딪혀 배도 사공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스타벅스는 이 전설의 주인공 사이렌을 로고로 사용하여 세계인들의 입맛을 커피로 유혹하고 있다.

 

아주 옛날 독일의 라인 강변에 로렐라이라는 아름다운 소녀가 살았다. 그녀는 얼굴도 예뻤지만 황금색 긴 머릿결은 바람결처럼 물결처럼 매혹적이었다. 머릿결에서 묻어나는 향내는 묻 사내들을 유혹하기 충분했다. 로렐라이는 이웃 마을의 멋진 소년을 한번 보고 사랑에 빠졌다. 사랑이라는 것이 숭고하고 아름다워서 오랜 세월이 걸려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번갯불같이 한순간에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로렐라이의 사랑도 천둥보다 빠르게 그녀의 머리를 때렸다.

 

전쟁은 사랑의 감정을 전할 틈도 주지 않고 일어났고, 소년은 기사(騎士)가 되어 배를 타고 라인강 줄기를 타고 먼 전쟁터로 떠나갔다. 로렐라이는 매일 강가에 나가 그 기사를 기다리며 노래도 하고 머리도 빗기도 했다. 그런데 그 모습과 노래가 너무 아름다워서 그 앞을 지나가던 뱃사람들이 정신을 빼앗겨 격류에 휘말려 버리곤 했을 정도였다.

 

오랜 전쟁이 끝나고 그 기사가 배를 타고 라인강의 협곡으로 배를 타고 오다가 그만 소용돌이에 휘말려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로렐라이는 너무나 슬퍼서 강에 뛰어들어 죽고 말았다. 그 뒤로 이 협곡을 지나가던 무수히 많은 배들이 암초에 좌초(坐礁)되어 침몰하였다고 한다. 사람들은 로렐라이가 한을 품고 한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 슬픈 전설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오다 하이네가 이것을 소재로 시를 썼고 이 시는 다시 민요풍의 선율로 작곡이 되어 사람들에게 불리고 있다. “옛날부터 전~해 오는 로렐라이 언덕…….”

 

독일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도르트문트, 에센, 뒤스부르크, 겔젠키르헨, 보쿰 등의 도시권을 이루는 지역을 루르 지방이라 부른다. 1960년–1970년대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독일 산업의 중심지가 바로 루르 지방이다. 무연탄과 철광석을 캐는 세계적인 광산이 모여 있는 이 도시들은 산업혁명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탄광으로 인해 막강한 경제적 부를 누려왔던 곳이다. 과거 140여 개 광산에 50만여 명의 탄광 노동자가 종사했다고 한다. 이곳을 달리려니 아직도 공장들이 많이 남아있지만 더 이상 석탄가루는 날리지 않았다.

 

일본과 한국 그리고 최근에는 중국과 같은 나라들이 유럽의 중공업의 무서운 경쟁자로 나타나자 독일의 중공업 산업은 경쟁의 힘을 잃어가며 쇠락(衰落)의 길을 걷게 된다. 지금은 대부분의 탄광을 폐광하고 독일에서 모든 탄광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이 지역이 우리나라가 개발을 할 수 있는 힘을 보태준 독일 광부들이 왔던 곳이고 터키 사람들도 그 무렵 이곳에 많이 와서 막장에 들어갔던 모양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광산에서 사용하던 모든 시설은 그대로 있다. 겉모습은 옛 탄광촌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문화와 예술을 만날 수 있는 도시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 루르 지역이 지난 2010년 유럽 문화중심 도시로 지정되었다. 생성과 몰락을 거치면서 다시 일어서는 도시는 헐거운 듯 촘촘하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보기 불편한 것은 헐어버리고 다시 새 건물 짓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아무리 작은 마을에도 고색창연한 중세의 건물 하나는 간직하고 있는 독일의 도시들 역사는 웬만하면 1000년을 훌쩍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보통이다.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옛것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린 이름만 고도인 서울을 생각하면 우울증(憂鬱症)이 도진다.

 

이제 일주일째 달리고 있다. 어제는 호텔에 체크인하고 샤워를 간단하게 하고는 저녁도 먹기 전에 곤히 잠이 들어버렸다. 다행히 식당 문이 닫히기 전에 눈이 깨서 저녁을 먹고 다시 잠이 들었다. 다리는 그래도 평소에 훈련을 하여서 잘 적응하고 있는데 손수레를 미는 손을 훈련이 안 돼서 잘 때면 가끔 경련이 일어나기도 한다. 오늘은 자다가 팔뚝이 하나 없는 것 같아 가위에 눌린 사람처럼 비명을 지르며 놀라서 깨어났다. 그리로 피기 흐르지 않아 팔을 아무리 흔들려 해도 움직이질 않는다. 긴장된 시간은 더디게 지나간다. 한참을 팔을 주무른 끝에 팔에 피가 다시 도는 걸 느끼고야 안도의 한숨을 쉬고 다시 잠에 빠져든다. 뭐든지 훈련이 필요하고 적응이 필요하다.

 

끝없이 달리면 온몸의 에너지가 고갈(枯渴)되면서 스트레스도 날아간다. 잡념이 사라지고 세상사 헛된 욕망이 지워진다.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소유의 자리에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충만하게 채운다. 이렇게 채워진 감동의 여운은 아주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그것이 나를 유혹하여 뱃사공이 넋을 잃고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맹렬하게 노를 젓듯이 이렇게 끝없이 맹렬하게 달리게 만든다. 달리기가 나의 ‘로렐라이’이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