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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03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03

올가을은 대동강물 칵테일을!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젊은 배우와 노시인

 

스산한 바람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 밤

내 사유(思惟)도 잠 못 이루고 혼돈 속에 뒤척이네.

 

한 젊은 배우

태양을 향해 나는 부나비가 되어

혼신의 연기를 하네.

커다란 객석엔

초가을 처음으로 떨어진 낙엽처럼

노시인이 땡그랑 홀로 앉아 있었네.

어느 틈엔가

젊음의 애환을 불사르듯

신명에 홀린 듯 땀을 뻘뻘 흘리며

연기하는 배우는 밝아오는 조명과 함께

내가 되었다.

 

어렴풋한

젊은 날의 향수 속에

당신을 찾기라도 하듯

심오한 표정의 노인은

추억만큼 퇴색한 백발을 쓰다듬으며

어느덧 마그네슘 연기와 함께 나로 변신하네

젊은 배우와 노시인은 혼미한 사유 속에

번갈아 나의 모습과 겹쳐지고

어느 결엔가

무대를 꽉 메운 배우와 객석을 메운 관객은

몸짓과 표정과 감동이 모두 다른

내가 되어버렸다.

 

도취된 흥의 승화 속에 배우와 관객은 어우러져

한판 놀이마당이 벌어지고

감정의 격랑이 드세질수록

동맹, 무천, 영고가 함께 난무하던 놀이꾼들은

시간의 마술 속에

모두 하나의 영상으로 포개지더니

그건 분명 아비규환의 내면의 세계를

용케도 잘 조화시킨

나의 모습이었네! 

 

 

유라시아를 달리다 보니 거친 바람에 안면이 두꺼워져 부끄러워 꺼내지도 못하던 어릴 때 썼던 졸시를 또 하나 펼쳐 든다. 억센 바람을 뚫고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가장 감미로운 노래는 어릴 적 추억이 곰삭은 글들이기 때문이다. 그때 젊은 나는 내 안에 노인을 만났었다. 사막을 달리는 지금 내 모습이 그때 만났던 내 안의 노인과 거의 비슷한 것이 놀랍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시사타임즈

 

매일 새벽마다 황금빛 붉은 바다 앞에 서는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경건한 시간이다. 태양이 떠오를 때면 잠깐 나타나는 짧은 시간이다. 이제 나는 죽어서도 영구차를 타지 않고 달려서 화장터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하루를 온전히 채울 수 있어 좋다. 구구절절 그리워해 본 사람은 안다. 그리워 찾아가는 발걸음이 얼마나 설레고 행복한지! 나를 기다리지 않는 야속한 당신이지만 그리워할 당신이 있어 삶은 풍요롭다. 그리운 이여 이제 당신이 내게 걸어오고 나도 당신에게 달려가고 있다. 그 그리움으로 나 같은 평범한, 좀 더 솔직하게 말해서 찌질한 사람도 마음먹기 따라서 숭고한 발자국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은 통쾌한 일이다.

 

내가 펼치는 지상최대 전위예술은 유라시아를 달리면서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화폭에 평화란 단어를 일필휘지하는 화공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 광대무량한 대지 위해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 위해서 치열하게 노래를 불렀고 이 거친 사막의 바람에 시를 써 날려 보냈다. 이 어마어마한 무대 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온몸을 불살라가며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되었다. 잠자는 한민족의 혼을 깨우는 제사를 지내는 제장이 되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시사타임즈

 

주취안(酒泉)을 지나며 이제 나의 행위예술은 후반부로 들어서고 있다. 이제 광화문까지 3500km 남았다. 애초 내가 이 유라시아횡단 마라톤의 지도를 만들 때 다른 도시는 몰라도 실크로드의 가장 중심 도시인 시안을 거쳐서 뤄양으로 지나는 길을 택했었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의 혼백이 머무는 하얼빈을 거쳐서 북한으로 들어가려던 계획이었다. 그렇게 16km이었던 거리가 지금은 시안 하얼빈을 뺀 최단 거리의 길로 가게 되었다. 그래서 15km가 되었다. 유라시아의 거의 모든 중요 도시는 다 거쳤지만 못 가는 곳이 시리도록 아쉽다.

 

영원히 평화가 지속하라는 의미로 장안(長安)이라고 이름지었던 그곳은 비옥한 관중평야의 웨이허에 위치해서 중국 문명의 발생지가 되었던 곳이다. 주나라를 포함해진, , 당 등 13개 왕조가 1,100여 년 동안 수도였던 곳이다. 2천 년 전 실크로드가 시작되는 곳이며 고대 역사에서 한국과 일본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곳이다.

 

고사성어는 오랜 기간 곰삭은 중국문화와 역사와 지혜와 해학의 진주같이 찬란히 빛나는 언어의 결정체이다. 반짝이는 고사성어를 대할 때마다 언어의 영원성과 생명성에 경이로움이 느껴지며 때론 가슴이 확 트이고, 때론 신선한 충격을 받기도 하고, 웃음이 빵 터지기도 하고 눈시울이 적셔지기도 하며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그 무한한 확장성을 가진 언어예술이 무한한 문화 콘텐츠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시한을 못 가 아쉬워하다가 그곳 하면 생각나는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이 자연 생각났다. 그의 사후 진이 맥없이 무너져 내리게 했던 상징적인 고사성어 지록위마(指鹿爲馬)가 떠오른다.

 

사슴을 가리키며 말이라고 한다.”는 이 말은 지금도 이런 부류의 억지를 쓰는 위정자들이 득세하기에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불로장생하기를 간절히 원했던 진시황이라는 희대의 영웅호걸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치사하게도 산동성을 순시하다 더위를 먹은 것이었다. 병석에 누운 그는 큰아들에게 유언을 남겼는데 환관 조고가 가짜 유언을 큰아들과 몽염장군에게 보내 자살하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자신과 친한 왕자 호혜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조고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재상이 되었지만 그는 황제마저도 능멸하였다. 그는 자신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시험하기 위하여 사슴을 황제 앞에 끌고와 폐하, 이 말은 소신이 올리는 명마입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시사타임즈

 

황제가 아무리 보아도 사슴인지라 경이 잘못 보셨구려! 사슴을 보고 말이라 하다니그러자 조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크게 뜨고 이것은 분명 말입니다.”하고 단호하게 말하며 문무백관에게 이게 사슴이요? 말이요하고 물으니 조고가 물으니 신하들은 조고가 무서워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다시 조고가 호통을 치며 묻자 신하들은 이구동성으로 말이요!”하고 답하더란다. 이때 유방의 군대는 진나라의 요충지의 하나인 무관을 정복하고 관동 대부분의 지역은 반란군의 손에 넘어가고 있었다. 지록위마(指鹿爲馬)가 중국 최초의 제국을 15년 만에 무너트린 세 치 혀의 무서움이라면 과언일까?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우겨대는 자들, 멀쩡한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우겨대는 자들에게서 악마를 본다. 아직도 멀다면 먼 길,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제 나의 그리움이 무엇인지, 무엇이 나를 이토록 유혹하여 이 험한 길로 이끌었는지 보여줄 때이다. 이제 졸고 있던 관객의 심장을 엿가락처럼 늘였다 줄였다 할 때이다. 혹시 최선을 다한 자에게 보내는 커튼콜이 있다면 그것도 준비할 때이기도 하다.

 

몇 날 며칠 달려도 풍경 하나 변하지 않는 길이지만 이 길 위에 쓰여진 역사를 떠올리면 이 길 위에 흥미진진했던 이야기들이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른다. 2천여 년간 흉노는 중국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중원의 제국은 이들 때문에 망했고, 이들을 막기 위해서 역대 왕조는 모든 것을 바쳐 만리장성을 쌓았다. 그러나 만리장성은 생각만큼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저 흉노의 말이 장성을 뛰어넘는데 시간을 벌게 해줄 뿐이었다.

 

이 흉노에 일격을 가한 이가 있었으니 유방이 세운 한나라의 7대 황제 무제이다. 그러나 중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인물은 흉노를 토벌한 곽거병이다. 그는 그야말로 아이돌스타였다. 17세에 몸을 중원의 광활한 무대에 데뷔하여 거침없는 영웅 놀이를 하다가 24세 딱 좋을 나이에 드라마처럼 사라졌다. 이렇게 짧은 생을 마쳤지만 그는 한나라 최고의 명장으로 꼽힌다. 고작 7년간 활약으로 전설이 되어버린 전쟁영웅이다.

 

17세에 그의 삼촌 위청을 따라 첫 출정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애송이가 전투 중에 본대에서 수백 리나 떨어진 곳으로 이탈하는 폭주를 하게 된다. 위청은 이 애송이의 군율 위반에 죄를 물을 수가 없었다. 그가 흉노 선우의 할아버지 자약후 산을 죽이고 선우의 막내 숙부인 나고비를 생포하고 2천 명의 목을 베고, 포로로 생포하는 혁혁한 전공을 새운 것이다. 그는 흉노를 무찌르는데 흉노 특유의 전술인 기동력을 이용하였다. 그는 첫 선발 출전에 감독의 작전에 따르지 않고 개인플레이를 하고도 해트트릭 이상의 레전드급 활약으로 감독을 머쓱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진격속도가 빠르면 모든 불운이 비껴간다. 전장에서 의사결정을 빨리하면 적군의 총알도 피해간다.”라는 말이 있다. 그는 전광석화처럼 적을 몰아붙였다. 칭기즈칸이 그랬고, 알렉산더와 롬멜도 이와 비슷했다. 그들은 언제나 운이 좋게 이겼는데 그것은 진격속도가 터무니없이 빨랐기 때문이다. 의사결정 속도가 빠르면 불운이 비껴간다. 제갈량 같은 지식인들이 모르는 맹점이다. 제갈량은 최고의 책략가였지만 언제나 운이 나빴다. 머뭇거리고 심사숙고하는 사이 행운은 진로를 바꾼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시사타임즈

 

주취안(酒泉)은 스무 살의 소년장수 곽거병이 BC 121년 여름 흉노족을 쳐부수고 나서 이곳 샘터에서 5만 병사들과 전승 파티를 했다. 이때 곽거병에게는 한 무제가 하사한 어주(御酒) 한 병뿐이었다. 그는 생사를 같이한 부하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었다. 그는 술 한 병을 용천수가 솟아오르는 구멍에 부었다. 어주(御酒)와 샘물을 섞은 칵테일을 병사들과 어우러져 밤새도록 마셨고, 술 한 병에 5만의 병사가 나눠 마시면 취할 리는 없겠지만 이 술을 나눠 마신 병사들의 사기는 충천했을 것이다. 이후 이곳이 주천酒泉()이라 불리게 된 것이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번 유라시아 평화공연의 피날레는 대동강 어느 버드나무 아래로 뛰어가 영매가 되어 혼으로 그곳에 머무를 아버지 앞에 회한의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 것이다. 그 물에 대동강 맥주를 붓고 남북한 시민들과 한데 어우러져 밤이 새도록 그저 손 부여잡고 마시며 웃고 떠들면서 지난 간난의 세월 잘잘못은 따지지 말고 대동강물에 덧없이 떠내려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만약 내게 박수와 함께 커튼콜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면 나는 커튼콜로 부산까지 500km를 더 달려가 남북을 최초로 종단한 사나이가 되고 싶다. 나와 함께 달릴 최초의 사나이가 1천 명쯤 된다면 그건 더욱 좋겠다. 나는 남북을 가로지르며 맘껏 불장난을 할 것이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있는 작은 불씨에 풀무질을 하여 평화의 불길, 화해의 불길, 통일의 불길로 온 세상을 다 태우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것이다. 그 불길은 문화의 한류, 평화의 한류가 되어 다시 내가 달리는 이 길을 타고 유라시아로 번져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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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