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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02)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02)

만리장성 그 경계를 넘다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만리장성도 벽돌 한 장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나의 유라시아 평화마라톤이 그렇다. 한 걸음부터 시작한 것이 벌써 만 천여km를 치달려 왔다. 그리고 마침내 다툼과 고립을 넘어 소통과 화합이 화려하게 꽃을 피워낸 ‘위대한 길’ 실크로드의 첫 관문 자위관을 만났다. 이 길에서 동서양 문명과 문화가 만나서 소통하고 자극하며 보다 나은 세계를 만들어왔다. 수많은 민족과 국가가 이 길 위에서 명멸하며 역사와 문명을 만들어내며 끊어질 듯하다가도 끊임없는 생명력으로 되살아났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우리가 가욕관이라고 발음하는 자위관(嘉峪关 아름다울 가, 골짜기 욕, 관문 관, 아름다운 계곡에 있는 관문이다.)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첫 관문이자 외부 세계로부터 중화를 지키는 최전방이며 만리장성 서단 제 1관문이다. 만리장성의 서쪽 시발점이며, 이곳을 지나면 장예, 우웨이, 란저우, 시안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에 발을 들어서면 드디어 목숨을 걸고 유럽에다 비단을 팔고 오는 왕서방들의 위험과 고통은 끝이 난다. 이제 일확천금의 꿈이 현실이 되는 행복한 여행으로 바뀌게 된다. 나의 끝없는 발걸음도 이제 끝이 보이기 시작하고 이 지상최대의 마라톤 전위예술도 멋진 피날레를 준비하여야 한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내 두 다리의 근육의 힘으로 유라시아대륙을 달려서 횡단하겠다는 나의 꿈도 현실이 되어가는 행복한 여행으로 바뀌고 있다. 만리장성은 중국인들의 두려움의 상징이었다. 중국인들은 모든 걸 다 바쳐 성을 쌓았다고 할 수 있다. 이 거대한 장벽은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라 불리며, 중국의 상징이요 중국인들의 자긍심의 중심에 있다. 만리장성은 순수한 방어 목적 이외에도 중화와 비 중화를 구분 짓는 의식의 경계선이었다.

 

그 경계선이 내게는 꿈과 현실의 경계선이 되어주었다. 흙을 다져 쌓은 무너진 토성의 경계를 넘는 발걸음이 잠시 멈칫한다.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전투가 벌어졌을 것이란 생각이 미치자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것 같다. 나는 이 경계선을 넘으면서 분단의 경계를 넘는 경계인을 꿈꾼다. 마음으로 ‘세계평화 인류공영’을 외쳐본다. 동으로 동으로 달려가는 길,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니 긴 그림자는 서쪽으로 뻗어있다. 평화의 한류가 이제 이 경계를 다시 넘어 서쪽으로 뻗어갈 그 길이다.

 

남북으로 기차 레일처럼 뻗어가던 두 산이 이곳에서 좁아진다. 내 짧은 안목으로도 군사적 요충지로 탁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위관은 자위 산 서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성루 건물이 웅장해 천하제일옹관(天下第一雄關)으로 불린다. 자위관은 만리장성의 성문 중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었다고 한다. 한 변이 170미터인 이 건물은 명나라 초기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이것을 설계한 건축가가 얼마나 정확했는지 예상되는 벽돌보다 한 장 더 준비했는데 다 짓고 나니 벽돌 한 장이 남았다고 한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자위관은 스스로 칭기즈칸의 후손이라 칭한 중앙아시아의 패자 아무르 티무르가 몽골제국의 부흥을 외치고 대군을 이끌고 명나라로 진격할 준비를 마쳤다. 이에 명태조 주원장은 티무르 군대를 막기 위해 치렌산맥과 마종산맥이 흑산 사이에 있는 병목구간인 폭 15km 정도 되는 골짜기에 성을 쌓았다. 이것이 만리장성 서쪽 끝의 자위관의 역사이다. 인류문명의 위대한 유산 만리장성을 생각하면 역사의 이중성과 대면하게 된다. 이 성을 축조할 때 동원했던 수많은 사람의 피와 눈물과 고통이 담겨있다. 중국의 전설 중 가장 잘 알려진 맹강녀의 전설은 바로 만리장성을 무대로 한 것이다. 만리장성은 고대 중국인들의 공동묘지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맹강녀의 남편 완치량도 그 성 아래 묻힌 것으로 전설은 이야기하고 있다.

 

장성은 역사적으로 언제부터 지어졌는지 애매한 건축물이다. 춘추전국시대부터 유목민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지어진 것을 진시황이 연결한 것이다. 자위관 내에는 관우의 사당이 있다. 극한의 더위와 추위가 공존하는 이곳은 언제 적이 기습공격을 해올지 모른다. 그 두려움을 맞서기 위해서 성벽 위의 병사들은 관우 장군에 의지했을 것이다.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두 사람은 공자와 관우이다. 두 사람 다 죽어서 신의 반열에 올랐다. 두 사람 다 사당을 짓고 모신다. 특히 관우는 재물의 신으로 떠받들고 있다.

 

중국 사람들은 관우를 참 좋아한다. 서슬이 퍼런 문화혁명 때에도 관우의 사당은 손대지 않았다.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이 도원의 결의를 한다. 아시아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영웅 캐릭터 3인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이 모여 ‘천하통일’의 자궁이요 인큐베이터로 사용한 자리가 복숭아꽃이 만발한 복숭아 밭이다. 복숭아꽃는 중국인들의 무의식 깊순히 자리잡은 유토피아 세계의 배경이다. 유토피아의 중국적인 표현은 무릉도원이다.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환타지 소설 서유기에서도 일개 원숭이에 불과하던 손오공이 가공할 능력을 갖는 것도 천계의 천도복숭아를 훔쳐먹은 신비한 힘 때문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흥행에는 귀재인 할리우드가 이를 놓칠 리가 없었다. 할리우드가 제작한 에니메이션 ‘쿵푸팬더’ 1편 영화 전반에 밝고 화사한 복숭화꽃이 화면을 장식한다. 시푸가 사명감도 없고 뚱보인 펜더에게 중국전통 무술을 전수시키는 장소에도 어김없이 복숭아꽃이 장식한다. 이는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쳐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꿈에서 무릉도원을 거닐었는데 이를 당대 천재 화가 안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리게 하여 몽유도원도라는 걸작이 탄생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그 그림은 400년간 행방불명이 되었다가 일본의 보물로 지정되어 일본의 박물관에 있다.

 

이후 세 사람 모두 의협심의 상징이 되지만 그중에서도 관우가 의협심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는 이유는 초지일관 그런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고통받는 약자의 편에 섰고 의형제이자 주군인 유비를 위하여 변함없는 충성과 의리를 보여주었다. 그는 적이라도 야비하게 상대의 허점을 노려 뒤통수를 치지 않았고 자기에게 불리할지라도 정면승부를 펼쳤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고, 권력욕이나 명예욕, 지나치게 사리사욕에 집착하는 자들이나 작은 재주에 취해 우쭐거리는 자들은 적폐세력으로 반드시 응징하였다. 그는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갚았다. 혼란의 세상을 살면서 자신보다는 동료, 동료보다는 백성을 위했고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아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뜻을 세웠고 그 뜻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그런 그는 죽어서 신의 반열에 올랐다.

 

 

그가 신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느 시대이건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며 백성들의 피를 빨아먹는 기득권층, 권력자, 대재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백성들의 탄식과 원성을 뒤로하고 사리사욕을 취하는 현실에 백성들은 관우 같은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기도하며 관우의 사당을 짓기 시작해 중국에는 관우의 사당이 공자의 사당보다 더 많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명나라 때 세워진 관우의 사당이 있다. 동대문의 동묘에도 있고 여러 곳의 사찰에 있다.

 

관우가 신으로 추대된 것은 대체로 당나라 중기 이후였다고 한다. 국가적 위기 상황이 있을 때마다 정치적으로 이용되며 구국의 영웅을 갈구하는 민중의 심리를 이용해 관우의 지위는 올라가고 마침내 호국신으로 내세워 관왕묘를 짓고 국가 주도로 관우를 우상화하였다. 그러던 것이 무신과 재물의 신은 물론 질병과 고통으로부터의 구원, 악귀를 쫒는 일까지 관우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관우는 조인이 매복시킨 궁노수가 쏜 화살을 오른팔에 맞아 당대 최고의 명의 화타에게 치료를 받는 장면은 삼국지 최고의 장면이다. 화살에는 독약이 묻어있다. 독은 뼈까지 빠르게 스며들었다.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 되자 부하 장수들이 당대 최고의 명의 화타를 수소문해 모셔왔다. 관우는 마량과 바둑을 계속 두는 가운데 화타는 관우의 팔에 칼을 대어 가죽과 살을 갈랐다. 관우는 눈 하나 깜박 안 하고 술 몇 잔 마시고 두던 바둑을 계속 두었다.

 

뼈가 드러나도록 살을 가르고 보니 뼈가 이미 시퍼렇게 변했다. 화타가 칼로 뼈를 긁어내는 소리가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들릴 정도였지만 관우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는다. 오히려 곁에 있던 모든 이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어도 관우는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며 마량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수술이 끝날 때까지 두던 바둑을 계속했다. 두 당대의 대가(大家) 화타와 관우의 내공에 감탄하고 관우는 화타의 의술에 감동한다.

 

관우의 청룡언월도의 언월은 반달이나 상현달을 의미하고, 관우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의협과 정의의 상징이기도 했다. 폭이 넓은 검신에 용모양이 새겨져 청룡언월도라고 했다. 유비의 군대는 이 청룡언월도를 든 관우가 앞장서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고 사기가 충천했다. 나도 이 청룡언월도를 보며 지금도 백성들의 피를 빨며 자신들의 이익만 찾는 기득권세력과 권력자 대재벌을 멋지게 응징하는 관우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든다.

 

화타는 병을 진단하고 환자의 상태를 예견하는 능력도 뛰어나, 환자의 얼굴색을 보거나 맥을 짚는 것만으로도 병의 정도와 예후를 예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체질에 따라 처방도 다르게 내렸다. 두 사람이 똑같은 증상으로 함께 진찰을 받았으나, 화타는 한 사람에게는 설사를 해야 한다는 처방을 내리고, 다른 이에게는 땀을 흘려야 한다는 처방을 내렸다. 이들이 같은 병에 왜 치료방법이 다른지를 묻자 화타는 두 사람의 체질이 다르므로 당연히 다르게 치료해야 한다며 다른 약을 주었다. 그리고 화타의 말대로 두 사람 모두 병이 완쾌되었다고 한다.

 

화타는 양생술(養生術)에도 밝아 10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장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전해진다. 또한 제자 오보(吳普)에게 호랑이, 사슴, 곰, 원숭이, 새의 모습을 본뜬 ‘오금희(五禽戱)’라는 양생술을 전했는데, 이를 시행한 오보는 90세가 되어서도 귀와 눈이 밝고 치아가 완전하며 견고했다고 한다. 화타를 이야기했으니 중의학이나 한의학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론은 우주를 꿰뚫는 풍부하고 심오함을 품었는데 서양의학의 잣대로 갖다 대고 폄훼되고 완전히 해체되고 원래의 정신이나 이론은 교통사고 난 차량의 바퀴처럼 저만큼 굴러가 버리고 말았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중의(中醫)는 중국 전통사상과 문화에 깊은 뿌리를 박고 있다. 그 이론과 방법은 중국전통 관념과 사유방식에 근본을 둔다. 중의(中醫)에서는 천지의 기운이 생명의 본원이라 여긴다. 음양의 균형을 강조하며, 오행의 상극을 중요시여긴다. 동양의 문화는 각각의 분야가 개별적이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있다. 문학, 사학, 철학, 정치, 경제, 법률, 농업, 공업, 상업이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나는 중국이 세계 1등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큰 분야가 의학 분야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존재함이란 곧 기의 모임이다. 기가 모이면 태어나고 기가 흩어지면 죽는다.” 평화가 마찬가지이다. 좋은 기가 모이면 평화가 이루어지고, 흩어지면 전쟁이 난다. 나는 이제 단순한 마라토너가 아니라 지상최대 전위예술의 예술가로서 어떻게 멋진 피날레를 장식할 것인가 만리장성을 넘으며 상념에 빠졌다. 평화의 불길을 어떻게 이 유라시아대륙에 확산시킬까!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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