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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칼럼] 구절초를 노래하는 문인들

[칼럼] 구절초를 노래하는 문인들

 

▲김동진 시사타임즈 호남본사 대표 (c)시사타임즈

[시사타임즈 = 김동진 시사타임즈 호남본사 대표] 한반도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유난히 약이 되는 식물들이 많이 자라는 것 같다. 가장 대표적인 게 인삼이다. 인삼의 효능에 대해서는 이미 고려시대부터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여 중국과 일본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다. 다른 나라에도 인삼이 자라지만 그 약효에 대해서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다. 언젠가 중국에 갔다가 이른바 장뇌삼 장사꾼을 만났는데 처음에는 한 뿌리에 ‘만원’을 부르더니 나중에는 열 뿌리를 제시하고 그래도 고개를 저으니까 스무 뿌리에 단돈 1만원으로 낙착한 일도 있다. 내가 더 버텼더라면 아마 서른 뿌리를 얻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덕분에 함께 갔던 일행들에게 커다란 장뇌삼을 한 뿌리씩 돌릴 수 있었고 그 자리에서 우적우적 씹어 먹기는 하였지만 무슨 효과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처럼 이름난 식물로서의 인삼도 천덕꾸러기가 되는데 별로 알려지지 않은 식물을 약효가 좋다고 해봐야 자칫 콧방귀 신세가 될 게 뻔하다. 그런데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구절초(九節草)는 약으로서가 아니라 군락을 이룬 꽃이 어우러지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기 때문에 유명해졌고 이를 정읍지방에서 대대적으로 가꿔 문자 그대로 대축제의 주인공을 만들었다.

 

칠보면과 산내면에 걸친 구절초단지는 추령천을 휘돌아 옥정호로 흐르는 냇물이 수력발전소와 연결되어서인지 엄청난 수량을 자랑한다. 구절초는 음력 9월9일을 절정으로 보고 있는데 정읍시에서는 그에 맞춰 축제를 기획한 모양이다. 아직 꽃이 만개한 것은 아니어서 30~40%만 피었다는 관계자의 설명이 있었지만 그 정도로도 온통 산 전체가 꽃으로 물들어 있어 장관이다. 꽃 색깔은 대부분 흰 꽃이 많았지만 보라색 단지와 노란 꽃들도 어우러져 색의 조화가 눈을 밝게 한다. 군데군데 구절초 향기를 맡을 수 있는 부스를 만들어놔서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참으로 향내가 온 몸에 스며든다. 강하지 않는 향내여서 톡 쏘지 않으니 더욱 좋다. 밖에서 꽃구경만 하다보면 바람에 날려버린 구절초 향기를 어디서 붙잡아 올까. 축제를 준비한 분들의 센스가 엿보인다. 높은 산은 아니지만 몇 개의 고개를 넘어도 모든 꽃을 다 볼 수는 없다. 다리가 아픈 이들이 쉬어가라고 팔각정과 쉼터가 곳곳에 있지만 구절초향기에 젖어서인지 보행기에 의지한 할머니도 그대로 달린다.

 

이것이 힐링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난다. 주최 측에서는 꽃밭 언저리에 유무명의 시인들이 구절초를 노래한 시편들을 잘 정리해둬 한 줄씩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유안진이나 이해인의 구절초 시가 있는가 하면 김용택과 박기태 안도현도 보인다. 해 저무는 물가에는 바람이 일고, 물결들이 밀려오는 강기슭에는 구절초 꽃, 새하얀 구절초 꽃이 물결보다 잔잔하게 피었습니다. 라고 김용택은 노래한다. 정읍출신 박기태는 바람-구절초라는 제하에 ‘---속절없는 가을바람이 보듬어도, 가슴 열어 얼싸안고 홀로 버려진 아픔 같은 외로움 온몸으로 흐느끼누나---’ 라고 가을의 꽃을 외로움으로 운다. 안도현은 시 제목치고는 좀 이상하지만 ‘구절초의 북쪽’이다. ‘흔들리는 몇 송이 구절초 옆에, 쪼그리고 앉아본적 있는가? ----하나같이 목을 길게 빼고, 하나같이 북쪽으로 섧도록, 엷게 뻗어있는 것을 보았는가? 구절초의 사무치는 북쪽을 보았는가? 시인이 혹시 분열된 한반도의 북한을 생각하여 구절초의 북쪽을 가리킨 것이 아닐까 혼자서 생각해 본다.

 

가수 위일청은 ‘---사랑이란 바람결에 쓰러지는 갈대가 아니라고---, 아—사랑은 꺾였어도 마디마디 꽃으로만 핀, 나는 구절초---’ 라면서 6인조 혼성밴드를 통하여 폭발적인 구절초 노래를 알리고 있다. 조선시대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草蟲圖)는 유명하지만 그가 병풍으로 남긴 작품에도 구절초가 그려져 있다. 구절초는 가을에 꽃을 피우기에 많은 이들이 바람 또는 외로움과 연결하여 스산한 이미지를 세우고 있지만 꽃말은 ‘어머니의 사랑’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뜨거운 여름 한 철을 지난 후 찬바람이 일 때 자식에게 모든 걸 다 내어주는 소박한 어머니의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구절초 축제장의 입구에 ‘꽃바람 順貞門’이 있고 안에 들어가면 우람하게 서있는 ‘꽃바람 元裕館’이 있다. 40억여원을 투자하여 세운 이 건축물은 칠보출신 김순이할머니가 기증한 것이다. 현재 96세의 고령이지만 정신력이 또렷하다. 13세에 일본에 건너가 사업에 크게 성공하여 영구귀국한 후 봉사의 삶을 산다. 順貞은 자기 이름과 동생의 이름을 섞어 쓴 것이고, 元裕는 남편의 이름이다. 이 남편은 일제 말 동경 유학 중에 학병에 끌려가 필리핀전선에 투입되었는데 종전되기 전에 밀림으로 피신했다가 종전된 사실조차 모르고 20년이 넘게 혼자서 밀림에서 짐승처럼 살다가 원주민에게 발견되어 일본으로 송환되었던 사람이다. 고향은 안동이라는데 그 후 일본에서 작고했다. 그를 기려 이름을 남겨준 김순이할머니의 사랑은 구절초 사랑의 진정한 구현 아니겠는가.

 

글 : 김동진 시사타임즈 호남본사 대표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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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호남본사 대표 ksk367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