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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05)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105)

사막에 나비처럼 날아든 원불교 응원단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사막에서도 운이 좋으면 노랑나비를 볼 수 있다. 탱탱하게 부푼 가슴을 열어 젖히듯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유채꽃 품속으로 날아들던 노랑나비를 이곳에서 만난 기쁨은 온몸에 찌릿한 전율이 퍼져나가고 가슴이 마구 벌컹거린다. 사막의 야생화가 향기로 나비를 유혹한 걸까? 아무도 노랑나비에게 사막의 삭막함은 알려주지 않았기에 나비는 사막의 누런 빛깔이 유채꽃 노랑 들녘인지 싶었나 보다. 나비도 이곳에 진한 그리움을 찾아 날아들었을까? 사막의 이글거리는 아지랑이가 나비의 날개를 보드랍게 어루만진다. 사막은 내게 마음이 익어가는 황금빛 들녘이었다. 황량한 사막에 날아든 노랑나비가 애처로워 보이지만 외롭고 고된 여행길 길동무가 되어주니 여간 반갑고 고마운 일이 아니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저 노랑나비를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그건 아주 오래되었다. 아마도 까까머리 중학생 때부터인지 아니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인지도 모른다. 노랑나비가 되어 푸른 하늘 아래 꽃들이 만발한 꽃길을 나풀나풀 날아다니는 상상을 했지만 그건 언제나 현실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좌절하기만 했다. 그래도 나는 아침이면 혹 옆구리에 날개가 돋아나지 않을까 옆구리를 움찔해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번데기의 시간은 아주 오래 걸렸다. 아마도 내가 찾아가는 우리 할아버지처럼 단명한 사람이었다면 나는 번데기로 생애를 마쳤을지도 모른다. 번데기처럼 꿈틀거리며 1만 1천여 km를 넘어서 만리장성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는 옆구리에 날개가 돋아나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오랜 시간 번데기로 존재하면서 나는 날개를 활짝 펼 힘과 용기를 나도 모르는 사이 내적으로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나는 아무것도 더 나아질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다만 건강이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내게 주어진 시간이라곤 흩어져있던 보잘것없는 추억의 조각들을 그러모아 잘 정리하는 시간밖에 없다고 느꼈을 때 오히려 마음이 편해져서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몸에 활력이 돋고 정신이 맑아졌으며 자신감이 넘치면서 나는 50년,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이 내게 다시 주어진 것을 알았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한 번도 펼쳐보지 못했던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세상의 빈 허공에서 바람으로 불고 싶었다. 그것이 환갑을 넘기고 이런 모험에 떠난 이유였다.

 

사막에서도 운이 좋으면 나비를 볼 수 있다. 사막은 나의 상상력의 총화이다. 나는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향기를 가슴에 품었다. 처음 나의 평화에 대한 그리움은 아주 미미한 그리움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작은 그리움이 유라시아를 달려오면서 사무치는 그리움이 되어버렸다. 나는 사막의 야생화처럼 소박한 꽃도 피우지 못했다. 대나무밭에서 잘려나간 퉁소가 음으로 대나무밭을 그리워하듯 내 발길의 그 사무침이 향기가 되었을 것이다. 세 마리의 노랑나비가 오아시스의 도시, 하서회랑의 중간에 있는 장예로 날아들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원불교의 김선명, 원익선 교무님과 구한이 학생이 먼 곳에서 외로이 달리고 있는 나에게 힘이 되어주려고 찾아왔다. 함께 눈물의 기도를 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편화가 이루어지기를, 내가 가는 길이 분단과 이별, 억압의 길, 질곡의 길이 아니라 희망의 길이 되기를! 내가 그리도 먹고 싶어 하던 고국의 음식, 도가니에 김치를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도가니는 금방 데워졌고 우리는 둘러앉아 함께 먹었다. 혀와 위가 순식간에 돈대에서 연기로 전해주는 승전 소식과 같이 뇌에 행복감을 전달해주었다. 내 입술에는 수많은 나라의 다양한 맛이 묻어있었지만 맛에 대한 그리움도 사무쳤다. 도가니탕에 하얀 쌀밥을 말아 김치를 얹어 먹고 싶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사람이 그리웠다. 홀로 오지와 같은 유라시아 길을 달린다는 것은 많은 결핍을 강요받는다. 그중에서도 애정의 결핍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최초의 의지를 갉아먹는다. 군대 생활할 때 생각이 난다. 난 그때 누구든지 나를 면회 와주는 여자와 결혼하기로 결심했었다. 아무도 나를 면회와 준 여자는 없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원불교는 ‘평화의 종교’이다. 세상의 어느 종교가 평화와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는 종교가 없지만 원불교는 그것을 실천으로 보여준다. 김선명 교무님이 이 먼 곳까지 와서 내게 내려준 법어는 “진리는 하나, 세계는 하나, 인류는 한 가족, 세상은 한 일터”이다. 내가 유라시아대륙을 거의 일 년 가까이 달리면서 몸으로 체득한 것이 바로 그것이니 백 년 전에 우리 선진님은 이미 이 새로운 세상을 갈파하셨으니 이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니겠는가.

 

하서주랑 중부에 위치한 장예라는 지명은 곽거병(휘취빙)이 흉노를 몰아낸 후 하서사군을 설치하고 한무제가 ‘흉노의 팔을 꺾고 중국의 팔을 펼치다.’라고 했던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곳은 감초가 특산물로 알려져 감주(甘州)라고도 불린다. 치렌산 설봉이 바로 눈앞에 있는 듯 보이며 그 아래 사막 한가운데 있는 장예의 푸른 갈대가 무성한 습지대는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눈 녹은 물이 사막으로 흘러들어 습지를 이룬 것이다. 이 습지가 장예를 유구한 역사와 발달한 문화, 풍부한 물산을 갖추게 한 도시로 만든 일등 공신이었다.

 

사막 한가운데서 만난 노랑나비처럼 사막 한가운데서 만난 습지가 고맙고 반가웠다. 이곳에 왜가리가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모습이 또한 장관이다. 이곳은 중국이 국가 습지로 보호하는 곳인데 가을이면 우리나라에서는 DMZ 철원 일대에서나 볼 수 있는 두루미들이 날아와 군무를 보여준다고 한다. 습지에서는 살아있는 은밀한 서정이 일어난다. 습지에는 온갖 생명이 풍요롭게 살아가고 있고 관광객들을 실어나르는 관광버스도 이곳에서는 바쁘다.

 

일곱 빛깔 무지개의 바위산 치차이산(七彩山)을 이 피곤한 몸으로 구경할 수는 없었지만 자연이 인간에게 선물한 최고의 도시 중의 하나일 것이다. ‘단하지모(丹霞地貌)’는 붉은색 사암이 200만 년 동안 바람에 떨어져 나가고 물에 침식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된 산봉우리와 험준한 기암괴석을 뜻한다. 황토색, 연두색, 흰색, 갈색, 고동색이 색동저고리처럼 눈을 황홀하게 한다는 것이다. 치차이산을 따로 가지는 못해도 그 비슷한 산이 이 근처에 즐비하여 눈을 호강시킨다. 중국 전역에 고르게 분포된 단하지모 중에서도 장예의 지질은 매우 독특하다.

 

바람과 비가 저 예술품을 만드느라 얼마나 많은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정성을 다했을까? 바다 깊은 곳이 땅으로 솟은 단층 지형이 오랜 시간 풍화와 퇴적을 거치며 겹겹이 쌓인 지구의 시간을 색으로 칠해놓았다. 붉은 사암이 노을처럼 빛난다하여 이름 붙여진 단하지모. 무지개가 땅에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듯한 비현실적인 풍경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오죽했으면 마르코폴로가 이곳 장예의 장엄한 경관에 반해 1년간 머무르고 갔을까.

 

장예는 실크로드 중에서도 유명한 불교 지역이다. 중국에서 가장 큰 와불이 있다는 대불사의 원래 이름은 가섭여래사(迦葉如來寺)이었다. 부처님의 열반상을 이곳에 봉안한 이유는 목숨을 걸고 먼 길 떠나는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공력으로 마음의 위로를 주기 위해서이다. 여기서부터, 그러니까 지금까지 내가 달려온 길은 그야말로 먼저 지나간 사람들의 해골을 이정표로 길을 찾을 만큼 험난한 길이였으니 어찌 부처님뿐만 아니라 그 어떤 신의 공력이라도 의지하고 싶디 않았겠는다? 또 나와 같이 그 길을 통과하고 이길에 도착한 사람들은 살아서 돌아온 안도의 고마움을 부처님에게 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부처님 이몸 보살펴 이곳까지 무사히 아무 사고 없이 오게 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달리다 보면 거대한 양조장이 보인다. 옛날 중국인들은 술을 일컬어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고 칭송했다. “술이 없으면 자리를 마련했다고 할 수 없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술은 중국 식문화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다. 중국에서 술의 기원은 지금부터 약 4200년 전 술의 신으로 불리는 주대의 두강이 처음으로 술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1983년 산시성 미현 양가촌에서 신석기 시대 앙소문화의 유물로 알려진 술 전용 도기가 출토되면서 지금부터 대략 6000년 전부터 이미 술을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술 이야기를 하노라면 짜릿하고 따끈한 기운이 목젖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 난다. 중국에서도 술을 마시며 ‘건배’를 하지만 건배(乾杯)는 말 그대로 잔을 비우라는 뜻이니 조심하시길! 전통주는 백주와 황주 주 종류로 구분되는 데 황주는 중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바이주 중에 명주로 알려진 마오타이주는 주은래가 품질관리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고 닉슨대통령이 반했으며 김일성 응접실에 늘 있었다는 명주이다. 8차례나 반복 증류와 3년의 숙성을 거쳐 출고된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자칫 방심하면 앞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지금보다 더 불평등하고 더 독재적인 국가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자신들의 사리사욕만 채우는 탐욕 한 세력들이 자라기 좋은 토양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천년을 내다보는 새로운 사회질서의 기반을 굳게 다지고 평화의 길을 다져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세상은 더 인간 중심적이고 창조적이며 창의성 있는 사람이 대접을 받는 세상이다. ‘평화의 길은 없다. 평화가 바로 길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그리고 원익선 교무님은 눈물을 흘리면서 내 노고를 위로하면서 이곳에서 일으킨 나의 작은 날개바람이 평화의 태풍이 되고 있다고 위로해주었다. 나비효과란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이런저런 상황을 거치고 거쳐서 태풍까지 일으킨다는 이론이다. 한 인생의 작은 변화로 얼마나 많은 일이 생기는지 나는 스스로를 통해서 체험하고 있다.

 

남북의 평화통일은 세계통일 인류공영의 첫 시발점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통일이 나비효과가 되어 이 지구에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한 태풍이 되어 온 세상의 기본질서를 모두 날려 보내고 새로운 개벽 시대를 펼쳐나가게 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오른다. 평화의 향기를 끝없이 퍼뜨리는 꽃이고 싶다. 나는 오늘도 작은 날갯짓으로 42km만큼 평양과 서울에 가까워졌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북소리처럼 울리는 그 심장의 박동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온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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