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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20)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20)
프라하에서 민간외교사절로 데뷰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여행을 떠나는 순간 나는 세상의 주인이 된다. 바다와 하늘, 강과 숲, 도시와 농촌, 황량한 사막과 푸른 초원, 끝없이 펼쳐지는 노란 유채꽃의 장관과 붉은 사암의 기암괴석, 떠오르는 태양과 지는 석양을 노래하는 시인이 된다. 흘러가는 구름과 새소리나 바람 소리까지 노래할 줄 알게 된다. 하늘을 나는 새도 호수에서 한가롭게 유영하는 오리마저도 내 나들이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모든 소유를 거부한 부처님처럼 나도 소유를 거부하고 오직 친구가 될 뿐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나는 시인들이 거닐던 숲을 산책하고 병사들이 오르던 산등성이를 또한 힘겹게 오르며, 음악가들이 연주하던 음악당 앞을 지났으며, 왕이나 황제가 그랬듯 궁전의 앞마당을 거닐었다. 상인들이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지나던 길과 어느 지친 농부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힘겨운 발을 끌던 밭두렁 길도 지났다. 성당이나 사찰 그리고 이슬람 사원에서는 모든 정신적 지도자들이 그러했듯 두 손을 모아 경건하게 머리를 숙여 경배하며 기도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신에게 평화의 이름으로 축복받을 것이다.

 

일상의 편한 길을 떨쳐버리고 과감하게 두려움과 불안함, 편견의 구름이 짙게 드리운 낯선 길에 나선 나는 벌써 많은 것을 배우고 체득했다. 지나가는 나라의 역사와 문화, 문학, 지리와 생물학을 몸으로 부딪치며 배우고 삶의 지혜를 체득했다. 학창 시절에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몰라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공부들의 필요성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철학과 예술까지 살아있는 공부를 하게 되었다.

 

1점 가지고 아이들을 평가하는 편협하며 부도덕하기까지 한 학교 교육이 아니라 배낭을 메고 세상과 맞부딪치며 왜 외국어를 배워야 하는지 왜 역사와 문화 철학, 도덕을 배워야 하는지 스스로 알아가는 산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나는 이 여행이 끝났을 때 얼마나 깊은 지식과 폭넓은 지혜의 눈이 뜨게 될지 자못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이 순례 여행을 통해서 얻게 되는 역동적인 지식과 그동안 경험을 통해서 얻은 지식이 상호 작용을 하며 날줄과 씨줄이 되어 엮어갈 비단 같은 새로운 세상이 금방 머릿속에 펼쳐진다. 이렇게 홀연히 떠나고 보니 내가 얼마나 편협하고 좁은 울타리에 갇혀있었나 알 수 있을 것 같다.

 

길을 나서면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얼마나 공부에 게으름을 피웠는지 깨닫고 겸손해진다. 그동안 상상했던 세계와 책에서 배웠던 세계 그리고 이렇게 길 위에 나서서 마주치는 세계가 엄청 다르다는 것에 충격을 받게 된다. 시시각각으로 변주되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서 다르게 발전된 문화와 전통에 놀란다. 한편 우리가 상상한 이상으로 많은 것을 서로 공유하는 것에 다시 놀라게 된다. 문화란 주워진 환경을 어떻게 극복하며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다른 환경을 극복하며 살아오면서도 그 안에는 보편성이 있다. 그 문화의 보편성과 개별성이 있다.

 

이렇게 길을 나서면 우리가 얻었던 파편 같은 조각난 지식들이 목걸이를 만드는 실에 의해서 하나의 보석으로 연결되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날마다 만나는 헤아릴 수 없는 경이로움이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한다. 이곳에서는 나 자신마저도 해체되어 재결합되어 새로워지는 것을 날마다 받아들여야 한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그동안 현대교육이란 이름으로 학교에서는 유럽 중심의 세계관과 자본주의적 경쟁원리로 가르쳤다. 시장의 맹목적인 힘, 덧없는 유행, 여기에 따뜻한 인간애를 중심으로 한 평화공존의 정신은 발붙일 공간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유럽이 인류 문명에 영향을 미친 것을 불과 500년 남짓이다. 그것은 유구한 인류 문명의 발전사에서 지극히 제한적인 시기였을 뿐이다. 이제 역사는 대전환기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그 중심에 아시아가 있고 통일된 코리아가 있다. 유럽의 도시 광장 여기저기에 있는 말을 탄 장군이나 위압적인 정치가가 있다면 이제 한국의 지하철에는 무명시인들의 시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나는 거기에서 세상의 변화를 감지했다. 칼과 총이 지배했던 서양 문명은 기울고 한국의 전통적인 재주인 비비고 섞는 문화의 총아 스마트폰 노트에 옮겨 적혀지는 시가 세상을 바꾸게 될 것이다. 그것이 노래가 되고 드라마가 되며 소설이 되고 상품이 되어 만들어지는 마음이 풍요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본다. 어느 정도 물질의 풍요를 바탕으로 하는 예술과 영성이 일상을 지배하는 세상을 본다. 세상을 이어 달리는 시간은 시공간을 현재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로 연장시켜준다.

 

10월 3일은 우리의 개천절이고 독일의 통일 기념일이다. 난 그날 프라하에서 꿀 같은 휴식을 취하고 프라하의 이곳저곳을 여유롭게 구경하였다. 다음날 문승현 체코 대사가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점심 초대를 해줘서 갔다. 점심을 나누며 대사는 나의 여정(旅程)에 대하여 세세하게 물어보면서 건강하게 일정을 마쳐 조국 통일의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덕담을 해주었다. 그리고는 오늘 저녁에 있을 개천절 기념 파티에 와서 각국의 외교 사절들이 모인 가운데서 나의 여정에 대하여 홍보를 잘 해보라고 권하였다.

 

점심을 먹고 아직 시간이 남아서 어제 들르지 못한 존 레넌 벽으로 이동하였다. 사실 이 벽은 존 레논하고 전혀 상관이 없지만 프라하의 봄이 실패로 끝나자 비틀즈의 음악으로 위로를 받다가 존 레넌이 총격으로 사망하자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저 벽에 그림을 그리고 민주화 운동에 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 벽이 공산 체코 정부의 골칫덩이였지만 수도원 벽이라 허물지도 못했던 것이 이제는 관광코스로 유명해졌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이제 시간이 거의 다 되었으므로 오늘의 행사장인 루돌프넘 콘서트홀로 발걸음을 옮긴다. 루돌프넘은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전용관이며 드보르작 홀이 있는 건물이다. 드보르작, 스메타나, 모차르트 등 수 많은 거장이 프라하를 무대로 활동했다. 모차르트는 프라하를 그리도 사랑하여 그의 고향 잘츠부르크나 그가 활동하던 비엔나보다 더 많은 공연을 했고 공연할 때마다 대성공했다. 그의 공연에 열광하는 프라하 시민들을 위해 프라하에 머물면서 그의 49곡의 교향곡 중 으뜸이라고 하는 현란하고 상쾌한 교향곡 ‘프라하’를 작곡하기도 했다.

 

행사장에는 500여 명의 각국 대사와 무관, 체코 정부 관료들, 각계의 인사들 교포들이 모였다. 나는 정장 차림의 외교사절과 정복을 입은 각국의 무관들 틈에 낀 운동복 바지에 붉은 윈드자켓을 입은 생뚱맞은 민간 외교관이었다. 오미정씨와 한인 인사들과 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내가 서먹해할까 봐 이 사람 저 사람 인사를 시킨다. 소프라노 가수가 체코 국가를 독일에서 날아온 바리톤 가수가 애국가를 부르고 프라하 소년합창단이 체코 민요 몇 곡을 부르면서 자리는 무르익었다.

 

개천절 행사를 통해서 평창올림픽을 홍보하는 자리였지만 나는 한국에서 준비해간 영문 홍보 인쇄물을 돌리면서 내가 왜 유라시아대륙을 달리는가를 설명했고 우리나라의 통일이 세계의 평화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마치 이 일이 세상 어떤 관심사보다 우위에 있어야 하고 모든 국가의 외교 정책에 첫 번째 고려 사항이 되어야 할 것처럼 열정적으로 설명을 했다. 사람들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고 한국의 통일을 지지한다고 말해주었다.

 

저쪽에서 공군 정복을 입은 독일 무관이 내게 다가와 악수를 청한다. 보통의 독일 사람처럼 큰 키는 아니었지만 다부진 체격이었다. 며칠 전에 운전하고 가다가 내가 유모차를 몰며 달려가는 모습을 보았다며 하며 자기는 한국의 평화통일을 지지하며 나의 평화마라톤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해주며 자신의 손에 든 와인 잔을 약간 들어 올리며 내 손에 든 맥주잔을 부딪쳤다. 조명이 과하지 않은 프라하의 밤은 우아한 귀공녀의 자태를 뽐내며 깊어가고 있었다. 이곳에는 어떤 초월적인 사랑의 신이 장난을 쳐서 누구라도 금방 사랑에 빠질 것 같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외교를 하는데 와인과 맥주가 빠질 수 없다. 처음엔 많이 어색했지만 맥주잔을 들고 부지런히 여기저기 옮겨 다녔다. 오늘은 독일에서 못한 맥주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남북정상이 조건 없이 호프 미팅을 빨리 가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한 번 호프 같이 마셨다고 무슨 일이 벌어지겠냐마는 그렇게 한 번 만나서 한 잔 마시고 두 번 만나서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면 뭔가 실마리가 풀리지 않겠나 하는 기대이다.

 

나는 체코에 와서 필슨너맥주에 반하고 말았다. 오늘날 체코를 대표하는 필슨너맥주가 만들어진 것은 19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이다. 맥주는 5세기 독일의 바이에른에서 낮은 온도에서 오랜 기간 숙성(熟成)시켜서 맛이 그윽하고 입에 꽉 찬 느낌으로 유럽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체코는 독일에서 부르마스타와 도제까지 스카우트하여 체코의 경도가 낮은 물로 은은한 황금빛의 맛이 깔끔하고 마시고 난 다음에 뒤끝이 무겁지 않은 훌륭한 맥주가 만들었다. 필젠맥주는 순식간에 숙성을 기본으로 하는 라거맥주의 대표주자로 유럽의 맥주 시장을 석권하였다. 맥주는 역시 물맛이 좋아야 좋은 맥주가 탄생한다.

 

체코사람들은 거친 파도의 거품 같은 맥주 거품이 입술 언저리에 번질 때 느끼는 황금빛 기쁨에 사로잡힌 것은 분명하다. 나는 끼니때마다 식당을 찾느라 애를 먹지만 맥주를 마시는 바는 어디에도 있지만 식당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체코에서는 술집에서 ‘마시는 빵’으로 저녁을 대신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보헤미아는 독일의 바이에른과 맞먹는 맥주의 고장이다. 필젠 지방의 필젠우어크웰과 남부의 부드바가 대표적이다. 체코의 1인당 맥주 소비량은 독일을 능가한다고 한다. 호프 맛이 일품인 생맥주를 이들은 ‘흐르는 빵’이라고 부른다. 맥주는 체코인들의 유쾌한 삶의 동반자이다.

 

유사 이전부터 인간은 효모(酵母)라는 미생물의 활동을 이용하여 술을 만들고 빵을 만들어왔다. 맥주나 샴페인에 생긴 거품은 발효로 생긴 탄산가스이다. 빵에서는 발효로 생긴 탄산가스가 빵 반죽을 부풀리고 또 굽는 단계에서 크게 팽창시켜 폭신폭신한 기포 투성이의 빵을 만든다. 인류는 처음 과실과 그 이외의 당분이 함유된 것을 여러 가지로 이용하여 술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천연 당분은 한도가 있어서 전분을 당분으로 바꾸는 방법을 개발하게 된다. 중국 등 아시아에서는 누룩곰팡이로 곡류를 당화시켰는데 서양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 때부터 엿기름을 사용했다.

 

서양에서 보리를 술로 만드는 기술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하여 이집트로 전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것이 그리스, 로마를 거쳐 독일 벨기에로 넘어갔다. 초기의 맥주는 지금과 같은 것이 아니고 주원료인 맥아에 물을 넣고 자연 발효시키는 단순한 방법이었다. 그 후 10세기경에 독일에서 홉을 넣어 쓴맛과 향이 강한 맥주를 개발하게 되었다. 그러니 뭐니 뭐니 해도 맥주의 본고장은 독일이 분명하다. 독일은 맥주의 본고장이자 맥주의 왕국이다. 독일에는 전 세계 맥주 양조장의 3분의 1이 있다고 한다.

 

와인처럼 고급술이 되지는 못했지만 누구나 편안하게 그 시원하고 짜릿함을 맛볼 수 있는 술이 맥주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시원하게 마시려고 맥주 한 병을 사왔는데 그만 숙소 문지방을 넘자마자 똑 떨어뜨려 깨뜨리고 말았다. 오늘 시원하고 짜릿한 맥주 한잔의 꿈은 깨어지고 말았지만 그 대신 나는 판문점에서 남북한 시민 십만 명쯤 모여 함께 맥주 축제를 벌이고픈 꿈을 꾼다. 거친 파도의 포말과 같은 거품과 함께 황금빛 기쁨이 내 가슴에 번져간다. 맥주는 평화이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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