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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58)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58)

초야의 밤을 기다리는 꼬마신랑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모든 것이 다 순탄하게 풀렸으면 내가 지금 이렇게 자유를 품에 안고 맘껏 유라시아대륙을 달릴 수가 있을까? 내 인생이 살지고 풍요로웠다면 평화가 그렇게 소중한지 알았을까? 그래서 나 스스로가 그 어느 때보다 강건하다는 것을 느꼈을까? 이렇게 고통스럽지만 가치 있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을까? 삶에 위기가 닥쳤을 때 작은 것이라도 건지려 바동거렸으면 나는 또 언제까지 바둥거리며 살아가고 있을까?

 

나는 지금의 나를 나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감추어진 80%를 찾아 길을 나섰다. 익숙하고 편안한 것을 떠나 새롭고 낯선 것을 찾아 나섰다. 달리면서 생각의 깊이는 깊어질 것이고, 달리면서 활동영역은 넓어질 것이다. 세계를 보는 시선은 더 깊어질 것이다. 나는 지금 유라시아를 끝없이 달리면서 우주를 덮고도 남는 본래의 마음을 되찾아 진정한 자유인이 되어가고 있다. 삶에 한기와 바람이 분다고 느껴질 때 나는 오히려 그 한가운데 홀연히 뛰어들어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달리며 절망과 환희를 반복하면서 거듭나기를 시도한다. 법정 스님은 “외로움은 옆구리를 스쳐 가는 마른 바람 같은 것이다. 그 바람을 쐬면 사람이 맑아진다.”라고 했다. 외로움을 모르면 삶이 무디어진다. 나는 외로움 속으로 뛰어들어 지금 한없이 맑고 깨끗해졌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산유국의 도로답지 않게 포장도 되지 않은 길을 먼지와 매연을 뒤집어쓰며 달린다. 중년의 위기에 빠졌을 때 모든 무게를 내려놓고 위기와 정면으로 마주 서니 위기는 내게 새 세상을 열어주었다. 위기와 정면으로 마주 볼 때 위기는 경이로운 날개가 되어주어서 이렇게 새 세상을 날게 하여주었다. 때로 앞이 안 보이고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불편함과 외로움과 고통 속에 스스로를 유배 보내 대자연이 주는 삶의 이치를 깨달으면서 강인해지는 생활이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아름답고 귀한 것은 고통 속에서 태어난다. 귀신 잡는 해병보다 더 센 것이 대한민국 아줌마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내가 감히 말하건대 그보다 더 센 것이 외로운 남자이다. 평화를 갈망하는 한 남자의 외로움이 어떻게 초자연적인 현상까지도 이겨가며 이 길을 달려가는지 보여주고 싶다.

 

먼지가 풒풀 날리는 도로변에 근처 호수에서 고기를 잡아 길거리에 걸어두고 파는 생선 장수들이 즐비하다. 조금 더 가니 물오리를 산탄으로 잡아서 파는 무리가 있다. 이 나라는 세상의 모든 메르세데스 벤츠가 말년을 보내는 벤츠 경로당 같다. 내가 가본 그 어느 나라보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많이 굴러다닌다. 본고장인 독일 그리고 미국보다도 더 많이 보인다. 3, 40년은 족히 됐을 차들이 시커먼 죽음의 매연을 뿜고 지나간다. 거의 폐차시키는 차들을 헐값에 사와 고쳐서 쓰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간혹 마을이 보이면 구멍가게보다 자동차 정비소가 더 많다. 매일 끼니때마다 식당을 찾는 데 애를 먹지만 자동차 고치는 곳을 찾기는 쉽다. 자동차가 완전히 망가져서 못 쓰게 될 때까지 타고 다니는 이 나라의 정비사들은 최고의 기술을 가졌으리라 생각했다. 이들은 절대로 고물 자동차 주인을 부끄럽게 하지 않는 예의가 있었고, 새 차를 사라는 충고 따위는 하려고 들지도 않을 것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그러나 우리 자동차의 오른쪽 창문의 유리가 내려와서는 올라가질 않아서 창문을 고치는 곳을 찾았는데 아무도 못 고친다고 한다. 그러다가 간 곳엔 자기가 고칠 수 있다고 하여 고치라고 했더니 작업을 하는 데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들어서 차 안 이곳저곳을 들여다본다. 꼬마 녀석들부터 노인까지 여남은 명이 손을 뻗어 차 안의 물건에 만지는데 웃으면서 그리고 단호하게 그 손을 떼어내느라 애를 멀었다. 알라신이 지켜보는 가운데 차 안의 물건 주인이 바뀌는 것을 막아야 했다. 신이 지켜보는 가운데 물건의 주인이 바뀌는 일은 비일비재한 모양이다. 심지어 돗자리를 펴고 기도할 때도 중요한 물건을 안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현실적인 신앙행위에 경의를 표한다. 아마 여자의 주인이 바뀌는 일도 너무 많아 길거리에 여자를 내보내는 일을 극도로 경계하는 모양이다.

 

한 소년이 다 떨어진 운동화를 신고 있어서 내가 신던 나이키 운동화를 주었더니 신이 나서 들고 사라진다. 바닥이 좀 닳아서 달리기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일상에서 신고 다니기에는 좋은 운동화이다. 달리기하는 사람들은 이런 버리기엔 아까운 신발들이 수도 없이 많다. 모여든 사람 중에는 바로 건너편에서 세차장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는 영어가 통했다. 그에게 어째서 이 나라에서는 여자들 코빼기도 보기 힘드냐고 물어보니 자기들은 여자를 보호하는 전통이 있다고 정색을 하며 말하더니 내가 여자가 필요하다는 말로 알아들었는지 혹시 여자가 필요하면 자기가 안내해 줄 수도 있다고 친절하게 말한다. 나는 단지 이 나라 여자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궁금할 뿐이라고 대답해주었다. 그의 표정이 멀쑥해졌다.

 

차 문을 다 뜯어서 한참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작업을 하던 그는 자기의 기술로는 고칠 수가 없다고 한다. 독일 차가 돼서 부속은 수도인 바쿠까지 가야 구할까 말까, 라고 한다. 차라리 이란으로 가면 좀 더 사정이 나을 수 있다고 한다. 창문을 열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절망하고 있는데 다행히 창문을 올려놓을 수는 있으니까 내리지는 못한다고 한다. 이 더위에 에어컨도 안 나오는데 창문을 한쪽 못 내리는 건 치명적이지만 못 올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먼지와 매연 속에 지평선만이 저 멀리 아득하게 펼쳐져 보인다. 간혹 풀을 뜯는 양 떼들과 소 떼들 사이로 목동이 보일 뿐이다. 끝없이 달리다 간혹 길과 길이 만나는 삼거리나 사거리가 나오면 조그만 가게나 과일 행상들 그리고 정육점이 보인다. 여기서는 길거리에서 소나 양을 도축해서 그 자리에서 판다. 사료는 당연히 먹이지 않고 풀만 먹여 방목해서 키워 냉동도 시키지 않고 바로 그 자리에서 파니 몸에는 좋을 듯한데 고기가 억세게 질기다.

 

조지아에서는 돼지도 방목시켜서 흙을 파먹고 살게 하는 걸 여러 번 보았다. 비계가 상대적으로 적어 돼지고기 맛은 기가 막히게 좋은데 여기는 회교국가라 돼지고기 살 곳이 많지 않다. 오늘도 숙소 찾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요즈음은 차가 따라오니 무리하지 않고 보통 풀코스 마라톤 거리인 42km를 뛴다.

 

40km쯤 뛰다가 세차장을 만나서 이 근처에 호텔이 있냐고 물으니 조금만 더 가면 있다고 한다. 요 며칠 숙소 잡는 일로 고생이 많았는데 잘 되었다. 택시를 탈 거냐고 물어봐서 내 뒤로 차가 쫓아와서 택시는 필요 없다고 하는데 자꾸 쫓아와서 돈은 안 받을 거니 타라고 한다. 나는 42km를 마무리할 생각이었는데 그 친구가 계속 쫓아오면서 호텔까지 안내한다고 하여 41km에서 마무리를 했다. 덕분에 오늘은 끝난 곳에서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았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샤워하고 저녁을 먹으러 밖에 나오니 숙소에 딸린 연회장에 정장을 입을 손님들이 붐빈다. 호기심 많은 나는 불청객으로 결혼식장에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신랑, 신부가 앉아 있는 단상에는 백만 송이는 안 되지만 만 송이 장미 부케가 장식되어 있었고 중앙 홀에서는 남녀가 둥그렇게 어울려 춤을 추고 있었다. 평생 간직하게될 사진을 찍는 플레시가 긴 잔상을 남기며 연이어 떠졌다. XY 서로 다른 염색체를 갖는 대신 XX 염색체로 균형을 맞추어 아름다운 사람들이 여기서는 조금 보였는데 대부분은 신랑 신부의 직계 가족이었다.

 

이곳에서는 아직도 집안에서 정해주는 사람과 결혼하는 전통방식을 따른다. 그러므로 결혼은 남녀가 결합하는 의미보다 집단과 집단, 가문과 가문의 결합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생각지도 않게 한국에서 온 하객이 있다는 사실에 흥분이 된 모양이었다. 서로 먹을 것을 권하고 보드카를 권하며 사진을 같이 찍자고 다가왔다. 이곳에서 나는 축하 외교사절이었다. 민간외교 사절로 두 젊은 남녀 사이에 태어날 아기는 유라시아 시민이 되기를 마음속으로 축원하였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산고의 고통 없이 태어나는 어린 아기가 어디 있으랴! 아기가 열병을 앓고 난 다음 부쩍 자라듯이 절절한 아픔을 견디어내고 진정한 삶의 새 지평은 거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고통과 좌절, 외로움 속에서 흙먼지 매연 다 뒤집어쓰고 만신창이가 되고 나서, 그 불가마 속 같은 뜨거움을 견뎌내고야 비로소 태어나는 달항아리 백자 같은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그 불가마 속 같은 뜨거움을 견뎌내고야 비로소 태어나는 달항아리 백자같이 아름답고 문화가 융성한 평화의 한국이 될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위기 속에서도 생의 근본적 아름다움이 피어난다.

 

발걸음은 거침업고 드디어 카스피해의 푸른 일렁임과 만난다. “이 바다에 내가 왔네! 바다여! 아름다운 소녀여! 나의 항구여! 나의 정착지.” ‘아스타라’는 국경도시이고 항구 도시이다. 똑같은 이름의 도시가 이란에도 있다. 아마도 하나의 도시가 두 나라로 갈리면서 나누어진 것이리라. 여느 국경도시와 마찬가지로 국경 무역을 하는 작은 상점들과 보따리 무역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역설적이지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핵전쟁 위기 속에서 진정한 평화의 꽃이 아름답고 무성하게 피어나 평화의 꽃 원산지가 될 것 같다. 창밖에 내다보이는 밤하늘이 유난히 맑다. 맑은 밤하늘에 기울기 시작하는 보름달이 애처롭게 빛난다. 저 달이 다 기울고 나면 정월 초하루가 된다. 객지에서 설을 맞을 생각을 하니 심란하다. 그러면서도 한편 나의 가슴은 초야의 밤을 기다리는 꼬마 신랑처럼 마구 두근거리고 있다.

 

나는 지금의 한국의 모습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감추어진 80%를 찾아 나선 것과 함께 우리나라의 감추어진 80%를 찾아 나섰다. 익숙하고 편안한 것을 떠나 새롭고 낯선 것을 찾아 나섰다. 휴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바뀌어 유라시아까지 쭉 뻗은 철도망이 연결되어 사람과 물류가 오가고, 석유 파이프라인이 연결되어 더 싸고 안정적인 에너지를 공급받고, 국방예산은 교육과 복지에 활용되면 우리는 더 많은 자유와 풍요로움을 만끽하면서 김구선생이 그렇게 꿈꾸었던 문화강국이 될 것이다.

 

꼬마 신랑은 신부의 속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흥분이 유지된다. 한반도에 봄처럼 평화가 찾아와 철조망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외국군대의 군인들은 모두 자기 고향을 찾아 오랫동안 떨어졌던 애인과 진한 키스를 하는 상상만으로도 최고의 흥분상태가 된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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