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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59)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59)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 공주의 사랑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2월 10일, 이란으로 넘어오는 길은 길고도 험난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길이 멀고 험난했다는 것이 아니라 국경검문소의 절차가 복잡하고 지난하였다는 말이다. 세관 검사는 알콜이 있나 없나 혹시 마약류가 있나 없나 세심하고 느리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검사를 하면서도 정작 이 사람들은 내가 무면허로 차를 몰고 국경을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채지 못했다. 누구도 내 운전면허증을 보자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운전을 도와주던 선교수가 서류 미비로 국경을 못 넘어오게 되자 큰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서류를 제대로 갖추려면 열흘이 걸려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 내가 차를 몰고 와야 했다. 그간의 경험으로 봐서 운전면허증을 보자는 경찰이나 세관원은 없었다. 그저 여권을 보자고 할 뿐이었다. 그래도 적발될 경우 큰 곤욕을 치르겠지만 난 그곳에서 열흘이고 보름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짐 검사가 끝나자 자동차 보험료를 한 달간 800달러를 달라고 했다. 3달 머물 것이므로 2천4백 달라나 된다는 이야기다. 내가 거의 미친 듯이 “당신들 미쳤어! 그 돈이면 차를 한 대 사겠다.”고 소리를 지르니 그냥 한 달 치 보험료만 내면 3달 동안 아무 일 없을 거라고 젊잖게 설명을 한다. 도무지 이건 터무니없는 가격이었고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다시 소리를 냅다 질렀다. 말기는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내 감정이 어떤 것인가는 충분히 알아볼 것이다. 그는 능글맞게 차 안에 있는 초코파이를 하나 꺼내 먹는다.

 

조금 생각하더니 큰 인심은 쓰는 듯 600달러 내라고 한다. 200달러를 그 자리에서 깎아서 기분이 좋아야 할 것 같은데 아직도 왠지 삥땅 뜯긴 기분이다. 상관을 불러 달라고 요구하였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이들과 씨름하는 것보다는 빨리 국경을 넘어 새로운 신비의 세상을 만나고 싶었다. 국경을 넘자마자 인자한 모습의 호메이니의 초상과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 앞에서 공공연한 사기를 어쩔 수 없이 감내하며 어렵사리 국경을 넘었다. 이렇게 국경 넘는 일이 어려울 때마다 나는 평화통일이 된 조국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이 꿈이기도 하지만 또한 국경 없는 세상을 꿈꾸어본다.

 

내가 가고 있는 이 실크로드는 과거의 길이고 미래의 길이지만 현재의 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첨예한 국가 이기주의로 이 길은 동맥경화에 걸려있다. 금방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나는 페르시아 왕자가 떠오르는 귀에는 가깝고 눈에는 먼 나라, 이란. 중앙아시아는 언젠가부터 서구의 눈으로 바라봐서 우리에게 가장 오해가 많고 편견의 먼지에 뒤덮인 곳이다. 거기다 세계에서 북한과 함께 미국에 맞장뜨는 유일한 나라이다. 미국에 맞짱 뜨면서 코피 흘리는 일반 시민들의 삶이 국경에서부터 적나라하게 보이는 듯해서 애처롭고 슬프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나는 미국이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는 무거운 짐을 벗어나게 해주고 싶다. 되돌아보면 미국이 그 일을 훌륭하게 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빙땅 뜯는 경찰이랄까, 이런 경찰은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 오히려 미국이 개입되면 전쟁이 되고 난민이 생기고 사상자가 생기는 참담한 일들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이란은 미국으로부터 경제제재를 받아 거의 고립된 생활을 하는 이들은 스스로도 많은 것에서 외부와 구별하려고 하고 있다. 우리가 예수 탄생의 기점에서 서력을 쓴다면 이들은 예언자 마호메트가 박해를 피해 메카로 이주한 날을 원년으로 하는 히즈라를 쓰니 여기서는 시대도 바뀐 것 같다. 지금 이란 사람들은 그들의 지도자에게 반항적인 언사를 사용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지도자를 마음껏 비판한다. 하지만 미국에 대하여 그런 언사를 쓰면 곤혹을 치루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이란에 들어오자 간판이나 이정표를 읽는 일은 불가능해졌다. 간판을 보고 생존에 가장 중요한 길이나 호텔 식당을 찾는 일이 불가능해졌다는 이야기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은 호텔이라는 글의 그림을 외운다. 같은 그림 찾기 할 때처럼 그림을 맞추어서 호텔과 식당을 구별하게 되었다. 엄격한 도덕적 규율이 요구되는 이곳에서 제일 명심하여야 할 일은 몸을 반드시 숨겨야 하는데 다행히 카스피해의 지금 날씨는 온화하고 약간 쌀쌀한 정도여서 짧은 런닝 팬츠를 고집하지 않아도 되었다. 몸의 굴곡이 다 드러나는 타이즈를 입는 것이 부담이었지만 그것만은 양보하지 않았다. 남성에게는 반소매 티셔츠는 허용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여성에 비하면 파격에 가까운 것이다. 여성은 온몸을 감싸야 한다.

 

사실 어제 선교수와 같이 국경검문소에 왔다가 서류 미비로 다시 돌아가 하룻밤을 아제르바이잔에서 더 자고 나만 홀로 넘어왔는데 이번엔 차량 등록에 내 이름으로 되지 않아서 몇 시간을 허비하다가 간신히 꼬박 1박 2일 만에 넘어와서 국경에서 기다리는 김태형 학생을 만났다. 태영이가 내가 뛰는 일에만 집중하게 운전도 잘해주고 잘 보필하겠다고 하는 말에 괜히 눈시울이 감돈다. 아침도 시원치 않게 먹어서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김치에 생선 사 온 것을 넣고 끊인 희한한 찌개를 끓여서 같이 배부르게 먹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을 거쳐서 페르시아 문명, 그리고 오스만제국이 한 시대를 풍미하고 바로 갈등과 전쟁이 난무하고 그 대부분은 산유국으로 오일머니를 거머쥔 현대사만이 우리가 아는 중동 역사의 전부이다. 그러나 이 지역이야말로 문명의 시원으로 인간의 지적 유산과 문화를 발전시켜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곳이다. 무엇보다도 지리적으로 이란은 유라시아의 한가운데 자리한다.

 

곡물의 재배와 가축의 사육이라는 인류의 혁명적인 삶이 여기에서 시작하여 이를 주변 세계에 전해주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유대교, 조로아스터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종교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찬란했던 오리엔트 문화의 토양에서 그리스 로마 문명이 꽃을 피웠고 서양문화의 뿌리는 이렇게 내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19세기 산업혁명을 주도한 서양은 백인우월주의와 기독교 중심사상으로 이란과 중동을 이교도, 이(異)문화로 의도적으로 폄하하고 축소 왜곡시켰다.

 

이란에는 약 1,400년 전 기록된 쿠쉬나메(Kush Nama)라는 귀한 구전 서사집이 전해져 내려온다. 나메는 서사집이라는 뜻이므로 쿠시나메는 쿠시의 서이다. 쿠쉬’는 실존 인물이라기보다는 구전 상의 영웅이다. 이 서사시에는 7세기 중엽 멸망한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유민들 이야기 나온다. 이 책에는 페르시아, 당나라, 신라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속에 우리나라 기록에는 없는 페르시아 왕자 아브틴과 신라 공주 파라랑의 애틋한 사랑이 결실을 맺어 결혼하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전설적인 영웅, 왕자 페레이둔이 훗날 페르시아로 돌아와 영웅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페르시아 왕자인 아브틴은 난민들과 함께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중국으로 가서 정착하여 살다 중국의 정세가 요동을 치자 그 당시 황금이 풍부하고 미인이 많기로 알려진 한반도에 있는 신라 왕국까지 찾아온다. 이 서사시의 묘사된 바로는 정의롭고 현명한 신라왕 타이후르는 패망한 나라의 왕자 아브틴 일행을 두 왕자를 보내어 따뜻하게 맞이한다. 아부틴이 본 신라의 궁전은 달처럼 아름다운 인형 같은 선녀들이 넘쳐나고 향기로운 낙원과 같았다.

 

듣던 대로 임금이 거처하는 낙원 같은 궁전은 금으로 덮여있고 모든 의자에는 사파이어가 박혀있었다. 황금으로 장식된 신비로운 나라 신라에 온갖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이 오자 춘심이 동한 아브틴 왕자는 왕궁을 거닐다 타이후르 왕의 딸인 신라 공주 파라랑을 보는 순간 누구나 일생에 한 번쯤은 경험하게 되는 심장이 멈추어지는 전율을 느낀다. 애틋한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국경도 초월하고 인종도 초월하며 결혼을 하게 된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1년 후 둘 사이에 떡두꺼비 같은 아들 페레이둔이 태어난다. 신라 공주는 아브틴과 함께 아들 페레이둔을 안고 고국을 떠나 멀고 험난한 길을 따라 페르시아로 건너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얼마 후 머나먼 이국땅에서 신라 공주 파라랑은 전쟁으로 남편을 잃지만 한국 여인의 억척스러움과 모성애로 온갖 시련을 겪으며 아들을 지키고 훌륭하게 키워내, 페레이둔이 장성하자 사람들을 규합해 조상들의 원수인 아랍군을 물리친다.

 

페레이둔은 페르시아의 영웅으로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다는 내용이다. 이란의 민족 설화에 ‘바실라’라고 부르는 수억만 리 떨어진 신라가 등장한다는 것이 신기하고도 반갑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은 페르시아의 쿠쉬나메 서사시에서 영감을 얻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쿠시나메의 줄거리는 다름 아닌 우리나라 역사 속에 신라 공주와 페르시아 왕자 간의 국경을 초월한 사랑의 이야기였다.

 

여기에 나오는 신라왕 타이후르는 태종 무열왕일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당연히 신라공주 파라랑은 그의 딸이다. 그런데 푸치니가 쿠시나메를 읽고 깊은 영감을 얻었을 때 서양은 한국을 잘 알지 못했었다. 그때 그들이 아는 동방의 신비로운 나라는 일본이었다. 그래서 나비부인의 무대는 경주가 아닌 나가시키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쿠시나메는 한국과 이란이 교류의 역사를 최소한 1,200년 전으로 돌려놓았다. 이란의 시인들은 서양의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제공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쿠시나메는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는 우리에게도 귀한 문학작품이다. 1,200년 전 페르시아 사람들은 신라와 교류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신라를 황금의 나라라고 부르며 연모하였다. 신라를 방문하는 페르시아 사람들은 그곳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고 사료는 말한다. 신라는 금이 너무 많아 심지어는 개목걸이도 금으로 만들었다고 그들은 적고 있다. 가옥도 비단과 금실로 장식했다고 이야기했다.

 

경주에서 발견되는 페르시아계 유물과 서역인의 모습을 한 무인상(象)은 신라와 페르시아가 교류를 잘 증명하고 있다. 실제로 경주에 무슬림 거주지역도 있었다고 한다. 신라 천마총에서 나온 검푸른 감색의 유리잔, 경주 계림로에서 새로 길을 내는 공사 중에 발견된 황금 검은 실크로드를 통해 신라로 전해졌다는 페르시아 계 유물들이다. 신라의 황금 문화는 유라시아에서 전해 받은 다양한 문화 요소를 신라특유의 미적 감각으로 재탄생시켰다.

 

폴로는 페르시아에서 시작한 지극히 유목민적인 운동경기이다. 이때 신라에는 폴로와 비슷한 격구경기가 있었는데 그 옛날 두 나라가 국제 친선경기를 벌였다. 결과는 두 판 모두 페르시아 팀의 승리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페르시아 문헌에만 남겨져 있으니 폴로경기의 대표 팀 전적은 다소 석연치는 않지만 그대로 받아드려야 한다.

 

나는 신라 공주와 페르시아 왕자의 사랑이 오간 이 길, 황금보검이 오간 이 길을 달리면서 왜 이들이 이영애의 대장금과 송일국의 주몽, 해신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던가를 사유해본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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