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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62)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62)

이란에서 맞는 설날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끝없이 달릴 수 있는 튼튼한 두 다리가 있어서 좋다. 그곳에 에너지를 공급할 활기찬 심장이 있어서 좋다. 때로 마음속에 실망과 좌절이 몰려들 때도 달리면서 희망으로 변하는 것을 느낀다. 때로는 속에서 끓어 오르는 나쁜 기운들도 달리는 동안 내면을 성찰하는 구도자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치열하게 달리면서 마술사가 소매에서 비둘기를 꺼내듯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는 평화를 끄집어낸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오늘은 2월 16일, 우리의 설날이다. 우리 민족은 언제부터인가 설날 떡만둣국을 먹기 시작하였다. 새해 첫날 장수를 기원하며 길게 늘인 가래떡을 재복을 기원하는 의미까지 더해서 엽전 모양으로 둥글게 썰어서 복주머니처럼 만든 만두를 넣어서 먹으며 복을 빌었다. 만두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있지만 제갈공명이 사람의 머리로 제사를 지내라는 권고 대신 양고기와 돼지고기를 섞어 소를 만들어 밀가루로 싸서 사람 머리 모양을 만들어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설과 탄수화물 섭취가 부족한 몽골인들이 밀가루로 고기 속을 넣어 만들어 먹었다는 두 가지 설이 가장 유력하다.

 

그러나 제갈공명이 만들었다는 가설은 나관중의 소설적 상상력이라는 설도 만만치 않다. 아무튼 이 만두도 실크로드를 타고 유라시아 전역에 펴지게 되었다. 이름도 만띄, 만트, 만터우, 만두 등 이름과 형태도 닮았다. 이 만두가 이탈리아로 건너가서는 라비올리나 뇨끼가 되었고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추추바라, 솜사, 러시아에서는 펠메니라고 불린다.

 

“쌍화점에 쌍화 사러 갔더니 회회아비가 내 손목을 꽉 쥐네. 이 말이 가게 밖으로 나가면 조그만 새끼 광대 내가 그런 것으로 알리라. 그곳에 나도 자러 가고 싶구나.” 악장가사에 있는 고려가요 ‘쌍화점’이다.

 

회회아비는 페르시아 또는 아랍인을 말한다. 이 사람이 고려에서 만둣가게인 쌍화 가게를 하며 고려 여인을 희롱하는 모습이다. 아마 만두는 고려 시대 때 페르시아, 아랍인들에 의해 우리나라에 전해진 모양이다. 우리나라와 이란의 교류 역사는 한참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이 설날이다. 멀리 떨어졌던 가족도 한자리에 모이는 설날에 홀로 떨어져 낯선 거리를 달리는 마음이 휑하다. 설날 제일 아쉬운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떡만둣국을 먹지 못한 것이다.

 

한국과 이란의 기록에 남은 가장 오래된 인연은 페르시아의 상인 술라이만이 851년 쓴 여행기에 “중국 바다 건너에 신라가 있다.”고 언급하면서부터이다. 페르시아, 아랍 상인들이 본격적으로 한반도에 진출하는 시기는 8세기에서 9세기경이다.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과 이슬람 제국의 바그다드, 당나라의 수도 장안 그리고 신라의 서라벌을 잇는 실크로드는 문화적 유행과 과학적 성과를 거의 동시에 누리는 유라시아의 황금시대를 맞는다.

 

이때 전 세계는 전쟁이 없이 평화가 가득한 태평성대를 맞는다. 부가가치가 높은 교역품이나 패션은 낙타를 이용한 육상 실크로드나 바닷길을 이용한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서 6개월이면 운송이 가능했다. 8세기 장보고가 중국, 한국, 일본을 잇는 동북아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을 때는 중국을 통한 간접교역이 주를 이루었지만 장보고 이후에는 페르시아, 아랍 상인들이 직접 한반도로 들어와 서라벌에는 이슬람, 페르시아 집단 거주지가 생길 정도였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전해져 내려오는 처용가의 처용은 동해 용의 일곱 아들 중 하나로 소개되었다. 그는 왕을 따라 궁에 들어와 정사를 보좌했는데 왕은 그의 마음을 잡아두기 위해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맺어주고 벼슬을 내려주었다. 전해 내려오는 설화에는 그녀가 너무 아름다워 역신이 흠모했다고 한다. 역신은 사람으로 변해 처용이 없는 밤 그의 아내와 동침했다. 이때 밖에서 돌아온 처용이 두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고 한다. 처용무는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져 전해내려오는 전통탈춤이다. 처용의 탈은 얼굴 생김이 다른 가면에서 볼 수 없는 특성이 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험상궂으며 붉은색이다. 동해의 용의 아들 중 하나로 묘사된 처용은 헌강왕이 동해로 행차했을 때 만나 왕에게 춤과 노래를 하며 신임을 얻는다. 그는 해상 실크로드를 타고 온 페르시아의 상인일 가능성이 많다.

 

신라는 중국과 교류하면서 불교를 공인하게 되고 실크로드라는 엄청난 세계에 들어서게 된다. 고려 때는 이란과의 교류가 더욱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져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에서 이들은 개성상인들과 직거래를 하게 된다. 교동도에는 그들이 와서 묵었던 사신관 터가 남아있다. 예성강 하구의 조강은 옛날부터 유라시아 대상들이 다니던 길이다. 이곳은 물이 깊어 선박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고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과 가까워 국제 항구로 발전하였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이란에도 전통 설날이 있다. ‘노루즈’라고 부르는 춘분이 한해의 새로운 날을 시작하는 설날이다. 이슬람이 들어오기 전 페르시아인은 조로아스터교를 믿었다. 그들은 계절이 바뀌고 봄이 시작되는 춘분인 3월 21일 모든 선을 창조한 아후라마즈다와 신성한 불을 축하하는 행사를 한다.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들어선 혁명정부의 성직자들은 노루즈를 이교도의 명절이라고 폐지하려고 했지만 오랜 전통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정부가 지정한 휴일은 5일이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2주간 휴가를 갖는다. 지금도 춘분을 새해 첫날로 기념하는 나라는 많다. 발칸지방, 흑해 연안, 코카서스 지방, 중앙아시아, 중동 등 3억 명 이상이 3,000년 전부터 새해의 시작으로 기념해 왔다.

 

설사는 시시때때로 들이닥쳐 나그네를 힘겹게 했다. 탈수가 심하고 먹는 것이 시원치 않아 힘이 없었다. 급하게 신호가 오면 은폐된 장소가 없는 허허벌판의 사막에서 일을 치를 곳은 마땅치 않다. 어떨 때는 길 바로 옆에서 엉덩이를 까야 할 때도 있다. 정숙한 이슬람의 영토에서 나의 배는 막무가내였다. 실크로드를 지난 혜초나 마르코 폴로 등도 설사로 고생을 했을까?

 

이란은 아랍이 아니라 ‘페르시아’이다. 이란 사람들은 자신들을 아랍으로 여기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한다. 이란이라는 이름은 ‘아리안의 땅(Land of the Aryans)’이라는 의미의 현대 페르시아어다. 이란인의 조상은 고대 게르만족의 일부가 북유럽에서 추위를 피해 남쪽으로 대 이동한 아리안족의 일파이다. 기원전 3,000~4,000년 경 아시아초원에서 거주하던 인도 유럽어족의 일파인 아리안족이 서남쪽으로 이동한 부족은 게르만족, 슬라브족, 그리스족, 라틴족의 원조가 되고 남쪽으로 더 이동한 부족은 이란인의 기원이 된다. 종교는 주변 아랍국가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이지만 그들은 이슬람 내에서도 소수파인 시아파의 종주국을 자처한다.

 

카스피 연안의 ‘차복사르’라는 도시의 복잡한 재래시장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재래시장은 어디를 가나 극성스럽게 삶을 꾸려가는 사람 냄새가 나서 좋다. 채소와 과일의 풋풋한 냄새와 생선의 비린내와 사람 냄새의 앙상블이 최고다. 이 근방에는 호두 산지가 유명한가 보다. 천안의 호두과자처럼 호두과자 가게가 많이 눈에 띈다. 이곳에서는 잘 포장된 유명상품이나 백화점에서 느낄 수 없는 날 것 같은 싱싱한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도 말만 잘하면 한 움큼 더 주는 인심이 있는 것도 좋고 가격을 깎을 수 있는 흥정의 공간이 있어서 좋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복잡한 시장 한복판을 카펫을 뒹구는 어린아이처럼 신나서 달리고 있을 때 차가 뒤에서 갑자기 정차하더니 나를 세우더니 “안녕하세요!”하고 정확한 한국말로 어떤 사람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가 부지런히 쫓아와 나를 세운 이유는 그가 안산에서 1년 8개월 정도 근무해 한국과 정이 들었던 게 다였다. 레자라는 이름의 이 사나이는 짧은 기간 살았는데도 한국말을 참 잘한다. 마침 이란에 들어와서 환전할 곳도 못 찾고 현금인출기도 외국인 카드는 안 되고 카드사용도 못 해서 애를 먹고 있었는데 이 사람 도움으로 비상금으로 숨겨둔 미화 400불을 급하게 환전상에서 환전하였다. 유로는 테헤란이나 가야 환전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란이 이번 평화마라톤의 11번째 나라인데 이란 사람들만큼 한국 사람을 좋아하고 반기는 사람들은 처음 보았다. 손을 흔들고 차의 경적을 울려주는 사람은 셀 수도 없이 많고, 달리는 나의 모습을 저만큼에서 발견하고는 동영상을 찍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도 많고 가게에 음료수라도 사러 들어가면 기념사진을 찍자고 한다. 어떤 사람은 차를 운전하면서 두 손을 핸들에서 놓고 손뼉 쳐주는 사람도 있다. 경찰도 지나가는 우리를 세워서 주몽을 보았다고 하며 송일국을 언급하며 엄지손가락을 올리기도 한다.

 

오늘이 설날인데 떡국을 못 먹어 아쉬워하는 우리가 점심을 햄버거로 때우러 들어갔는데 식사비를 받지 않겠다고 한다. 아들과 함께 지나가던 아주머니는 사진을 함께 찍고 가더니 다시 돌아와 아이가 자꾸 자기 집에 가서 식사라도 대접하겠다고 졸라서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지금 자기 차를 타고 같이 가자고 하는데 오늘 일정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하니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돌아갔다. 유라시아 길에는 정말 사랑과 인정이 넘친다. 떡국은 못 먹었지만 사랑과 인정을 넘치도록 먹었으니 올 한해 건강하게 유라시아 완주하는 복을 누릴 것 같다. 오늘 우리가 머무르는 마잔다란주의 람사르 지역은 옛날 페르시아 시절 왕족들의 별장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휴양지이다. 휴양지 특유의 깨끗하고 정원이 잘 꾸며진 아름다운 저택들이 즐비하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이 세상의 모든 환경운동가는 이 도시의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일대에는 세계적인 늪지대가 있어 유명한 람사르협약으로 유명한 습지 보존 협약이 발족하게 된 곳이기도 하다. 람사르협약은 자연자원과 서식지의 보전 및 현명한 이용에 관한 최초의 국제협약으로서 습지 자원의 보존 및 현명한 이용을 위한 기본방향을 제시한다. 이 협약의 정식명칭은 "물새 서식지로서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이다. 이란의 람사르(Ramsar)에서 체결되었기 때문에 람사르협약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는 강원도 인제의 용늪이 첫 번째로 등록되었고, 두 번째 등록 습지로 경남 창녕군 우포늪이 등재되어있다.

 

늪지야말로 생태계의 보고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지구상에서 가장 방사능이 많이 뿜어져 나오는 도시에서 자야 하는 기구한 운명을 피할 수가 없다. 이곳 람사르의 지하에는 라듐과 우라늄이 엄청나게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이곳 사람들이 유전적인 질환이나 암 등의 심각한 질환을 앓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람사르 주민들을 대상으로 역학 조사를 했는데 놀랍게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지역보다 최대 수백 배나 높은 방사능에 노출되었음에도 잘 적응하고 살아간다고 하니 우리도 오늘 하루 방사능에 잘 적응하며 밤을 지내야겠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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