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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65)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65)

거벨 나더레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멋지지 않아, 친구야! 파도소리 웅성거리는 카스피해 연안을 따라 야자수나무, 오렌지나무, 레몬나무 가로수 거리를 달리며 낯선 사람들의 환호성 소리에 도취해보는 것이! 산비탈에 층층이 집들이 들어섰고, 장미넝쿨이 담넘어 얼굴을 내민 계단은 천국까지 닿을 것 같지! 테라스 위에 테라스, 길 위에 길, 콜로네이드식 기둥, 거대한 사원의 둥근 은빛 지붕이 햇살을 받아 빛날 때 내 속에서 얼마나 큰 함성이 일어나는지 알어? 낯설고, 신비하고, 이상하며 친근감과 호기심을 느끼게 하는 나라, 그곳의 사람들과 손짓 발짓 의성어까지 써가며 소통하려는 나의 모습이!

 

나는 이제 웬만한 코미디언보다도 성대모사를 잘할 수 있게 되었다고! 내 조국 한국에 관심과 호기심을 갖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에게 세계를 달리는 나를 잘난 체하면서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이! 어릴 때 잘난 체 할 것이 하난도 없어서 늘 우울했는데 이 나이에 잘난 체를 하며 세상을 헤집고 나니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지 알아? 그들의 가슴에 봄을 찾은 한 마리 제비처럼 평화의 작은 씨앗 하나 물어다 놓는 것이!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이란 사람들이 한국인에게 보여주는 관심은 과히 열광적이었다. 어제도 찰루스 부근의 중학교를 지나는데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서 볼을 차던 한 학생이 나를 보고 먼저 손을 흔들며 달려오더니 나머지 학생들도 모두 소리 지르며 내게로 달려와서 하이파이브를 하고 악수를 하며 순식간에 학교 전체에 소동이 일어났다. 그들은 내가 평화마라토너인지 그래서 네덜란드에서 시작해서 10개국을 지나 이란에 왔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기네스 기록에 남을 도전을 하는지 더더욱 모르지만 그들은 내게 열광을 했고 그 소동은 잠시 후에 나타난 선생님에 의해 진정되고 말았다. 나는 잠시나마 BTS나 받아보았을 청소년들의 환호성을 체험하며 신비체험한 듯 정신이 몽롱할 지경이었다.

 

태초에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생겨나서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끝없이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인류는 이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아시아로 이동하기도 했다. 이란은 인류 이동 및 동서 문명의 교차로로 끊임없이 외부세력과 충돌을 빚었다. 지금도 15개국과 국경 및 바다를 접하고 있다. 또한 이슬람에서도 다수파인 수니파의 협공 속에 외로이 시아파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만큼 이란은 많은 이야기가 깃든 나라이다.

 

아직도 서구 문화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이란인들에게 문화와 역사를 통한 상호 이해는 앞으로 한국과 이란 사이의 거리를 더욱 좁혀 나갈 것이다. 많은 부분에서 공동의 발전을 위해서 상호 협력할 공간이 있다. 이란은 기원전 3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침공 이래 제 2차 세계대전 후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처럼 외세의 침략을 끊임없이 받은 나라이다. 그러면서도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유지하고 일체감을 가진 나라이다.

 

이란은 중동의 여느 아랍국가와는 문화적 배경이나 인종적, 언어적으로 다르고 자존심을 버리고는 하루도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란의 체면치레는 어쩌면 한국인들을 뛰어넘는다. ‘터어로프’는 이란에서 서로의 체면을 지키며 상대방을 존중하는 문화를 말한다. 터어로프 문화는 이란인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란인들의 특징이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언어 속에도 나타난다. ‘거벨 나더레’가 바로 그 말이다. 물건을 사거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계산을 하려고 하면 어김없이 이 말을 한다. “괜찮아요. 그냥 가세요!” 정도의 의미인데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라서 손에다 글을 쓰는 시늉을 하면서 “계산 빨리해달란 말이야.” 하며 자꾸 재촉하는 무례를 저지르고 말았다. 우리나라가 아무리 양반 체면을 지키려고 허세를 부리기는 하지만 물건값을 안 받겠다고 허세를 부리지는 않는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페르시아의 자존심은 그들의 문학에서 꽃을 피운다. 식민 치하의 불과 한두 세기 동안 페르시아의 시인들은 걸작을 쏟아놓는다. 그들은 자기들만의 소중한 언어로 자기들의 역사와 삶과 사랑을 카펫처럼 포근하게 일상에 깔아놓는다. 이란인들의 집에는 최소한 두 권의 책이 있는데 하나는 ‘쿠란’이고 하나는 ‘하피즈 시선집’이다. 그들은 일상 속에서 쿠란을 암송하고 시를 암송하여 보통의 시민들은 시 몇 수는 줄줄 암송한다고 한다. 그의 시는 후대에 괴테 등 유럽의 대문호를 감동시키며 영감을 불어넣어주었고 당대에는 카슈미르의 여인들도 사마르칸트의 여인들도 그의 시에 맞춰 춤을 추었고 벵골에서도 사라에보에서도 그의 시가 울려퍼졌다고 이븐 바투타는 그의 여행기에서 증언하고 있다. 그는 지금 우리의 BTS만큼 글로벌 스타였다.

 

여기 그의 시 한 편 있다.

 

사랑의 열병을 앓았으니, 묻지 마라.

이별의 독을 맛보았으니, 묻지 마라.

 

세상을 돌아 다녔으며 마침내,

난 연인을 선택했으니, 묻지 마라.

 

그렇게 그녀 문간의 흙을 보고 싶은 맘에,

내 눈물이 흐르니, 묻지 마라.

 

난 어제 그녀의 입이 내 귀에 속삭인,

얘기를 들었으니, 묻지 마라.

 

그대는 왜 나를 향해 입술을 깨물고, 왜 말하지 않았느냐,

내 그대 붉은 입술을 깨물었으니, 더 이상 묻지 마라.

 

나 자신 가난한 생활의 오두막에서 당신 없이

고통을 겪었으니, 묻지 마라.

 

이슬람에서는 음악과 미술이 종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이슬람 혁명 이후 학교 교과과정에 음악과 미술은 빠졌다. 사람들이 누릴 예술의 그 많은 허전한 공간을 시가 차지해버렸다. 이란 사람들에게 시는 자존심이고 겉치레이고 멋이고 낭만이며 유일한 예술이다. 페르시아의 시는 카펫과 함께 실크로드를 타고 유라시아에 퍼져나갔다. 괴테, 니체, 바이런, 앙드레 지드 같은 서양의 수많은 문호는 이란의 시선 허페즈의 시에 부채가 있다. 그들의 영혼은 허페츠에 의해서 전기적 충격을 받으면서 언어가 아름다워지고 상상력이 풍부해졌다. 중국의 시선 이태백도 페르시아의 언어를 쓰던 색목인이고 페르시아 시에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인류 최초의 제국주의 국가 페르시아는 그만큼 업보도 크다. 651년 사산제국이 망하고 1501년 사파비 왕국이 등장하기까지 850년간 페르시아는 아랍과 몽골, 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유라시아 국가가 제국을 꿈꾸는 순간 페르시아를 우회할 수는 없었다. 이 땅의 주인이 바뀐다는 것은 단순한 왕조의 교체가 아니라 새로운 문명과 새로운 종교의 탄생을 뜻하며 그 문명과 종교는 페르시아가 닦아놓은 길을 따라 영역을 확충해나갔다.

 

한국 여권의 힘이 세계 최고라고 한다. 그만큼 한국인들은 세계 어느 나라를 가나 매너 좋고 또 돈도 잘 쓰는 모양이다. 그런데 투르크메니스탄은 세계에서도 손꼽히게 비자 얻기가 까다로운 나라로 알려져 있다. 벌써 언제부터 비자 신청을 했는데 아직도 열흘이나 더 걸린단다. 여기서 국경까지 6일이면 달려가는데 국경 근처에서 멍하게 기다릴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이제 그동안 수고했던 태영이는 학교 복학 때문에 귀국해야 하는데 내일 태영이 혼자 버스로 테헤란으로 보내느니 같이 가서 테헤란 구경도 시켜주고 자동차 문도 고쳐야겠다. 조수석 문이 안 잠겨 그동안 밖에 차를 세워두면 불안에 떨어야 했다. 다행히 그런 상태로 차가 털리지는 않았다.

 

엘브르즈산맥을 넘는 북사면은 숲이 우거진 풍경이 절경이었다. 수도 없이 꼬불꼬불한 길을 올라 정상 부근에 다다르자 설경으로 탄성을 자아낸다. 이제 저 아래로 내려가면 더워서 고생을 할 생각을 하면 불과 몇 시간 차이로 딴 세상을 맞게 될 것이다. 남쪽 사면 아래로는 잿빛의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테헤란은 결코 아름다운 도시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현대화의 과정에서 매혹적으로 역사적인 공간은 허물어졌고, 도시계획으로 일직선으로 구획되면서 유서 깊은 페르시아 도시의 신비감이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테헤란은 사계절이 뚜렷하고 평균 고도가 2천m 이상이다.

 

시내를 한 바퀴 드라이브하고 저녁 시간쯤 한인 회장님댁에 가서 신세를 지려고 했지만 테헤란의 교통지옥은 지금껏 뉴욕이나 서울에서 내가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것이었다. 생각을 고쳐먹고 바로 갔지만 이미 어둑어둑하였다. 번지수를 가지고 집을 찾는 것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몇 바퀴 집 주위를 돌다가 간신히 찾았다. 두 분 부부가 반가이 맞아주었다. 오래간만에 한국 가정에서 차려주는 쌀밥을 감격하면서 먹었다. 테헤란은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는 도시이다. 테헤란은 메마르고 황량할 뿐 아름답지도 쾌적하지도 그렇다고 역사적인 유물이 잘 보존된 도시도 아니었다. 석유가 불러들인 자본은 페르시아의 건축물들을 사정없이 부수고 현대식 건물을 세웠다. 그러나 언제라도 아라비안나이트의 동화 속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란 기대를 갖게하는 도시인 건 분명하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엘브르즈산맥의 황량한 남쪽 경사면에 자리 잡고 있는 테헤란은 남과 북으로 극명하게 나뉘어진다. 남쪽은 뽀얀 먼지 속에 엉킨 실타래처럼 얽혀있었고 대를 이어서 내려오는 불운과 가난은 먼지보다 더 더럽게 끼어있었다. 남쪽은 더 더웠고 음울해서 신의 축복을 덜받은 것이 확실했지만 남쪽 사람들이 더 신앙적인지 더 많은 여성이 검은 차도를 칭칭 감고 다닌다. 테헤란은 발리야스광장을 기준으로 남북을 가른다. 북쪽은 지형상 높을 뿐아니라 사회적 고도도 높다. 산을 등지고 있는 북쪽은 날씨가 비교적 온화했고 오래 전부터 부자들이나 고위 관료들의 별장으로 자리잡던 곳이라 풍족하고 안전했으며 더 서구적이며 덜 종교적이어서 여자들의 스카프는 멋진 이마와 긴 머리를 가리지도 않는다. 이란 제조업의 절반 이상이 테헤란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다음 날 볼보 서비스센타에 창문과 차 잠금장치를 고치려 갔다. 주말이 겹쳐서 사흘은 걸린다고 했다. 이곳은 금요일이 휴일이고 주 5일 근무제이므로 목요일부터 업무는 보지 않는다. 그걸 감안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며칠 쉬어야했다. 조바심을 내는 대신 내게 휴식을 선사한 이 땅의 최고의 존엄 알라신에게 경배했다.

 

테니스 코트가 보이는데 남녀 코트가 구별되어 있어서 여자 코트는 밖에서 들여다볼 수 없게 장막이 쳐졌다. 가리니 참 신비롭고 더 궁금하다. 히잡이 감싸고 있는 얼굴의 눈은 음영이 유난히 짙어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테헤란은 지상 최고의 교통 혼잡지역이다. 아침 일찍 서둘러 출발했는데 점심을 먹고 나니 교통 정체가 심해 다른데 구경하는 것은 포기하고 한인회장님 댁으로 바로 갔다. 다음날 차를 고치는 동안 나는 낮잠을 한잠 자고 저녁때 김진표씨 이란 거래처의 친구가 나를 만나보고 싶어서 저녁을 같이 하자고 하여 약속을 했다. 그는 내가 있는 곳으로 택시를 보냈다. 식당으로 가는데 약 10km 움직이는 데 두 시간이나 걸렸다. 내가 달려서 가면 1시간이면 갈 거리였다.

 

그는 시를 읽고 있었다. 그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그의 옆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이란 사람들만큼 시적인 민족은 없다고 한다. 심지어 길거리의 거지들도 하페즈나 나자미의 시들을 수백 편씩 암송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은 기분이 좋으면 시에 운율을 넣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듯 암송을 하기도 한다. 푸야씨는 근육질의 단단한 몸을 가졌다.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사람인데 자전거를 타고 세계를 일주하며 민주주의의 확장 운동을 하고 싶어 한다. 한번 결혼했었는데 더 이상은 여자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이란 여자들도 밖에서 생각하는 만큼 가정적이지도 남자를 위하지도 않는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란의 전통음악이 흐르는 식당이었는데 나의 천박한 기대와는 달리 여자 연주자는 끝내 없었다. 나의 오감 가운데 귀보다 눈이 더 멋진 걸 밝힌다. 저녁을 먹으며 소소한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시간은 어찌 그리 빨리 가는지! 식사가 끝나자 내가 식사비를 보태려하니 여지없이 ‘거벨 나더레’라는 말이 나온다. “푸야씨 저녁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태형이는 공항으로 가고 나는 한인회장님 댁에서 하루 더 자고 내일 다시 뛰던 자리로 돌아간다. 내일부터는 이란 현지인이 운전 도우미로 나선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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