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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74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74
아무다리야강의 눈물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투르크메니스탄 마지막 도시 투르크메나바드를 지나고 아무다리야강을 건너는 나그네 발걸음은 바빠졌다. 몸과 마음은 지쳐있었지만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외부와 차단된 폐쇄된 환경이 사람을 거의 질식시킬 지경이었고, 경찰들이 감시하는 눈초리도 부담스러웠다. 경직된 사회의 국민이 일상에서 보여주는 밋밋한 표정들이 그랬고, 이곳에서 맞는 봄의 창백한 민낮이 보기에도 애처로웠다. 어제 호텔에서 당한 사기가 치명타를 안겼다. 나는 절대로 모래바람을 뚫고 하루 42km씩 달리고, 때론 차로 몇백km를 숙소를 찾아 이동하는 것이 힘들다고 투정하지 않았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시사타임즈

 

이 나라는 호텔 요금을 외국인들에게는 달러로만 받으면서 내국인들보다 몇 곱절 더 받는다. 시내에 45불짜리 호텔에 갔다가 더 싼 곳을 찾아 1명에 30, 두 명에 60불 이틀 치 120불을 계산했다. 아침에 나오는데 엊저녁에도 안 끊어주던 영수증을 끊어준다. 그리고 저녁에 들어가는데 돈을 더 달라고 해서 영수증을 보여줬더니 그건 하루 치란다. 방 하나에 60달러니 120달러는 하루 치란다. 점잖은 입에서 그만 욕이 튀어나오고 경찰을 부른다고 소리를 지르다가 한통속일 경찰을 부르느라 시간 낭비하느니 바로 방에 올라가 짐을 다시 챙겨 나와 어제 갔던 시내 호텔로 다시 갔다.

 

나는 한시라도 빨리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이런 숨 막히는 공간에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그럴수록 사막의 속살 깊은 곳으로 전진해 들어갔다. 사막으로 들어가 그 속에 숨은 태고의 정적을 만나 나의 거친 숨소리로 뒤흔들고 싶었다. 아스팔트 위에도 바람은 모래를 두껍게 덮어놓았다. 바람은 나마저도 모래로 덮어버릴 기세이지만 나는 작은 숨소리로도 천하를 호령하는 환희를 맛보고 싶었다. 정오의 햇살이 만든 짧은 그림자가 바람에 흔들렸지만 피 터지고 대가리 깨지는 전쟁의 끝, 온갖 비열함과 저급함이 난무하는 분쟁과 대립의 끝을 향해 달리는 내 의지는 흔들 수 없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시사타임즈

 

사막에서 때로 내가 한없이 작다고 느껴지고, 아주 보잘것없은 대상에도 두려워하며, 세상과 단절된 고립감과 외로움에 시달리면서도 묵묵히 한 걸음씩 앞으로 달려간다. 지쳐 비틀거리는 내 발걸음으로 위정자들과 거대 언론의 투박한 언어를 맘껏 조롱하고 풍자하면서 위선과 위악을 해체하는 전위예술을 펼치고 싶었다. 그 절절한 발걸음에 어느덧 상처받은 뭇 생명의 아름다움의 가치가 새록새록 묻어나는 듯하다. 이 무한의 적요(寂寥) 속에서 기만과 폭력으로 얼룩진 구시대를 강하게 부정하며 앞으로 도래할 새로운 세계를 간절하게 꿈꾸기에 더없이 조용하고 꾸밈이 없어 좋다.

 

사막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아무다리야강은 유라시아를 제패하고자 하는 영웅들이 필시 건너야 했던 강이다. 그 옛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 강에 피 묻은 칼을 씻었다. 칭기즈 칸도 이 강에 칼을 씻었다. 오스만 제국의 셀렘 1세도 그랬다. 대제국의 제왕들이 칼을 씻던 그 강물에 내 발을 씻으려 했지만 잡목이 우거진 곳과 구렁을 피해서 들어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강을 건너며 내려다본 모습은 처량하다 못해 참담했다.

 

설산의 눈 녹은 물이 평원을 고루 적신다. 목화와 밀과 뽕나무를 키우고 사과와 포도 알갱이를 키운다. 풍요로운 대지에 젖줄을 빨리며 스스로 시들어가는 어머니 같은 강! 푸른 하늘 아래 적토 빛 물을 힘차게 흘려보내던 강은 바닥을 다 드러낸 채 슬픈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저 멀리 양 떼를 몰고 가는 목동의 발걸음도 왠지 쓸쓸해 보인다. 텐샨 산맥에서 발원해서 힌두쿠시산맥을 빠져 나와 아랄해로 들어가는 강이다. 눈 녹은 물이 불어나는 봄이면 갑작스런 홍수가 나기도 했던 강이다.

 

지금은 주변 사막 지역 목화밭으로 들어가는 관개용수로 물을 다 빼앗겼다. 목화는 물을 많이 삼키는 작물이다. 우즈베키스탄에는 드넓은 목화 재배지가 있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일어나자 세계는 면화 공급이 끊겼다. 옛 소련 정부는 이곳에서 하얀 금이리 불리는 목화 재배에 주력했다. 우즈베키스탄이 독립한 뒤에도 목화는 여전히 주요 수출 상품이다. 목화는 우즈베키스탄의 효자인 동시에 재앙을 불러왔다. 페르시아어로 다리아는 바다를 의미한다. 아무다리야는 바다처럼 큰 강이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시사타임즈

 

황량하고 거칠기만 했을 이런 마른 땅에 촘촘한 관계 시설망을 만들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으로 바꾸어냈다. 하지만 이렇게 힘을 다 뺀 강은 더 이상 아랄해로 들어가지 못하고 중간의 사막에서 사라져 버리고 만다. 2400km에 이르던 아무다리야의 길이는 1400km로 줄어들었다. 아무다리야강 물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아랄해는 물은 줄어들고 염도가 높아져 더 이상 생명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가 되었다. 물은 말라 금세기 최고의 환경문제가 되고 말았다.

 

아무다리야강과 사르다리야강, 두 강 사이의 유역은 예로부터 과수원과 견과류 나무, 포도밭, 목화밭으로 울창하고 비옥한 땅이었다. 이곳은 내 마음처럼 황량한 사막과 비옥한 땅, 아열대 계곡과 눈 덮인 산맥이 결합하여 복합적이고 다양한 자연이 존재한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즈음이면 광활한 대지에 흰 목화 꽃이 만발한다. 그때쯤이면 미인들이 많다는 이 지역 여인들 목화 따는 손길이 바빠진다. 저 앞에 말의 고삐를 잡은 아이와 쟁기를 단단하게 쥔 아버지가 이랑을 판다. 딸은 씨를 뿌리고 어머니는 쇠스랑으로 흙을 덮으며 따랐다. 내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흔들자 말고삐를 잡고 가던 아이가 내게 손을 흔들다 말고삐를 놓치고 아버지에게 꾸중을 듣는다. 아이가 나 때문에 꾸지람을 듣는데 나는 실없는 웃음을 짓는다.

 

실 잣는 여인의 가녀린 손끝에서 나오는 면사는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우주 근원의 끈이라고 불린다. 날실과 씨실이 만나며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만들어내는 직물은 우리네 삶이 그러하듯 오묘하기 짝이 없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인간은 피부에 털을 벗어내고 추위에 떨어야 했다. 그런 인류에게 목화는 오래전부터 가장 중요한 직물 재료 중 하나였다. 세계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인도의 면직물은 일찍부터 먼 지역으로 수출되던 상품이었다. 면제품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옷의 재료로 사용되는 소재다. 작물 중 가장 많은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작물이기도 하여서 언제나 환경문제가 된다. 이 목화 농사가 미국 남부지방의 흑인 노예무역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들어가기도 힘들었지만 나오기도 힘들었다. 공무원들은 느렸지만 꼼꼼했다. 짐을 다시 샅샅이 뒤졌다. 그걸 꼼꼼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귀찮게 하면서, 비굴하게 자신들에게 대하는 저급한 쾌감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이곳 수속을 어렵사리 마치고 우즈베키스탄 국경을 넘는 기분은 천국의 문을 넘는 기분이었다.

 

간혹 투르크 사람들이 투르크메니스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내게 질문할 때 나는 솔직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가 사는 나라를 좋게 평가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알면서도 그랬다. 이 나라는 이번 여행의 열두 번째 나라였는데 나머지 11개국을 지나면서 그 나라와 사랑에 빠져서 헤어나질 못할 지경이었는데 이 나라에선 그러질 못했다. 사랑이 없으니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모른다. 내게 사랑은 힘의 원천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시사타임즈

 

어렵사리 국경을 넘어 우즈베키스탄의 아랏이라는 국경 마을에 도착했다. 호텔도 구하고 휴대전화의 유심 카드도 사야 했다. 환전소에서 달러를 바꿔야 해서 번화한 마을 사거리, 택시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곳에 차를 세웠다. 바로 그때 한 사나이가 유창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그러더니 금방 몇 사람 더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며 다가왔다. 놀라웠다. 아주 작은 마을인데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니! 그들은 부산에 있었다고 했고 거제에도 있었다고 했다.

 

그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진짜 한국 사람 둘이 지나가다 차를 세웠다. 이들은 이곳 현지의 가스 액화 시설 건설현장에 파견 나온 사람들이다. 이들의 도움으로 먼저 유심 카드부터 사서 한국과 소통하고 우리 입국 사실을 알렸다. 환전하고 그들이 장기 투숙하는 호텔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그들이 고용한 현지인 아주머니가 준비한 한국식 만찬을 하고 여장을 풀었다. 국과 김치와 상추에 고추장을 찍어 먹는 맛이 잃었던 입맛을 잡아주었다.

 

우즈베키스탄은 그야말로 인종전시장이다. 주로 몽골, 튀르크계와 이란계,러시아계의 혼혈이지만 현재 125개 민족이 공존한다. 원래 인도아리안계 언어를 사용하는 백인종이 살던 우즈베키스탄은 910세기 알타이계 언어를 사용하는 황인종이 들어오면서 인종 지도가 한층 복잡해졌다. 구소련 스탈린 통치 시절, 정치적인 이유로 고려인, 체첸인, 유대인, 타타르인이 우즈베키스탄에 집단 이주하면서 민족 다양성에 더해졌다. 구 소련시대 중앙아시아를 개간하기 위해. 민족 간 결집을 막기 위해 여러 민족은 다양한 지역으로 보내졌다. 고려인도 약 18만 명 정도 정착한 것으로 추산된다.

 

우즈베키스탄은 유라시아의 교통의 중심지이며 문화, 역사,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이다. 세계를 제패하려는 자 이곳을 지나갔고, 거상이 되려는 자 이곳을 지나갔다. 또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자 이곳을 지나갔다. 옛날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을 포함하는 지역을 페르가나 혹은 월지국이라고 불렀다. 이곳은 인도에서 시작한 불교가 중국, 한국으로 건너가는 연결고리에 있어, 종교 및 다양한 문화의 전파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테리미즈지역은 쿠샨 시대 불교 문화의 중심지로 도시 유적과 초기 불교 유적이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테레미즈의 카레테파 유적은 중앙아시아의 유일하게 남아있는 석굴사원이다.

 

우즈벡이란 명칭은 14세기 카스피해 북쪽을 지배하던 우즈벡 칸에서 처음 등장한다. 우즈베키스탄은 강을 따라 형성되었다. 톈산에서 발원한 아무다리야와 시르다리야가 그 중심이다. 이 두 강 사이의 비옥한 땅을 아랍에서는 아베른나흐르라 부르고 영어권에서는 알렉산드로스가 트랜스 옥시아나라고 불렀다. 이 지역은 중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농경 정착 문명이 발달했다. 관계수로가 일찍이 발달했으며 오아시스 도시 문명을 발전시키며 교역을 통한 상업활동이 활성화됐다.

 

기원전 2세기에 이곳으로 월지족으로 불리는 유목 민족이 들어와 쿠샨왕조라는 불교국가를 건설했다. 아프칸 중북부와 파키스탄 북부를 아우르는 쿠샨왕국은 우즈베키스탄 남부 테르메즈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하며 한때 당시 로마와 중국의 당나라에 이어 세계 3대 제국을 이루었다. 유목 민족과 정주인들이 서로 경쟁하며 교류하고 교차하며 형성된 우즈벡에는 오늘날 민족 개념은 미약하지만 민족적, 문화적 종교적으로 혼성된 독특한 문화를 계승 발전해가고 있다.

 

나의 유라시아 평화마라톤도 이제 거의 반환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 이 평화마라톤의 중요한 변곡점을 이룰 아무다리야강을 건너면서 이 강이 다시 살아나 도도히 아랄해를 향해 흘러가는 생명의 강이 되기를 희망한다. 옛 영웅들이 피 묻은 칼을 씻던 강이. 분쟁을 일으켜 자신과 자신이 속한 국가와 작은 집단의 이득을 얻으려는 자들이 마음을 씻는 평화의 강이 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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