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84)
평양냉면으로 읽는 평화이야기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남북정상회담이 있던 날 ‘평화의 집’ 저녁 만찬은 평양냉면이었다. 남쪽에서 열리는 분단 역사 최초의 정상회담에 남한식 음식을 준비했을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다. 덕분에 평양냉면은 일약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그날 남쪽 평양냉면집은 모두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소식이 큰 뉴스가 되었다. 평양 소리만 들어도 두드러기가 나는 사람들도 평양냉면은 즐겨 먹으니 평양냉면은 입맛의 통일을 이룬지 오래되었다. 아마 평양냉면만은 분단의 아픔을 겪지도 않았을 것이다.
백범 김구선생의 냉면 사랑이야기는 유명하다.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을 만나고 상수리 특별호텔에 묵을 때 경호상의 이유로 출입을 제한했던 모양이다. 냉면을 먹기 위해 밖으러 나가려하자 지배인이 여기서도 갖다드릴 수 있다고 말렸다고 한다. “냉면은 뜨거운 삿자리에 앉아서 먹어야 맛이 나지!”하며 의관을 챙기고 나서는 바람에 더는 잡지 못했다. 백범선생은 냉면을 먹을 때 반주로 소주 두 잔 정도를 했다고 한다.
초원의 허공에 시선을 던진다. 허공은 짙푸렇고 한없이 깊었다. 사유도 깊이깊이 따라 들어간다. 하늘에서 명주 실오라기 같고 냉면발처럼 찰진 햇살이 초원에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이번 유라시아횡단 평화순례 마라톤은 나의 개인사에서 시작되었다고 고백(告白)한 적이 있다. 살아생전 북의 고향을 그리워하던 아버지는 뭐 하나 정붙이는 것이 없었다. 늘 먼 산을 쳐다보고 늘 땅을 내려다보았다.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 없으니 그의 영혼은 늘 다른 곳에 있었다. 어머니와 나는 늘 결핍되어 있었다. 아버지에게 불만은 커졌고 집안 분위기는 언제나 냉랭했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미웠다. 돌아가시는 날까지 운명처럼 같이 살았지만 살갑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두고 온 고향 이야기조차 제대로 들은 적이 없어 아는 것도 없다. 마지막 몇 년 그렇게 고통을 호소할 때도 나는 냉정했고, 어쩔 수 없이 핏줄을 타고나 글을 쓴다는 나는 시인인 아버지 시 한 편 읽지 않았다. 나의 마음은 그토록 닫혀 있었다.
돌아가시고 한참 후에야 우연히 아버지 시집을 들춰보았다. 그때야 알았다. 아버지 육신은 평생을 나와 어머니와 함께했지만 영혼은 대동 강가 어느 휘휘 늘어진 버드나무 아래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아버지는 육신을 가지고는 도저히 못 가는 그곳을 육신의 짐을 훨훨 벗어버리고는 단숨에 가셨으리라는 것도….
그때 나는 결심했다. 아버지를 만나러 무작정 떠나야겠다고…. 임진강을 통해서는 도저히 못 갈 길을 시상처럼 떠오른 유라시아횡단 평화마라톤으로 가야겠다고…. 이렇게라도 하면 하늘도 감복하고 땅도 감복해서 그 굳게 닫힌 빗장이 열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7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우리에게 불가촉(不可觸) 시민인 북쪽 내 혈육, 내 민족을 얼싸안고 한판 덩실덩실 춤을 추고 오겠노라고!
그 옛날, 태자 싯다르타는 길을 잘못 들어 불가촉천민의 거주지에 들어서게 된다.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이 사람들과 접촉을 하면 문둥병이나 매독과 임질, 결핵, 옴 같은 나쁜 병을 옮을 수도 있고 그들에게 집단으로 두들겨 맞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들은 노예처럼 일하는 수드라 계급에도 들지 못하는 짐승만도 못한 족속들을 말한다. 보안법은 북쪽 혈육과 동포를 접촉하면 붉은 사상 전염병을 옮아 나라 전체가 병들 수 있다는 공포감을 사람들에게 심어시켰다. 두들겨 맞아 회생하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을 확산시켰다. 빨갱이 공포증과 공산화의 두려움은 자유를 억압하고 권리를 제한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되어 왔다.
그때부터 아마 내 마음은 대동강 변 어느 버드나무 아래로 떠나서 나는 이미 내가 아니었다. 영혼이 떠나버린 나는 하루도 더 버티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아무 준비도 안 된 내가 편도 비행기 표를 사서 떠난 이유이다. 유모차를 밀며 16000km를 달려서 단둥(丹東)을 지나 평양 거쳐 판문점으로 넘어온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나를 미친 마라토너라고 했다. 나는 그때 미쳤을 것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이 험한 길을 떠날 엄두를 냈을까?
무작정 떠나서 유라시아 실크로드를 달리고 달리면서 떨어지는 나의 땀방울이 보석처럼 빛나고 영롱하다는 것을 사람들 격려로 알게 되었다. 사람들도 저마다 분단의 비극을 갖고 있었다. 설령 그것이 개인의 비극이 아닐지라도 집단의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손가락질하던 그 손으로 내게 손뼉을 쳐주고 있다. 걱정과 우려를 하던 입으로 찬사를 늘어놓고 있다.
내 마음이 얼마나 닫혔나 하면 사소한 일도 시시콜콜 잘 기억하는 내가 불과 몇 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기일(忌日)도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의 편협성은 섬뜩할 정도이다. 어머니 마음이 얼마나 닫혔나 하면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는 꼬박꼬박 잘 챙기시더니 아버지 제사상은 안 차리신다.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거나 나쁜 짓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유라시아횡단 평화순례마라톤은 사실 세계평화이기도 민족 문제이기도 하지만 내 마음의 평화마라톤이다. 내 마음에 있는 암 종양보다도 더 큰 마음의 종양을 떼어버리고 싶었다. 대동 강변 어느 버드나무 아래로 가서 내 눈물로 그 종양 다 녹여버리고 그것을 대동강에 쏟아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마음의 병이 있었다. 북한에 머무를 아버지에게 그동안 차려드리지 못한 제사상을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드리고 싶다. 아마 아버지는 자신이 받는 첫 제사상이 분단의 종말을 알리는 제사상으로 받으시면 날 용서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 좋아하시던 평양냉면 마음 놓고 잡수시게 사드린 기억도 없다. 아버지가 좋아하셔서 나는 평양냉면을 좋아하지도 않다가 요즈음에야 그 신비로운 맛을 알게 되었다. 냉면은 밍밍하며 슴슴하며 도대체 왜 사람들이 그렇게 냉면을 찾고 예찬하는지 알지 못했다. 놋그릇에 담아 먹으면 더 품격이 나는 그 강렬한 중독성의 비밀에 관심조차 없었다. 맵고 짜고 달고 구수한 한국 음식의 본류에서도 벗어난다. 냉면의 맛의 선비처럼 맑고, 깊고, 담백하다. 한 번에 알아차릴 수 없는 깊은 맛이다. 좋아하는 것을 넘어 집착하게 되는 광신도집단을 거느린 유일한 음식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해주던 음식에 집착하게 된다. 고향을 떠난 실향민들이 생기면서 향수와 추억에 포장되어 신의 반열에 오른 음식이 되고 말았다. 음식은 자신의 영혼에 깃든 정체성을 일깨워준다. 올바른 음식을 먹으면 자아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의식 속에 무지개 같은 환희심이 피어오른다. 냉면이 그렇게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 남북을 이어주는 무지개다리가 되어 환희심을 피어오르게 하고 있다.
놋그릇 안에 자줏빛 육수는 노을빛으로 비치고
고명으로 얹힌 반쪽 달걀이
떠오르는 태양처럼 장엄하구나.
젓가락 입에 다가오면서 퍼지는 메밀 향
밍밍하고 시큼하고 서늘한 맛의 삼중주
찰진 면발 입속에서 은은히 퍼져나가면
고향 잃은 슬픔도 피붙이 잃은 아픔도
잊으리! 잊으리! 모두 잊으리.
실크로드와 누들로드는 다른 길이 아니다. 이 길을 따라 국수도 넘나들었다. 우리나라도 고려 때에는 이미 국수가 대중화되었는데 밀가루가 아니라 메밀가루였다. 집안에 가장 중요한 날이 생일이나 결혼식이었는데 이런 날은 꼭 국수를 먹었다. 밀가루는 우리나라에서 자라기 어려운 곡물이어서 귀한 음식이었다. 메밀은 조선팔도 어디서나 거름 한 번 안 줘도 잘 자랐다.
맛에도 시절, 운이라는 것이 있다. 한때 프랑스 음식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이태리 음식이 또 세계인의 입맛을 평정했었다. 그리고 일본 음식이 그러했고 중국 음식은 대중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맥도날드나 버거킹으로 대표되는 햄버거가 또 그랬다. 이제 유라시아를 넘어 세계를 제패할 맛의 칭기즈칸은 한국 음식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건강식품을 찾는 요즘 한국 음식은 그 지울 수 없는 매운맛과 때론 담백한 맛의 마법으로 세계인들을 평화롭고 즐겁게 평정시키고 있다.
여러분들은 아시려나 모르겠다. 이렇게 유라시아대륙을 8개월 정도 달리면 ‘반 도사’가 다 된다는 것을. 내가 예언컨대 평양냉면과 비빔밥은 정크푸드인 맥도날드· 버거킹제국을 무너트리고 입안을 즐겁고 위장을 평화롭게 천하를 통일하는 미래의 맛이 될 것이다. 지금껏 아이들 비만 주범인 콜라는 수정과와 식혜에 자리를 내줄 것이다. 막걸리가 와인 대신에 수줍고 어색한 연인들의 사랑을 굳게 맺어줄 것이다. 우윳빛 막걸리를 마시 두 연인의 눈에서 날아간 사랑의 화살이 상대의 가슴에 예리하게 파고들어 서로 사랑에 빠지고 말 것이다.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남녀의 사랑도 밥 한 끼 같이 먹으면서 시작되고 큰 상담도 밥 한 끼 먹으면서 시작된다. 결코 밥맛 없는 사람하고 마주앉아서 밥 한 끼를 같이 먹지 않는다. 북쪽 사람들이 우리에게 불가촉 시민이 아니라 언제라도 마음만 통하면 반 한 끼, 냉면 한 그릇 같이 먹는 시대가 곧 올 것 같다.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여는 역사적인 밥상 한가운데 평양냉면이 있다. 냉면의 가장 큰 매력은 목젖을 타고 넘어가면서 가슴속까지 환호성을 지르게 하는 시원한 육수에 있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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