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설, 칼럼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98)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98)

사막에 비가 내리면!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6월 21일, 나를 유혹한 것은 사막의 열기이다. 내 식어가던 가슴에 필요한 것은 이 뜨거움이었다. 아침에 떠오르는 저 장엄한 햇살을 가슴에 품고 싶었다. 태양이 떠오르자 무더위가 쓰나미처럼 앞에서 밀려온다. 내 몸에서는 끓는 주전자처럼 땀이 뽀글뽀글 끓어 올랐다. 나는 진격의 대왕처럼 두 눈 부릅뜨고 무더위의 쓰나미 속으로 뛰어들었다. 발을 디디면 먼지가 구름처럼 올라오는 메마른 대지를 끝없이 달린다. 우리는 이 푸석푸석한 대지 위에 살을 비비며 살면서 서로에게 먼지가 될지언정 비처럼 아련하게 스미지 못한다. 늘 단비를 그리워하며, 가슴에 젖어 드는 비를 맞아보지 못하고 메마르게 살아가고 있다. 가슴엔 아주 오래 꽃을 피우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한 번도 꽃을 피워보지 못했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이곳의 태양은 나의 작은 몸을 바싹바싹 말려서 모래알 같은 가루로 만들어버릴 것 같이 강렬하다. 내 몸은 끓는 주전자처럼 뽀글뽀글 끓어 마침내 뚜껑을 땅바닥에 튕겨낼 것 같다. 하지만 내 몸은 광장에 서 있는 영웅의 청동상(像)처럼 구릿빛으로 빛났고 근육도 청동처럼 단단해져 있었다. 청동은 아무리 강렬한 태양에도 부서지지 않는다. 내 의지도 그러했다. 보통 선글라스를 끼지 않지만 가끔씩 심술궂게 불어오는 바람에 모래가 눈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빛의 광채가 나의 홍채를 태워버릴 것 같아 선글라스를 찾아 썼다. 이런 황량함 속에서 단전에 힘을 모으고 달리면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자신과 만날 수 있다.

 

실크로드! 그 이름과 역사만으로도 나그네에게 묘한 설렘과 도전과 모험을 떠올리게 만드는 길이다. 지난날 실크로드를 방울 소리 울리며 지나다니던 카라반의 긴 행렬은 더 이상 찾을 길이 없지만, 비단을 싣고 사막의 밤하늘의 별을 보며 먼지를 일으키며 더 나은 삶을 위해 긴 여행을 떠나는 그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달리는 길에는 그들의 숨결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어쩌면 나그네에게 아름다움이란 절경의 산세나 계곡, 기암괴석에만 있지 않고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환경에 있을 수도 있겠다.

 

맑고 투명하게 자기를 응시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리하여 지금껏 숙변처럼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씻어내고 새로운 가치를 정립하고 싶었다. 위궤양처럼 나를 갉아먹던 나태와 권태로부터 벗어나고 이곳에 내리쬐는 태양같이 강렬한 생명 에너지를 충전하고 싶었다. 달리면서 배터리 점프선을 하늘에 꽂는다. 새로운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수도승 같은 절제와 새로운 자기질서가 필요했다. 이런 곳을 달리는 시간이 여백처럼 허전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느슨한 시간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관찰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고통이었다.

 

허위적 거리던 삶의 중심을 잡는 수양을 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오히려 눌러서 채워진 순대 속 같은 꽉 찬 시간이기도 하다. 여백마저도 색으로 인정하는 동양화처럼 내 달리기는 사막의 황량함 속에서 충만해져 간다. 여백은 색을 유혹하고 침묵은 소리를 끌어당긴다. 그래서 이런 곳에서 헛것이 보이기도 하고 환청이 들리기도 한다.

 

이곳은 적게 보고, 적게 듣고, 적게 먹고, 적게 쓰고, 적게 생각할 수 있어서 좋다. 현대인들에게 고독은 제3의 가치이다. 그것을 상품화하는 것들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네팔 트레킹, 차마고도 같은 곳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곳들은 절대 고독을 느끼기에는 이제 너무 상업화되어 있다. 이런 고독을 즐기기 위해 몇 년 계획을 세운다든지 평생의 버킷리스트로 정해놓고 일생을 거는 사람도 있다. 사막은 고독의 자리이다. 홀로 존재하는 절대 고독의 자리. 그 형이상학적 고귀한 고독을 이곳에서 마음껏 즐긴다. 모래 먼지가 피부에 이끼 끼듯 달라붙지만 내 생명은 이곳에서 저 깊은 대지의 생명의 원액을 빨아들이는 봄 나무처럼 푸릇푸릇 싱싱해진다.

 

아마도 사막은 한발이라는 여신이 지배하는 세상인 것 같다. 한발의 다른 이름이 가뭄이다. 중국의 신화에는 푸른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신이 등장한다. 이 여신은 황제와 치우가 맞붙었던 탁록의 전투 때 황제의 부름을 받고 천계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황제를 도와 치우가 풍백과 우사를 시켜 일으켰던 폭풍우를 강력한 빛과 열로 날려 보내고 황제의 승리 일등 공신이 된다. 그녀는 이 싸움에서 지나치게 힘을 쓴 탓에 다시 천계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로부터 지상에는 심각한 가뭄이 들게 됐다. 그녀의 이름이 한발이고 물론 이 치우는 우리의 붉은악마의 상징이 맞다.

 

해발 2천m가 넘는 이곳은 바람이 아주 심한 곳이다. 어느 곳이나 성질이 다른 두 기압이 만나면 바람이 심하게 분다. 투루판의 더운 공기와 바리쿤의 시원한 공기가 만나 일어나는 바람이 맞바람이 되어 고단한 발걸음을 더욱 고단하게 만든다. 순식간에 검은 구름이 모이더니 황량한 사막에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바리쿤을 향해 산길을 넘고 있을 때였다. 지금껏 사막에서 마주한 비라야 ‘호랑이 시집가는 비’ 정도였는데, 바람과 함께 몰아치는 비 때문에 앞으로 헤쳐 나가기가 만만치가 않다. 우비를 찾아 입었지만 갑자기 떨어진 기온을 감당할 수 없어서 다시 옷을 찾아 안에 덧입었다. 어느 정도 체온을 유지하자 나는 하늘의 비에 촉촉이 몸과 마음이 젖어 드는 걸 즐긴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비가 내리자 메마른 대지 위에서 환희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시들어가던 풀들이 긴 기다림 끝에 어깨를 활짝 벌리고 꽃봉오리를 피워내고, 숨어있던 개울이 흐른다. 그곳을 한가로이 노니는 야생 낙타와 말과 소, 양들이 즐거워 춤을 추는 듯하다. 어디서 왔는지 새들이 짹짹거리며 날아든다. 요란하게 굉음이 나는가 싶더니 하늘에 새파란 번개가 거대하게 떨면서 사막 어디엔가 내리꽂힌다. 물을 머금을 초목이 없는 사막에 큰비가 오면 홍수가 나기 쉽다. 조금 대지를 적시는가 싶으면 바로 물줄기가 꽐꽐 쏟아져 내린다. 사막에서 비가 내리면 바싹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비를 머금은 바람 소리가 악마의 자지러진 웃음처럼 소름끼치게 들린다. 홀로 있다는 것이 두려워지는 순간이다.

 

중국인들에게 상상 속의 동물인 용은 구름과 바람을 일으키고 천둥, 번개를 자유자재로 부려 비를 내리는 신통력이 있다. 용이 웬일로 이 사막을 지나갈까? 농사를 주로 짓던 중국인들이 최고로 치는 인생의 네 가지 기쁨이 있다. 그 첫째가 오랜 가뭄 끝에 만나는 단비이다. 그리고 머나먼 타향에서 오랜 친구와 만나는 것이다. 세 번째가 신혼 첫날 방에서 타오르는 촛불이고, 그다음이 과거에 급제했을 때이다.

 

연일 계속되는 사막의 열기 속에 기진맥진한 내게 하늘이 용을 보내주어 비를 뿌려주니 내게는 첫 번째 큰 기쁨이 된다, 외로움 속에 달리는 사막에서 맞는 단비가 오랜 친구같이 다정하게 느껴지니 그 또한 기쁨이다. 비에 젖어 생기가 돋는 대지가 첫날밤 새색시처럼 아득하니 이 또한 내게 큰 기쁨이고, 이 길을 달리며 평범하고 찌질하던 내 삶이 평화 마라토너로 거듭났으니 어찌 과거에 급제한 것에 비교하겠는가? 먹구름은 무대의 커튼이 걷히듯 걷혔고 안경알을 닦아낸 것처럼 세상은 맑아졌다.

 

투루판에서 하미로 가는 길을 바리쿤을 거쳐 가는 길을 택했다. 투루판이 해수면보다 낮은 도시라면 바리쿤은 해발 2천m가 넘는 고산지대의 초원이다. 주위의 다른 도시들이 다 열사의 더운 바람으로 숨이 꽉꽉 막힐 때도 이곳만은 시원한 바람이 분다. 어떤 이는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는 이도 있다. 저 멀리 보이는 바리쿤 호수를 끼고 펼쳐지는 초원은 그 푸르름만으로도 눈이 부시다. 이곳에서는 내가 그렇게 무겁게 느꼈던 절망의 무게가 얼마나 가벼운지, 내가 그렇게 작게 보았던 희망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극명하게 보인다.

 

▲사진제공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c)시사타임즈

 

이런 곳에서 점심시간에 맞춰 식당을 찾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오늘은 그래도 조금 늦었지만 만둣집이 보여서 들어가 만두의 중국어 발음으로 만터우를 시켰다. 찐빵처럼 큰 왕만두인가 싶어 급하게 한입 크게 베어 물었는데 안에 아무것도 없는 밀가루 빵이었다. 그야말로 단팥 없는 찐빵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안에 고기나 채소 소가 있는 것을 바오쯔라고 부르고 물만두는 교자라고 부르는 자오쯔를 달라고 해야 한다. 결국 자오쯔를 다시 시켜야 했다.

 

바리쿤은 동 톈산 분지에 자리 잡은 마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보았음 직한 호반의 고즈넉하고 그윽한 초원 도시이다. 사막의 호수는 자궁과 같이 생명을 잉태하고 길러내는 곳이다. 한때 양과 조랑말의 천국이었다. 포류국(浦類國)이 있었다는 한 대(漢代)나, 명대(明代)에는 서몽골의 천막이 호수를 빙 둘러싸여 있었고, 한때 4만 마리 군마를 공급했다던 청대(淸代)의 토성이 지금 도심 한가운데 무너진 채 자리하고 있다. 한적한 곳에 돌무더기 서낭당이 높이 쌓여서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몽골인들은 지나면서 돌무더기에 돌을 더하며 안위를 빌었다. 나도 돌무더기에 돌 하나 더하며 내 안위와 조국의 평화통일을 기원한다.

 

나는 사막을 달리면서 태양과 달리기 경주를 한다는 생각을 한다. 태양이 저쪽 동쪽 끝에서 떠오르기 시작할 무렵 시작하면 태양이 기승을 부리는 한낮의 더위가 시작되기 전에 끝마치려 열심히 달린다. 하루에 내가 마시는 물은 중국 전설에 나오는 ‘과보’가 지는 태양과 달리기 시합을 하다 마신 물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많다. 그야말로 마시고는 가도 짊어지고는 갈 수 없을 만큼의 물을 마셔댄다.

 

중국에는 태양과 달리기 경주를 하는 거인 과보의 전설이 전해져 온다. 그는 지는 태양을 쫓아가 보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달렸다. 천 리를 달린 그는 태양이 지는 우곡이라는 곳까지 달렸지만 갈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황하와 위수의 물을 다 마셔버렸다. 그러나 그 물은 거인 과보에게는 접시 물에 지나지 않았다. 갈증이 가시지 않은 그는 북쪽의 바이칼 호수의 물을 마시기 위해 달려가다 너무나 지쳐 쓰러져 죽었다. 그가 죽은 자리는 커다란 복숭아나무 숲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태양을 쫓아 달리다 목이 타 죽은 자리에 생겨난 복숭아나무 숲. 중국인들에게 복숭아밭은 무릉도원의 상징이다. 나의 태양은 평화이다. 평화를 쫓아서 지금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 만약 황하의 물이 다 말라 없어졌다는 소리가 들리거든 내가 다 마시고 평양을 향해 달려가는 줄 알아라! 나는 결코 과보처럼 쓰러지지 않는다. 보람된 인생이란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순대를 채우듯 의미를 채우는 삶이 되어야 한다.

 

오늘도 어렵사리 숙소를 찾아 들어와 샤워하고 나오다 거울에 비친 내 가슴을 보고 머리가 쭈뼛 솟아올랐다. 내 가슴 한복판에 한반도기 화인(火印)이 찍혀있었다.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며 달려왔지만 내 가슴 한복판에 한반도기 화인(火印)이라니! 이적이 일어난 줄 알고 잠시 소름이 끼쳤지만 정신을 추스르고 생각해보니 10개월을 한반도기가 코팅된 똑같은 티셔츠를 입고 달렸다. 코팅된 부분만 자외선이 침투하지 못해 그 부분에 화인이 찍힌 듯했다. 분명 이적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무엇이든지 간절하면, 꾸준히 발걸음을 해나가 다 보면 이적은 일어날 것이란 믿음이 생겼다.

 

글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