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 99
60은 7월이다
[시사타임즈 = 강명구 평화 마라토너] 이제는 아무것도 탓하지 않게 되었다. 바람이 불어야 꽃이 피고,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려야 과실이 익는다는 것도 알았다. 장밋빛 열정의 6월은 지났지만 대나무의 줄기는 더 꼿꼿해진다. 그 바람과 태양 맞으며 60이 넘으니 비로소 결단력이 생기고, 조급증이 사라지고 조금씩 천천히 달려가도 끝없는 세상에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7월이 되어야 비로소 여름이 온 걸 알리니 60이 넘으니 비로소 삶의 뜨거움이 느껴진다.
사막의 길은 한고비 넘으면 또 한고비, 내 지난 인생 여정 또한 그러했던 것 같다. 사막에도 내 피부처럼 주름이 졌지만 이것을 늙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늙어가는 것이 아니다. 이상과 열정을 잃었을 때 영혼의 머리털이 빠져 사막처럼 퀭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남자이고 싶다. 열병 같은 사랑을 하고, 그런 사랑을 받는 남자이고 싶다. 황혼이 깃든 황량한 사막을 끝없이 달릴 줄 알고 마침내 황혼도 지고 사랑도 가고 빈털터리가 되어도 다시 털고 앞길을 묵묵히 달리는 사나이이고 싶다.
오아시스 마을과 오아시스 마을을 징검다리 삼아 달려가는 길. 사실 유라시아를 달린다는 것은 개인의 도전정신이나 체력의 문제일 수도 있다. 처음 내가 길을 나설 때 내 손에는 네덜란드행 편도 비행기 표와 3달 정도 아껴서 쓸 경비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준비가 안 됐다며 더 준비해서 떠나라고 했지만 나는 우리 국민을 뒷심으로 믿고 떠났다. 지금껏 많은 사람이 나의 오아시스와 징검다리가 되어주어서 여기까지 왔다.
신장웨이우얼 지역은 슬픈 지역이다. 자연환경이 척박하여 슬프고, 그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며 수만 년 조상 대대로 뿌리내리며 살아온 그들의 숨결이 슬프다. 독립을 이루어내지 못해서 슬프다. 주위의 다른 중앙아시아의 튀르크계의 국가들이 1991년 소련의 해체로 독립될 때 잠시 꿈을 꾸었지만 독립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중국 내 55개 소수 민족 중에서도 이 지역은 1759년 청나라의 지배를 받은 이래 티베트와 함께 독립을 추구해온 지역이다. 내 발바닥이 한 달여 지나온 이 지역에 축복 있으라!
하미로 가는 길에 낙타 보호구역을 만난다. 저 멀리 낙타들이 군집을 이루고 풀을 뜯는 모습이 아련하다. 이 근처에는 세계 최대의 쌍봉낙타 보호구역인 쿠무타크 사막이 있다. 사막에는 낙타풀이라 불리는 온몸이 가시로 뒤덮인 풀이 자란다. 이 풀은 수분의 증발을 최대한 막기 위해서 온몸이 가시로 덮였다. 낙타가 이 풀을 즐겨 먹지만 가시로 뒤덮인 이 풀을 먹고 나면 입안이 온통 피범벅이 되곤 한단다. 입안이 피범벅이 돼야 비로소 배고픔을 달랠 수 있는 낙타. 그들은 천적이 많아 하루도 마음 편히 살 수 없는 숲을 떠나 몸을 고달프지만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사막에 정착해 살기 시작했다. 이런 곳엔 도마뱀이나 설치류의 동물이 있어 이런 것들을 잡아먹는 새들도 산다. 대상들이 낙타의 목에 방울을 다는 까닭은 겁쟁이인 낙타가 도마뱀이 지나가면 놀라기를 잘해 방울 소리로 도마뱀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얼마 전 샤워를 하면서 거울에 비친 내 상체에 또렷이 새겨진 한반도의 모습에 나 자신도 놀랐었다. 한반도기(旗)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열 달을 매일 달렸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정성을 다해 매일 반복하면 결과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한걸음에 60cm의 작은 보폭으로 1만km를 넘게 달려왔다. 남북 모든 시민이 간절하게 염원하면 내 가슴에 한반도가 새겨지듯이 지구의 한복판에 새겨진 한반도는 평화의 횃불로 온 세상을 비추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며칠 뒤 우연히 바라본 내 발이 참으로 이쁘고 고맙다. 1만km를 넘게 달려온 발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처럼 웬만한 여자들 발보다 더 곱다. 내 발이라서 더 그럴 수도 있지만 매일 한 발자국 뛸 때마다 내 몸무게의 3배의 충격을 그대로 묵묵히 받아들이고 이겨낸 고마운 발이 뽀송뽀송하면서도 곱다. 내 발이 박지성이나 김연아의 발처럼 굳은살이 박이고 울퉁불퉁하기를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다. 내가 발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는 매 쉬는 시간마다 네 켤레의 운동화를 갈아 신고 양말을 갈아 신은 것밖에는 없다. 우리가 흉보는 중국 사람들조차도 내가 식당에 들어가서 양말을 벗고 신발을 벗은 채 있으면 질색을 한다. 본의 아니게 한국 사람 욕을 먹이게 한 점은 사과해야겠다. 그래도 쉬는 시간, 밥 먹는 시간이라도 신발이나 양말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발은 환호성을 부르곤 했다.
운동화 바닥도 녹여버릴 듯한 아스팔트의 열기가 발바닥으로 전해온다. 발바닥이 가는 대로 생각하며, 발바닥이 가는 대로 사람들을 만나며 신장웨이우얼의 마지막 도시 하미를 지나고 있다. 이제 며칠 후면 이 ‘지옥의 터널’ 같은 곳을 빠져나가게 되었다. ‘지옥의 터널’이라고 쓰면서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정말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가 느낀 감정은 그렇다. 사람들에게서 느낀 것이 아니라 이곳의 척박한 환경과 공안들의 지나친 간섭이 불편하고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이제 하미에서 과조우로 가는 길은 거의 400km에 달하는 길이다. 중간에 국도가 끊기고 고속도로로 연결된다. 며칠 전에 이곳 하미에 들어왔을 때 중국 공안이 호텔로 찾아와 고속도로로 진입하면 1000위안의 벌금과 즉각 구속한다는 경고를 남기고 갔다. 신장웨이우얼 지역 공안들에게 나는 이제 유명인사가 되어있었다. 웬만한 공안은 내 신분증만 보면 알아본다. 이곳은 우회도로도 없었다.
약 130여km를 점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점프를 하는 것은 내 정서에 맞지 않았다. 나는 정공법을 택하기로 했다. 고속도로로 진입하지 못하면 고속도로로 진입하지 않고 그 길을 따라 사막으로 가면 될 것이다. 이 7월의 무더위를 뚫고 차량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등가방에 물병과 비상식량을 짊어지고 가면서 제대로 사막을 느끼는 길을 택했다. 다행히 운전기사도 힘들지만 나의 뜻에 따르기로 해주어서 고맙다. 우리는 중간중간 휴게실에서 만나서 물과 간식을 공급받기로 하였다. 지옥의 터널은 끝나지 않았다.
태양은 무당의 살풀이춤처럼 격렬하다. 7월의 바다 같이 끝없이 펼쳐진 푸석푸석한 사막을 달리니 몸은 고되지만 내 가슴엔 파도가 일렁인다. 청춘의 어느 날 끝없이 홀로 걷던 모래사장이 생각난다. 이곳에 갈매기는 없지만 이름 모를 새들이 가끔 짹짹거리고, 게는 없지만 도마뱀이 게처럼 모래 위를 쏜살같이 달려간다. 가끔 길 잃은 산양들의 사체의 퀘퀘한 냄새가 난다. 젊은 날, 그때 나는 지금 이 황량한 사막을 지날 때보다 더 불안하고 조급했었다. 돌이켜보니 그때 나는 이루지 못할 헛된 꿈들로 가득 찼었고 지금 나는 경건함으로 충만하다.
복숭아, 자두 포도는 7월의 햇살로 속을 채워가고, 큰바람에 꺾인 나무는 7월에 다시 새순이 돋아난다. 하지가 지나고 낮의 길이가 짧아지지만 대지의 뜨거움은 지금이 최고의 절정을 이룬다. 헛된 꿈, 60이 지나고 모질고 거칠었던 욕망의 화염불이 식어가니 오히려 마음의 열정은 지금이 최고이다. 7월에는 꿈이 현실이 되는 달이다. 우리는 이 계절에 거친 삶의 터전에서 당당한 승리를 준비한다. 눈부신 봄날만 봄날이 아니다. 7월에 오히려 봄날보다 따스한 날이 더 많다. 그러니 나이 60대는 7월이다.
돌이켜보니 세월은 바람처럼 흘러서 낙엽처럼 쌓였다. 세월의 낙엽을 들추면 다람쥐가 감춰둔 도토리 알 같은 추억이 소롯하게 묻혀있다. 작년 9월 환갑 생일이 지나고 나는 대장정의 첫발을 디뎠다. 미켈란젤로가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시작한 때도 그의 나이 60이었다. 케네디 슬레이터라는 패션모델은 나이 60에 뉴욕 패션위크가 열리던 링컨센터 근처에서 요지마모토 정장과 샤넬 백을 매치한 차림으로 친구를 기다리다 취재진에게 사진을 찍히면서 거리 캐스팅이 된다. 그녀의 사진이 공개되자 사람들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열광했다. 문익환목사도 59세의 늦은 나이에 적극적인 민주화운동을 펼친 투쟁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때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멀어지는 것 같고, 사랑받는 느낌도 허망하다. 그동안 뭐 하고 살았나 자신을 되돌아보면 힘이 빠지고 깊은 밤잠 못 이루고 깨어있을 때도 있고, 누구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것 같을 때도 있다. 자칫 60대는 사막 앞에 선 길 잃은 자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는데 내 앞에 닥친 현실은 녹록지가 않다. 사회도, 가족도 친구도 내 맘 같지 않다. 7월의 날씨만큼 변화무쌍하게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다. 몸도 잘 관리하지 않으면 조금씩 기능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지금껏 사회의 눈치를 보고 가족을 위한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나만을 위한 삶을 살아도 좋은 것이다.
돌이켜보니 천천히 산책하듯 주위의 풍경을 세심히 구경하며 왔어도 좋은 길을 특급열차를 타고 도착한 느낌이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아름다운 풍경을 하나도 즐기질 못했다. 이제는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 급히 서둘러 달려온 길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살다 보니 내 노력에 상관없이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 되는 것도 알았으니 크게 집착하는 것도 없어진다. 이 나이에도 여전히 미숙하고 꾸준히 실수를 하고 여전히 세상을 정확히 보는 일이 어렵다. 아직도 필요할 때 지혜로운 발언이 입에서만 맴돈다. 7월엔 아직 소나기도 몰아치고 태풍도 지나가니 아직도 조심해야 하는 나이가 60대이기도 하다. 그러니 60대의 나이는 여전히 정보의 바다에 낚싯대를 담그고 정보의 고기를 낚는 일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60의 오늘 설령 불행해도 내일 행복할 수 있다. 60, 오늘 불가능해도 내일 해낼 수 있는 나이다. 인생은 의외로 길고 사랑 역시 그러하다.
나는 지금도 첫사랑을 꿈꾼다. 첫사랑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작년에 첫눈이 왔는데 올해 다시 첫눈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우리는 모두 그걸 암묵적으로 묵인하고 첫눈 내리는 날의 낭만을 즐긴다. 매년 첫눈을 기다리듯 나는 매년 첫사랑을 기다린다. 첫눈 내리는 날 덕수궁 돌담길을 따뜻한 손 마주 잡고 걸으며 아무 의미 없는 말들을 나누며 즐거워하듯이 60 이후에 찾아온 첫사랑은 그저 마음 따뜻한 길동무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사막을 달릴 때처럼 사람들을 경건하게 대할 수 있다면 좋겠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알몸으로 녹아 모래가 되어 바람에 흩날리고 싶다. 청춘은 푸르름의 절정이 아니었다. 60, 사막 위에서 바람맞으며 헤쳐 나가는 지금의 내가 푸르름의 절정이다. 인생의 르네상스를 열어가기 좋을 때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사랑하기를, 도전하기를, 꿈꾸기를, 끊임없이 나를 가꾸기를 멈출 수가 없다. 60의 사랑과 건강, 지혜, 추억, 기쁨, 희망 등은 바람개비 같은 것이다. 가만히 들고 서 있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들고 뛰어야 벵글벵글 돈다. 곧 61번째 생일이 다가올 것이다. 뜨거운 가슴으로 다가오는 것을 맞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모래보다는 평화의 홀씨가 되어 바람에 날리는 것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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