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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 이동우 칼럼 ] 눈부신 가을날에

[ 이동우 칼럼 ] 눈부신 가을날에

 

 

 

 

▲이동우 칼럼니스트·정치학 박사
[시사타임즈 = 이동우 칼럼니스트] 사회과학을 전공한 필자는 당연하게 사회현상에 관심이 많다. 매일 몇 개의 신문을 정독하고 시사관련 방송을 시청하며 나름의 눈으로 세상을 조망(眺望)한다.

 

요즘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을 자주 생각한다. 이백(李白)의 산중문답(山中問答)에 나오는 이 말은 ‘따로 세상이 있지만 인간 세상은 아니다’라는 정도로 이해하면 충분 할 것 같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우리는 지금 말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현실은 전제군주시대를 살고 있다. 그것도 무식, 무능, 무개념도 모자라 무책임하기까지 한 여왕(실제로는 퇴실이 1년 반쯤 남은 청와대 하숙생)이 통치하는 참담한 나라의 백성으로….

 

아!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 하나, 전제군주시대 왕이라고 무슨 일이든지 마음대로 한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왕권을 견제하는 기구로서 3사(홍문관, 사헌부, 사간원)가 있다. 특히 사간원(司諫院)의 간관(諫官)은 왕이 언행과 시정의 잘못이 있을 때 목숨을 걸고 왕에게 바른 말을 고함으로써 백성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국정에 반영했다.

 

지금 청와대 여왕의 권한은 조선시대 왕보다도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로 덜하지 않다. 그저 힘없는 민초들은 여왕님 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하루하루가 지치고 버거울 뿐이다. 국가의 존재 이유를 요즘처럼 자주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어쩌랴, 그래도 질긴 목숨 이어가려면 각자도생(各自圖生: 각자 살길을 찾음)이 살 길 같다.

 

구약시대 다윗 왕이 반지를 만드는 세공기술자에게 ‘기쁠 때 교만하지 않고 절망할 때 용기를 줄 수 있는 한 마디를 새겨 달라’고 명령하자, 세공기술자는 아들 솔로몬에게 어떤 말이 좋을까 자문을 구했다. 이때 솔로몬이 한 말이 바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이다. 필자가 자주 되뇌는 말이다. ‘각자도생’하기 위해….

 

가을이다.

 

가을은 일조량의 감소 등으로 인하여 사람이 우울해지고 고독(孤獨)해지기 쉬운 계절이다. 가끔 고독은 ‘외로움’과 같이 쓰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차이가 있다. 고독은 영어로 ‘솔리튜드’(solitude)이고 외로움은 ‘론리니스’(loneliness)이다.

 

정신분석학자 설리번(H.S Sullivan)은 고독은 ‘스스로 선택해 나다움을 찾는 긍정적 혼자됨’이고 외로움은 ‘관계에서 격리된 부정적 혼자됨이다’라고 설명한다. 독일 기독교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외로움이 혼자 있는 고통이라면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이다’라고 설파한다.

 

결국 고독은 ‘스스로 선택해 본인의 내면을 성찰하는 시간이자 외롭다고 느끼지 않으면서 홀로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가을이 가기 전에 고독해 보자. 자칫 ‘홀로 있다’는 것을 ‘낙오’나 ‘패배’로 생각하기 쉽다.

 

아니다. 많은 위인과 선각자들이 고독에서 자아를 돌아보고 창조적 영감을 얻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인간은 사회에서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영감은 오직 고독에서만 얻을 수 있다’ 괴테(Goethe)

 

인생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혼자 짊어지고 가는 고독한 여행’ 일지도 모른다.

 

이 가을, 우리 마음껏 고독해 보자.

 

 

글 : 이동우 칼럼니스트·정치학 박사

 

※ 이 기사는 시사타임즈의 공식입장이 아닌, 필자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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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 칼럼니스트 samerain@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