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

[ 종교 ] 설교 :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젼 ②

[ 종교 ] 설교 :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젼 ②



[시사타임즈 = 여주봉 신갈 포도나무교회 담임목사]

 

 

성경본문 : 에베소서 4장 11절-16절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이 직분들을 세우신 목적입니다.

 

세 우신 목적은 성도를 양육하여 그리스도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에베소서 본문을 보시지요.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그 목적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 것은 원래 원어를 잘못 번역하고 있습니다. 문맥상 원래 원어에는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N.I.V성경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to prepare for God's the works"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로 섬김의 일을 위하여 준비시키기 위함이라” 여기에 제가 읽은 NIV 'prepare' ‘준비시키다’ 혹은 킹 제임스에는 'perfecting' ‘온전케 하여’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성도를 양육시키다' '성도를 무장시키다' 하는 두 가지입니다. 그게 뭐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러한 직분들을 세우셨는데, 하나님이 이 직분을 세우신 이유(목적)가 뭐냐하면 성도들을 무장시키기 위함입니다.

 

그 다음에 무엇을 위해 섬기는 일을 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섬기는 일이라고 하니까 교회에서 청소하고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도 포함되겠지만 여기에 섬김의 일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말합니다. 여기 잘 보세요. 하나님이 직분들을 세우셨는데, 이 직분들을 세우심은 성도들을 양육시키고 무장시켜서 그리스도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직분을 세우셨다고 그랬습니다.

 

여 기에 보면 아주 중요한 내용이 나오는데, 그것이 뭐냐 면 전 성도 사역자화가 신앙적이고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일은 교회에서 월급을 받는 소수의 목회자들이 하게 되어있지 않습니다. 다른 성도들은 와서 그저 목회자가 주는 것 받아먹고 위로 받고 목회자의 위로의 대상이 되어지고 헌금해서 목회자 월급 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실 때, 그러한 목회자로 세우지 않습니다. 당연히 목회자로 하여금 여기나오는 이 사도와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로 하여금 그들이 주의 일을 감당하도록 교회가 그들의 필요를 채우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바 맞는 얘기 되 그들만 주의 일을 하고 성도들은 그저 와서 듣고 월급 받도록 헌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직분자들을 세우신 이유가 있습니다. 목적이 있습니다.

 

그 세우신 목적은 뭐냐 면 이 직분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을 무장시키고 양육시켜서 저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세우셨습니다. 보이십니까? 그러니까 전 교인 사역자화가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저는 이것을 보면서 무엇을 보게 되었냐 면 이것이 정확하게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하신 말씀이시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마태복음 28장을 보세요. 우리가 여러 번 살펴보았지만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교회에 대해서 말한 것과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가 너무나 똑같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20절은 대 위임령입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인간으로 말하면 유언과도 같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곧 바로 성령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 오셨기 때문에 인간의 유언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육신의 몸을 가지고 제자들을 볼 때는 이제 마지막으로 저들을 보시면서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대 위임령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 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8-20).지금 여기에 예수님이 계시다고 생각하십시오. 이것이 누구에게 한 말입니까?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500명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 누가 있어요? 12제자가 있고, 70명의 제자가 있고, 사실 그들이 주축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장을 보면 이제 그 500명중에서 다 돌아가고 120명이 남았습니다.

그 런데 그 중에 예수님의 동생들 이름이 나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제자들을 보면 맛디아를 채워서 12명이 있었고, 70명의 제자들 중 대부분이 남아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그렇게 계산해 본다면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들 70명의 제자들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 그리고 주님과 같이 다니던 몇 사람 빼놓고는 사실 거의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120명을 가지고 세계를 바꾸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지금 바로 그 12명과 70명의 제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제자들이 주축이 된 그 무리에게 지금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대상이 누구인지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그 리고 실제로 예수님의 그 명령을 받고 온 세계로 나가서 제자를 삶는 그들이니까 바로 여기에 그 명령을 받는 대상은 12제자와 70명의 제자와 같은 120명의 남은 그 무리에게 말씀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 말이 맞습니까? 억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 러면서 그들에게 명령하기를 뭐라고 했습니까? 여기에 명령문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원어에는 이것이 명령문입니다. 그러면 한번 물어봅시다. 여기에 제자를 삼으라고 그럴 때, 이 제자는 모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말합니까 아니면 목회자나 선교사처럼 풀타임으로 주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들만 말합니까?

 

예 수께서 지금 그들에게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들을 삼으라고 그랬는데 그 제자들은 첫째 모든 성도들을 가르친다. 둘째 성도들 중에서 특별히 헌신되어 주의 일을 전적으로 하는 그러한 여기 나온 제자들처럼 주님을 전적으로 따르는 풀타임의 사역자를 말한다. 어느 것이 맞는 것입니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것은 당연히 모든 성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러니까 당연히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만 보아도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소위 말하면 사람들을 교회에 붙잡아놓기 위해서 가르치는 것이 뭐냐면, 여기 복음서에 나오는 제자들은 두 번째와 같은 특별한 풀 타임(full time) 사역자들을 말하는 것이고, 여러분은 일반 성도들이기 때문에 그 말씀 안 지켜도 된다고, 해당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타락한 본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일반 성도들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되며 네가 범사에 자되며 강건하기를 원한다. 복, 복, 복만 받으면 되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아야 할 것이니라. 너희가 나보다 너희 아내나 남편이나 자식을 더 사랑하면 나에게 합당치 않다. 너희가 나를 따르려면 너희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한 내용은 일반 성도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고, 이 말씀은 특별히 목회자가 되는 사람에게나 해당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그 가르침이 맞나요? 틀립니다. 왜 그런 것이 나왔냐면 사람 비유 맞추려고 나온 말입니다. 여러분 성경에 나오는 제자는 모든 성도를 가리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더 말할 것 없이 뚜렷합니다.

 

복 음서도 이 구절을 보면 선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그런데 제자를 삼음에 있어서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세례)를 주라. 왜? 이 침례(세례)를 주란 말은 그 의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게 하라 그 말입니다. 성경에 침례나 세례는 예수 믿고 그 징표로 의식을 하기 때문에 단순한 의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는 것을 말합니다. "제자 삼아라" 이렇게 말하면서 또 하나 내가 너희들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너희가 가서 저들에게 가르칠 뿐만 아니라 저들로 지키게 하라. 이것은 대단한 말씀입니다.

 

하 나씩 살펴봅니다. 이 말을 우리 입장에서 보십시오. 지금 예수님이 저기 계셔서 그 제자들에게 명령하셨어요. 그럼 그 명령을 받고 이제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우리를 제자 삼으려고, 그럼 우리에게 와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예수 믿게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그 제자들이 예수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내 입장에서 보면 그 가르침을 받아야 됩니다. 가르침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럼 이 말이 무슨 말인 줄 아세요? 이 말은 모든 성도는 다 열 두 제자처럼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우리 모두가 full time 사역자가 되어야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 주님을 따르는 자세, 주와 동행하는 삶, 가치관, 이 모든 것은 당연히 우리는 열 두 제자처럼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성도가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아까도 말씀드린 대로 우리는 오늘날 사람 위주로 사람 붙잡아 놓기 위해서 인본주의 신앙이 가득하니까 이러한 것은 껄끄러우니까 적당히 넘어가는 방법이 뭐냐 면, 그것은 목회자에게 해당되는 것이고.... 이렇게 나갑니다. 전혀 비성경적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예수님의 사역에서 보았듯이 예수님의 사역은 말씀을 선포하시고 성령의 능력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정확하게 같은 것을 가르치시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미 다 보았습니다. 제자들도 정확하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그럼 보십시오, 저들에게 가르쳐 분부한 모든 것이 우리에게 행하게 한다면 우리는 뭡니까? 우리도 하나님 나라의 그 말씀, 그 토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그 말씀의 토대 위에서 우리가 행할 뿐만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해야 됩니다. 오늘 에베소서에 나오는 본문 구절도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역자들을 세우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인 성도들을 무장시켜서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에게 명령하신 것처럼 그들을 양육하고, 그들을 무장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먼저 예수님의 제자들이 살았던 것처럼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그렇게 살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셨던 그렇게 주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서 세우셨습니다. 너무나 똑같습니다.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게 이 가치관 속에는 뭐가 들어있냐 면 우리 모든 성도들이 사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바고, 그것이 에베소서에 나오는 대로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서 가지고 계신 비젼입니다. ‘그것이 vision입니다’ 모든 사람이 사역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그릇된 이해들이 하나님의 일을 따르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전 교인 사역자화가 성경적이라고 사실 우리가 만민제사장설을 믿지 않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그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의 은사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왜 이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감당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 에베소서 4장이 지금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구절이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각자가 양육 받아서 이제 주의 사역을 감당해야 되는데, 그 감당하는 방법이 여기 16절에 아주 잘나와 있습니다.

 

“그 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 아멘, 자 여기 보시면 크게 세가지 아주 중요한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가 주의 사역자로 섬기며 감당함에 있어서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이 직분을 세우신 것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을 양육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주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함인데, 그러면 각 성도들이 주님의 사역을 감당함에 있어서 중요한 세 가지 point가 여기 나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째, 각자가 주님의 주권아래 있어야 합니다. 절대로 임의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가장 먼저는 주님을 전존재로 사랑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것이 기본입니다. 여기 보시면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는다” 우리가 다시 말하면 주님 안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가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을 것이라”

여 기 구절을 보시면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과 너무나 똑같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양육되어서 주님의 사역을 감당해야 되는데, 그러려면 가장 먼저 해야될 것이 우리 각자가 머리에 붙어 있듯이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삶이 되어져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와 가지의 삶이 되어지지 않으면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감당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 각자가 사역 이전에 그 삶이 목적이어야 합니다.

 

두 번째, 여기에 중요한 것은 성령의 나타남과 사역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뜻입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이겁니다. 우리를 지체로 비유하고 있어요. 고린도전서 12장에 성령의 은사와 너무나 똑같은 얘기입니다. 우리를 지체로 비유하고 있는데, 우리 각 지체가 그렇듯이 보세요. 손가락이 손가락대로 움직이고, 바라가락이 바라가락대로 움직여야 우리가 전체를 움직이듯이 우리 각자가 지체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대로, 이것이 성령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시는 대로 은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나타나시는 대로 섬겨야 하고 그러기 때문에 이것이 무엇을 보여 주냐 하면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성령의 능력이 절실하게 필요하고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성령의 은사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것이 나타나심이든지, 그것이 사역이든지, 그것이 직분이든지 우리가 다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그것이 있어야 그것을 통해서 우리 각자가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섬길 수 있습니다.

 

우 리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느냐면 대리만족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저를 포함해서 우리들이 스포츠는 좋아하지만 자기가 직접 운동장에 나가서 뛰는 것은 별로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안 뛰는 대신 잘 뛰는 몇 사람들이 뛰는 것을 구경함으로써 우리가 뛰는 것을 대리 만족을 하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좋아하니까. 구단들과 광고업자들이 많은 돈을 받고 그것을 파는 것이고 그것으로 많은 수입을 벌어드리니까 대리만족을 위해 나가서 뛰는 선수들은 그들로 인해서 얻어지는 수입 중에 상당부분이 자기 몫으로 받으니까 엄청난 돈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심각하게도 교회 안에서 그렇게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팔장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자기는 가만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소수의 소위 말하면 영적인 거인(giant)들이 잘하는 것을 보고 그냥 좋아하면 됩니다. 그리고 헌금 조금 하면 됩니다.

 

하 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 교회를 만드실 때, 그러한 교회가 되도록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그랬는데, 몸 중에서 대부분은 굳어있고 입하고 눈만 살아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반신불수만 해도 그것이 심각한데,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들은 대리만족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주권아래 있어야 합니다. 주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또 무엇이 필요하냐 면 우리 모두가 성령의 기름부음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성령의 나타나심, 사역, 직분이 다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우리가 섬겨야 합니다. 아멘,

 

세 번째, 여기 보시면 ‘서로 연락하고 상합’해야 합니다. 조화가운데 되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합니다. 모두가 주님 안에 거하면 하나님의 성령의 나타나심을 따라 섬기되, 서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협력가운데 하라고 그랬는데, 이중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입니다. 당연히 그 세우신 질서를 따라 합니다. 임의대로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 리 모두가 다 섬겨야 합니다. 모두가 다 사역자입니다. 그런데 모두 사역자라고 해서 자기 임의대로 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질서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각 성도가 사역을 감당하되 철저하게 각자가 주님 안에 거해야 되고, 요한복음 15장, 그 다음에 당연히 성령의 은사들이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하고, 그러니까 성령의 은사들을 더 구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최근에 하나님께서 계속 말씀하시는 것이 뭐냐면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더 구하라는 겁니다. 주의 나라를 위하여 지극히 필요합니다. 사모해야 합니다. 오늘도 예언 중에 몇 번 나왔습니다. 기름부음을 부을 거라고 은사들을 그것이 이 얘기입니다. 지금 하나님이 계속해서 그 말씀하고 계십니다.

 

문 제는 여태까지 자기 임의대로 자기 목적을 위해 사용해서 잘못된 것이지 은사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지 성령의 은사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거나 혹은 거부감은 안 갖더라도 뭔가 유보적인 자세를 갖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의 사역을 감당하려면 성령의 은사가 필요합니다. 우리 각자가 주의 사역을 감당해야 하고 사역자가 되어야 하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되 자기가 나는 이것을 원하고 싶으니까 이거 원하는 그것이 아니고 우리가 진실로 우리가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 있고,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가지고 있는 제자들이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그러한 자세를 가지고 살고, 우리가 주님의 인도를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면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성령의 은사를 나타나게도 할 것이고,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우리 각자에게 사역을 주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마음을 주셔서 가난한 사람을 돕게 하시고, 어떤 사람은 치유에 대하여 생각만 하면 그 열정이 붙게 하시고, 어떤 사람은 예언을 나타나게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능력 행함을 나타내고, 어떤 사람은 가르침으로 하게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다스리게 하실 것이고, 어떤 사람은 지도력을 주실 것이고, 이렇게 각각 다양하게 그분이 은사들을 부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순종해 가되 서로가 임의대로, 내 생각대로 너와 나와 대결하거나 무슨 비교, 이것이 아니라 주님의 주권 아래 하나님의 세우신 질서를 따라 서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되어질 거라 그 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소위 직분들을 세우신 목적입니다. 보이시지요?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프로필

 

여주봉 목사

 

미 캘리포니아 침례대학 졸업

미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수학

미 싸우스웨스턴 신학대학원 졸업

 

침례신학대학 강사 역임

수도침례신학대학 강사 역임

하늘빛교회 담임목사

현 신갈 포도나무교회 담임목사

    새물결선교회 회장 

 

 

 

<맑은 사회와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시사종합지 - 시사타임즈>

<저작권자(c)시사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시사타임즈 홈페이지 = www.timesis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