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용식 목사의 글에 대한 세이연의 반박과 비판의 글(2)…물타기나 역공격은 살길이 아니다
[시사타임즈 = 진용식 세계한인기독교이단대책연합회 조사소위원회] 이단연구가들이 서로 분쟁하고 논쟁하는 것에 대하여 이단들만 좋아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논쟁의 글을 쓰는 사람이나 반박의 글을 올리는 사람이 동일하게 마음이 아프다는 표현을 하는 것을 보면 서로가 “이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냐 다투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음식점 하는 분들이 저마다 자기가 원조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왜 같은 공동체에서 함께 하던 사람들이 두 갈래로 나누어지게 되었는지 그 원인이 중요하다. 이 원인에 대하여는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라 판단된다. 지금 와서 그 이유를 따진 들 달라질 것은 없으니 그냥 덮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겨진다.
문제는 진용식 목사의 요한계시록과 구원론에 대하여 그대로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제기되었고 그것에 대하여 세이연에서 연구가 되어 발표하였는데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이연에서 연구조사보고서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심을 했을까 짐작이 간다. 같은 이단연구가들끼리 논쟁하는 것이 이단에게 말미를 제공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단연구가라고 해서 자신의 잘못된 사상문제를 덮을 수는 없는 일이다.
진용식 목사의 계시록과 구원론에 대한 보고서가 나오자 세이연의 진용식 목사에 관한 연구를 “천박한 연구”로 치부하고 “미주 세이연은 불법단체다”라고 몰아붙이는 것 등은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 여겨져 이해가 간다. 그러나 상대방을 공격한다고 해서 자신의 문제가 덮어지지는 않는다. 세이연의 보고서는 한 개인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사상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하여 막말을 하고 조작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옳은 행동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차라리 여기에 대한 자신의 솔직한 견해를 밝힘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려나가지 않을까 생각된다.
처음에 진용식 목사가 반박을 하기 시작한 것은 자신은 절대적으로 양태론적 삼위일체론을 주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심각한 문제는 양태론이 문제가 아니고 요한계시록 해석과 구원론 문제였다. 양태론 삼위일체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이 어쩌면 사람들의 관심을 논란이 많은 삼위일체 문제로 돌리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만들었다. 지금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계속하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자신의 신학적 부재와 잘못된 사상만 더 드러낼 뿐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진용식 목사가 여러 가지 반론을 제기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침묵하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진용식 목사의 반론에 대하여 다시금 재 반박을 아니할 수 없다. 아마 성경지식이 있는 사람이 글을 읽는다면 누구나 잘 판단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1. 진용식 목사의 “그리스도는 여호와시다”라는 주장에 대하여.
세이연에서는 진용식 목사의 이 사상에 대하여 양태론적 삼위일체가 아닌가 진단하였다. 진용식 목사는 그리스도가 여호와라는 자기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여러 교수들과 한국장로교신학회를 들먹이며 그들도 같은 주장을 했다고 증거하였다. 그러나 하나같이 모든 신학자들이 말하고 있는 내용은 “그리스도가 여호와이시다”라는 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의 여호와와 같은 하나님이라는 내용이었다. 유대인들이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너무 신성하기 때문에 함부로 부르지 아니하고 “아도나이”(주)라고 불렀고 70인 역에서도 여호와를 “주”(퀴리오스)라는 말로 대치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성경이 성부 하나님 여호와를 “주”라고 불렀고 “예수님”도 “주”라고 불렀다고 해서 같은 하나의 인격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칼빈이나 바빙크나 벌코프나 박형룡 박사나 누구도 “그리스도는 여호와”는 논리를 주장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의 여호와와 같은 동일한 하나님이라는 주장을 한 것이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 어디를 찾아보아도 “그리스도는 여호와다”라는 메시지가 없다. 칼빈 기독교강요 제1권(the book one)"“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지식”(The Knowledge of God the Creator) 제13장 제20에서 (chapter ⅩⅢ. 20)에서 삼위일체 하나님(The triune God)을 잘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이 특별화하지 않고 언급될 때마다 아들과 성령은 성부와 마찬가지로 표시되었다.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와 연계되었을 때는 두 분의 관계가 개입되기 때문에 인격들로 구분한다. 왜냐하면 각 인격에는 특별한 특성이 있고 그분들 안에 질서가 따르기 때문이다. 즉 아버지는 시작이요 원천이며 구속은 아들과 성령에 의해 되어진다고 자주 언급되지만 특히 하나님의 이름은 아버지에게 적용된다”라고 기록한다.
한국장로교신학회에서 답변으로 보냈다는 글 가운데 “구약시대에는 여호와로 나타난 분이 예수님이다”라는 내용의 글이 있다. 그 말은 구약에서는 여호와로 나타나셨던 분이 신약에서는 예수로 나타났다면 이 말은 결국 양태론이 아닌가? 이것은 누구의 사상인가? 개혁주의 신학자의 사상인가? 진짜 한국장로교신학회의 답변인지 궁금하고 누가 이런 말을 했는지 궁금하다.
“여호와”는 스스로 있는 자 “אֶֽהְיֶ֖ה אֲשֶׁ֣ר אֶֽהְיֶ֑ה” (에흐예 아쉐르 에스예)(I am that I am)라는 뜻으로서 성부 하나님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을 “여호와”(스스로 있는 자)로 밝히셨고 여호와 곧 “스스로 있는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모세 자신을 보냈다고 하라고 말씀하신다(출3:13-14).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의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알리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신다. 두 가지 면에서 “여호와”는 성부 하나님을 일컫는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이기 때문에 복수 개념이 없다. 고유명사이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로 나타내셨다. 신적존재를 나타내는 용어는 오히려 하나님이다. 그래서 구약에서 하나님이라는 말 자체가 복수로 사용된다. 하나님과 구별된 피조물인 존재로서 인간이라는 말을, 인간에게 다스림을 받은 존재로서 짐승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하나님, 인간, 짐승이라는 용어가 존재를 구분하는 단어이다.
둘째, 성부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실 때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혹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나를 여호와 인줄 알리라”로 표현하면서 일인칭 단수를 사용하였다. 하나님(엘로힘)은 복수형태로 사용되고 있지만 여호와는 복수 형태가 없다. 여호와는 고유명사요 여호와이신 성부 하나님 자신이 “나는” “내가” “나를” 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여기에 “나”를 이란 말에 예수님을 가져다 붙일 수 있을까? 예수님은 신적 존재로서 하나님이시지만 예수님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져다 붙인 흔적이 성경에는 없다. 예수님을 여호와라고 한다면 성령도 여호와라고 할 수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에서 예수는 이름이요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메시야를 뜻한다. “예수”라는 이름은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마1:21)는 사실 때문에 주어졌다. 주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메시야라는 뜻이다.
“예수가 하나님이다”는 말은 분명히 맞는 말이다. 예수님은 신적 존재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부 하나님은 아니시다. 여호와는 성부 하나님을 일컫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만일 “예수가 여호와다”라고 한다면 양태론적 삼위일체로서 이 말도 “성부수난설”을 만들게 된다. 여호와 하나님이 십자가를 지셨는가? 오직 “예수”이라는 이름은 성자 하나님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다. 예수는 고유명사로서 성자 하나님의 이름이기 때문에 다른 누구에게 사용할 수 없다. 성부 하나님을 예수라고 말할 수도는 없고 여호와 하나님을 예수라고 말할 수도 없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이시지 성부 하나님 자신은 아니시다. “그리스도가 여호와다”라고 한다면 하나님 자신이 곧 메시야가 된다는 뜻이 된다. 보내신 자와 보냄을 받은 자는 다르다. 성부 하나님을 메시야라고 말할 수 없다.
시편 110:1에 보면 “여호와께서 내 주께 말씀하시기를”이라는 표현을 신약성경에서는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로 표현한다.(마22:44,막12:36,눅20:43,행2:34)
신약성경에서는 여호와를 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처음에 나오는 주는 여호와 하나님이요 두 번째 나오는 주는 그리스도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 자신이 여호와이신 주와 그리스도로서 자신이 주라는 사실을 구별하였다. 하나님에게도 예수님에게도 똑같이 “주”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고 같은 하나의 인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인격을 구분한 것이다.
물론 구약의 여호와를 신약의 주로 말씀하신 내용도 있다. 그러나 주님 자신은 구별하였다. 예를 들면 말라기 3:1의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내 앞에 보내리니” 라고 했는데 앞에서 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말씀하고 내 사자는 세례요한을 설명한다. 마태복음 11:10에서는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리니 저가 내 길을 예비할 것이요” 라고 분명하게 구분을 하셨다. 여기서 “내가”는 여호와 성부 하나님을 말씀하고 “내 사자”는 세례요한을 말씀하고 “네 앞에”는 예수님 자신을 말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 자신은 성부 하나님과 자신을 구별하셨다.
이사야 61:1에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라는 표현을 누가복음 4:18에서는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도 여호와를 주로 표현하지만 예수님은 자신과 구별하신다.
시편 2:1에는 “여호와와 그 기름 부은 받은 자(그리스도)”로 구분을 하셨고 이것을 사도행전 4:25-26에서는 분명하게 “주와 그리스도”로 표현하였다. 여기서 주는 여호와 성부 하나님이요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그리스도는 예수님을 분명히 말씀한다.
시편2:1-7도 여호와 하나님과 하나님이 세우신 왕으로서, 하나님이 낳은 아들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구분하고 시편 110:4에서도 아들에 대하여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는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를 분명히 구분하고 시편 22편에서도 분명히 여호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을 구별하였다. 시편 118:22에서도 건축자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여호와 자신과 구별하였다.
따라서 “예수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말씀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다. 예수님도 신적존재로서 동일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는 여호와시다” 혹은 “그리스도는 여호와이시다”라는 말은 결국 성부수난설을 만들어 내는 사상이요 보내는 자나 보냄을 받은 자를 하나의 인격으로 만듦으로 양태론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성경에는 예수가 여호와로서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는 내용이 없다. 진용식 목사의 주장대로라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제2장 3항) “성부께서는 아무에게서도 출생하셨거나 나오지 않으시고 성자께서는 성부에게서 영원히 출생하셨으며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신다”는 내용을 고쳐야 할 것이다.
2. 미가엘이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천사다라는 글, 지금도 계시를 받아야 한다는 글, 지금도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이 계속된다는 글, 상징적 해석에 대한 진용식의 답변 글에 대하여
진용식 목사의 글의 내용을 보면 세이연이 거짓말하고 있다고 매도하고 세이연이 그러한 자세로 이단연구를 했다고 공격한다. 또한 무지하고 무책임한 사람들로 몰아붙이고 세이연의 이단연구는 저질이라고 공격한다.
뿐만 아니라 세이연의 이단연구는 객관적으로도 모순되고 자가당착적이며 주관적으로도 정직하지 못한 연구라고 공격의 화살을 쏘아댄다. 자신의 사상이 비판을 받아서 그렇다고 이해는 하지만 다른 사람을 매도한다고 해서 자신의 문제가 덮어지거나 상쇄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아무튼 진용식의 글에 대하여 답변을 할 수 밖에 없다.
1) 진용식 목사의 “미가엘 천사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세이연에서는 진용식 목사가 미가엘을 예수님이라고 주장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미가엘 천사를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주장한 내용을 그대로 실었을 뿐이다. 단지 안식교나 여호와증인이나 몰몬교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보지 않고 미가엘 천사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안식교에서 나온 진용식 목사가 아직도 그러한 사상이 잔재하고 있지 않은가 의심하게 된 것이다.
왜 계시록 12:7의 미가엘이 예수님을 상징한다고 했을까? 진짜 그렇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계시록 12장의 내용은 용과 그 사자들과 미가엘과 그 사자들의 싸움인데 만일 예수님을 상징한다고 끌고 가면 하나님과 사단과의 대적관계로 나아가서 결국 이원론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창조주이시오 마귀는 타락한 피조물인 천사일뿐이다. 둘을 대적관계로 만들면 이원론에 빠지게 된다. 창조주와 마귀와의 싸움으로 몰고 가기 때문이다. 미가엘은 상징적 존재가 아니라 실재로 천사의 이름이다. 그가 왜 예수님을 상징하는가? 천사를 예수님에 대한 상징적 존재로 만드는 것 자체가 위험한 비성경적 사상이다.
2) 진용식 목사의 “지금도 계시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다음은 진용식 목사가 요한계시록1장에서 정리한 내용이요 해석이다. 계시록 1:1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말씀이다. 계시록 1:1과 1:9-16의 내용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계시록 1:1의 해석에서 ⓵ 계시는 개인적인 것이다. ⓶ 계시는 주관적 체험이다. ⓷ 구원도 계시적 경험이다. 라고 주장하였고 계시의 방법을 ⓵ 꿈을 통하여 계시하시는데 해석이 필요하고 해몽의 은사가 필요하다. ⓶ 이상과 환상으로 계시하시기도 하고 ⓷ 대면하여 계시를 주시기도 하시는데 모세도 사도들도 직접 대면하여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계시록 1:9-16의 해석에서 진용식 목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⓵ 주의 날은 계시를 받는 날이다.
⓶ 말씀을 받기 위해 주의 날을 드려야 한다.
⓷ 그리스도를 깊이 체험하는 것이 계시를 받는 것이다.
⓸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다.
⓹ 말씀을 통하여 예수를 알아 가면 계시를 받는 것이다.
⓺ 그리스도의 구속과 사역을 날마다 체험해 가는 것이 계시의 삶이다.
⓻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예수의 계시를 받는다.
⓼ 환란 중에는 계시를 받는 기회이다.
⓽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계시 받은 것이다?(계시록1. 계1:1예수그리스도의 계시)
진용식 목사는 계시록 1:1의 계시는 요한계시록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말씀인데 이것을 곡해하여 여기에서 자기 나름대로 계시에 관하여 정리한 것이다. 요한계시록을 계시라고 말씀하시는데 요한계시록과 계시를 받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또 사도들이 직접 계시를 받았는가? 그래서 성경을 기록한 것인가?
본래 계시란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시는 방법을 말씀한다. 행동계시로서 하나님의 창조하심이나 구속하심을 말씀하고 특별계시로서 말씀계시인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해석하고 알려주시는 것이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히1:1)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으로서 더 이상의 계시는 없다. 그러나 위의 진용식 목사의 내용을 보며 계시로서 요한계시록과 아무상관이 없는 직통계시와 유사한 내용을 말하고 있다. 스스로 성령의 조명을 계시라고 말한 것이라고 변명을 하지만 위의 내용은 성령의 조명을 말한 것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 성령의 조명도 계시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한다면 아니다 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신다는 말씀이 성령의 조명이 아니다. 진용식목사의 계시라는 말은 조명이라고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 조명이고 계시인가? 더 이상 변명하지 않은 것이 좋을 것 같다. 지금도 계시를 받는다면 그것이 직통계시가 아닌가?
3) 진용식 목사의 “지금도 속죄사역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상에 대하여
세이연의 글에 진용식 목사가 “대 제사장의 사역은 속죄사역인데 예수님은 지금도 속죄사역을 계속하고 계신다”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대 제사장의 사역은 중보사역이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은 중보자로서 중보사역을 계속하고 계신다고도 말한다.
그러면서 이인규 권사를 공격하고 심지어 합신 이단상담소장인 박형택 목사와 이대위원장인 김성한 목사를 끌어들여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떼를 쓴다. 세이연의 상임위원으로서 박형택 목사와 김성한 목사를 거론하는 것이 아니고 합신교단을 거론하는 것은 어떤 숨은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예수님이 중보자로서 지금도 중보사역을 계속하고 계신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일이다. 예수님의 중보사역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속죄사역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사상이다. 진용식 목사의 논리에 따르면 결국 예수님이 지금도 하고 계시는 중보사역이 속죄사역이라는 말이 되는데 이것은 분명 잘못된 사상이다. 주님의 속죄사역은 십자가에서 이미 이루신 사실임을 진용식 목사는 인정하면서도 속죄사역을 지금도 계속하고 계신다고 한다면 말 자체 어불성설이다. 분명히 자신이 잘못된 사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지적하는 사람을 자격미달이요 자격박탈 운운하는 것은 헛웃음만 나오게 한다. 진용식 목사가 “예수님께서 지금도 중보사역을 하고 계시다”라고 했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4) 진용식 목사의 “비유풀이식 성경해석”에 대하여
진용식 목사는 상징적 해석과 비유풀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신학자들이 요한 계시록을 상징과 비유로 해석한다고 했는가? 요한 계시록을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비유로 푸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진용식 목사의 요한계시록 해석은 상징적 해석이 아니라 신천지와 같은 비유풀이식 해석이다. 단어에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신천지 비유풀이인데 진용식 목사가 바로 그렇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진용식 목사가 상징적 해석을 한다고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신천지와 같은 비유풀이식 성경해석을 하기 때문에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핸드릭슨이나 박윤선 박사의 해석을 들먹이고 심지어 박형택 목사 자신도 비유풀이를 했다고 몰아붙인다. 언제 핸드릭슨이나 박윤선 박사나 박형택 목사가 비유로 성경을 해석했는가? 비유풀이를 상징적 해석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상징적 해석이란 상징을 통하여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계시록에는 “바벨론”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그러면 바벨론이라는 상징적 용어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를 찾는 것이다. 사도요한은 바벨론이라는 용어를 통해서 당시 로마정권을 나타내고자 한 것일 수 있다. 이것은 비유풀이가 아니다. 사도요한이 로마정권을 짐승 혹은 바벨론이라는 상징적 용어를 가지고 나타낸 것일 수 있다.
진용식 목사의 비유풀이가 신천지와 같다는 것은 계시록 12장의 광야를 미국이라고 한다. 신천지도 같은 주장을 한다. 유재열이 3년 6개월 동안 광야에서 양육을 받았다며 광야를 미국이라고 하는데 진용식 목사도 교회가 양육 받는 곳이 미국이라며 미국 신대륙이 광야라고 한다. 네 생물에 대하여 박형택 목사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수종드는 천사라고 했는데 이것은 상징도 비유도 아니다. 그런데 이 네 생물에 대하여 진용식 목사는 복음사역자라고 하였다. 요한계시록에 네 생물이 복음사역자를 가리키는가? 영적 존재로서 네 생물을 사람으로 비유한 것인가?
진용식 목사는 상징적 해석이 아니라 신천지와 같은 비유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신의 비유풀이와 상징적 해석을 동일시하면 안 된다. 자신도 상징적 해석을 하는데 왜 문제를 삼느냐며 진용식의 세이연 연구가 무식하고 무가치한 연구라고 공격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진용식의 신천지와 유사한 비유풀이 전체를 공개하면 아마 독자들도 놀랠 것이다.
진용식 목사가 자신의 요한계시록을 비판한 내용을 보고 자신을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이연의 연구를 무지하고 무식한 연구로 매도하고 물 타기를 하는 것은 정직한 자세가 아니라고 본다. 스스로 자신의 잘못된 것에 자숙하고 잘못을 고쳐나가기를 바란다. 세이연의 이단연구의 목적은 정죄가 아니라 교정이 목적이다.
3. 세이연이 진용식 목사의 글을 조작했다는 주장에 대하여
진용식 목사는 세이연이 자신의 글을 조작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은 “말 탄 자를 복음사역자라고 한 적이 없다”면서 진짜 그랬다면 자신의 목사직을 걸겠다고 날을 세우고 있다. 과연 세이연이 조작한 것일까? 오히려 진용식 목사가 세이연의 글을 조작하면서 공격하고 있다.
“그런데 진용식은 일곱 영은 교회이자,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비유풀이를 하고 있으며, 일곱별은 교회의 인도자로 비유하고, 네 생물과 24장로는 신약교회의 제사장과 지 교회 목자로 비유풀이하고 있다. (26쪽) 112쪽에서는 네 생물과 24장로가 복음사역자라고 주장하며,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를 말씀의 사역을 하는 복음사역자로 비유한다(119쪽), 진용식은 말 탄 자를 복음사역자라고 주장하며 오늘날의 교회도 말 탄 자가 있다고 주장한다.” (세이연)
세이연은 진용식 목사가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를 복음의 사역자로 비유한다고 말했으며, 그 페이지수를 119쪽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진용식 목사는 세이연이 119쪽에서 말 탄 자를 복음사역자라고 했다고 주장하는데,... 세이연의 글을 보면 말 탄 자에 대해서 119쪽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세이연은 진용식 목사가 “말 탄 자를 복음사역자라고 주장했고, 오늘날의 교회도 말 탄자가 있다”고 주장하였다고 하였는데, 그 내용은 119쪽이 아니라 35쪽이다. 진용식 목사는 35쪽 C-1에서 말은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말 탄 자는 복음사역자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으며 “오늘날의 교회도 말 탄 자가 있다”고 분명하게 말하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사직을 걸겠다는 진용식 목사의 호언장담을 그대로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진용식 목사가 최근에 올린 글을 보면, 자신은 일곱 영을 교회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용식 목사야 말로 세이연의 주장을 조작하고 있으며, 그는 자기 글의 페이지수를 혼동하고 있다.
“그런데 진용식은일곱영은교회이자,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비유풀이를 하고 있으며, 일곱별은 교회의 인도자로 비유하고... (세이연의 주장)
진용식 목사는 15페이지(계1:17-20)를 언급하고 있는데, 세이연이 인용하는 진용식 목사의 글은 6페이지(계1:4)의 글이다. 진용식 목사는 일곱 영이 교회이며,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일곱 영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1-C) 일곱 영은 온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교회를 말한다?
교회는 영적인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
일곱 촛대는 일곱 영이라고 했다?
C-1)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일곱 영이다.
결론:
1. 우리 교회는 보좌 앞의 일곱 영이며, 촛대의 사명을 하는 교회인가?
촛대의 사명을 하는 교회가 바로 일곱 교회이다.(6페이지, 일곱 교회)
진용식 목사는 계시록에서 말하는 같은 용어도 서로 다르다. 자기 자신조차도 그 내용을 혼동하고 있다. 15페이지를 보면 교회의 인도자를 별이라고 한 것도 분명하며, 말씀을 전하는 목사를 별이라고 말한다.
2. 일곱별
A.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이다.
1) 교회의 인도자를 별이라고 하였다.
2)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일곱별이다.
B. 하나님의 교회는 반드시 사자가 있어야 한다.
1) 말씀을 맡은 별과 같은 주의 사자가 있어야 교회이다.
2) 주의 종은 말씀을 전하는 일곱별이다.
C. 일곱별은 주님의 오른 손에 붙잡혀있는 사람이다.
1) 주님의 교회에는 주의 손에 붙들려 쓰임 받는 주의 사자가 있어야 한다.
2) 주님 중심의 하나님의 사람, 별과 같은 사자가 있어야 한다(15페이지, 일곱별과 일곱 금 촛대).
분명히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이연이 조작을 했다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누구든지 진용식 목사의 요한계시록을 모두 본다면 수많은 문제점과 심각한 이단성에 대해서 놀랄 것이다. 원문을 그대로 실을 수도 있으나 더욱 곤란할 것을 우려하여 생략한다. 세이연이 진용식 목사의 요한계시록을 조작한 것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를 드러내는 것이다. 계시록과 구원론에 대한 진용식 목사의 모든 문제점들을 공동으로 조사하자고 세이연은 말하고 싶은 것이다.
2018년 12월 28일
세계한인기독교이단대책연합회
대표회장 김순관 목사
사무총장 한선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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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용식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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