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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091)] 콩 이야기

[책을 읽읍시다 (1091)] 콩 이야기

김도연 저 | 문학동네 | 292쪽 | 12,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김도연의 네번째 소설집 『콩 이야기』. 표제작 「콩 이야기」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여기에는, 이전과는 각도를 달리해 펼쳐질 그의 소설세계를 예고하는 어떤 선언이 담겨 있다. 「콩 이야기」에는 마음잡고 해보려던 일들이 모두 실패해 결국 고향으로 내려온 중년의 남자가 등장한다. 그가 10년 동안 고향에서 한 일이라곤 매일 아침 가방을 짊어지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것뿐이다. 도서관에서 그는 ‘콩과 관련한 이야기’를 쓰려 하지만 대개는 제대로 된 문장 하나 완성하지 못한 채 책상에 고개를 박고 잠만 자기 일쑤이다.

그럼에도 그는 ‘콩 이야기’를 쓰려는 시도를 어느 때고 포기하지 않는다. 언제 완성될지 알 수 없는 그 이야기 속에는, 추위에 곱아가는 손을 비비며 콩알을 줍던 어린 시절의 자신과, 시답지 않은 이유로 매일 싸웠다 금세 화해를 하는 부모님과, 목욕탕에서 때를 미는 때밀이, 도서관 옥상에 콩을 심는 사서 등 화려하거나 값나가지는 않지만 자신만의 작고 가벼운 콩을 보듬어가며 일상을 꾸려가는 우리 주위의 사람들의 모습이 담길 것이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살다 시골로 낙향한 인물은 대개, 그 안에서 부대끼면서도 어떻게든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으로부터 한 걸음 비켜서려고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콩 이야기」의 남자는, 땅에서 조심스럽게 콩알 하나하나를 줍듯, 특별하지 않아 지나치기 쉬운 사람들의 삶에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건져올린다. 그것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너른 세계를 조망하던 작가 김도연의 눈에 ‘세밀함’이라는 또하나의 인장이 새겨졌음을 의미한다.

 

이번 소설집에 “언젠가부터 나는 민둥산의 사내들과 모래 산의 여자들에게 눈길을 보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변해가는 그들의 모습을 소설 속에 들여놓으려고 부심했다”라는 작가 자신의 말처럼, 알 수 없는 공간을 떠돌아다니는 인물들이 아닌 산과 밭에 단단히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인물들이 자리해 있는 건 당연한 모습일 터이다. 그것은 인생역전의 꿈을 안고 모텔로 모여든 사람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로(「긴 아리랑」), 스러져가는 노년의 삶에 어지러움을 느끼면서도 끝내 그 삶을 긍정하는 깊은 눈길로(「배 지나간 자리」), 오랜 방황을 끝낸 뒤 집에 머물며 농사일을 하기로 마음먹은 막내의 뒷모습으로(「파호」) 나타난다.

 

그렇다고 해서 인물들의 이런 다짐이 현실을 돌파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 데서 오는 체념으로 이해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이는 문학평론가 이홍섭의 지적처럼, “지상의 콩을 하늘의 별과 일시에 동격으로 만들어버리는 솜씨”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아주 작고 가벼운 콩알과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이 다르지 않음을 아는 자의 “맑고 순정한 눈” 덕분에, 우리 또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아주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작고 가벼운 것들이 우리 안에서 다시 조금씩 반짝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작가 김도연 소개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강원대 불문과를 졸업했다. 1991년 강원일보, 199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2000년 중앙신인문학상, 2008년 허균문학작가상, 2011년 무영문학상, 2013년 강원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십오야월』 『이별전후사의 재인식』, 장편소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삼십 년 뒤에 쓰는 반성문』 『아흔아홉』 『산토끼 사냥』 『마지막 정육점』, 산문집 『눈 이야기』 『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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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