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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092)] 커트

[책을 읽읍시다 (1092)] 커트
이유 저 | 문학과지성사 | 252쪽 | 12,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이유의 첫 소설집 『커트』. 이유의 소설은 꿈을 이룬 그다음의 이야기다. 자면서 꿈을 꾸면 그 꿈이 그대로 현실이 되는 세계(「꿈꾸지 않겠습니다」), 자신의 꿈을 좇아 야츠로 떠난 남자(「지구에서 가장 추운 도시」), 공간이동 연구를 성공시킨 천재(「깃털」) 등, 모두 꿈을 꾸고 실제로 꿈을 이룬다. 여기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꿈을 이룬 후 그들에게 남은 것은 오히려 엉망이 되어버린 현실뿐이다. 꿈에서 본 대로 좋은 기업에 취직했지만, 과도한 업무에 짓눌리는 여진, 먼 도시로 모험을 떠나지만 사업에 완전히 실패한 ‘그’, 갈수록 보잘것없어지는 현실에 짓눌리는 조, 류, 박과 나의 이야기까지. 이 책은 꿈 너머에 더욱 끔찍한 현실이 있음을, 그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꿈을 좇지만, 또 다른 현실 혹은 악몽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꿈이 악몽이 되어버렸을 때, 악몽이 된 현실을 마주했을 때 이유 소설의 화자들은 거대한 공허와 두려움 앞에 놓인 스스로를 확인한다. 꿈에서 악몽으로, 악몽에서 또 다른 악몽으로 이어지는 무한 반복. “중단 없이 소급해가는 탐색이자 유한 너머의 무한 너머의 무한……처럼 제한 없이 확장되어가는 폐허”(양윤의), 그 속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

 

「빨간 눈」에서 나는 나의 복제인간을 주문한다. 마치 ‘거울’을 보듯, 내 앞에 놓인 너, 아니 나를 관찰한다. 이 세계에서는 작은 칩만 복사할 수 있다면, ‘나’를 무한히 만들어낼 수 있다. 분명 나지만, 어딘가 다른 ‘나’를. 「낯선 아내」 속 형사는 안면인식장애라는 병에 걸려, 사람들의 얼굴을 구분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병이 계속 진행되면 거울 속에 비친 자신도 못 알아보게 될 거”라는 의사의 말처럼, 그는 자신의 아내부터 알아보지 못한다. 때문에 그녀의 특징인 ‘작은 단발’에 ‘분’을 칠한 얼굴, 즉 “작은 단발 분통”이란 기호로서 그녀를 기억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은 누구라도 될 수 있는 간단한 기호로 남는다. 마주 놓인 거울 속에서 원본은 이미지의 이미지의 이미지로 복제되고, 지워져간다. 낯선 세계에서 진짜의 모습은 사라지고, 떠돌 수밖에 없는 그 공허함이 이유가 그리는 악몽 속에 자리하고 있다.

 

첫 소설집의 표제작 「커트」는 악몽의 세계를 끊어내는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는 작품이다. 작품 속 미용사 ‘나’는 “온갖 잡냄새로 시달리던 머리통”을 그야말로 한 방에 ‘커트’, 잘라내버린다. 악무한의 세계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의 썩은 내 나는 머리를 시원하게 잘라버림으로써, 숨통을 틔우고 다시 살아가게 한다.

 

이런 상징적인 행동은 「지구에서 가장 추운 도시」에서도 등장한다. 추운 도시 야츠에서 꿈을 모두 잃은 그는 동상으로 자신의 발가락 세 개를 잘라야 했다. 야츠에서 벗어나면서, 동시에 나쁜 기억을 떨쳐내듯, 신체의 썩은 일부를 덜어낸 것이다. 악몽이 반복될지라도, 썩어가는 부위를 조금씩 잘라내면서, 그 자리, 그곳에서 다시 한 번 발자국을 남기고 삶을 이어가도록 하는 것이 이유가 작품 속 화자들을 다루는 방식이다.

 

“악몽은 그치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도 쉬지 않고 “한 악몽에서 다른 악몽으로 이행하”(양윤의)며 기록을 남기는 것, 우리가 여기 살아 있음을 계속 증명하는 것만이, 우리 모두가 무한히 반복되는 악몽의 세계를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다.

 

 

작가 이유 소개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하고,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10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소각의 여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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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