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읍시다 (1118)] 히믈러의 요리사
프란츠 올리비에 지스베르 저 | 이선화 역 | 영림카디널 | 352쪽 | 13,000원
로즈는 흑해 연안의 고도(古都) 트레비존드 인근 시골 마을에서 아르메니아인 농부의 딸로 태어나 오스만 제국이 자행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로 가족이 몰살당하는 참극을 겪는다. 홀로 살아남은 그녀는 장관에게 바쳐져 하렘에서 성노예로 생활한다. 언젠가 반드시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갖은 굴욕을 견디며 버티던 중 상인에게 팔려 마르세유행 화물선에 몸을 싣는다.
마르세유에 도착한 후 탈출에 성공한 로즈는 부랑자 조직에 잡혀 구걸과 넝마주이로 밑바닥 인생을 전전한다. 노예 같은 생활에 지쳐 도망친 그녀는 프로방스 지방에서 전쟁 통에 자식을 모두 잃은 노부부에게 입양되어 그들의 농장에서 행복한 삶을 누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양부모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그녀의 후견인이 된 양부모의 사촌 내외에게 하녀처럼 혹사를 당한다. 때마침 양을 거세하는 작업 때문에 농장에 머문 청년과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 로즈는 파리에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레스토랑을 경영한다.
그녀는 모처럼 안락한 일상을 꾸려나가면서도 복수심을 버린 적이 없었다. 오히려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가차 없고 잔인한 복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 잊어라. 하지만 아무것도 용서하지 마라.’ 온갖 고난을 겪으며 그녀가 다짐하던 좌우명이었다. 로즈는 복수를 감행한다.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학살자를 미인계로 유인해 바다 한가운데서 수장시키고, 독버섯을 넣은 요리로 자신을 학대한 양부모 사촌 내외를 죽인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응징하라’는 성경 구절을 충실히 따라가며, 전문 킬러 못지않게 증거를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뒤처리도 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바로 그 순간에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가 그녀를 다시 짓밟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파리가 독일군에게 점령당하고 친위대 대장 하인리히 히믈러가 소문을 듣고 그녀의 식당에 찾아온다. 그가 앞으로 닥칠 대학살의 주역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로즈는 최고의 요리를 대접한다. 그녀의 미모와 요리 솜씨에 반한 히믈러는 함께 살자고 제안하지만, 로즈는 정중히 거절하고, 그는 언제든 자신을 찾아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그러나 유대인 남편과 아이들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자 다급해진 로즈는 히믈러를 찾아가 가족을 구해달라고 간청한다. 히믈러는 애인이 되어 자신을 위해 요리를 해주면 기꺼이 돕겠다고 말한다.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던 로즈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몸과 마음을 다해 히믈러의 비위를 맞추지만 가족을 구하는 데는 실패한다. 설상가상, 히믈러의 권유로 히틀러를 위해 저녁식사를 차린 자리에서 술을 받아 마시고 쓰러진 날 밤에 누군가에게 겁탈을 당하고 원하지 않는 아이까지 낳는다.
나치에게 아이를 빼앗기고 파리로 돌아온 로즈는 남편을 고발한 자를 찾아내 복수를 하고 미국으로 도피한다. 식당을 차리고 안정을 찾으려 애쓰던 로즈는 미국을 방문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부부의 제안으로 중국행을 결심한다. 중국 여행 중에 연하의 중국 청년과 달콤한 사랑에 빠진 로즈는 그와 결혼하고, 알바니아 대사관 요리사로 일하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 작은 행복도 문화대혁명의 파도에 휩쓸려 비극으로 막을 내리고, 그녀는 다시 복수할 자들의 목록을 써내려간다.
로즈는 20세기의 역사에 농락당했다. 대학살과 노예 같은 생활을 보내다 한순간 행복을 맛보지만 다시 지옥 같은 생활로 돌아가고, 겨우 행복을 다시 잡았다 싶으면 또 다른 불행이 그녀를 덮친다.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빼앗기고 방황하다 이제야말로 사랑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할 때 또 비극을 맛보았다.
그녀는 여느 보통 사람들처럼 체념하거나 좌절하는 희생자로 끝나지 않았다. 끊임없이 새로운 사랑을 찾았고, 요리로 위안을 얻었으며 복수극으로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녀에게 유일한 정의는 복수였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용서하려면 복수를 끝내야 한다고 믿는다. 오늘도 로즈는 마르세유 뒷골목을 어지럽히는 얼치기들을 혼내주기 위해 주머니에 권총을 품고 다닌다. 그녀는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직 할 말이 많고 할 일이 많다
작가 프란츠 올리비에 지스베르 소개
프랑스의 저명한 언론인이자 작가이다. 1949년 미국 델라웨어 주 윌밍턴에서 태어나 세 살 때 프랑스로 이주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저널리즘스쿨에서 3년 동안 교육을 받은 뒤, 프랑스 최대 시사 잡지 중 하나인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의 정치 담당으로 기자 생활을 시작해 워싱턴 특파원, 정치부 부장, 편집장을 역임했다. 일간지 [르 피가로] 편집장과 이사를 거쳐 시사 잡지 [르 포앵] 사장으로 근무하며 작가 생활을 병행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프랑수아 미테랑 혹은 역사의 유혹』, 『아드리앵 씨』, 『자크 시라크』, 『한 시대의 끝』, 『노인과 죽음』, 『목동의 죽음』, 프랑스 기자협회에서 주최하는 ‘앵테랄리에(Prix interallie)’ 문학상을 받은 『착각』 등이 있다. 『히믈러의 요리사』는 프랑스 언론연합에서 최고의 문화, 예술 작품에 수여하는 크리스탈 글로브상 최우수 소설상을 받았고, 전 세계 17개국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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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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