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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120)]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책을 읽읍시다 (1120)]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루이스 세풀베다 저 | 시모나 물라차니 그림 | 엄지영 역 | 열린책들 | 112쪽 | 10,8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는 세풀베다의 네 번째 창작 동화로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인 마푸체족 사람들이 기르던 개 아프마우의 이야기다. 마푸체족 사람들과 함께 자라면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던 아프마우는 어느 날 그들의 터전에 침입하여 강제로 땅을 빼앗은 낯선 외지인들의 손에 억지로 끌려가며 옛 주인들과 이별하게 된다. 이후 매일 학대를 당하며 불행한 나날을 보내던 아프마우가 어떤 남자가 남긴 흔적에서 잃어버린 추억 속의 냄새를 맡게 되며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다. 자연을 벗하며 살아가는 마푸체족 사람들과 그들의 충직한 개 아프마우와의 우정을 통해, 진실한 우정과 연대의 의미, 자연에 대한 사랑을 전하는 작품이다.


칠레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투사이자 그린피스의 환경 운동가로서 꾸준하게 활동해 온 경력만큼 라틴 아메리카의 대표적인 ‘행동하는 지성’인 세풀베다는 인류가 직면한 공통의 문제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을 많이 발표해 왔다. 그러나 그는 자칫 한없이 무겁고 장황해질 수 있는 이러한 주제들을 쉽게 읽히는 경쾌한 플롯 속에 효과적으로 녹여 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닌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이러한 재능은 특히 동화에서 크게 빛을 발한다. 쉽게 읽히는 간결한 줄거리의 우화적 내용 속에 놀라운 깊이의 시적 성찰들을 절묘하게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에 헤밍웨이 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심사위원들로부터 “강렬한 알레고리를 통해 우리 시대의 위기와 가치들을 은유적으로 의미심장하게 표현하는 동화를 썼다”는 찬사를 받았다.


이야기는 아프마우가 사슬에 묶여 있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아프마우’라는 이름이 있지만 이제 그를 그 이름으로 불러 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냥 ‘개’라고 불릴 뿐이다. 오래전 그의 이름을 불러 주던 사람들이 그들이 살던 터전에 침입해 온 낯선 외지인들에 의해 강제로 그 땅에서 쫓겨나야 했던 이후 아프마우 역시 소중했던 모든 것을 잃어버려야만 했다. 그의 이름까지도. 마푸체족 사람들과 이별하게 된 후 그 외지인들의 손에 억지로 붙들려 간 아프마우는 그들의 사냥개로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 매일 불행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늘 발길에 걷어차이고 채찍질을 당하며 새 주인들의 명령에 따라 도망자들을 추적하는 일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프마우의 새 주인들은 자신들이 잡아 가두고 있던 ‘인디오’ 한 명이 탈출하여 숲으로 도망쳤다고 말하며 그를 잡기 위해 아프마우를 풀어 추적시키도록 한다. 예민한 후각을 지닌 아프마우는 그 인디오가 남긴 흔적에서 ‘자신이 잃어버린 모든 것’의 냄새가 희미하게 풍겨 오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마푸체족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2500년 넘게 살아온 원주민 부족으로 스페인을 비롯한 서구 열강들이 라틴 아메리카를 침략해 왔을 때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항거했던 부족이다. 이들이 오랜 세월 일구어 온 터전을 백인 지주들과 목재 회사에 빼앗기고 강제로 그 땅에서 쫓겨나게 된 이후, 그 후손들은 3백 년 동안이나 격렬하게 저항하며 끊임없는 투쟁을 전개해 왔다. 현재는 정부의 탄압으로 칠레 남부의 한 지역에 몰려 살게 됐다. 특히 피노체트 독재 시절의 반테러법을 적용한 국가의 강경 진압으로 인해 수많은 마푸체족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조상들의 땅을 되찾기 위한 그들의 투쟁은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소수 민족들의 권익을 옹호하며 부당한 탄압에 맞서 온 세풀베다의 정신과 문학 세계는 이처럼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투쟁해 온 마푸체족 사람들의 저항 정신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또한 자연을 단순히 인간을 위한 자원이나 개발 대상으로 보지 않고 자연 속의 모든 생명들을 존중하며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마푸체족의 전통적인 자연관 역시, 환경 운동가로서 성실하게 활동하며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품들을 발표해 온 그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아프마우의 이야기는 단순히 옛 주인에게 충성을 바치는 일반적인 개의 이야기가 아니다. 마푸체족 사람들이 지어 준 자신의 ‘이름’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자신이 ‘잃어버린 모든 것’을 찾아 나서는 아프마우의 간절한 염원은 마푸체족 사람들이 그들의 가슴 아픈 역사 속에서 잃어버려야 했던 모든 것, 그 세계에 속한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 나가기 위한 상징적인 투쟁의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그것은 나아가 스스로를 자연과 대립하는 존재로 규정하고 자연을 착취하며 짓밟아 온 인간들 ‘외지인’들로 대표되는 인간들의 어리석은 태도를 비판하고 인간과 자연의 공동체적 기반을 되찾고자 하는 염원의 메시지 역시 담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신의 반영으로 세풀베다는 이 책의 장제목들을 비롯한 본문 곳곳에 다양한 마푸체어 단어들을 그대로 사용했다. 숲 ‘레무’, 태양 ‘안투’, 천둥 ‘트랄칸’, 들고양이 ‘위그냐’ 등 작품 곳곳에 녹아 있는 마푸체어 단어들은 모두 낯선 말들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세풀베다의 작은 할아버지가 마푸체족 꼬마아이들에게 도란도란 들려주던 옛날이야기 속 말들처럼 친숙하고 정겨운 느낌으로 읽힌다. 그리고 부록에는 ‘마푸체족 용어 해설’을 마련해 본문에 나온 마푸체어들의 뜻과 마푸체식 수 표현, 마푸체식 달력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는 이 작품 속에 담고자 했던 세풀베다의 간절한 마음, 마푸체족의 소중한 문화와 정신을 잃지 않고 지켜 나가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 소개


1949년 칠레에서 태어났다. 학생 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당시 많은 칠레 지식인들이 그러했듯 오로지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피노체트의 독재를 피해 망명했다. 그 후 수년 동안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여행하며 다양한 일을 하다가 1980년 독일로 이주, 1997년 이후에는 스페인으로 이주하여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2005년에는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방한하기도 했다.


1989년 살해당한 환경 운동가 치코 멘데스를 기리는 장편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을 발표하여 전 세계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은 첫 소설이지만 단번에 세계적 베스트셀러 순위를 차지했던 책으로 아마존 부근 일 이딜리오에 살고 있는 연애 소설을 읽기 좋아하던 한 노인이 침략자들에 의해 깨어진 자연의 균형을 바로하고자 직접 총을 들고 숲으로 떠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추리소설적 기법을 사용하여 정글의 매력을 한껏 살려내었으며 환경 문제·생태학에서부터 사회 비평까지 아주 다양한 주제를 다룬 바 있다.


이후 『소외』라는 작품을 통해서 아마존의 환경 파괴, 유대인 수용소, 세르비아 민족주의, 소시민의 일상 등과 같이 잊히고 소외된 것들에 대한 매력을 불러일으키는 서른다섯 편의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여러 가지 사회 불의에 맞선 인간의 삶과 그 존재의 존엄성에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또한 희곡 「살찐자와 마른자의 삶, 정열 그리고 죽음」으로 카라카스에서 열린 세계 연극페스티발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으며 독일 북부 방송국인 NDR에서 주는 최우수 외국인 작가상을 받았다. 1989년 발표한 『세상 끝으로의 항해』로 스페인 「후안 차바스」상을 수상한 바 있다.


작가는 1997년 스페인에 정착한 뒤에 해마다 「이베로 아메리카 도서 살롱」이라는 독자적인 문화 행사를 개최하고 있으며, 정치적 탄압으로 사라진 실종자들과 가족들의 아픔을 다룬 영화 「어디에도 없다」를 기획하여 직접 각본을 쓰고 감독하기도 했다. 그의 다른 작품으로는 전 세계에서 여러 도서 상을 수상한 『연애 소설 읽는 노인』, 누아르 형식의 『귀향』, 고래를 보호하는 환경 운동가들의 이야기 『지구 끝의 사람들』, 라틴아메리카의 자연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 감정의 나약함에 대한 풍자 『감상적 킬러의 고백』, 소설집 『외면』, 동화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준 고양이』, 2002년에 발표한 『핫 라인』, 우루과이 작가 마리오 델가도 아파라인과 함께 쓴 『그림 형제 최악의 스토리』(200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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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