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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169)] 시대의 소음

[책을 읽읍시다 (1169)] 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저 | 송은주 역 | 다산책방 | 272쪽 | 14,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2011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영국 문학의 제왕 줄리언 반스가 5년 만에 내놓은 신작 장편소설. 한 남자가 여행 가방을 종아리에 기대어둔 채 초조하게 승강기 옆에 서 있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남자는 바로 한때 천재 작곡가로 추앙받다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은 러시아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쇼스타코비치다. 그는 스탈린 정권의 눈밖에 나 음악을 금지당하는 것은 물론, 가족 앞에서 끌려가는 것만은 막으려고 집을 나와 매일 밤을 층계참에서 지새운다. 대숙청이라는 이름 아래 블랙리스트에 오른 친구와 동료들이 은밀히 사라져가는 하루하루, 그는 그 암흑의 시대를 어떻게 견뎌냈을까?

 

맨부커상 수상 이후 발표한 첫 소설로 “스스로를 뛰어넘었다”는 극찬을 받은 『시대의 소음』은 음악사에서 가장 극적인 일생을 살아간 거장의 내면으로 들어가 거대한 권력 앞에 선 힘없는 한 인간의 삶을 심도 깊게 그려낸 수작이다. 줄리언 반스는 치밀한 자료 조사와 섬세한 상상력으로 스탈린 치하 러시아의 모습을 생생하게 되살려내지만, 이는 여전히 억압과 부조리라는 소음에 시달리는 우리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스스로 겁쟁이가 될지언정 살아남아 자신의 음악을 남기고자 했던 한 예술가의 치열한 분투는 우리에게 용기와 비겁함에 관한 가장 강렬한 질문을 던지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소설은 제1차 세계대전부터 스탈린 사후의 소비에트 연방에 이르기까지 꽤 긴 세월의 여정 동안 주인공의 삶을 따라간다. “그가 아는 것은 그때가 최악의 시기였다는 것뿐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각 장은, 각 윤년마다(12년마다) 극적인 변화를 겪은 쇼스타코비치의 굴곡진 인생을 세 부분으로 나눠 생생하게 조명한다.

 

19세에 쓴 첫 교향곡으로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성공을 거듭하다 스탈린 앞에서 단 한 번의 연주 실수로 곡을 금지당하고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1장, 소비에트 대표단의 일원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융숭한 대접을 받지만, 쓰지도 않은 연설문을 읽으며 자신의 우상마저 자본주의의 하수인이라 비판해야 할 처지에 놓인 2장, 스탈린의 부름으로 명예를 회복하고 영예를 되찾았지만, 자신이 끝까지 거부하고자 했던 것, 즉 대숙청의 장본인 공산당에 가입할 것을 강요당하게 된 3장.

 

노년이 된 쇼스타코비치는 운전사가 모는 차의 뒷좌석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며 그간의 삶을 조용히 떠올린다. “늙어서 젊은 시절에는 가장 경멸했을 모습이 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라는 독백처럼 여섯 번의 스탈린상과 세 번의 레닌 훈장도 그에게 그저 “새우 칵테일 소스 속 새우처럼 명예 속에서 헤엄치는” 기분만을 느끼게 할 뿐이었다.

 

『시대의 소음』은 『플로베르의 앵무새』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와 달리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기점으로 확연히 달라진 반스의 스타일의 정점에 이른 작품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주인공 앤서니 웹스터가 노년에 이르러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가깝다”고 말하듯 『시대의 소음』은 극적인 서사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시적이고 철학적인 문장들로 살아남은 자로서 역사가 된 쇼스타코비치의 인생을 담담히 읊어낸다.

 

실제로 쇼스타코비치는 혁명이라는 주제에 일관되게 관심을 쏟았고 세 여자와 평범한 사랑을 했으며 특별히 의견을 내세우는 일이 없는 비교적 조용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그를 달리 부른다. 공산 체제의 어용음악가에서 시대의 반항아까지. 반스는 쇼스타코비치를 일신의 영광이나 안전을 위해 체제와 타협한 기회주의자로서가 아니라 치열한 내적 갈등 속에서 자신의 예술을 끝까지 추구한 인물로 그린다. 반스가 보기에 쇼스타코비치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타협을 하면서도 자신의 예술적 신념은 포기하지 않는 지극히 어렵고도 험난한 길을 간 인물이었고, 그를 위해 화려한 성공과 갈채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인간적 갈등과 번민에 시달려야 했다.

 

줄리언 반스는 『시대의 소음』에서 손쓸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운명 앞에 선 인간의 공포와 부조리를 비튼 아이러니라는 무기로 끝끝내 신념을 지켜내고 마는 용기를 자신만의 필치로 노련하게 그려내고 있다.

 

 

작가 줄리언 반스 소개

 

줄리언 반스는 전후 영국이 낳은 가장 지성적이고 재치 있는 작가이다. 만물박사와 같은 지식, 특히 그의 전문 분야인 예술사와 19세기 프랑스 문학 전반에 대한 묘사는 현란하기까지 하다(실제로 반스는 각종 서평지나 미술 잡지에 플로베르나 푸생의 「전문가」로서 기고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소설은 이런 정보들을 과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술과 문학에 대한 이러한 깊은 이해를 「작가」의 입장에서 직관적으로, 유머러스하게 요리하고 있다.

 

1946년 1월 19일 영국 중부의 레스터에서 출생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현대 언어를 공부한 반스는 1969년에서 1972년까지 3년간 『옥스퍼드 영어 사전』 증보판을 편찬했으며 이후 『뉴 스테이츠먼』과 『뉴 리뷰』 등의 잡지에 평론을 기고하는 한편 문예 편집자로도 일했다. 탄탄하게 다져진 공력을 드러낸 첫 장편 소설 『메트로랜드』로 서머싯 몸상(賞)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한 줄리언 반스는 이후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 『플로베르의 앵무새』, 『태양을 바라보며』,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 『내 말 좀 들어봐』, 『고슴도치』, 『잉글랜드, 잉글랜드』, 『사랑, 그리고』 『아서와 조지』 등의 장편소설과 단편집 『크로스 채널』, 『레몬 테이블』을 비롯해 수필집과 회고록을 여러 권 펴냈다.

 

역사와 진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들을 진지하고도 독특한 시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놀랍도록 흥미로운 작품들을 계속 발표하고 있는 반스는 영국, 프랑스, 독일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들을 연이어 수상함으로써 그 탁월한 문학적 성취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1986년 프랑스 메디치상, 같은 해 미국 문예 아카데미의 E. M. 포스터상, 1987년 독일 구텐베르크상, 1988년 이탈리아 그린차네 카부르상, 1992년 프랑스 페미나상을 수상했고, 1993년 독일의 FVS 재단의 셰익스피어상, 그리고 2004년에는 오스트리아 국가 대상 등을 수상했다. 프랑스 정부로부터는 이례적으로 세 차례에 걸쳐 1988년 슈발리에 문예 훈장, 1995년 오피시에 문예 훈장, 2004년 코망되르 문예 훈장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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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