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읍시다 (1183)]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마일리스 드 케랑갈 저 | 정혜용 역 | 열린책들 | 352쪽 | 12,800원
어느 날 새벽, 열아홉 살 청년 시몽 랭브르는 친구들과 서핑을 즐기고 돌아오던 길에 뜻밖의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뇌사 판정을 받았으나 아직 심장은 뛰고 있는 시몽. 그의 절망적인 상태를 마주한 시몽의 부모는, 죽어 가는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한 아들의 장기 기증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한다. 시몽의 ‘심장 이식’ 과정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숨 막히는 24시간의 기록이 펼쳐지는데…….
이 작품 속에서 시몽이 온전히 살아 있는 유일한 순간은 그가 친구들과 함께 새벽의 바닷가에서 신나게 서핑을 즐기는 장면이다. 소설의 첫 부분에서 한 챕터에 걸쳐 아름답고 생생하게 묘사되는 이 서핑 장면은 뒤에 그에게 드리워지는 죽음의 그림자 때문에 더욱 인상적이고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끊임없이 몰려오고 부서지는 파도, 그 속에 몸을 맡기며 뛰놀고 도약하는 시몽의 젊은 육체, 그 움직임들의 역동적인 생명력이, 뒤이어 갑작스럽게 뇌사 판정을 받고 코마 상태에 빠진 그의 모습과 너무도 극명하기 대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뇌사’라는 의학적 사망 선고와는 달리, 아직 심장이 뛰고 있는 시몽의 육체는 여전히 젊고 아름답고 생기가 넘친다. 당장이라도 깊은 잠에서 깨어나 평소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고, 걷고, 뛰고, 움직일 것만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의 가족들은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 슬픔을 충분히 묵새길 틈도 없이 죽어 가는 다른 생명을 위한 아들의 장기 기증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 고통스러운 결정 과정, 그리고 마침내 진행되는 장기 적출과 이식 수술 절차에 이르기까지, 소설 속의 이 모든 과정이 단 하루 안에 숨 가쁘게 진행된다. 이처럼 이 작품의 줄거리 자체는 지극히 짧고 단순하지만, 극한의 시간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이식 과정 속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질문과 딜레마들, 슬픔과 절망들, 일말의 위로와 희망들을 이 작품은 농밀하고 섬세하게 기록해 나간다.
이 작품 속에는 시몽의 죽음을 둘러싼 다양한 주변 인물들이 등장한다. 시몽의 가족과 연인, 이식 과정에 참여하는 의사와 간호사 등 저마다의 삶을 가진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상황에 개입하며 각자의 시각으로 시몽의 죽음과 삶을 조명한다. 특히 시몽의 부모인 숀과 마리안의 의식의 흐름을 보여 주는 대목들은 가슴이 저밀 만치 먹먹한 공감과 깊은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다. ‘자식의 죽음’이라는 사무치게 사랑하는 대상의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불행 앞에 마주한 두 사람이 통과해야만 하는 그 암흑 같은 시간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질문이며 삶을 뒤흔드는 궁극적인 성찰들 속으로 독자들을 끌어다 놓는다.
이처럼 죽음은 단지 그 죽음의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와 관계를 맺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다. 때문에 죽은 자에 대한 ‘애도’의 문제 역시, 죽은 이를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를 아끼고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하나의 죽음과 그 죽음이 살린 또 하나의 생명에 대해 말하는 한편, 남은 이들이 죽은 이를 위로 속에서 떠나보내는 애도의 문제에 대해서도 깊이 다루고 있다. 시몽의 사고 소식을 접하고부터 모든 이식 수술 절차가 완료되기까지, 죽은 이와 남은 이들을 위한 진정한 애도를 완수하는 작업은, 다른 생명을 살리기 위한 장기 이식 절차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것만큼이나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핵심 화두이다.
또한 이식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시몽의 삶은 그를 아는 주변 인물들의 기억 속에서 다양한 이미지로 되살아나고 재구성되며, 이 작품을 통틀어 한 편의 모자이크화처럼 아름답게 엮이며 완성되어 간다. 그것은 그 자체로도 하나의 긴 애도의 과정이다. 그렇기에 시적인 문체로 리듬감 있게 이어지는 이 작품의 문장들은 마치 전장에서 쓰러진 그리스 영웅의 삶과 죽음을 회고하며 노래하는 한 편의 서사시 같은 여운을 주기도 한다.
작가 마일리스 드 케랑갈 소개
진지한 성찰과 강렬하고 시적인 문체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화제를 모으며 현대 프랑스 문단을 뒤흔들고 있는 소설가. 1967년 프랑스의 툴롱에서 태어나 르아브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루앙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후 파리에서 사학, 철학, 민족학을 공부했고, EHESS(프랑스 사회 과학 고등 연구원)에서 1년간 수학했다.
2000년에 첫 작품 『구름 낀 하늘 아래를 걷다』를 출간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2010년에 발표한 『다리의 탄생』으로 메디치상과 프란츠 헤셀상을 수상했으며, 2012년에 『동쪽으로 뻗은 접선』으로 랑데르노상을 수상했다. 2014년에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를 발표하면서 오랑주 뒤 리브르상, 웰컴 북 문학상 등을 비롯한 전 세계 10여 개 문학상을 휩쓸면서 더욱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은 출간되자마자 언론과 평단의 극찬을 받았으며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면서 그녀를 오늘날의 프랑스 문단의 대표 작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해 주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밖에 『떠도는 삶』, 『꽃이나 화환은 사양합니다』, 『케네디 해안 절벽로』, 『이 밤 이 순간』, 『식탁의 길』 등의 작품들 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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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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