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읍시다 (1194)] 불량 변호사
존 그리샴 저 | 강동혁 역 | 문학수첩 | 552쪽 | 14,000원
스물아홉 권의 작품이 모두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베테랑 작가의 노련한 문장에 법정 소설의 대가다운 치밀함과 풍부한 법률 지식이 더해진 이 소설은 법의 사각지대로 내몰린 여러 피고인들과 함께 거침없이 전진하는 거리의 변호사 서배스천 러드의 ‘불량스러운’ 행보를 통해 익숙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사회와 법 제도에 대한 사고를 과감히 전복시킨다. 그가 살고 있는 시티, 그가 매일같이 드나드는 법정, 그가 내달리는 도로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도시 한복판에서 사기, 납치, 유괴, 테러, 탈옥, 살인을 일삼는 악당들을 변호하며 사력을 다해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몸을 던지기 때문이다.
‘별난’ 변호사 서배스천 러드는 누구나 ‘꺼리는’ 소송을 전담한다. 마약 중독자, 악마를 숭배하여 여자아이 두 명을 죽였다는 문신을 한 아이, 사악한 연쇄 살인범 등. 서배스천은 왜 이런 사람들을 변호하는가? 이타적이라거나 희생적인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그저 부조리한 현실을 아무렇지 않게 용납할 만큼 빳빳한 심장을 가진 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사람이 공정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실제로 부당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재선을 꿈꾸며 표 얻는 데만 혈안이 된 시장, 목적을 위해서는 납치, 유괴도 불사하는 경찰 간부, 작전이라는 미명 아래 선량한 시민을 총살하고도 법을 방패 삼아 형사 소송 면제권을 주장하는 주 정부와 경찰 조직, 개인의 이기심을 채우다 못해 폭파와 살인, 탈옥을 감행하는 희대의 범죄자, 위선적인 변호사를 추종하며 서배스천 러드를 조롱하는 시민들….
이토록 ‘막장’에 치닫는 상황에서 변호사가 취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 아니 마지막 선택은 똑같이 ‘막장’으로 내달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 거리의 변호사는 ‘불량 변호사’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표면적으로 서배스천 러드의 적수는 ‘정의 수호’의 가면을 쓰고 ‘권력 수호’를 일삼는 사법 제도다. 그는 주 정부, 검사, 경찰 등 관료 체제와 권력에 맞서 거리의 사람들을 변호한다. 그러면서도 본인이 어째서 형사 변호인이 됐는지 아연해한다.
러드가 변호하는 형사 피고인은 ‘누가 보아도’ 명백한 범죄자다. 마약 중독에 아동 성추행범으로 몰린 십 대 아이, 교도소 철창 안에서도 맘껏 핸드폰을 사용하며 사업을 운영하던 중에 유죄판결을 받자 판사를 살해한 무법자 링크, 이종 격투기 경기에서 판정패하자 정신줄을 놓고 심판을 두들겨 패 살인 혐의로 기소된 전도유망한 격투기 선수 타데오, 마약 밀매범을 잡겠다며 새벽 3시 정각에 기습한 여덟 명의 경찰 특공대를 집에 쳐들어온 범죄자로 오인하여 발포하는 바람에 살인미수 혐의로 붙잡힌 더그 렌프로…. 여기에 납치당한 딸아이를, 아니 그 시체를 찾아 내부 범죄까지 마다 않는 경찰 부국장 켐프까지.
다섯 개의 개별적인 사건은 결국 하나의 대상을 향해 동일한 문제의식을 던지며 한 가지 씁쓸한 의문을 남긴다. 정의를 수호하는 법과 도덕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법은 단지 의회가 법의 집행자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일 뿐인가? 범죄자도 살인자도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만고의 진리는 실제로 구현되고 있는 걸까? 법, 도덕, 원칙, 변호사의 묵비의무와 인간의 양심…. 도덕적 기준이 흐려지고 사법적 경계가 허물어지는 가운데 누가 악당이고 누가 악당이 아닌지 종잡을 수 없다.
거짓말쟁이들을 증오하는 그는 때로 ‘진짜 살인마’를 잡기 위해 증거를 얻고자 폭력도 불사한다. 여덟 명의 증언 녹취를 하는 데 하루 종일 매달리고, 배심원의 주목을 끌기 위해 짐짓 연기하고, 법정 모독죄로 하룻밤을 구치소에서 보내고, 검사와 판사를 협박한다. 유죄가 분명한데도 죄를 인정하지 않는 피고인을 구하기 위해 은밀한 형량 거래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 형량 거래를 통해 성 노예 인신매매단에 끌려간 여성들을 숱하게 구해내는 아이러니라니. 언뜻 비정상적이고 부당해 보이기까지 한 그의 변호는 실제로는 전혀 부당하지 않다. 그는 단지 부당한 법과 체제에 부당한 방법으로 맞서는 것일 뿐이다. 단, 그가 늘 전투적인 태세만 취하는 것은 아니다.
각별히 아끼는 이종 격투기 선수 타데오 자파타의 우발적 살인을 변호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의리, 그의 유일한 직원이자 경호원이며 조수이고 막역한 친구인 파트너를 향한 우정, 아들 스타처를 향한 애틋한 부정과 사랑은 이 반항적인 불량 변호사 서배스천 러드의 온정적인 인간미를 보여 준다. 아들을 두고 전처와 벌이는 면접 교섭권 싸움에서도 그는 좋은 아버지를 자처하지 않으나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로 남고 싶어 한다. 변호사로서, 아버지로서, 한 남자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의 러드의 삶은 처절해 보일 때도 있다.
이해관계가 다른 다채로운 인물을 작품 전반에 골고루 배치하여 부조리한 현실을 입체적으로 보여 주는 동시에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도 흔히 마주할 수 있는 낯익은 현실을 보여주는 이 소설은 생동감과 속도감 있는 문장으로 시원하고 통렬한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남겨줄 것이다.
작가 존 그리샴 소개
1955년 아칸소(Arkansas) 주의 존스보로에서 태어난 존 그리샴은 헐리우드 대배우들과 감독들 사이에서 흥행의 보증 수표로 가장 신뢰 받는 원작자 중 한 명이다. 1981년 미시시피 법대를 졸업한 뒤 사우스헤븐 법률사무소에서 근 10년간 근무하며 범죄 변호와 개인 상해 소송을 전담했다. 1983년에는 주 의회 하원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그는 미국 남부의 테네시 주에서 평범한 변호사 생활을 하던 중 소설가로 변신했다. 어렸을 때 꿈은 또래의 그 모든 아이들처럼 메이저리그 홈런왕을 동경하는 프로야구 선수였다지만, 프로 선수로서 마땅한 경력을 쌓기에는 스포츠를 전문적으로 감당할 능력이 없음을 판단하고, 법대로 진로를 돌렸다고 전해진다.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그는 정치와 법이라는 메커니즘에 대한 탁월한 이해를 오락화하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펼쳐보인다. 존 그리샴 자신이 변호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항상 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서술되며, 또한 법을 공부한 사람답게 치밀하고 탄탄한 구성이 돋보인다. 생명을 존중하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이 어느새 인간의 자유와 개성을 훼방 놓는 위압적인 존재가 되어 악용되고 있는 현실에서, 법을 만드는 사람들, 집행하는 사람들, 법 질서에 편승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의 사람들, 돈과 권력을 위해 법을 담보로 이용하는 사람들을 통해 그리샴은 바로 인간의 문제를 고발한다. 여기에 독자의 시선을 휘어잡는 빠른 사건 전개와 팽팽한 문체가 더해져 독보적인 법정 스릴러의 영역이 구축된다.
어느 날 법정에서 강간의 희생양으로 법정에 오른 12세 소녀의 암담한 판결을 목도한 후, 만약 그 소녀의 아버지가 비인간적인 판결에 불복해 법정에서 범죄자를 직접 처단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 스토리를 구상하다가 발표된 소설이 그리샴의 처녀작인 『타임 투 킬』이다. 1989년에 발표된 『타임 투 킬』은 신인 작가의 첫 작품이라고 치기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탁월한 작품성과 완성도로 장차 대형 베스트셀러 작가의 가능성을 보여 준 작품이다. 하지만 신인작가의 작품이 그렇듯, 이 작품 또한 초판 5000부로 출간된 것이 전부였다.『타임 투 킬』을 계기로 그리샴은 본격적인 전업작가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그가 처녀작을 탈고한 즉시 작업에 들어간 작품이 『The Firm』이다. 단어가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던지 국내 출시명은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이었다. 그리샴은 이 책으로 91년 전미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저력을 과시하고, 60만 달러의 거액에 판권을 파라마운트사에 넘기며 본격적으로 헐리우드에 입성하게 된다. 이듬해인 92년에 『펠리컨 브리프』로 전미 베스트셀러 차트 2년 연속 1위를 차지하면서, 그리샴은 『타임 투 킬』에서 보여 준 가능성을 현실로 입증하기 시작한다. 그 후 해마다 한 작품씩, 93년 『의뢰인』, 94년 『가스실』, 95년 『레인메이커』, 96년 『사라진 배심원』, 97년 『파트너』, 98년 『거리의 변호사』, 99년 『유언』 등을 발표해 명실공히 전세계 대형 베스트셀러 작가 군단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1996년 이후 전업작가의 길로 접어들며 변호사는 그만 두었다. 글을 쓰지 않을 때의 그리샴은 마을 지인들과 함께 선교 여행을 떠나거나, 유년기의 꿈인 메이저리그의 꿈을 실현시키고 있다. 자신의 사유지에 6개의 조그마한 볼필드를 운영하며 350여명의 아이들이 26개의 리틀야구리그로 참가하는 야구단의 단장으로 행복한 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이 외의 저서로는 『톱니바퀴』『관람석』『크리스마스 건너뛰기』『펠리컨 브리프』『불법의 제왕』『하얀집』『소환장』『최후의 배심원』『브로커』『유언장』『관람석』『어필』 『시어도어 분』『포토 카운티』『속죄 나무1, 2』 등이 있다. 2003년엔 그의 1996년작 소설 <사라진 배심원>을 원작으로 한 영화 <런어웨이>가 제작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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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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