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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207)] 폭스파이어

[책을 읽읍시다 (1207)] 폭스파이어
 
조이스 캐롤 오츠 저 | 최민우 역 | 자음과모음 | 452쪽 | 14,8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폭스파이어』는 조이스 캐롤 오츠의 작품 가운데 가장 강렬한 이야기로 꼽힌다. 폭력과 복수가 난무하는 이 소설의 가장 뛰어난 힘은 정교함뿐만 아니라 폭스파이어 소녀들 사이의 연대감에 대한 놀라운 연출에 있다. 이 소설을 통해 조이스 캐롤 오츠가 미국 소설의 정상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은 미국 뉴욕 주 북부 소도시를 배경으로 쉰 살의 매디가 사춘기 시절을 떠올리며 시작된다.


가난한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 한동네에서 자란 매디와 렉스는 다른 세 명의 소녀와 함께 비밀 조직 ‘폭스파이어’를 결성한다. 폭스파이어는 그들의 상징인 붉은 불꽃을 문신으로 새기며 입회식을 거행한다. 비록 입회식은 진지하게 시작해 엉망진창으로 흐르지만 렉스는 첫 번째 계획을 발표한다. 학교 수학 선생에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자는 것이다. 수학 선생은 멤버 중 한 명인 리타에게 부적절한 관심을 표현하고 자주 그녀를 조롱했으며 훈육실에서 그녀의 가슴을 만지기도 했다. 폭스파이어는 선생의 차에 페인트로 “나는 수학을 가르치고 가슴을 만진다”고 써놓는다. 선생의 비밀은 폭로되고 그는 학교를 떠난다. 첫 번째 모험이자 복수는 비폭력적이며 성공적이었다.


첫 성공에 용기를 얻은 폭스파이어는 더욱 대담하게 행동한다. 그들의 초기 활동은 작은 시설물들을 파괴하거나 가게 물건을 조금 훔치는 정도였지만 매디가 삼촌에게 성폭행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삼촌을 심하게 폭행하기에 이른다. 어느덧 폭스파이어는 자신들도 모르게 폭주하며 필연에 가까운 파국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고 있었다.


조이스 캐롤 오츠는 이러한 폭스파이어의 생성과 성장, 붕괴 과정을 ‘불타는 얼음’처럼 그려낸다. 문장은 마른 들판에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불길마냥 타오르는데 시선은 냉정하다. 예리한 관찰에는 상실감과 향수가 배어 있다. 한여름 작렬하는 태양처럼 타올랐던 시절을 반추하듯.


작가 오츠와 가장 가까운 인물은 작품 속 화자인 매디다. 그녀는 폭스파이어의 일원이지만 한편으로는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인물이기도 하다. 오히려 작품의 심장은 렉스다. 소설의 피는 그녀에게서부터 돌기 시작한다. 강한 의지로 뭉친 이 놀라운 소녀는 빼어나게 형상화된 캐릭터가 그렇듯 몇 개의 단어로 요약되기 어렵다. 렉스가 등장할 때마다 아이와 어른, 소녀와 여성, 이성과 광기, 통찰과 무지, 분노와 행복, 사랑과 증오가 충돌하며 불꽃을 튀긴다.


현대 미국 문학을 이끄는 대표적인 작가 조이스 캐롤 오츠는 1964년 등단하여 다양한 주제와 장르 문체를 넘나드는 작품으로 평단과 대중의 고른 찬사를 받아왔다. 50편의 장편, 1000여 편의 단편을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시, 에세이, 평론 등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순문학과 범죄문학, 공포문학, 청소년문학 등이 서가에 고루 꽂혀 있는, 존재 그 자체가 문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작가다. 오츠의 대표작들은 그동안 꾸준히 번역되어왔고, 여성, 폭력, 광기, 사회, 가족 등의 주제를 탐구하는 작품세계 또한 이제는 널리 알려져 있다.


오츠가 1993년에 발표한 스물두 번째 장편 『폭스파이어』 역시 그녀의 문학적 개성이 선명한 소설이다. 세상, 특히 남성이 휘두르는 폭력에 맞서 단결한 소녀들이 자신만의 규율을 세우고 반격에 나서 승리를 거두지만 결국 한계에 봉착하여 붕괴한다. 한계는 외부에서 부과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부에서 자라난 것이기도 하다. 외부 세계는 가차 없고 소녀들은 서툴고 미숙하다. 그리하여 소설에서는 소녀들의 열정과 시대의 냉정함이 절묘하게 맞서며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작가 조이스 캐롤 오츠 소개


1938년 미국 뉴욕 주에서 태어났다. 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오츠는 장학금을 받아 시러큐스대학에 진학했으며 「구세계에서」로 대학 단편소설 공모에 당선됐다. 1964년 『아찔한 추락과 함께』로 등단한 이후 50편이 넘는 장편과 1000편이 넘는 단편을 비롯해 시, 산문, 비평, 희곡 등 거의 모든 문학 분야에 걸쳐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왔으며 ‘미국의 가장 위대한 동시대 작가’로 꼽힌다. 위스콘신대학에서 문학 석사학위를 받고 디트로이트대학, 프린스턴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쳤으며, 2015년부터는 프린스턴대학에서 ‘로저 S. 벌린드’ 특훈교수로 문예창작을 가르쳤으며 1997년부터 2016년까지 존 사이먼 구겐하임 기념 재단 이사로 재직했다.


1967년 「얼음의 나라에서」, 1973년 「사자(The Dead)」로 오헨리상을 두 번 받았고, 미국의 다양한 사회경제 집단을 다룬 ‘원더랜드 4부작’ 가운데 『그들』(1969)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했다. 1996년 『좀비』로 브램스토커상, 2005년 『폭포』로 페미나상 외국문학상을 받았다. 『검은 물』(1992), 『내 삶의 목적』(1994), 『블론드』(2000)로 퓰리처상 후보로 지명된 바 있으며, 특히 2004년부터는 영미권의 가장 유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오츠는 부조리와 폭력으로 가득한 20세기 후반 미국의 실상을 예리하게 포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78년부터 미국 학술원 회원으로 2003년 문학 부문의 업적으로 커먼웰스상과 케니언리뷰상을, 2006년에는 시카고트리뷴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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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