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121)] 우리는 사랑일까
알랭 드 보통 저 | 공경희 역 | 은행나무 | 399쪽 | 12,5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너를 사랑한다는 건』과 함께 '사랑과 인간관계 3부작'이라 불리는 알랭 드 보통의 초기작. 자전적 경험과 풍부한 지적 위트, 남녀의 심리를 섬세하게 파고드는 서술로 '알랭 드 보통 식 연애소설'을 선보이며 독자들을 매료시킨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여주인공의 시선으로 사랑의 과정을 풀어내며 다시 한 번 수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낸다.
당신이 꿈꾸는 가장 낭만적인 로맨스
이 책의 주인공 앨리스는 사랑에 대한 갈망과 환상을 품고 사는 20대 중반의 커리어우먼이다. 한창 사랑에 대한 갈망과 환상으로 가슴 설레고 있을 독자들에게 앨리스는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놓은 듯, 닮은 존재이다. 따라서 앨리스의 입장에서 열렬히 공감하며, 마치 마법과도 같이 그녀의 로맨스에 몰입할 수 있다.
작가는 앨리스가 꿈꾸는 낭만적 사랑과 그녀의 남자친구 에릭 사이에서 벌어지는 아슬아슬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이상적 사랑이 어떻게 현실 속에서 성숙한 사랑으로 완성되어 가는가를 간명하고도 유쾌하게 보여준다.
사랑의 권력은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상대가 당신과 같이 있으면 정말 편안하다고 말해도, 대꾸도 없이 TV 프로그램으로 화제를 바꿀 수 있는 쪽에 힘이 있다. 다른 영역에서와는 달리, 사랑에서는 상대에게 아무 의도도 없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강자다. 사랑의 목표는 소통과 이해이기 때문에, 화제를 바꿔서 대화를 막거나 두 시간 후에나 전화를 걸어주는 사람이, 힘없고 더 의존적이고 바라는 게 많은 사람에게 힘들이지 않고 권력을 행사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포물선과도 같은 사랑의 경과를 보여준다. 특히 우리가 연애를 하면서 겪게 되는 소소한 심리적 갈등과 연애관에 대해 기후와 건축, 쇼핑, 종교 등 로맨스와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다양한 주제들을 끌어내 분석하고 정의 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장은 막연하거나 애매하지 않으며 충분한 설득력을 지닌다. 때문에 독자들은 그들이 자신의 사랑을 성숙시켜 나가는 과정을 통해 한 번쯤 경험해 봤음직한 낭만적 연애의 실체와 허상을 발견하고, 이와 동시에 깊은 철학적 사유의 즐거움마저 얻을 수 있다.
지적 유희와 통찰력을 지닌 포스트모더니즘적 구성
이 소설은 단순히 낭만적 사랑을 꿈꾸는 이들로 하여금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낭만주의 신파를 예찬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오히려 폭넓은 지적 유희와 시대를 뛰어넘는 놀라운 통찰력, 그리고 이러한 무게감을 덜어내는 신세대적 재치가 물씬 풍기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성향을 고수한다.
알랭 드 보통은 이 소설 속에서 앨리스를 ‘사랑의 순결한 속죄양’을 꿈꾸는 현대판 낭만주의자로 등장시킴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그녀가 처한 입장에 공감하며 그녀의 사랑과 비극적이고도 한편으론 낭만적인 결말에 마음 졸이도록 만든다. 또한 문학과 예술사로부터 온갖 다양한 낭만주의 요소를 이끌어내 그녀가 꿈꾸는 갈망과 이상에 오색찬란한 아우라를 창조해낸다. 하지만 한편으로 작가는 냉철한 거리를 유지하며 아주 느린 걸음으로 ‘사랑의 서사시’를 진전시킨다.
이렇듯 말랑말랑한 러브스토리에 플라톤, 탈레스, 헤겔 등 철학 대가들의 사상과 오스카 와일드, D. H. 로렌스, 플로베르 등 문학가들의 정의, 그리고 앤디 워홀의 예술적 의미가 어떻게 절묘하게 녹아 있는지 엿보는 재미만으로도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즐거움은 무한하다.
알랭 드 보통은 이 책을 통해 포물선과도 같은 사랑의 경과를 보여준다. 그는 우리가 어떻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발전시키며, 연애라는 과정을 통해 어떤 심리적 변화와 갈등을 경험하게 되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기후와 건축, 쇼핑, 종교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펼치는 그의 '연애 이야기'는 사랑에 관한 색다른 접근과 함께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의 시간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작가 알랭 드 보통 소개
196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에 능통하다. 알랭 드 보통은 스물세 살에 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여러 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의 책들은 현재 2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2003년 2월에 드 보통은 프랑스 문화부 장관으로부터 예술가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명예인 예술문화훈장을 받았으며, 「슈발리에 드 로드르 데자르 에 레트르」라는 기사 작위를 받았다. 같은 해 11월에는 츠베탕 토도로프, 로베르토 칼라소, 티모시 가튼 애쉬, 장 스타로뱅스키 등과 같이 유럽 전역의 뛰어난 문장가에게 수여되는 「샤를르 베이옹 유럽 에세이 상」을 수상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 내용에 바탕을 둔 TV 다큐멘터리 제작에 오랫동안 관여해왔다. 『프루스트는 어떻게 당신의 삶을 바꿨나』는 BBC 영화제작팀에서 랄프 파인즈와 펠리시티 켄들을 주연으로 하여 제작됐다.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은 영국과 미국에서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동시에 영국에서 「철학: 행복으로의 안내」라는 제목으로 6부작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방영됐다.
그의 대표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놀랍도록 기이한 첫 만남에서부터 점차 시들해지고 서로를 더이상 운명으로 느끼지 않게 되는 이별까지, 연애에 대한 남녀의 심리와 그 메카니즘이 철학적 사유와 함께 흥미진진하게 기술되어 있는 작품이다. 알랭 드 보통은 미국에서는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는데, 20대의 재기와 30대의 깊이가 뛰어난 조화를 이룬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로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새로운 글쓰기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 책은 전기 형식으로 문학을 다루고 있지만 결국은 저자 특유의 유머와 상상력으로 버무린 인생학 개론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비롯한 프루스트의 편지와 메모들을 인용하며, 프루스트가 겪은 잡다한 사건들은 물론 사생활까지도 인정 사정 없이 들춰낸다.
그는 또한 일상적인 주제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으로 철학의 대중화를 시도해왔다.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에서는 철학사 속에서 일상적인 삶의 문제를 다룬 가장 탁월한 여섯 명의 정신에 눈길을 돌린다. 그리하여 돈의 결핍, 사랑의 고통, 부당한 대우, 불안, 실패에 대한 공포와 순응에의 압력 등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에 대해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세네카, 몽테뉴, 쇼펜하우어, 니체의 처방전이 소개된다.
2009년에 출간된 『일의 기쁨과 슬픔』은 로켓 과학자에서 비스킷 공장 노동자, 유조선 일등 항해사부터 택배 배달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그는 특유의 위트와 통찰력을 바탕으로 자주 도망치고 싶은 이 ‘일’의 세계가 결국 우리 삶에 근본적인 ‘의미’를 주는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런던 히드로 공항에 상주하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담은 『공항에서 일주일을』은 우리가 볼 수 없었던 공항의 다양하고 매력적인 면면들을 흥미롭게 들려준다.
2012년에는 한국의 젊은 작가 정이현과 ‘사랑, 결혼, 가족’이라는 공통의 주제 아래, 각각 젊은 연인들의 싱그러운 사랑과 긴 시간을 함께한 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장편소설을 집필했다. 2010년 4월부터 2012년 4월까지 꼬박 2년 동안, 작가들은 함께 고민하고, 메일을 주고받고, 상대 작가의 원고를 읽고, 서울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원고를 수정하여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의 기초 한 남자』를, 정이현은 『사랑의 기초 연인들』을 내놓는다.
이외에도 유머와 통찰력으로 가득한 철학적 연애소설 『우리는 사랑일까』,『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여행에 관한 에세이『여행의 기술』, 독특한 문학평론서 『프루스트 선생에게 물어보세요』, 불안에 관한 인간의 상념을 고찰한 에세이『불안』, 다양한 건축물을 조명한 『행복의 건축』 등의 저서가 있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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