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122)] 섬
빅토리아 히슬롭 저 | 노만수 역 | 문학세계사 | 576쪽 | 15,6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경과 부드럽고 인간적인 매력이 가득한 크레타 문화 그리고 나병환자들. 이 세 가지의 특수한 환경이 이 소설을 독특한 세계로 이끈다. 작가 빅토리아 히슬롭이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대로 이 소설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크레타 섬 점령과 레지스탕스 운동 등 역사적 사실과 서정적 상상력이 자연스레 녹아 있다.
검은 눈에 흑발의 아름다운 영국 아가씨 알렉시스는 고고학자인 아버지와 크레타 섬 출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박물관에서 일하는 이 스물다섯 살의 아가씨는 몇 년째 사귀고 있던 푸른 눈에 금발인 남자친구 에드와 조금씩 서로 어긋나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하나의 의문을 갖는다. 엄마는 그 어린 나이에 아빠가 자신의 운명의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엄마가 자신의 뿌리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까닭이 궁금해진 것이다. 엄마는 도대체 어떤 소녀시대를 보냈을까? 알렉시스는 엄마의 고향인 크레타 섬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외할머니의 친구인 포티니에게서 숨겨진 가족사의 충격적인 비밀을 듣게 된다.
『섬』 탄생의 과정
작가는 2001년 가족들과 그리스의 크레타 섬에서 휴가를 보냈다고 한다. 크레타는 호메로스 같은 시인의 입으로 전해져 오는 미노스 왕과 크로노스 미궁의 미노타우로스,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의 전설, 그리고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고향 등으로 익숙한 곳이다.
크레타의 플라카 마을에서 헤엄을 쳐서도 건너갈 수 있을 것처럼 가까운 스피나롱가 섬을 작가는 작은 배를 타고 처음으로 방문했다. 당시에는 버려진 집들과 상점, 교회당과 배회하는 고양이, 제라늄과 허브로 가득 찬 항아리들밖에 없는 그리스의 여느 평범하고 작은 시골 마을처럼 보였다. 한때는 번성했던 공동체의 흔적인 작은 교회당과 공동 세탁장을 걸어서 지날 때 미풍에 커튼이 펄럭이고 덧문들은 삐걱댔다. 동행했던 친구인 피부과 의사가 나병은 병세가 때때로 아주 천천히 진행되기에 그런 환자는 정상인처럼 살 수 있다고 얘기해주었다. 순간, 작가는 영감이 떠올랐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단지 여행만으로 끝낸다면 자신의 소명을 저버린 것 같았다. 그 후 『섬』이라는 소설을 쓰기 위해 스피나롱가 섬을 수십 차례 방문했다.
스피나롱가와 플라카
스피나롱가는 크레타 섬 북쪽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섬으로 지도상에서는 작은 점으로 표시될 만큼 작은 섬이다. 지금은 인접한 엘룬다에서 출발하는 배가 1903년부터 1957년까지 나병환자 요양소로 이용된 이 섬을 찾는 수천 명의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플라카는 나병환자 요양소와 전혀 관계가 없는 어촌이지만 사실상 스피나롱가와 플라카 마을은 꽤 많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밝혀졌다. 한때 그리스의 많은 나병환자들이 스피나롱가로 추방돼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을 해야 했다.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 의학적 연구 결과 나병의 원인이 박테리아 감염 때문이며 치료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야 두려움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스피나롱가는 더 이상 ‘나병환자들의 섬’ 혹은 ‘감옥’이라는 별칭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스피나롱가 섬이 나병환자 수용소의 역할을 하던 50년 동안, 플라카의 주민들은 나병환자들을 두려워하면서도 그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며 생계를 유지해왔다. 현재 스피나롱가 섬은 방치되어 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섬에는 섬사람들의 고통스러우면서도 일반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던 삶을 상기시켜 주는 무거운 메아리만이 남아 있다.
작가 빅토리아 히슬롭 소개
빅토리아 히슬롭은 1959년 영국 브롬리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공부했고 출판사 근무를 거쳐,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독립했다. 작가의 첫 번째 소설인 『섬』은 2005년 출판 당시 《The Sunday Times》 페이퍼백 차트에서 8주간 연속 1위에 오르고, 영국에서만 백만 부가 팔리는 반향을 일으켰다. 2006년에는 『해리포터』 『연을 날리는 아이』 『다빈치 코드』를 누르고 영국 아마존, 《가디언》 등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빅토리아 히슬롭은 2007년 11월에 「브리티쉬 북 어워드」 신인상을 수상했고, 영국의 텔레비전 독서 프로그램 Richard & Judy Book Club의 「여름 독서 경연 작품」으로 선정됐다. 2009년에는 《The Times》가 21세기 10년을 빛낸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뽑았다. 2009년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Costa Book Awards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작가는 거액을 제시하며 영화로 만들자는 할리우드의 요청을 거절했다. 영화가 소설의 플롯을 충실히 따르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이다.
박속심 기자(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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