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읍시다 (1210)]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
정지돈 저 | 스위밍꿀 | 164쪽 | 10,000원
평양은 과거에 만들어진 미래의 도시처럼 음산하고 기묘한 분위기가 감돈다. 짐 일행은 검문소를 통과하려던 찰나 무장한 경찰들에게 체포되어 류경호텔에 갇힌다. 테러리스트의 배후로 지목되어 조사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류경호텔은 세계 최대 규모의 호텔을 목표로 착공됐지만 자금 부족으로 완성되지 못한 채 오랫동안 평양 시내를 지켜오다가 이제는 난민들의 수용소로 사용되고 있다. 짐은 무슨 일에 연루된 것인지 깨닫지 못한 채 곧 풀려나리라 기대하지만 이곳에서 만난 이주국 직원이자 ‘노 모어 건스’의 비밀 활동가인 ‘보리’는 지금 당장 탈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짐에게 난민층의 ‘세르게이’를 찾아 지하 주차장으로 오라고 한다.
짐의 눈에 난민층은 캠핑장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먼지에 투과된 어슴푸레한 평양의 햇빛을 받으며 책을 읽거나 배드민턴을 치거나 음악을 듣고 있다. 짐은 함흥에 사는 동생을 만나기 위해 베트남에서 건너온 ‘팜’의 도움으로 그로즈니 출신의 가장 오래된 난민 신청자이자 이곳의 지리에 밝은 세르게이를 찾아낸다. 세 사람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무하마드와 안드레아를 구출해온 보리와 합류하고 무사히 류경호텔을 빠져나온다. 서울에서 문산, 개성과 평양을 거치며 여섯 명으로 늘어난 짐 일행, 그들은 이제 함흥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어떤 사건을 겪게 될지도 모른 채.
총기소지, 지구온난화, 불법체류, 난민…. 정지돈이 그려 보이는 근미래는 낯설지 않은 단어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이 안의 거주자는 젊은이들 ‘작은 겁쟁이’들이다. 이들이 모험을 통해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었을 ‘새로운 파티’를 열게 되는 이야기. 물론 이 파티가 정당, ‘같은 이념을 지닌 이들이 조직한 정치적인 결사체’를 가리키기도 한다는 점을 떠올려본다면, 그 의미는 좀더 역동적으로 다가온다.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 여러 번 외면 마법 같은 순간이 펼쳐질 것 같은 일종의 주문처럼, 이야기는 한 번 단숨에 읽히고, 여러 번 헤매며 읽힐 것이다.
그럴 때 이 소설의 주인공은 길과 건물이기도 하다. 짐이 부러 버스를 타고 멀리 나가 걷는 골목길, 짐 일행이 탄 차가 달리는 도로들, 그리고 그 길에서 보이는 폐공장과 콤무날카 등의 다양한 건물들…. 겁쟁이들이 통과하고 체류하는 이 거대한 구조물들은 정지돈의 시야가 어디까지 미쳐 있는지 보여준다. 더욱이 이 구조물은 이데올로기의 경계를 뛰어넘어 있는 것이다. 지나간 냉전시대의 감각은 끈질겨서 북에 대한 상상은 곧잘 가로막힌다. 난폭한 빨갱이이거나 굶주린 인민, 혹은 끈 떨어진 간첩이거나 숙청당한 이인자, 우리의 상상은 그 언저리를 맴돌 뿐이다. 그러나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에서 북한은 당연히도, 도로로 연결되어 차로 다닐 수 있는 지역이 된다. 그 시야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개성의 시내를 거니는 사람들, 거짓말처럼 우뚝한 평양의 류경호텔, 실제로 서퍼들에게 사랑받는 함흥의 아름다운 해변을 볼 수 있게 된다. 원래 그러했던 것을 마치 이제야 겨우 아는 것처럼.
작가 정지돈 소개
198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2013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고, 소설집 『내가 싸우듯이』가 있다. 2015년 젊은작가상, 2016년 문지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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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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