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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212)] 로버트 카파, 사진가

[책을 읽읍시다 (1212)] 로버트 카파, 사진가

플로랑 실로레 저 / 임희근 역 | 포토넷 | 88쪽 | 19,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어느 분야에나 그 분야의 전범을 만드는 선구자가 있다. 사진가 로버트 카파(Robert Capa, 1913-1954) 역시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사진이 본격적으로 인쇄 매체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포토저널리즘의 시대는 스페인내전과 제2차 세계대전 등 전쟁과 함께 동이 튼다. 라이카와 콘탁스로 대표되는 35mm 영화 필름을 사용하는 소형 카메라의 발명으로, 우리는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후의 기괴한 정적이 감도는 정적인 전쟁 사진이 아니라 피가 흐르고 살점이 튀는 참혹한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낸 살아있는 전쟁 사진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에 등장하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장면의 마구 흔들리는 긴박한 화면 구사는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이자 포토저널리즘의 전설인 로버트 카파의 노르망디 사진에서 비롯된 것이다.

 

카파가 찍은 사진들은 일찌감치 고전의 반열에 올랐으며, 그의 일생을 다룬 전기, 영화, 다큐멘터리 등도 여럿이다. 『로버트 카파, 사진가』의 그림책 작가 플로랑 실로레는 로버트 카파와 그의 연인이자 훗날 전사한 최초의 여성 사진가로 기억될 게르다 타로의 열정적인 삶과 사랑을 그린 소설 『카파를 기다리며』를 접하고 깊은 감동을 받는다.

 

뛰어난 사진가이자 매력 넘치는 사내였던 그가 왜 그토록 술과 도박, 여자에 탐닉할 수밖에 없었는지, 자신의 예명 ‘카파’를 만들어준 사랑하는 연인 타로의 빈자리가 얼마나 컸는지, 결국 전장에서 취재 도중 지뢰를 밟아 그녀의 뒤를 따르기까지, 카파의 짧지만 불꽃같은 삶을 실로레는 3년 반에 걸친 노력으로 이 훌륭한 그래픽노블에 담아냈다.

 

길지 않은 분량 속에 카파가 종군 사진가로서 가장 왕성히 활동했던 시절의 모습들이 압축적으로 녹아 있다. 작업의 실마리가 되었던 소설과 마찬가지로 이 그래픽노블 전기 역시 카파와 게르다 타로의 이야기로 문을 연다. 잘 알려진 것처럼 ‘로버트 카파’는 애초에 게르다 타로에 의해 탄생한 허구적 인물이었다(카파와 타로의 실제 이름은 각각 엔드레 프리드만, 게르타 포호릴레이다). 정치적 상황이 불안정했던 동유럽 헝가리 출신의 사진가로서 삶을 막 시작한 이들에게는 부르기 쉬운 미국식 이름의 잘나가는 사진가라는 가면이 필요했다. 그리 오래지 않아 정체가 탄로 나고 말지만, 역량을 인정받은 카파와 타로는 본격적으로 사진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카파의 삶 전체에 걸쳐 그 어떤 전쟁의 상흔보다 깊은 트라우마로 남을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지식인들이 이상을 불태우던 전장인 스페인 내전에서 타로가 공화군의 탱크에 깔려 사망한 것이다(조지 오웰, 어니스트 헤밍웨이, 앙드레 말로 등도 국제여단의 일원으로 참전한다). 당시 드물었던 재능 넘치는 여성 종군 사진가 타로의 갑작스런 죽음은 유럽의 여러 매체는 물론 미국의 라이프Life에까지 ‘최초로 전사한 여성 종군 사진가’로서 보도된다. 이후 이어지는 전쟁의 현장에서, 그들이 어려움을 함께 겪으며 꿈을 키웠던 파리에서, 카파는 시시때때로 연인 타로를 떠올린다.

 

그는 대표적인 화보잡지 라이프등 다양한 매체의 의뢰를 받아 여러 주제의 사진을 찍고 취재했지만(전장을 떠나 있을 때는 잡지 홀리데이Holiday 등에 ‘상류층이 잘 가는 해수욕장’ 같은 기사를 싣기도 했으며 스튜디오 촬영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가 온몸으로 살아 있음을 느끼는 곳은 역시 전쟁터였다.

 

스페인 내전을 시작으로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 아랍-이스라엘 전쟁, 인도차이나 전쟁까지 20세기 세계사를 굵직하게 수놓은 현장에는 로버트 카파가 빠지지 않았다. 지금과 같이 편리한 줌 렌즈와 초망원 렌즈가 없던 시절, 분초를 다투는 급박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카파가 남긴 사진과 ‘카파이즘’(“만약 당신이 찍은 사진이 별로 좋지 않다면, 그건 당신이 충분히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으로 대표되는 그의 사진 철학은 이 인물이 왜 전설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작가 플로랑 실로레 소개

 

어린이책 삽화가로 낭트의 미술학교에서 공부했고, 1990년대 말에는 프랑스령 뉴칼레도니아의 작은 섬 리푸로 떠나 그곳의 원주민인 카낙 족과 함께 살며 그들의 문화를 연구하는 일에 힘썼다. 2004년에 『리푸』라는 아름다운 그림책을 출판했다. 현재는 라로셸에 거주하며 그림 그리기 작업에 전념하고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한 자신의 할아버지의 회고록을 각색한 어른을 위한 만화 『로제의 수첩』을 비롯해 『용감한 양퀵』『푸알뤼스의 말』『아프리카 음악: 텡벨렐레와 륀 여왕』 등 다양한 작품 속 삽화 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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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