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읍시다 (1211)]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장리노?
야스미나 레자 저 | 김남주 역 | 뮤진트리 | 276쪽 | 13,800원
이야기는 주인공 엘리자베스의 1인칭 시점을 통해 시간과 기억과 노년, 관계와 배려, 상실과 고독을 참신하게 천착한다. 살인을 저질렀으나 왠지 살인에 휘말린 것으로 느껴지는 장리노를 바라보는 엘리자베스의 시선. 문장의 호흡은 빠르지만 사유는 깊고 군데군데 함축과 통찰이 빛난다. 범인도, 살해방식도 자명한 이 책의 살인 사건은 저자의 관심이 사건 너머에 있음을 알려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와 긴장을 선사한다.
이 책은 야스미나 레자의 또 하나의 역작이라고 말해야 한다. 야스미나 레자라는 작가를 알게 되고 책을 고르고 번역 출간한 지 세 번째인데 첫 책 『행복해서 행복한 사람들』이 워낙 매력적이었기에 그 다음 책을 만들 때마다 첫 책을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지만, 매번 또 다른 감탄을 하게 되니 말이다. 2016년에 프랑스 유수의 문학상인 르노도상을 받아서뿐만 아니라, 얼핏 보기에는 범죄 소설이지만 살인 사건이라는 모티프에 이토록 통렬한 풍자를 담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야스미나 레자만의 통찰과 함축적인 언어가 빛나는 작품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60대에 들어선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별 생각 없이 캐주얼한 봄맞이 파티를 기획했고, 친구들과 이웃 부부를 초청했고, 모두 즐겁게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고 취했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으나 그 이후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 그 이유가 파티에서의 사소한 실수이건, 평소 쌓인 갈등이건, 사소한 가치관의 차이이건 간에, 결론적으로는 남편이 아내를 죽였고 아내는 억울한 죽음을 당했으니, 이것은 엄연한 범죄이고 범죄자는 처벌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요즘 드물지 않게 보고 듣는 사건이고 정황이다.
그러나 야스미나 레자는 그 상황에서 시선을 살인자에게로 돌린다. 그리고 기꺼이 살인자의 손을 잡아 준다. 이 책이 ‘고독·남녀관계·버려짐에 대한 아름답고 풍자적인 변주’인 이유이다. 이 책에 대해 프랑스의 대표 언론에서는 다음과 같은 서평을 실었다.
이 작품은 실제로 야스미나 레자의 문학세계 속에서 도약의 기점에 놓인 작품이다. 삶의 핍진성과 현장성을 독특하게 담아내는 일련의 작품들을 지나 필멸의 삶 속에서 좌충우돌하는 인물들 간의 연대성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책은 레자의 문학적 이력 속에서 처음으로 출발하는 연대성의 고리이고, 그것은 “지금 뭐하는 거예요, 장리노?”라고 묻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곤경에 빠진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그 곤경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측정 불가능한 미세한 상호작용, 모호하고도 간접적인 공감의 조합이 화자로 하여금 이웃집 남자를 도와 그의 아내의 시체를 여행 가방에 넣는 어마어마한 공모를 감행하게 하는데, 거기에 개입된 것은 존재만큼이나 가벼운 공감, 인간만큼이나 외롭게 존재하는 풍경과의 접점이다.
이 소설의 원래 제목은 ‘바빌론’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이웃집 남자 장리노의 아버지는 저녁마다 성서의 같은 구절을 낭송하는 습관이 있었다. 바빌론 포로들이 강가에서 고향을 생각하며 눈물 흘리는 장면에 관한 구절이다. 장리노는 그 구절을 들을 때마다 왠지 거대한 인류역사에 참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의 내면의 무엇인가가 그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방랑자나 무국적자와 동일시하게 해주는 것이다.
기원전 6세기 왕국이 멸망하자 바빌론에 끌려간 유대인 포로들, 이 책에서 하나의 모티프로 등장하는-아무렇지도 않은 삶에 잠식당하는 로버트 프랭크의 '미국인들', 그리고 같은 풍경을 지닌 현재 파리 외곽의 두 사람, 이들을 잇는 궁극적인 연대감.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을 보는 시선이고, 그 시선을 교류하는 방식이고, 그 시선의 내면에 자리 잡은 풍경에 관한 것이다.
작가 야스미나 레자 소개
「아트」 「대학살의 신」 등의 희곡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프랑스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이다. 유대계 이란인 엔지니어 아버지와 유대계 헝가리인 바이올리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1959년 태어났다. 파리 10대학에서 사회학을, 자크 라꼭 드라마스쿨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1987년에 발표한 희곡 「장례식 후의 대화」로 몰리에르상, 로렌스 올리비에상, 토니상을 받았다. 1994년에 발표한 희곡 「아트」로 몰리에르 최고 작가상을 수상했고, 이후 이 작품은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 곳곳에서 공연되었다. 1996~1997년 런던공연으로 로렌스 올리비에상과 이브닝 스탠더드상을, 1998년에는 뉴욕에서 토니상을 받았다. 2006년에 발표한 희곡 「대학살의 신」은 비엔나의 연극상 네스트로이상과 독일어 공연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대학살의 신」은 영화로도 각색되어 야스미나 레자는 프랑스 세자르 최우수 극본상을 받기도 했다.
그녀가 쓴 소설로는 『행복해서 행복한 사람들』 『비탄』 『아담 하버베르크』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썰매 안에서』 『어디에도 없는 곳』 『새벽 저녁 혹은 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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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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