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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217)] 더 나쁜 쪽으로

[책을 읽읍시다 (1217)] 더 나쁜 쪽으로

김사과 저 | 문학동네 | 216쪽 | 12,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과감한 형식실험을 통해 사회비판적인 목소리를 강렬하게 표출해온 김사과의 두번째 소설집 『더 나쁜 쪽으로』. 『더 나쁜 쪽으로』는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 실린 소설들은 한국이라는 좁은 무대에서 벗어나 세계를 바라보고자 하는 김사과 소설의 최근 경향을 보여준다. 공간적 배경이 외국으로 설정된 작품뿐만 아니라 구사되는 언어의 경계마저 허물어진 전위적인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1부의 첫머리에 놓인 「더 나쁜 쪽으로」는 세상을 향한 분노를 폭력적으로 그려온 김사과 소설이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은 계기가 된 작품이다. 파편화된 장면들로 이루어진 단편 「샌프란시스코」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응시하며 소설 속으로 옮겨오고자 하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비, 증기, 그리고 속도」는 아무런 계획 없이 뉴욕으로 건너온 ‘나’가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다 실업자가 된 ‘P’와 만나며 시작된다. 안정된 생활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 두 사람은 체류 기간이 만료된 후에도 실체 없는 귀신처럼 뉴욕을 방황한다.


「지도와 인간」은 ‘엄마’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와 대립하여 가출한 ‘나’는 이미 완성되어 있는 지도 같은 세상 속을 고정된 좌표 없이 떠돌다가 결국 저항을 포기하고 집으로 회귀한다. 지도 위에서 아무런 위치값도 갖지 못하는 ‘나’가 모국어와 외국어를 혼용하며 이야기를 서술해나가는 것은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는 불안한 정체감을 드러내는 장치로도 읽힌다.


2부에서 김사과는 특유의 냉철한 시각으로 한국사회를 좀더 깊이 관찰하고 비판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박승준씨의 경우」는 고시원에 살며 고급 아파트 단지의 분리수거함에서 옷을 주워 입던 비루한 대학생 ‘박승준씨’가 우연히 디오르 슈트를 손에 넣으며 힙스터로서의 화려한 하룻밤을 보내는 이야기이다.  


「카레가 있는 책상」은 고시원에서 인스턴트 카레를 먹으며 생활하는 인간혐오자 ‘나’가 혐오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고시원 사람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한 뒤 타인에 대해 강한 혐오감을 갖게 된다. 「이천칠십×년 부르주아 6대」는 2070년대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국 재벌이 6대째에 이르렀을 때 벌어질 혼란을 상상하며 자본주의 체제를 풍자한다.  


3부에는 김사과가 쓴 시들이 처음 묶였다. 각각 8편의 시로 구성된 「세계의 개」와 「apoetryvendingmachine」이라는 두 작품이 그것이다. 지면에 한 번도 발표된 적이 없기에 더욱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작품들은 장르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자 하는 김사과다운 시도라 하겠다.


‘더 나쁜 쪽으로’라는 이 소설집의 제목이 말해주듯, 김사과의 전망은 단순한 절망도 희망도 아니다. 사뮈엘 베케트의 「가장 나쁜 쪽으로」를 최상급 대신 비교급 표현으로 바꾼 이 제목은 이 세계가 완전히 끝장난 것이 아니라 더 나빠질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아직 더 나쁜 쪽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그 비교급의 희망을 김사과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번 소설집의 값진 발견이다.

 


작가 김사과 소개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를 졸업했다. 2005년 단편 「영이」로 제8회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미나』 『나b책』 『테러의 시』 『천국에서』, 소설집 『02』 『더 나쁜 쪽으로』, 산문집 『설탕의 맛』 『0 이하의 날들』이 있다. 2013년 『미나』가 프랑스어로 번역 출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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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