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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220)] 느빌 백작의 범죄

[책을 읽읍시다 (1220)] 느빌 백작의 범죄
 
아멜리 노통브 저 | 이상해 역 | 열린책들 | 144쪽 | 11,8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느빌 백작의 범죄』는 노통브의 스물네 번째 소설로 2015년 출간 이후 프랑스에서만 19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한국을 비롯하여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폴란드, 네덜란드 등 9개국에서 출간 또는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이 작품에서 노통브는 장르의 경계를 지우고 여러 모티브를 혼용하며, 개인적 체험과 허구를 조화롭게 버무렸다. 그 결과 날카로운 풍자의 힘과 사랑스러움을 지닌 작품이 탄생했다.


그리스 원정에 나서기 위해 막내딸 이피게네이아를 산 제물로 바친 아가멤논의 신화뿐 아니라, 오스카 와일드의 『아서 새빌 경의 범죄』는 플롯과 주제 면에서 많은 부분 상통한다. 「의무에 대한 연구」라는 부제가 붙은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은 근본적인 반성이나 성찰 없이 의무에 도취된 인물과 계급의식을 비판한다. 노통브는 이를 새롭게 재해석하며 더 나아가, 사춘기를 지배하는 신비로운 사고의 팽창과 마법 같은 예술의 위력을 묘사했다.


가문의 파산으로 매각을 앞둔 플뤼비에성(城). 그곳에서 마지막 파티를 여는 느빌 백작은 자신의 아버지가 그러했듯 접대의 귀재다. 어느 날 숲에서 딸을 발견해 보호 중이라는 점쟁이의 전화를 받고 점집으로 향한다. 품행이 흠잡을 데 없는 언니 오빠와 달리 열두 살 무렵부터 생기를 잃고 방황하기 시작한 셋째 세리외즈. 딸을 데리고 자리를 나서는 느빌 백작에게 점쟁이는 무시무시한 예언을 전한다. 곧 있을 마지막 가든파티에서 그가 초대 손님 중 한 명을 죽이게 될 것이라는…. 예언에 사로잡힌 느빌 백작은 불면에 시달리며 자신의 초대 손님 중 살해하기에 적합한 인물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이 작품의 핵심이자 작품 전반에 흐르는 기이한 분위기의 원인은 바로 느빌 백작이 점쟁이의 말대로 운명을 결정지어 버린다는 데 있다. 그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고 살인할 방법을 궁리하던 그때, 셋째 딸 세리외즈가 서재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부탁한다. 제발, 자기를 죽여 달라고.


정서적 불감증에 빠진 세리외즈는 죽음으로써 자신이 처한 지옥 같은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아버지가 의심 없이 예언을 수행하는 중에 봉착한 문제와 자신의 욕망이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꿰뚫은 것이다. 세리외즈의 불감증과 죽음 충동에는 성적(性的)인 요소가 다분하다. 극단의 자극을 통해 살아 있음을 느끼려 하며 아버지의 동의를 구하기 위한 설득 과정은 이성을 향한 유혹과 닮았다. 느빌 백작은 불온하기 짝이 없는 딸의 요구에 불쾌감을 표현하지만 결국, 두 손을 들고 만다.


느빌 백작은 찢어지는 가난에 시달려도 한 달에 한 번 귀족들을 초대해 호화롭게 대접했던 아버지를 증오했지만 결국 같은 길을 걷게 된다. 허영과 의무를 구별할 줄 몰랐던 아버지로 인해 가족들은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고 어린 누이는 목숨을 잃었다. 그렇듯 악의는 없을지언정 타인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있는 몽매(蒙昧)의 상태가 대를 이어 전해진다.


느빌 백작을 지독한 고통에 빠뜨린 예언과 자식 살해라는 예언의 결과는 실상 그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다. 첫째와 둘째 자식의 이름을 오레스트와 엘렉트르로 지은 이상 셋째는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이피게네이아의 비극적 운명을 이어받을 수밖에 없다는 딸의 말을 백작은 강하게 부정하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백작과 세리외즈 모두 자신의 고통에 몰두할수록 점차 거센 충동에 휩싸인다.


타협 불가능한 욕망이 구체적인 행동을 끌어내고 부녀의 삶에 활력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에서는 구태를 답습하는 자에게 불운이 멈추지 않는다. 아무런 반성 없이 그저 주어진 의무를 수행하는 것, 고매한 인격을 자부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부도덕한 행위를 서슴지 않는 부류를 향한 일갈이다.



작가 아멜리 노통브 소개


특유의 뛰어난 독창성과 신랄한 문체, 매년 가을이면 어김없이 신작을 내놓는 왕성한 창작력으로 수많은 독자들을 거느린 벨기에 출신의 작가. 검은 옷, 모자, 긴 머리와 빨간 입술이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다. 1967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났으며 외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일본, 중국, 미국, 방글라데시, 보르네오, 라오스 등지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스물다섯 살에 발표한 첫 소설 『살인자의 건강법』(1992)이 10만 부가 넘게 팔리며 천재의 탄생이라는 비평계의 찬사를 받았다. 이후 『시간의 옷』(1996)과 『배고픔의 자서전』(2004)이 공쿠르상 후보에 오르며 작가로서의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노통브는 자신에게 있어 글쓰기는 임신처럼 아주 내밀한 일이며, 자신의 작품들은 살아 있는 아이와 같이 생명력을 지녔다고 말한다.


노통브의 다른 작품들로는 『사랑의 파괴』(1993), 『불쏘시개』(1994), 『오후 네시』(1995, 파리 프르미에르상), 『시간의 옷』(1996), 『공격』(1997), 『머큐리』(1998), 『두려움과 떨림』(1999, 프랑스 학술원 소설 대상), 『배고픔의 자서전』(2004), 『아버지 죽이기』(2011) 등이 있다. 그녀는 알랭 푸르니에상, 샤르돈상, 보카시옹상, 독일 서적상, 르네팔레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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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