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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책을 읽읍시다 (1264)] 내 마음의 낯섦

[책을 읽읍시다 (1264)] 내 마음의 낯섦
 
오르한 파묵 저 | 이난아 역 | 민음사 | 652쪽 | 16,8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전 세계가 사랑하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의 아홉 번째 장편 소설 『내 마음의 낯섦』. “나는 나 자신을 설명할 때 이스탄불을, 이스탄불을 설명할 때 나 자신을 설명한다”고 밝히며 이스탄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밝힌 바 있던 오르한 파묵은 『내 마음의 낯섦』에서 문화적으로 복잡한 이스탄불의 40년 현대사를 흥미로운 스토리와 함께 환상적으로 그려 냈다.


이 소설로 노벨 문학상 이후에 인생의 역작을 저술하는 희귀한 작가가 되었다는 평을 들은 오르한 파묵은 신작에서 이스탄불 거리를 누비며 ‘보자’라는 터키의 전통 음료를 파는 한 소년 메블루트와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보오오오자”를 외치며 빈민가, 역사 깊은 골목을 구석구석 누비는 메블루트를 만나 보자. 현대 이스탄불의 정치와 사회, 문화 그리고 그 속에서 소시민들의 삶이 생생하게, 또 다채롭게 펼쳐질 것이다.


1950년대 돈을 벌기 위해 이스탄불로 수많은 이민자들이 쏟아진다. 그들은 불법으로 변방의 토지를 점거하고 집을 짓는다. 정부 또한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에서 싼값에 일할 노동자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민자들이 숙식을 위해 공터를 공짜로 차지해도 모른 척한다. 중부 아나톨리아의 가난한 마을에 살고 있는 메블루트의 아버지도 그중 하나였다. 1969년, 열두 살이 된 메블루트는 아버지를 따라 이스탄불로 온다. 학교를 다니면서 아버지와 함께 열심히 요구르트를 팔지만 형편은 쉬이 나아지지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정직한 메블루트는 희망을 버리지 않을 뿐이다. 터키는 그 사이에도 정치, 종교 갈등 속에서 여러 부침을 겪는다. 그러던 중 메블루트는 사촌형의 결혼식장에서 ‘라이하’라는 소녀에게 한눈에 사로잡혀 무려 3년 간 얼굴도 못 본 채 연애편지를 쓴다.


이 소설은 이스탄불의 변화상과 메블루트라는 보자 장수의 일생을 담아낸 따뜻한 장편 소설이다. 이민자 가족의 내러티브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소설을 통해 이스탄불의 다양한 사람들, 정치적인 재앙과 패배의 산증인들, 그리고 평생 메블루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어떤 낯섦이 정교하고 방대하게 이어진다.


가족과 친구들은 메블루트를 이렇게 말한다. 다들 그가 순진할 만큼 착해서 돕기도 하지만 답답해하기도 한다. 그래도 그를 의심하는 사람만은 아무도 없다. 거리에서 번 돈을 한 푼도 빠짐없이 아버지에게 갖다 주는 착한 아들, 누군가의 계략에 의해 아내가 뒤바뀌었는데도 화내지 않는 남자, 친척들의 도움이 없이는 독립하지 못하는 조카, 주차장 경비원, 식당 매니저, 전기료 징수원 등 가족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는 그는 바로 대책 없이 정직한 메블루트다.


『내 마음의 낯섦』에는 많은 사건들이 담겨 있다. 세계는 그가 이해하기에 너무나 복잡하지만 메블루트는 직관적으로 이 세계를 이해하고 신의 뜻에 따라 정직하기를 택한다. 출생과 죽음, 불화와 사기, 가슴 아픈 일들…… 하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가족과 사랑이 자리하고 있다.


오르한 파묵이 즐겨 찾는 ‘충돌’이라는 주제는 이 책에서도 곳곳에 나타난다. 특히 전통과 현대의 충돌을 통해 우리는 한 매력적인 도시의 역사성을 체감할 수 있다. 자본주의가 빠르게 발전하는 탓에 메블루트와 아버지는 깨끗한 유리병에 담겨 수퍼 진열대에 놓인 요구르트에 밀려 요구르트 장사를 접는다. 메블루트가 파는 병아리콩밥은 점점 길에서 먹는 더러운 음식, 즉 가난한 사람들만의 향유물로 전락한다.


특히 주인공 메블루트에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터키의 전통 음료 ‘보자’는 1920년대에 오스만 사람들이 먹던, 그야 말로 과거의 유산이다. 메블루트는 정치적인 질문을 하는 손님들의 공세 속에서도 꿋꿋하게 보자는 종교적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신실한 마음을 간직하고 사는 그에게 보자는 지혜 그 자체다. 이렇게 오르한 파묵은 메블루트와 가족들의 이야기와 질곡의 터키 현대사를 능숙하게 연결해 낸다.


이 책은 메블루트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의, 나아가 도시에 정착한 이민자, 즉 약자들의 이야기다. 각 인물들이 1인칭 독백을 통해 자신을 대변하기 때문에 하나의 사건에도 다양한 시선이 드러난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스탄불 시대상이 선명히 그려진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적 기교, 그리고 지적 풍부함과 능숙함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따뜻하고 거대한 서사와 몰입감 넘치는 소설이 그리운 사람이라면 『내 마음의 낯섦』을 읽어 보자. 이 소설은 그의 작품을 통틀어 가장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부드럽게 몰두하게 되는 감동적인 소설이다.

 


작가 오르한 파묵 소개


현대 터키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이다. 1952년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태어나, 부유한 대가족 속에서 성장했다. 이스탄불의 명문 고등학교인 로버트 칼리지를 졸업한 후 이스탄불 공과대학에서 3년간 건축학을 공부했으나, 건축가나 화가가 되려는 생각을 접고 자퇴했다. 23세에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1979년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82년 첫 소설 『제브데트 씨의 아들들』을 출간하여 오르한 케말 소설상과 ‘밀리예트’ 문학상을 받았으며, 다음해에 출간한 『고요한 집』 역시 '마다마르 소설상'과 프랑스에서 주는 '1991년 유럽 발견상'을 받았다. 또한 1985년 출간한 세 번째 소설 『하얀 성』으로 "동양에 새로운 별이 떠올랐다"는 뉴옥타임스 격찬을 받으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85년부터 1988년까지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의 방문교수로 지내면서 대부분을 집필한 『검은 책』은 '프랑스 문화상'을 받았으며, 이 소설을 통해 파묵은 대중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작가로 터키와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1994년 출간된 『새로운 인생』은 터키 문학사상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내 이름은 빨강』은 현재까지 35개국에서 출간되었고, 이 작품으로 프랑스 '최우수 외국 문학상'(2002), 이탈리아 '그란차네 카보우르 상'(2003), '인터내셔널 임팩 더블린 문학상'(2003) 등을 수상하였다. 또한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 정치 소설'이라 밝힌 『눈』을 통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 소설을 실험했다.


문명 간의 충돌, 이슬람과 세속화된 민족주의 간의 관계 등을 주제로 작품을 써 온 파묵은 2006년에는 "문화들 간의 충돌과 얽힘을 나타내는 새로운 상징들을 발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검은 책』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그 밖에 2005년에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평화상'과 프랑스 '메디치 상'을 수상하였다.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 발표한 『순수 박물관』은 파묵 특유의 문체와 서술 방식으로 ‘사랑’이라는 주제에 접근하였다. 그의 지독하고 처절한 사랑 이야기는 전 세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켜, 출간되는 모든 나라에서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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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