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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281)] 가시리:높고 고운 사랑노래

[책을 읽읍시다 (1281)] 가시리:높고 고운 사랑노래
 
선유 저 | 황소자리 | 288| 12,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삶이 참혹할수록 노래는 더 선명하고 아름답게 빛난다고 했다. 750년 전, 그들의 노래 또한 그러했다. 많은 것들이 시간의 무자비한 파괴력 앞에서 잊히고 묻히고 흩어졌지만 그때 그들이 부르던 노래 몇몇은 살아남아 우리 곁에 닿았다. 학창시절, 우리는 높고 고운 노래[高麗歌謠]’라는 이름으로 그 별곡들의 가사를 읊조리고 외웠다.

 

선유 장편소설 가시리는 바로 그 노래 우리가 흔히 고려가요라 부르는 별곡의 주인들을 새롭게 호출해 목소리와 숨결과 생각과 눈빛을 불어넣은 사랑노래다. 작가 선유는 자료와 상상을 질료 삼아 결코 간단치 않았을 그들의 이야기를 손에 잡힐 듯 서늘하고 아릿한 풍경으로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번개처럼 빠르고 당당한 청년 우는 확신했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언젠가 둘이 남아야 하는 날에 아청은 결국 자신의 여인이 되리라고. 고통은 없고 기쁨만 들꽃처럼 피어오르던 시절 우의 사랑은 열 살 초봄에 시작되었다.

 

눈이 녹지 않은 산길을 걸어 온통 붉게 피어오른 진달래를 꺾기 위해 좌와 함께 절벽을 올랐던 그 날, 절벽 아래 선 아청이 진달래꽃보다 고운 목소리로 가시리 가시렵니까 버리고 가시렵니까,’ 새로 배운 노래를 처연하게 부르던 그 날, 소년 우는 속으로 다짐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청의 손을 놓지 않겠다고. 기억의 접점마다 드러난 아청의 속 깊은 배려를, 우는 그녀 마음 역시 자신과 같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개경으로 향하는 배에 아청은 없었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 많던 고음의 유품까지 통째로 들고 아청은 어디로 숨어든 걸까? 아청이 좌에게 갔을 리 없다며 도리질 쳤지만 우는 알았다. 좌와 우, 그리고 아청이 스무 해 넘도록 견고하게 쌓아올린 시간의 탑은 이제 산산이 깨어졌다. 복원되지 못할 우정,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아름다운 시절. 그러므로 더욱 아청을 놓쳐서는 아니 될 일이었다. 삼별초 동료들과 등 돌리면서까지 이 길을 택한 까닭은 오로지 아청과 더불어 사랑하고 살아가기 위함이었다. 어쩌면 다시 만나게 되는 날, 가장 좋았던 벗 좌와 양보 없는 결전을 벌여야만 하리라. 힘과 힘, 재능과 재능, 전략과 전략이 맞서는 목숨 건 혈투를 피할 수 없으리라.

 

평화와 안녕은 아득하게 멀었지만 땅 위에서 목숨 부지하는 이들은 언젠가 맞이할 꿈결 같은 날을 노래로 만들어 부르며 소망했다. 두고 온 고향 산천에 다시 깃드는 노래, 떠나간 사랑을 그리는 노래, 영원을 기원하는 노래, 빼앗긴 나라 백성으로 존엄을 포기하지 않는 노래, 이별 없는 궁극의 사랑을 맹세하는 노래. 고단한 나날을 견디고 황폐해지기 쉬운 마음을 다독이는 방편이기도 했다.

 

이제 많은 백성은 제국에 머리 조아린 왕과 대신들을 따르는 대신 남쪽으로 가는 삼별초의 행렬에 동참했다. 그들을 가득 실은 배의 수가 천여 척에 달했다. 12706월 초, 강화경을 떠나 거센 물결 위에 위태롭게 내던져진 사람들을 위무하듯 한 줄기 노래가 울려퍼졌다. 높고 깊고 따듯한 목소리. 방상의 으뜸 가인 아청이 부르는 새로운 희망의 출정가였다.

 

소설은 아청이 부르는 별곡을 배음으로 하여 그때 그들이 목숨 걸고 지켜낸 가치와 욕망, 염원과 상실을 단단하고 품격 있는 문장으로 되살려낸다. 강화를 떠나 안면소(안면도)와 진도를 거쳐 제주로 깃들기까지, 위험천만한 전투와 고난의 현장을 감싸 안던 아청의 노래는 남녀노소 모두의 가슴에 파고들어 한 사람 한 사람, 그들 생의 의미를 새로이 환기시키는 촉매제였다. 그리고, 양극단의 무리 맨 앞에는 아청의 오랜 벗 좌와 우가 서 있었다.

 

바위처럼 단단하고 나무처럼 싱싱한 꿈을 지녔으되 사랑을 잃고는 단 한 발자국도 내딛기 어려웠던 청춘들. 엇갈리고 부딪히고 피 흘리면서도 정직하게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낸 그들의 이야기는 선유 장편소설 가시리로 다시 태어나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또 다른 사랑노래가 되었다.

 

 

작가 선유 소개


사랑을 앓고, 사랑을 읽고, 사랑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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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