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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연예/북스

[책을 읽읍시다 (1300)] 홀딩, 턴

[책을 읽읍시다 (1300)] 홀딩, 턴
 
서유미 저 | 위즈덤하우스 | 236| 13,0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서유미 작가가 신작 장편소설 홀딩, . 현실을 향한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시대의 인간 군상을 세밀히 그려온 서유미 작가는 끝의 시작, 을 지나면서 한 사람의 내면에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홀딩, 에 이르러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혼인 서약 이후의 남녀 관계 속 인물의 내면을 한층 더 깊이 파고든다.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탄생과 소멸에 대한 탐구와 더불어, 연애의 과정을 통과한 연인이 예식장을 떠난 이후 겪게 되는 결혼생활을 섬세하고도 진솔하게 보여준다.

 

처음 만났을 때 영진의 닉네임은 진. 그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때 지원의 닉네임은 랄라. 지원은 연애 상대를 찾아볼까 하는 마음으로 스윙댄스 동호회에 가입했다. 여러 동호회도 있었지만 스윙이어야만 했다. 고등학교 시절, 흙먼지가 날리는 운동장에서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은 남자 선배들과 흰 블라우스에 검은 스커트, 허리에 붉은 리본 띠를 맨 여자 선배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이 지원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 장면은 그해에 지원이 본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자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처음 목격한 청춘과 낭만의 얼굴이었다. 그렇게 찾아간 스윙댄스 동호회는 입사지원과 같은 맞선의 세계와 다른, 지원이 꿈꾸던 낭만을 보여주었다.

 

지원과 영진은 둘만의 극적인 순간 끝에 결혼이라는 대륙에 무사히 정박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 뒤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애써 고른 테이블에 생활의 얼룩이 지듯 사랑은 쉽게 변형되고 감정 앞에서 자주 초라해지며 관계에 대한 회의는 곰팡이처럼 번져나간다.

 

서유미 소설가는 홀딩, 을 통해 결혼생활에서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극복할 수 있는 것과 넘어가기 어려운 것을 헤아려본다. 그리고 그저 인생의 어떤 순간에는 세탁의 시간을 지나는 것같은 시기가 있어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음 코스로 어김없이 넘어갈 거란 사실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 때가 있다고도 넌지시 온기를 전해온다.

 

또한 여성의 시각에서 다룬 결혼생활 탐구소설로도 읽히는 홀딩, 은 결혼제도에 관한 여성주의적 고찰을 착실하게 담아낸다. 엄마의 삶과는 다를 줄 알았던 82년생 김지영에서부터 누군가의 존재로만 취급되었던 여성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등에 이어 여성에게 결혼이란 물음을 던지는 소설이기도 하다. 30대 여성인 지원 앞에 미지의 영역인 결혼은 거부할 수 없는 강한 물살로 다가온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은 곧 현실이 되어,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은 기울어진 무게로 지원의 어깨에 고스란히 지워진다. 서유미 소설가는 지원을 통해 결혼제도를 보는 동시대 여성들의 솔직한 심정을 담담하게 진술해냈다.

 

이 소설은 특별히 부각하지 않아도 대한민국 여성이 겪는 보편적 결혼생활이 기저에 깔려 있다. 지원은 평소에 드러나지 않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될 집안일을 영진에게 계속 부탁해야 하고 청소기를 청소하는 일도 필요하다고 알려줘야 하며 영진이 지원을 돕는 게 아니라 함께 사는 데 꼭 필요한 일이라고 설득을 해야만 한다. 서로 잘하지 못하는 요리에 관해서는 둘이 포기하는 데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원은 시어머니 앞에서 자주 불편함을 느낀다. 시어머니는 지원에게 딸 같은 며느리에 대한 기대가 없다 하면서도 형제 사이의 우애를 며느리인 지원이 앞서 챙겨주라고 당부한다.

 

지원의 친구들인 이나와 승아(‘화요일의 여자들’), 지원의 언니 규원의 이야기는 불균형한 이 사회를 무사히 살아가는 데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안전망이 되어 삶을 지지해주는 여성들의 연대를 보여준다. 지원보다 먼저 이혼을 경험한 승아는 무조건 네가 행복해지는 쪽으로 결정하라고 조언하고, 아이가 있는 이나는 지원이 자신과 다르게 홑몸이니 가능한 이혼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아이가 없는 삶에서 지원은 오롯이 자신을 위한 선택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선택을 누구보다도 기꺼이 지지해주는 친구들이 되어준다.

 

지원의 언니이자 인생의 선배인 규원은 학창시절부터 먼저 경험한 폭력적인 사회 경험을 통해 소매치기와 치한 예방법, 위험한 길을 알려주는 것부터 화장품, 좋은 남자를 고르는 법까지 이미 경험과 실패를 거쳐 검증된 것들을 무심히 또 다정히 전해준다. 한국에서 여성으로 안전하게 산다는 것은 어쩌면 먼저 경험한 일을 나누고 가르쳐주는 다른 여성들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결혼생활에 대해 냉소적이면서도 신랄한 비판으로 끝을 향해 내달리던 두 사람이 그럼에도 자신의 의지로 삶의 방향을 바꿔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일, 서유미 소설가의 일관된 세계관이자 그 묘한 긍정의 장점이 이 소설에서 절정을 이룬다. 지원과 영진이 각자의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 우리는 다시 시작하는 둘을 향해 기꺼이 응원의 박수를 보내게 될 것이다.

 

 

작가 서유미 소개


1975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단국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그녀는 백화점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화려한 올가미에 얽혀 자유롭지 못한 인간들을 이야기한 판타스틱 개미지옥으로 2007년 제5회 문학수첩작가상을, 서른 살을 지나서도 여전히 철들지 못하고 무엇 하나 정해진 바 없이 방황해야만 하는 서른셋 여자의 일상을 그린 쿨하게 한걸음으로 2007년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하였다.

 

다양한 군상의 인물들을 파노라마처럼 연결시키며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욕망의 빛과 그림자를 이야기한  당신의 몬스터등의 책을 출간했다. 어린이책으로는 옹고집전』 『숙영낭자전과 콩쥐팥쥐』 『장끼전과 두껍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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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