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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339)] 고전의 시선

[책을 읽읍시다 (1339)] 고전의 시선
 
송혁기 저 | 와이즈베리 | 240| 14,0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궁궐 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밖에서 알 수도 없고 알 일도 아닙니다만, 총애하는 사람이 있는데 전하께서 감추시면서 이 사실을 지적한 신하를 다른 죄에 얽어서 처벌하셨다고들 합니다. 전하께서 개인적으로 총애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무슨 문제가 되겠으며, 무엇하러 그것을 숨기시겠습니까. 그래서 신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억측하는 것일 뿐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런 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겠습니다. 새어나온 사실들만도 이러한데, 저희의 이목이 닿지 않는 궁궐 깊숙한 곳의 일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지금으로부터 330년 전에 쓰인 상소문을 새롭게 번역한 내용의 일부다.

 

흔히 한문이라고 하면 고리타분한 유교 이념으로 가득하거나, 우리와 크게 관련이 없고 시대에 동떨어진 글이라는 고정관념으로 바라보기 일쑤다. 우리말과 통사 구조가 다를 뿐 아니라 시대 배경과 사유 방식, 문체, 관습까지 너무나 달라서 우리에게는 어떤 외국어보다도 어렵고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궁궐청와대, ‘전하대통령으로 살짝 바꾸면 지난해 온 나라를 분노하게 만든 국정농단 사태의 진실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서늘한 전율마저 느끼게 될 것이다. 이처럼 한문으로 쓰인 옛글은 시대를 뛰어넘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고전의 시선1,000년 넘게 쌓인 우리 한문 산문 명편들 가운데 24편을 엄선하여 현대에 맞는 평설과 함께 원문에 대한 정확한 번역과 해설을 담았다. 이 책은 사회적인 이슈뿐만 아니라 아들을 잃은 슬픔, 늙어감에 대한 감회 등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삶의 순간들을 번뜩이는 통찰과 아름다운 문장으로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소개하는 옛 글에 우리의 현실 문제에 적용하기도 하고, 초점을 달리해 새롭게 접근해 보기도 한다. 이를 통해 새 글과 옛 글 사이의 간극과 미묘한 긴장감을 오롯이 독자들의 몫으로 돌려 놓았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330년 전에 쓰여진 상소문 내용이 마치 지난해 온 국민을 분노하게 한 국정논단 사태와도 닿아있는 것 같아 서늘한 전율마저 느껴진다.

 

그 동안 우리가 접한 동양 고전은 대부분 공자나 맹자 등 중국 철학서를 풀이해 놓은 것이었고, 한문으로 쓰여진 우리 고전을 쉽게 풀어 놓은 책은 많지 않았다. ‘고전의 시선은 좁은 의미의 수필 문학에는 담기 어려운 논설문, 상소문, 일기, 편지글, 묘지명 등 다양한 형태의 우리 글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더욱이 글 속에 담긴 시대를 뛰어 넘어 깊은 울림을 전하는 삶의 다양한 순간들에 저자의 식견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친절한 설명을 더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특히 고전 작품 속에 오늘날 문제에 대한 해답이 나와있다는 식의 교훈적 메시지나 무리하게 고전의 의미를 연결시키지 않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의 장점이다. 오히려 이 여백에 독자 나름의 해석을 더해볼 수 있다는 점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문체도 현대적으로 다듬어져 있고, 각 글의 분량도 부담이 없어 읽기에도 편하다.

 

천 년이란 오랜 시간이 빚어낸 우리의 옛글이 펼쳐놓는 풍경과 사유에 흠뻑 빠져 읽다 보면 어느새 울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소한 고민부터 사별의 아픔, 사회적 모순에 대한 신랄한 비판까지 우리 산문 속에 투영된 선연들의 삶은 어쩌면 몇 백 년이 지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작가 송혁기 소개


고려대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17세기 말 18세기 초의 산문 이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선시대 문학비평 및 산문 작품을 주로 연구하고 있으며, 한문 고전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오늘의 언어로 나누는 영역으로 글쓰기를 확장하고 있다. ‘경향신문’3년째 ‘송혁기의 책상물림’을 연재하고 있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고전 강의를 통해 인문학의 사회적 확산에 힘을 보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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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