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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346)] 당신의 손길이 닿기 전에

[책을 읽읍시다 (1346)] 당신의 손길이 닿기 전에

리사 윈게이트 저 | 박지선 역 | 나무의철학 | 528| 14,8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당신의 손길이 닿기 전에는 영미권에서 스토리텔링의 거장으로 잘 알려진 리사 윈게이트의 신작이다. 작가의 책으로는 국내 첫 번역이다. 북리스트로부터 한마디로 마스터 스토리텔러라고 찬사를 들었을 만큼 첫 장만으로도 이야기의 묘미에 빠져들게 하는 작가는 이전까지도 매력적인 작품 세계를 꾸려왔지만 이번만큼은 전작들을 훌쩍 뛰어넘어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읽는 이라면 누구나 사로잡을 압도적인 서사를 선보인다.

 

이야기는 두 개의 시공간에서 평행하게 나아간다. 하나는 현재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다른 하나는 1939년 미국 멤피스에서. 오랜 명문가의 자손이자 상원의원의 딸인 에이버리 스태포드는 법학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연방 지방 검찰청의 검사로 지내다가 건강이 나빠진 아버지를 대신할 준비를 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때부터 에이버리의 머릿속은 지금껏 생각해본 적 없는 자신의 앞날에 관한 수많은 질문으로 혼란해진다.

 

그사이 한 요양원 행사에 참석한 에이버리 앞에 어느 노부인이 나타나 그녀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며 바라본다. 의문만 생긴 채 그 자리를 떠나온 뒤 그녀는 요양원에서 자기 팔찌를 보관하고 있다고 연락받는다. 그리고 팔찌를 찾으려고 다시 방문한 그곳에서 자신을 다른 이름으로 부른 노부인의 방에 이끌리듯 들어간다. 그 방에서 물가에 선 젊은 연인을 찍은 사진을 보게 되고 사진 속 여성에게서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로부터 칠십여 년 전 멤피스의 미시시피 강변, 열두 살 소녀 릴 포스와 네 동생은 보트에서 집시로 지내며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다. 강에서 나고 자란 그들에게 강은 먹을 것과 잘 곳을 주는 어머니와도 같다. 폭우가 쏟아지고 강이 성내던 어느 밤, 릴의 아빠는 출산으로 위험해진 엄마를 병원에 데려가려고 강을 떠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낯선 남성들이 보트에 들이닥친다. 동생들을 잘 지켜야 한다는 아빠의 당부에 따르려고 애썼지만 릴은 동생들과 함께 그들에게 끌려간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테네시 칠드런스 홈 소사이어티라는 보육원이다. 처음 보는 눈빛에 두려움뿐인 수많은 아이 사이에서 릴은 곧 부모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듣지만 매일같이 마주하는 건 더러운 방과 옷과 침구, 먹을 것이라고는 옥수수죽뿐인 열악한 환경과 직원들이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으면 매와 벌이 주어지는 암담한 현실뿐이다. 타의로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하게 된 릴 포스와 에이버리 스태포드,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이 두 인물의 이야기는 평행하게 나아가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 서로 엮이며 서서히 하나의 무늬를 만들기 시작한다.

 

보육원에서 릴에게는 메이라는 새 이름이 주어진다. 동생들도 새로운 이름이 붙은 채 힘써볼 새도 없이 눈앞에서 하나씩 떠나간다. 이름을 빼앗기는 일은 개인의 정체성을 심하게 훼손시키는 행위지만 그녀는 오히려 그것을 낯설고 고달픈 환경 속에서 살아남는 하나의 방편으로 전복시킨다. 릴은 강에 사는 자유롭고 행복한 영혼, 메이는 가족을 잃고 보육원에서 살아가는 무력하고 비참한 현실을 받아들인 자아다. 열두 살 아이가 힘센 어른들에 맞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뿐이다.

 

에이버리 역시 머릿속에 수많은 의문을 담아둔 채 노부인과 자신의 할머니 사이에 어떤 비밀이 있는지 알아내는 일에 이유도 모른 채 매달린다. 현재의 고민을 덮으려는 그런 시도는 역설적이게도 그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할 물꼬가 될 수도 있다. 팔십 년에 가까운 시간을 사이에 둔 릴의 고난과 에이버리의 고뇌는 다른 듯 닮았다. 끝까지 자기를 버리지 않는 두 사람의 집념이 자기 믿음으로 이어져 사랑과 용기를 획득할 때 참담한 과거는 어느새 밝은 앞날의 그림자가 되어 있다. 찢기고 잘려나가도 삶은 계속된다.

 

어린아이와 여성이라는 약한 외피를 지닌 이 둘의 힘센 내면은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작가는 미국 테네시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어떤 타자들, 좀더 세밀하게 말하자면 약한 자들의 고통과 의지를 누구나 비슷한 무게와 깊이로 느끼도록 친절한 이야기로 풀어냈다. 살아 있는 것들의 감정과 이야기의 본질을 꿰뚫은 이만이 가능한 방식으로. 자극적인 말들에 이목을 사로잡혀 세상과 인간의 선함을 믿지 않게 되는 시대에 단지 재미를 채우는 대상이 아닌 삶을 긍정하는 수단으로서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바람과 이야기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처럼 세상을 바꿀 이야기를 또 하나 내놓았다.

 

 

작가 리사 윈게이트 소개


전직 기자이자 서른 권이 넘는 소설을 집필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다. 서정적인 문체, 치유와 희망을 담은 글쓰기로 발표하는 작품마다 평단으로부터 대가의 위상에 걸맞다는 찬사를 받았으며 미국 내 각종 문학상을 수상하고 스물다섯 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한마디로 마스터 스토리텔러라는 북리스트의 평처럼 리사 윈게이트는 무엇보다 이야기를 중시한다.

 

어떤 책을 읽든 그 안의 세계에서 보내는 순간을 아끼고 사랑하며, 모든 이야기는 인생에서 얻은 영감으로 시작하기에 결국 글쓰기란 발견의 여정이라고 말한다. 작가로서 마지막 단어를 쓸 때까지도 이야기가 어디로 흐르고 어떻게 끝날지 알지 못하지만 마음은 항상 행복한 결말을 향한다. 충격적이고 끔찍한 말들에 눈과 귀를 사로잡혀 세상과 인간의 선함에 대한 믿음을 잃는 시대에, 작가는 단지 재미를 채우는 대상이 아닌 삶을 긍정하는 수단으로서의 이야기를 내놓으려고 한다. 모든 사람은 세상에 자기의 색을 칠하고 좋은 것을 더하려고 태어났다고 믿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동안 수없이 만나온 그런 사람들에 대해 쓰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여전히 이야기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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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