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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503)] 단 하나의 문장

[책을 읽읍시다 (1503)] 단 하나의 문장

구병모 저 | 문학동네 | 312| 13,5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단 하나의 문장은 주로 아이를 기르는 여성, 소설을 쓰는 여성을 중심인물로 내세워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 실존적 불안, 다가올 시대의 윤리 등에 대해 나름의 답을 제시하고 있다. 동시에 새로운 질문을 야기하며 삶과 사회를 바라보는 다층적 시각을 제공한다. 현재는 물론이고 아직 당도하지 않은 시대의 기미를 감지하는 데에도 탁월한 감각을 지닌 구병모는 상상이라는 도구를 통해 삶의 표층을 뚫고 들어가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은 심층부에 가닿는다.

 

그는 책 말미 작가의 말이제는 이야기의 너머에 또는 기저에 닿고 싶어진 것이다. 현전의 재현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잡히지 않는 것을 만질 수 있는 날이, 내게도 올까라고 썼다. 작가는 마치 단 하나의 문장을 통해 그 질문에 대해 자답하는 듯하다.

 

그 문을 여는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는 소설집 전체를 아우르는 작가의 고민과 통한다. 얼굴은 물론 이름도 밝히지 않고 활동하는 작가 ‘P는 어느날 그가 정치적 올바름에 위배되는 작품을 썼다는 평을 듣는다. SNS는 그의 편협한 세계관을 비판하는 글로 가득차고 출판사는 사과문을 올린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조금더 올발라졌을 뿐인 그의 다음 소설은 또다시 비난을 받고 그는 점점 창작의 반경을 좁혀나가다가 결국 작가로서의 삶에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아비규환이 된 SNS상에서 벌어지는 말의 활극을 현실감 있게 담아낸 이 소설을 통해 구병모는 사회적 존재로서 작가의 의미 그리고 한계를 고민한다. 또한 단지 작가만의 이야기를 넘어 말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인식과 문화의 차원에서 현상을 바라보도록 한다.

 

오토포이에시스에는 그 어떤 통찰이나 사유도 심지어 이야기 너머 기저에 있는 무언가에 닿기 위한 시도조차도 이야기라는 도구를 통해야 비로소 전달될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이 담겨 있는 듯하다. 오토포이에시스에서 이 세상 모든 이야기의 주제를 압축하는 나아가 그 모든 이야기와 무관한 궁극의 문장”(272)을 찾아가는 주인공은 아이러니하게도 먼 미래에 인간을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내도록 만들어진 AI 소설 기계 백지. 끊임없이 이야기를 지어내던 백지, 환경오염과 전쟁으로 인해 문명은 물론 문자마저도 사라진 멀고먼 미래에 다시 깨어나 글을 쓰는 자신의 행위,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실존적 질문에 맞닥뜨리는 이야기는 구병모가 작가로서, 인간으로서 품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의문을 형상화한 듯하다.

 

구병모는 동시대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양육자로서, 그리고 작가로서 직면하게 되는 현실을 사회학적 시선으로 탐문한다. 남편의 전근 발령으로 임신한 채 아무 연고도 없는 산골 마을로 거주지를 옮기게 된 정주가 원 거주자들을 통해 타인과 자신 사이의 거리 감각을 점차 상실해가며 느끼는 불안과 공포를 선명히 그려낸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 피서지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아이들로 인해 곤란을 겪다가 결국 안온했던 일상 자체가 위협을 받게 되는 지속되는 호의. 남성을 생물학적 여성으로 바꿔놓는 주사기 테러의 희생자가 된 한 남자의 이야기인 미러리즘이나 가상현실 체험 기계를 통해 사이버 소풍을 갔다가 실제적 위험에 처한 아이들을 구하고자 하는 웨이큰등은 비일상적인 상황을 통해 이 시대의 위험을 성찰하고 있다.

 

 

작가 구병모 소개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편집자로 활동하였다. 현재는 집필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위저드 베이커리는 신인답지 않은 안정된 문장력과 매끄러운 전개, 흡인력 있는 줄거리가 높은 평가를 받았다.

 

데뷔작 위저드 베이커리는 기존 청소년소설의 틀을 뒤흔드는 현실로부터의 과감한 탈주를 선보이는 작품이었다. 청소년 소설=성장소설 이라는 도식을 흔들며 빼어난 서사적 역량과 독특한 상상력으로 미스터리와 호러, 판타지적 요소를 두루 갖추었다는 평을 받았다. 작품을 지배하는 섬뜩한 분위기와 긴장감을 유지시키면서도 이야기가 무겁게 얼어붙지 않도록 탄력을 불어넣는 작가의 촘촘한 문장 역시 청소년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의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였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집에서 뛰쳐나온 소년이 우연히 몸을 피한 빵집에서 겪게 되는 온갖 사건들은 판타지인 동시에 절망적인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며, 일반문학과 장르소설의 묘미를 적확한 비율로 반죽한 이 작품만의 특별한 미감은 색다른 이야기에 목말랐던 독자들에게 쾌감을 선사했다. 또한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마법사의 눈에 비친 현대인의 비틀린 욕망은 무시무시하고, 평범한 중산층 가족이 숨기고 있는 비밀은 끔찍하기까지 하다. 헨젤과 그레텔같은 잔혹동화의 바통을 이어받으면서도 이들의 문법을 절묘하게 전복시킨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어 화제가 되었다.

 

구병모 작가는 한 인터넷 웹진에서 '곤충도감' 이라는 작품을 연재했다. 이름을 가리고 봐도 구병모 작가의 작품인지 알 수 있을 만큼 작가 특유의 분위기가 살아 있는 작품으로, 용서에 대한 것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2015년 소설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로 오늘의작가상과 황순원신진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장편소설 네 이웃의 식탁』 『파과』 『아가미』 『한 스푼의 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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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