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1518)] 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저 | 문학동네 | 296쪽 | 15,5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배우 하정우의 에세이 『걷는 사람, 하정우』가 출간된다. 이 책에서 하정우는 무명 배우 시절부터 천만 배우로 불리는 지금까지 서울을 걸어서 누비며 출퇴근하고 기쁠 때도 어려울 때도 골목과 한강 변을 걸으면서 스스로를 다잡은 기억을 생생하게 풀어놓는다. ‘배우로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실제로 그가 두 다리로 땅을 디디며 몸과 마음을 달랜 걷기의 노하우와 걷기 아지트, 그리고 걸으면서 느낀 몸과 마음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 모두 담겨 있다.
배우 하정우는 하루 3만 보씩 걷고, 심지어 하루 10만 보까지도 찍은 적이 있는 별난 ‘걷기 마니아’다. 친구들과 걷기 모임을 만들어 매일 걸음수를 체크하고, 주변 연예인들에게도 ‘걷기’의 즐거움과 유용함을 전파하여 ‘걷기 학교 교장 선생님’ ‘걷기 교주’로 불리는 그는 강남에서 홍대까지 편도 1만 6천 보 정도면 간다며 거침없이 서울을 가로지른다.
심지어 비행기를 타러 강남에서 김포공항까지 걸어간 적도 있다는 그에게 ‘걷기’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숨쉬고 생각하고 자신을 돌보며 살아가는 또다른 방식이다. 그는 이 세상의 맛있고 아름답고 좋은 것들을 충분히 만끽하고 감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영화 속 찰진 ‘먹방’으로도 자주 회자되는 그는 스스로 ‘걷기를 즐기지 않았더라면 족히 150kg은 넘었을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실제로도 잘 먹고 많이 먹는다. 그러나 그는 좀 덜 먹고 덜 움직이기보다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 세상의 맛있는 것들을 직접 두 손으로 요리해 먹고 두 발로 열심히 세상을 걸어다니는 편을 택하겠다고 말한다. 그는 이 세상의 맛있고 아름답고 좋은 것들을 충분히 만끽하고 감탄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한강 주변을 ‘내 집 앞마당’이라 생각하고 걷는다. 이 책에는 그가 길 위에서 바라본 ‘매직 아워’의 하늘, 노을, 무지개, 그의 새벽 걷기의 쉼터이자 간이카페가 되어주는 한강 편의점, 함께 걷는 길동무, 종일 걸은 후에 그가 직접 요리해 먹는 단순하지만 맛깔나는 음식 등, 그가 채집한 일상의 조각들이 스냅사진으로 실려 있다. 영화 [터널]을 촬영할 때, 터널 안에 매몰된 ‘정수’의 초췌하고 마른 몸을 표현하기 위해 촬영중 단기간에 혹독한 다이어트를 해야 했을 때도 그가 택한 것은 역시 ‘걷기’였다.
그러나 그에게 걷기는 단지 몸관리의 수단만은 아니다. 하정우에게 걷기란 지금 손에 쥔 것이 무엇이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두 다리만 있다면 굳건히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슬럼프가 찾아와 기분이 가라앉을 때, 온 마음을 다해 촬영한 영화에 기대보다 관객이 들지 않아 마음이 힘들 때, 그는 방 안에 자신을 가둔 채 남 탓을 하고 분노하기보다 운동화를 꿰어신고, 그저 걷는다. 걸으면서 복기하고 스스로를 추스른다.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지금 이 순간조차 긴 여정의 일부일 뿐이라고, 그리고 결국은 잘될 것이라고.
그가 걷기를 통해 배운 것은 걷기도, 일도, 인생도, ‘내 숨과 보폭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남 탓을 하고, 여건을 탓하고, 대중을 탓하고, 분위기를 따지는 법이 없다. 그저 건강한 두 다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자신의 앞에 펼쳐진 길을 기꺼이 즐기면서 걸어간다. 사람들이 쉽게 ‘성공’과 ‘실패’의 양극단으로 나누어 단정지어버리는 순간조차 자신이 끝까지 걸어야 할 긴 여정의 일부라 믿는 그의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다보면, 문득 하정우처럼 내 숨과 보폭으로 걷고 싶어진다.
살아가면서 그 어떤 조건과 시선에도 휘둘리지 않고 두 다리만 있다면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은 든든한 일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란히 걷고, 맛있는 것을 함께 먹고, 많이 웃고, 오래 일하고 싶은, 자연인 하정우의 발자국이 이 책에 활자로 남았다. 하정우에게 ‘걷기’는 두 발로 하는 간절한 기도,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계속되어야 할 ‘삶’ 그 자체다.
삶은 그냥 살아나가는 것이다. 건강하게, 열심히 걸어나가는 것이 우리가 삶에서 해볼 수 있는 전부일지도 모른다. 살면서 불행한 일을 맞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나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생이란 어쩌면 누구나 겪는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일에서 누가 얼마큼 빨리 벗어나느냐의 싸움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사고를 당하고 아픔을 겪고 상처받고 슬퍼한다. 이런 일들은 생각보다 자주 우리를 무너뜨린다. 그 상태에 오래 머물면 어떤 사건이 혹은 어떤 사람이 나를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망가뜨리는 지경에 빠진다. 결국 그 늪에서 얼마큼 빨리 탈출하느냐, 언제 괜찮아지느냐, 과연 회복할 수 있느냐가 인생의 과제일 것이다. 나는 내가 어떤 상황에서든 지속하는 걷기가 나를 이 늪에서 건져내준다고 믿는다.
이 책에는 그가 길 위에서 바라본 노을, 무지개, 하늘, 그의 새벽 걷기 코스의 쉼터이자 카페가 되어주는 한강 편의점, 걸은 후에 그가 직접 조리한 요리 등 그가 모아둔 일상의 단편들이 스냅사진으로 실려 있다.
작가 하정우 소개
배우, 영화감독, 영화제작자. 그림 그리는 사람. 그리고, 걷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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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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