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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642)] 눈과 사람과 눈사람

[책을 읽읍시다 (1642)] 눈과 사람과 눈사람

임솔아 저| 문학동네 | 224| 12,5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삶을 직시하고 온몸으로 경험하는 작가 임솔아의 첫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 시적인 문장 안에 진중한 사유를 함축하여 한국문학의 깊이를 더하는 임솔아의 작품세계를 단편집으로는 처음 음미해볼 수 있는 기회다. 임솔아가 고르고 골라 배치해둔 단어들은 시어와 같은 무게를 지니고 문장과 문장 사이를 말해지지 않은 의미로 고요히 채워가며 자신만의 독특한 울림을 발산한다.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내려다보며 자신이 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착각을 유지하는 뻔한 세상의 아주 평범한 말투언니와 여행중 불의의 사고로 절단된 동생의 발가락을 이성적인 판단하에 해외에 남겨두고 귀국할 수 있는 신체 적출물은지, 언니의 보살핌을 받는 기정과 신체의 일부를 영영 잃게 된 은하의 입장에서도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임솔아 소설은 정상으로 여겨지던 것들을 비정상으로 뒤집어 보게 함으로써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무화시키고 정상이라는 이름을 차지하고 있는 권력을 허문다. 이러한 전복은 추앙에서 가장 강렬하게 이루어진다. 추앙은 임솔아가 문단 내 성폭력의 피해자로서 용기 내어 쓴 작품이다. “강직하거나 점잖다고 정평이 나 있는 수많은 교수와 시인중에는 권력을 이용해 자신을 존경하던 습작생들을 추행하고 폭행한 가해자가 분명히 있다고, 이 소설은 증언한다. “시적 자유와 낭만성으로 포장되는 모든 폭력을 합리화하는 맹목적인 추종을 끝내고 다음 세계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임솔아의 강인한 음성에는 결코 흔들림이 없다.

 

정상성이라는 허상에서 탈피하여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임솔아 소설의 인물들은 평화를 맞는다. 선샤인 샬레의 주인공 민주가 그렇다. 민주는 무엇으로도 명명될 필요가 없는 존재들이 자유롭게 머물다 떠나는 비밀스러운 휴양지 히든 롬 빌라의 직원이다. 여행객들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 이곳에서, 민주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과 함께 살아간다. 외부로부터 억지로 부여받은 자신의 정체를 잊고 있는 한, 민주는 아무것도 아닌 채로 세계와 동화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 눈과 사람과 눈사람에서 임솔아의 인물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민다. 마치 눈송이가 세상에 녹아들지 않고 모여들어 커다란 눈사람을 만들듯이. 이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성폭력 피해자와 연대하기 위해 모였지만 뜻하지 않은 오해를 받아 다른 연대자들로부터 질타받게 된다.

 

그들은 해명을 준비하지만, 길고 긴 회의 끝에 그들의 고백이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피해자를 공격하고 연대자들을 와해시킬 좋은 무기가 되리라는 결론을 낸다. 더 큰 연대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로 결정한 이 인물들의 연대의식은 끝내 다른 이들에게 전해질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남겨져 응결될수록 더욱 단단해져갈 것이다.

 

소설집에 수록된 여덟 편의 작품은 인물의 나이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다음 작품으로 이행할수록 나이를 먹어가는 임솔아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변화는 인상 깊다. 스스로를 비정상으로 여기게 만드는 세상에 반발하며 서걱거리는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던 존재들이 소설집의 끝에서는 물기를 품은 눈송이로 변해 서로 뭉친다.

 

임솔아가 작가의 말에서 이 인물들은 여태 내가 겪어온 것들을 함께 겪은 동지들이라고 밝힌바, 소설 속의 인물들이 삶을 지속하며 이뤄내는 변화는 작가 임솔아가 겪은 변화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아주 가까이 있지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는 사회의 사각지대에 임솔아는 자신의 몸을 한껏 밀착한다.

 

그리하여 작가 스스로 경험하지 않고서는 써낼 수 없는 약자와 소수자로서의 삶의 세부를 소설 속에 배치해놓는다. 이렇게 쓰였기 때문에, 임솔아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일상에서 한 번씩은 마주했을 어떤 무례함과 부당함을 생생히 기억해내게 된다.

 

 

작가 임솔아 소개

 

1987년 대전 출생했다.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로, 2015년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하며 소설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최선의 삶, 시집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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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