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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637)]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책을 읽읍시다 (1637)]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그날 그 자리에 있을 사람에게

심보선 저 | 문학동네 | 328| 14,5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등단 14년 만인 2008년 첫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펴낸 이래 대중과 문단의 폭넓은 사랑과 주목을 받아온 심보선 시인. 그의 첫 산문집을 펴낸다. 첫 시집 출간 직전인 2007년부터 2019년 현재까지 써온 산문을 가려 뽑고, 때로는 지금의 시점에서 반추한 코멘트를 덧붙이기도 하며, 77개의 글을 한 권에 담았다.

 

우리가 무엇을 잊고 무엇을 외면하는지 끊임없이 되새기는 글들이다. 사회적 문제를 타인의 문제로 외면하지 않고 우리의 문제로 생각하는 자세에 대한 글들이다. 요컨대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묻는 글들이다. 당신이 있는 곳을 돌아보기를, 내가 있는 이쪽의 풍경은 어떤지 바라보기를, 그리하여 나와 너,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어떤 움직임이 될 수 있을지, 어떤 세계를 보여줄 수 있을지 묻는.

 

이것은 시인이자 사회학자라는 그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겠으나, 오로지 그 때문만이라 할 수는 없을 터이다. “친구들과 연인과 동시대인이 살고 있는 삶에 매혹되고, 그 삶들의 움직임이 나의 몸과 영혼을 뜨겁게 하고, 내 가슴속에서 말을 들끓게 하고, 나의 손발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라 말하는 심보선이라는 바로 그 사람에게 사회학을 하는 좌뇌와 시를 쓰는 우뇌가 있기 때문이라 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심보선은 자신에게 세 가지 수수께끼가 있다고 말한다. ‘영혼이라는 수수께끼, 예술이라는 수수께끼, 공동체라는 수수께끼이다. 책은 그에 따라 총 세 개의 부로 나뉘어 있다.

 

1부에서는 삶과 사람, 가족, 일상과 관계를 소재 삼아 영혼의 목소리에 귀기울인다. 그에게 영혼이란 선험적인 무언가가 아닌, “언제나 일상으로부터, 태도들 사이에서, 몸짓과 말투 속에서, 모종의 신호로서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것, “강박과 예속에 대해 매 순간 저항하게 하고, 망설이게 하고,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어색하게하는 것이다. 일용직 노동자, 아버지, 택시 기사, 시인, 활동가, 친구와의 대화와 일화에서 마주한 영혼의 목소리를 제1부에 담긴 글에서 만날 수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적인 길을 따라가는 것이란 무엇인가, 그가 품은 첫 번째 수수께끼이다.

 

2부는 심보선의 유년으로 시작된다. 사회학적으로 문화 자본이 결여된 집안에서 자라 시인이 될 확률이 지극히 낮았다. 어쩌면 그랬기에 그에게 시쓰기란 내가 쓸 수 없는 것을 쓰는 행위, 상식의 세계에서 강요되는 정체성을 거부하고 타자가 되어 쓰는 것일 터이다. 그것이 책 속에 끼워진 아버지의 육필 메모를 비밀스럽게 계승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내밀한 고백도 담겼다. 이후 다양한 예술가와 작품들을 레퍼런스 삼아 예술이라는 수수께끼를 풀어간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진실을 규명하자는 취지의 거리연극제인 안산순례길’, 고공 농성중인 해고 노동자들에게 트위터를 통해 소설, , 에세이, 혹은 개인적인 지지 메세지를 녹음하여 육성으로 들려주었던 소리연대등 심보선은 사회적 갈등과 운동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 쌍용자동차 해고자 문제를 시로 써 기록해왔다. 공동체라는 수수께끼, 공동체라는 애틋한 이름에 대한 심보선의 생각을 제3부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책의 부제 그날 그 자리에 있을 사람에게내가 읽는 시가 그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말, 공통의 말이 되기를 소망하면서”(259)에서 가져와 변형했다. 책에 실린 77개의 글은 과거에 쓰였고 글이 쓰일 당시보다 더 과거의 일들에 대해 쓰인 것도 많지만, 이 책은 결국 미래의 누군가를 향해 띄우는 편지 같다 생각했기에. “작은 것이 작은 것 너머로 이동하는 마술이 일어날 때가 있다. 확실성에서 불확실성이 발견될 때도 있다. 이때 불확실성은 불안을 야기하기도 하지만 놀랍고도 설레는 모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98)는 믿음을 담았다. 신랄하게 비판하고 단정적으로 확언하지 못하는 사람, 사실은 희망하기 위해 비관하는 사람, 세 가지 수수께끼를 화두로 붙잡고 죽을 때까지 쓰고 싶다는 사람, 그가 가만히 묻는다.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작가 심보선 소개

 

시인, 사회학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풍경이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시집 내가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오늘은 잘 모르겠어』 『눈앞에 없는 사람』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예술비평집 그을린 예술이 있다. 어빙 고프먼의 수용소를 옮겼다. 김종삼시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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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