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1659)] 지구에서의 내 삶은 형편없었다
임승훈 저 | 문학동네 | 432쪽 | 15,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2011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임승훈의 첫 소설집 『지구에서의 내 삶은 형편없었다』. 대개 문학을 향한 애정과 신인으로서의 포부를 드러내며 자신의 문학적 시작을 알리기 마련인 상황에서 임승훈은 엄숙함과 진지함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유머’와 ‘지질함’을 올려놓았다. ‘유머’가 읽는 이에게 산뜻한 뒷맛을 남기는 것이라면 ‘지질함’은 물로 헹구고 싶은 찝찝한 맛을 안겨준다.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칠 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써내려간 여덟 편의 중단편소설은 바로 이 유머와 지질함의 배합으로 탄생한 ‘단짠단짠’의 이야기다.
‘지구에서의 내 삶이 형편없다’고 느껴질 때조차 임승훈은 유머를 포기하지 않는다. 「초여름」 속 ‘나’는 어릴 때 ‘예민하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머리가 좋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현재는 자신의 소설적 재능을 인정받지 못해 결국 죽기로 결심하고 목을 매단 소설가다. 웃음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임승훈은 기발한 설정을 삽입해 그의 죽음을 유예시킨다. ‘나’가 자살을 결심하기 전 외계인에게 개조당해 죽지 않는 몸이 되었다는 것. ‘나’는 목을 매단 지 삼 일이 지나도록 죽지 않은 채 아이폰의 음성인식 기능을 통해 자신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기까지 한다. 지질하고 가혹한 상황에서만 가능한 이런 ‘웃픈’ 장면을 임승훈만큼 능란하게 그릴 수 있는 작가는 많지 않을 것이다.
죽음을 코앞에 둔 사람은 또 있다. 「우울한 복서는 이제 우울하지 않지」의 ‘나’는 시합을 앞두고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말한다. “오늘 넌 죽을 거야.” 그의 설명에 따르면 분열된 시공간의 차원마다 동일한 임승훈들이 다른 삶을 살고 있는데, 그는 “그렇게 분열된 차원들을 넘나들면서 모두 칠십이 명의 임승훈의 죽음을 보았다”는 것이다. 「초여름」처럼 외계인이 등장하지도 않는, 죽음이 자명한 상황에서 돌파구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또다른 차원들에서는 동일한 임승훈들이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그 남자의 말처럼,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사는 ‘수많은 나’가 되는 것이라면 어떨까.
「초여름」 「우울한 복서는 이제 우울하지 않지」를 비롯해 「졸피뎀과 나」 「이서진을 닮은 탐정―새가 된 아내」 속 화자의 이름이 모두 ‘임승훈’인 것은 이것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어딘가에서 임승훈은 목을 매달거나 마지막 시합을 앞두고 있지만, 또다른 곳에서 임승훈은 이서진을 닮은 탐정이 되어 파란 새를 찾으러 다니는 것이다. 사라진 아내를 찾아달라는 한 남자의 요청을 받은 탐정 임승훈이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아내의 실종을 둘러싼 뜨악한 실체가 밝혀지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담담하고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탐정 임승훈의 성격이 묘한 화학작용을 일으켜 독특한 유머러스함을 형성한다.
작가 임승훈 소개
2011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에 단편소설 「그렇게 진화한다」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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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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