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읍시다 (1667)] 유발 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
전쟁, 역사 그리고 나, 1450~1600
유발 하라리 저 | 김승욱 역 | 박용진 감수 | 김영사 | 516쪽 | 22,000원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인류 3부작’을 통해 하라리가 던진 질문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였다. 보잘것없는 존재였던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정복한 뒤 이제 스스로 신의 자리를 넘보게 되었다는 대서사는 불가해한 세상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탁월하고 대담한 이야기로 각계각층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요컨대 세상의 의미를 구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를 쓴 셈이다. 그렇다면 그 속의 ‘나’는 누구일까? ‘나’의 역사는 어떻게 존재할까? 이 책은 ‘우리’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전, 하라리가 역사 속 ‘나’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개인의 정체성 문제를 파고들기 위해 하라리가 주목한 것이 바로 르네상스 시대 군인들이 남긴 회고록이다. 그들의 회고록은 17세기 중앙집권적 근대국가가 등장하기 전 역사와 개인사 사이의 긴장 관계를 첨예하게 드러낸다. 왕과 민족을 핵심으로 한 ‘역사 만들기’를 추진하기 시작한 국가에 저항한 독립적 개인의 정치적 급진성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은 군인회고록은 1450년에서 1600년 사이 34명이 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영어 문헌이다.
르네상스 시대 군인들의 회고록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구색을 갖춘 글이라고 하기 어렵다. 인과관계로 이어진 이야기라기보다 제각각인 에피소드의 건조한 나열이고, 독자를 이해시키려 하지도 않은 채 독자의 기억에 남으려 하고, 역사적 사건과 자전적인 현실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는, 알쏭달쏭한 글이다.
그러나 하라리는 당대 진실성의 원천이 목격 등의 경험보다는 귀족의 명예에 더 기대었다는 점을 들어 ‘진실한 목격담’ 가설을 논파한다. ‘믿을 만하다’는 말은 명예와 동의어였으며 진실은 목격자가 아니라 명예를 지닌 귀족에게서 나왔다는 것이다. 실은 르네상스 시대 군인은 명예를 목숨처럼 여긴 전사 귀족이었다. 귀족이 아니면 역사 속에서 자리를 차지할 수도 없었고, 정체성도 빼앗기고 말았다.
하라리는 르네상스 시대 군인회고록이 역사적 현실을 묘사하는 방식을 역사와 개인사의 동일시로 고찰한다. 일화 중심적인 역사는 기록 하나하나가 의미를 가지며, 언제라도 추가할 수 있게 결말이 열려 있다. 각자가 인과율의 억압 없이 자유로운 글을 쓸 수 있다면, 삶 또한 의미를 가지며, 닫히지 않을 것이다. ‘왕조-민족의 위대한 이야기’는 개인사는 분리되어 떨어져나간 ‘우리’의 역사다. 르네상스 시대 군인회고록은 역사와 개인사가 일치하는 ‘나’의 역사다. 물론 당대 회고록 저자는 귀족 남성으로 정체성이 한정되었고, 역사의 내용은 명예로운 행동으로 국한되었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역사와 개인사의 긴장 관계를 보여주는 잣대로는 손색이 없다.
작가 유발 하라리 소개
이스라엘 하이파에서 태어나, 2002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중세 전쟁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에서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사와 생물학의 관계,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동물의 본질적 차이, 역사의 진보와 방향성, 역사 속 행복의 문제 등 광범위한 질문을 주제로 한 연구를 하고 있다.
2009년과 2012년에 ‘인문학 분야 창의성과 독창성에 대한 플론스키 상’을 수상했고, 2011년 군대 역사에 관한 논문으로 ‘몬카도 상’을 수상했다. 2012년 ‘영 이스라엘 아카데미 오브 사이언스’에 선정되었고, 2018년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인류의 미래에 관해 기조연설을 했다. 2017년에는 『호모 데우스』가 독일 유력 경제지인 〈한델스블라트〉가 꼽은 ‘가장 통찰력과 영향력 있는 올해의 경제 도서’에 선정되었다.
기로에 선 21세기 사피엔스를 위해 인류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를 탐색한 ‘인류 3부작’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출간되어 1,600만 부 글로벌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21세기 사상계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유발 하라리. 『유발 하라리의 르네상스 전쟁 회고록』은 ‘인류 3부작’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선행 연구로, 하라리의 옥스퍼드 대학교 박사학위 논문이다. 이제 역사와 미래를 바라보는 새롭고 대담한 관점을 제시하는 하라리 사상의 원류를 일별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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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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