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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캠페인:책을 읽읍시다]

[책을 읽읍시다 (1705)] 덧니가 보고 싶어

[책을 읽읍시다 (1705)] 덧니가 보고 싶어

정세랑 저 | 난다 | 228| 13,000

 

 

[시사타임즈 = 박속심 기자] 20101판타스틱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등단한 후 창비장편소설상,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고 미디어 플랫폼 넷플릭스의 러브콜을 받는 등 각종 매체와 독자의 마음을 골고루 사로잡은 작가 정세랑의 장편소설이다. 분야와 소재를 가리지 않고 소설 영토를 종횡무진하는 상상력과 거침없는 필력은 이 소설에 아홉 개의 이야기를 짜넣으며 조합한 솜씨로 일찌감치 예고된 것인지 모른다.

 

용기는 장래가 촉망되는 럭비 특기생이었으나 무릎 부상을 당해 지금은 보안업체 출동 요원으로 일하고 있다. 후임을 언제 뽑아줄지 기약 없는 막내 신세인 그에게는 선배들이 미루고 미룬 진상 업무만이 떨어진다. 그럴싸한 긴급상황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채 술에 취한 고객의 갑질을 상대하느라 골치가 아픈 그에겐 연하의 여자친구가 있다. 당돌하게 사랑을 요구하고 모든 것이 분명한 그애에게서는 누구나 좋아할 바닐라 맛이 난다. 그에 비하면 전 연인 재화는 늘 떨떠름한 초록색 맛이었다. 안고 있어도 안은 것 같지 않은, 속을 도무지 보여주지 않는 재화는 딱딱할 정도로 진하고 단맛은 없는 녹차 아이스크림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용기의 피부에 이상한 문장이 하나둘 새겨지기 시작한다.

 

낮에는 회사를 다니고 밤에는 장르 소설가로 바쁜 삶을 사는 재화에게 용기는 지구가 멸망한다면 마지막 하루쯤은 함께하고픈 남자다. 이제는 멀리서 소식을 듣는 사이가 되었지만 소재 파악이라도 해둬야 지구가 멸망할 때 연락이라도 해보지 싶어 가끔, 헤어진 그를 떠올리곤 했다. 그래서일까, 재화가 발표하는 소설마다 용기를 닮은 인물이 들어 있었다. 첫 소설집 출간을 앞두고 재화가 작품을 하나씩 퇴고할 때마다 그 죽음의 순간이 용기의 피부에 문신처럼 글씨로 새겨진다. 그러던 어느 날 재화는 자신의 우편물 봉투에서 정교한 칼집을 발견하곤 누군가가 자신의 우편을 뜯어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재화가 써내려간 이야기들은 각각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포털을 탄 듯 새로운 시공간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그 이야기의 결말에 감도는 끝맛에는 다른 차원에서 살았던, 다른 삶을 살았던 두 존재가 만나고 헤어지기까지의 과정에 겪는 슬픔, 후회, 연민, 분노, 원망, 그리움 등 온갖 감정의 스펙트럼이 담겨 있다. 어쩌면 연애는 서로 다른 차원으로 가는 문을 여는 일인지도 모르니까. 이제 작품 속으로 워프할 일만 남았다.

 

장르 소설가 재화가 작품 속에서 헤어진 남자친구 용기를 아홉 번이나 죽이게 되고 그 죽음의 순간이 용기의 피부에 문신처럼 새겨진다는 게 작품의 큰 줄기다. 정세랑의 특장인 생동감 있는 대사의 말맛이 잘 살아 있는 이번 장편은 스릴러적인 긴장과 비판적 시선을 놓지 않으면서도 발랄하게 튀어오르는 탄성과 재치로 읽는 이에게 건강한 웃음을 남긴다.

 

8년 만에 전면 개정하여 선보인 이 작품은 동세대의 감수성과 달라진 지형을 영리하게 반영하며 거의 모든 문장을 고치고 설정을 세밀하게 다듬었다. 그동안 한국 문학의 경계가 어디인지 시험하며 다채로운 빛깔로 새로운 종이 되고자 꿈틀거려온 그다. 이제 새로운 독자들의 감수성이 펼쳐둔 지도 위 정세랑이라는 별자리는 그 한가운데서 빛난다. 좋은 이야기는 어려운 선택을 하는 이들의 편에 서는 이야기라고 믿는 작가 정세랑. 그가 썼으며 앞으로 써나갈 이야기의 우주, 그 씨앗이 여기 있다.

 

 

작가 정세랑 소개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0[판타스틱]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장르소설로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했지만 그녀의 작품은 장르소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문예지에 글을 기고하며 문단에서 유명한 출판사에서 책을 내기도 했다. 채널예스 정의정 기자에 따르면, "편집자였던 이력이 묻어나오는 단단하고 정갈한 문장으로 줄거리를 뒷받침" 한다. 장편소설로 덧니가 보고 싶어』 『지구에서 한아뿐』 『이만큼 가까이』 『재인, 재욱, 재훈』 『보건교사 안은영,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등이 있다. 2013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2017피프티 피플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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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속심 기자 sisatime@hanmail.net